[단독] 다 잡은 키스방 업주 ‘무죄’…이유는?

입력 2020.11.20 (11:55) 수정 2020.11.2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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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불법 성매매 단속 현장<자료화면>경찰 불법 성매매 단속 현장<자료화면>


지난해 9월 부산지방경찰청 풍속수사팀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부산 도심 한복판에서 미성년자를 고용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의 신고였습니다. 신고자가 지목한 곳은 이른바 '키스방'으로 영업 중이었습니다.

현장을 찾은 경찰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간판도 없이 굳게 닫힌 오피스텔 철문 위로 복도를 비추게 설치된 CCTV는 뭔가 '은밀'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잠복이 시작됐습니다. 그날 오후 한 여성이 문을 여는 순간 경찰은 현장을 덮쳤습니다. 경찰이 확인한 내부는 간이벽으로 나누어진 작은 방에 침대가 놓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 으로 쓰레기봉투에서 사용 흔적이 있는 피임기구를 발견했습니다.

일한 여성들도 성매매가 있었노라 진술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10대도 있었습니다. 업주는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과 성매매 알선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꽤 중한 형벌이 떨어질 수 있는 혐의입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법원이 업주에게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법원은 오히려 경찰이 '위법'을 저질렀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 법원 "영장 없는 수색활동은 위법"
부산지방법원부산지방법원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경찰에게 풍속영업소에 출입해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경찰은 이 법에 따라 문제의 키스방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경찰이 이후 증거를 찾기 위해 벌인 수색 활동은 강제수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범죄혐의가 있어 진행하는 수사 목적의 수색은 사전 또는 사후 영장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의 판시는 이렇습니다.

"(경찰의) '출입 및 검사' 행위가 강제수사의 일종인 수색에 해당함에도, 이에 대한 사전 또는 사후 영장을 받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키스방 출입 및 검사 행위는 위법하다."

덩달아 경찰이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는 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게 됐습니다. 주요 증거가 줄줄이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자 법원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증거들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며 무죄를 내린 거였죠.

■ 난처해진 경찰 "법원과 의견 달라"

부산지방경찰청부산지방경찰청
다잡은 '범인'이 눈앞에서 무죄를 받게 된 모습을 지켜본 경찰은 난처한 상황이 됐습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부산지방경찰청 측은 KBS에 보내온 입장을 통해 "법원 판결은 경찰의 행정조사가 수사로 전환되는 경계점에 대한 해석에 대해 경찰과 의견을 달리한다"고 밝혔습니다.

신빙성을 확신할 수 없는 제보만으로 현장을 찾았고, 이후 범죄 혐의점이 발견돼 수사에 착수했으며 관련 증거는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획득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또 풍속영업규제법은 "사전 또는 사후 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오히려 경찰에게 폭넓은 출입 및 검사 권한을 부여한 것이 입법자의 입법 취지로 보아야 할 여지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강력한 공권력인 경찰에 강제수사까지 결정할 권한을 주는 건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과는 차이가 있는 입장입니다.

■"사후 영장이라도 받았다면"-"현장 어려움 고려 안 해"

경찰 불법 성매매 단속 현장<자료화면>경찰 불법 성매매 단속 현장<자료화면>
법조계에서는 경찰 대응에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기자와 통화한 몇몇 변호사는 "경찰이 자의적으로 법 조항을 해석하지 않고 안전하게 사후 영장을 발급받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피고 측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의 이기웅 변호사까지 "경찰이 사후 영장을 받았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형사소송법상 가장 중요한 영장 절차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피고인 본인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가 나온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한 일선 단속 경찰관은 "사전은 말할 것 없고 사후 영장 역시 발부받기 까다로운 상황에서 단속 기준을 엄하게 적용하면 은밀한 성매매 현장을 적발하기 쉽지 않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 판결"이라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1심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경찰과 사건을 지휘한 검찰은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본다는 계획입니다. 만약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된다면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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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0 11:55:26
    • 수정2020-11-22 14:23:15
    취재K
경찰 불법 성매매 단속 현장<자료화면>

지난해 9월 부산지방경찰청 풍속수사팀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부산 도심 한복판에서 미성년자를 고용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의 신고였습니다. 신고자가 지목한 곳은 이른바 '키스방'으로 영업 중이었습니다.

현장을 찾은 경찰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간판도 없이 굳게 닫힌 오피스텔 철문 위로 복도를 비추게 설치된 CCTV는 뭔가 '은밀'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잠복이 시작됐습니다. 그날 오후 한 여성이 문을 여는 순간 경찰은 현장을 덮쳤습니다. 경찰이 확인한 내부는 간이벽으로 나누어진 작은 방에 침대가 놓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 으로 쓰레기봉투에서 사용 흔적이 있는 피임기구를 발견했습니다.

일한 여성들도 성매매가 있었노라 진술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10대도 있었습니다. 업주는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과 성매매 알선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꽤 중한 형벌이 떨어질 수 있는 혐의입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법원이 업주에게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법원은 오히려 경찰이 '위법'을 저질렀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 법원 "영장 없는 수색활동은 위법"
부산지방법원'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경찰에게 풍속영업소에 출입해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경찰은 이 법에 따라 문제의 키스방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경찰이 이후 증거를 찾기 위해 벌인 수색 활동은 강제수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범죄혐의가 있어 진행하는 수사 목적의 수색은 사전 또는 사후 영장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의 판시는 이렇습니다.

"(경찰의) '출입 및 검사' 행위가 강제수사의 일종인 수색에 해당함에도, 이에 대한 사전 또는 사후 영장을 받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키스방 출입 및 검사 행위는 위법하다."

덩달아 경찰이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는 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게 됐습니다. 주요 증거가 줄줄이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자 법원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증거들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며 무죄를 내린 거였죠.

■ 난처해진 경찰 "법원과 의견 달라"

부산지방경찰청다잡은 '범인'이 눈앞에서 무죄를 받게 된 모습을 지켜본 경찰은 난처한 상황이 됐습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부산지방경찰청 측은 KBS에 보내온 입장을 통해 "법원 판결은 경찰의 행정조사가 수사로 전환되는 경계점에 대한 해석에 대해 경찰과 의견을 달리한다"고 밝혔습니다.

신빙성을 확신할 수 없는 제보만으로 현장을 찾았고, 이후 범죄 혐의점이 발견돼 수사에 착수했으며 관련 증거는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획득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또 풍속영업규제법은 "사전 또는 사후 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오히려 경찰에게 폭넓은 출입 및 검사 권한을 부여한 것이 입법자의 입법 취지로 보아야 할 여지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강력한 공권력인 경찰에 강제수사까지 결정할 권한을 주는 건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과는 차이가 있는 입장입니다.

■"사후 영장이라도 받았다면"-"현장 어려움 고려 안 해"

경찰 불법 성매매 단속 현장<자료화면>법조계에서는 경찰 대응에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기자와 통화한 몇몇 변호사는 "경찰이 자의적으로 법 조항을 해석하지 않고 안전하게 사후 영장을 발급받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피고 측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의 이기웅 변호사까지 "경찰이 사후 영장을 받았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형사소송법상 가장 중요한 영장 절차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피고인 본인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가 나온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한 일선 단속 경찰관은 "사전은 말할 것 없고 사후 영장 역시 발부받기 까다로운 상황에서 단속 기준을 엄하게 적용하면 은밀한 성매매 현장을 적발하기 쉽지 않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 판결"이라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1심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경찰과 사건을 지휘한 검찰은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본다는 계획입니다. 만약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된다면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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