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학대 위험 평가서 ‘1점’ 차로 못 막은 죽음

입력 2020.11.20 (14:05) 수정 2020.11.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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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응급실에 멍투성이로 실려와 숨진 16개월 여아 A 양의 엄마가 어제(19일) 아동학대 치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습니다. 아빠 역시 아동복지법상 방임 등의 학대 혐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A 양은 생후 7개월 만에 입양됐는데, 입양된 지 9개월 만에 부모 학대로 세상을 떠난 겁니다.

더 큰 문제는 A 양이 숨지기 전, 지난 5월과 6월, 9월까지 3차례나 A 양에 대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지만 이를 조사한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무혐의 처분하거나 사건을 종결하는 등 아무 조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KBS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신고를 조사해 작성한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결과서를 입수해 어떻게 평가했길래 아무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확인해봤습니다.

■의사가 "영양실조, 상흔" 얘기하며 신고했지만….'학대로 인한 영양실조'아니라고 판단

마지막 학대 신고는 A 양이 숨지기 20여 일 전인 9월 23일이었습니다. 아이를 본 소아과 의사가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 상태가 안 좋다"며 직접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왔는데, 원래도 여기저기 멍이 들어서 왔던 아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생후 15개월이던 아이 몸무게가 한 두달 만에 1kg이나 빠진 상태였습니다.


벌써 3번째 신고였지만 조사에 나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위험도평가척도' 평가서에 '학대로 초래된 영양실조나 발육부진이 관찰된다'는 항목을 '아니요.'로 체크했습니다.

이 평가서는 '예' 하나당 1점을 받는 9개 항목으로 구성돼 4점 이상 나오면 분리조치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학대평가 보조지표입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A 양을 평가하면서 3개 항목에 '예'라고 표시해 9점 만점에 3점이 됐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학대로 인한 영양실조'로 판단했다면 4점이 돼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판단은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이해할 수 없는 판단".."체중감소는 가장 중요한 학대 징후"

KBS 취재진과 함께 평가결과서를 살펴본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병원의사 선생님도 이게 정상적인 체중감소가 아니라고까지 얘기를 하는데도 그 아이가 그 가정에서 안전하다고 판단한 이유가 뭘까 되게 좀 의아한 부분"이라며 "이해하기 힘든 판단"이라고 밝혔습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도 "A 양 사건의 경우 체중감소가 가장 중요한 학대의 징후로 보여진다"며 "16개월짜리 아이들이 걸을 수 없을 만큼 에너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은 일반 아이들에게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학대 징후"라고 평가했습니다.

황 교수는 "몸에 상흔이 있거나 멍이 든 것도 아동학대의 징후로 볼 수 있고 모두가 '내가 학대받고 있어요.'라고 하는 것을 보여준 이 아이의 징후였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습니다. 일종의 구조신호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이어 "아이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학대가 있었을 거라고 염려해 신고했지만 오히려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고 이 부분을 판단해야 하는 그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들께서 학대 정황을 놓쳤다는 점이 굉장히 뼈아프다"고 지적했습니다.

■죽기 전날 어린이집에선 "모든 걸 다 거부했어요. 밥을 줘도 고개를 흔들고 삼키지도 못했고..."

마지막 학대 신고 이후 응급실에서 멍투성이로 숨지기까지의 20여 일간 A 양이 어린이집에 또 갔는지 확인해봤습니다.

A 양은 학대신고 다음날인 24일과 25일 어린이집에 왔었고, 28일과 29일에는 상태가 좋아져 추석 명절을 앞두고 놀이도 참여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걸어 다닐 수 있을만한 상태가 된 겁니다.

하지만 10월에는 계속 어린이집에 나오지 않다가 숨지기 전날인 12일에야 출석했습니다. 상태는 마지막 신고가 있던 23일보다 안 좋았습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10시 좀 넘어서 와서 6시쯤 돌아갈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우유 하나만 마시고 갔다" 며 "기운이 없어 움직이지도 않고 안겨있거나 앉아만 있다가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밥을 줘도 고개를 흔들고 삼키지도 못하고 입에 물고 있다 뱉어냈고, 과자나 물을 줘도 먹기 싫어했다"며 "선생님들도 몸은 다 말랐는데 배만 볼록 나와서는 아무것도 안 먹으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다음날 어린이집엔 A 양 언니만 왔고, A양은 멍투성이에 쇄골과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숨을 거뒀습니다.

■숨진 뒤 수사서 드러난 학대 정황들…. 학대는 입양 한 달 뒤부터 시작

3차례 학대 신고를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조사했던 경찰은 3차례 모두 별다른 조치 없이 조사를 종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숨진 뒤 시작된 수사는 달랐습니다. 휴대전화 압수수색, 주거지 CCTV 분석 등을 통해 아이가 입양된 지 한 달 뒤부터 학대가 시작됐다는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다니는 등 방임했다는 겁니다.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학대는 6월부터 시작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신체에 직접적인 학대를 가하기 시작했던 건 6월 이후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의미입니다.

A 양이 숨진 날 집에 함께 있던 엄마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아빠는 학대 방임 혐의로 불구속 송치…엄마와 함께 방치한 정황 드러나

A 양 아빠도 아동복지법상 방임 등의 혐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습니다. 아빠 역시 학대에 동조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KBS 취재에서도 숨지기 사흘 전과 이틀 전 A 양 없이 엄마, 아빠, A 양 언니 3명이 외출한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A 양 언니가 다니던 키즈카페 관계자는 "(숨지기 사흘 전인)10일에 아빠, 엄마, 첫째가 함께 와서 미술 놀이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A 양 가족과 한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도 숨지기 "이틀 전인 일요일 낮에 A 양을 뺀 3명이 외출하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습니다.

경찰은 아빠에 대해 아동학대 방임 혐의는 적용했지만, 신체적 학대에 대한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입양 이후 마지막까지 함께 살아온 아빠가 신체적 학대와 관련 없다는 수사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여러 참고인 조사와 영상분석을 통해 살펴봤지만,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집 안에서 발생한 학대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 아빠의 신체학대 가담 여부는 앞으로 진행될 검찰 수사에서 더 다뤄질 부분이라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이들 부부가 어떤 혐의로 기소되는지, 이후 재판에선 이들이 혐의를 인정하는지, 부인하는지 이후 재판에서 어떤 처벌을 받는지 끝까지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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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학대 위험 평가서 ‘1점’ 차로 못 막은 죽음
    • 입력 2020-11-20 14:05:55
    • 수정2020-11-20 14:14:32
    취재후·사건후

지난달 응급실에 멍투성이로 실려와 숨진 16개월 여아 A 양의 엄마가 어제(19일) 아동학대 치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습니다. 아빠 역시 아동복지법상 방임 등의 학대 혐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A 양은 생후 7개월 만에 입양됐는데, 입양된 지 9개월 만에 부모 학대로 세상을 떠난 겁니다.

더 큰 문제는 A 양이 숨지기 전, 지난 5월과 6월, 9월까지 3차례나 A 양에 대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지만 이를 조사한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무혐의 처분하거나 사건을 종결하는 등 아무 조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KBS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신고를 조사해 작성한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결과서를 입수해 어떻게 평가했길래 아무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확인해봤습니다.

■의사가 "영양실조, 상흔" 얘기하며 신고했지만….'학대로 인한 영양실조'아니라고 판단

마지막 학대 신고는 A 양이 숨지기 20여 일 전인 9월 23일이었습니다. 아이를 본 소아과 의사가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 상태가 안 좋다"며 직접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왔는데, 원래도 여기저기 멍이 들어서 왔던 아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생후 15개월이던 아이 몸무게가 한 두달 만에 1kg이나 빠진 상태였습니다.


벌써 3번째 신고였지만 조사에 나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위험도평가척도' 평가서에 '학대로 초래된 영양실조나 발육부진이 관찰된다'는 항목을 '아니요.'로 체크했습니다.

이 평가서는 '예' 하나당 1점을 받는 9개 항목으로 구성돼 4점 이상 나오면 분리조치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학대평가 보조지표입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A 양을 평가하면서 3개 항목에 '예'라고 표시해 9점 만점에 3점이 됐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학대로 인한 영양실조'로 판단했다면 4점이 돼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판단은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이해할 수 없는 판단".."체중감소는 가장 중요한 학대 징후"

KBS 취재진과 함께 평가결과서를 살펴본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병원의사 선생님도 이게 정상적인 체중감소가 아니라고까지 얘기를 하는데도 그 아이가 그 가정에서 안전하다고 판단한 이유가 뭘까 되게 좀 의아한 부분"이라며 "이해하기 힘든 판단"이라고 밝혔습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도 "A 양 사건의 경우 체중감소가 가장 중요한 학대의 징후로 보여진다"며 "16개월짜리 아이들이 걸을 수 없을 만큼 에너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은 일반 아이들에게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학대 징후"라고 평가했습니다.

황 교수는 "몸에 상흔이 있거나 멍이 든 것도 아동학대의 징후로 볼 수 있고 모두가 '내가 학대받고 있어요.'라고 하는 것을 보여준 이 아이의 징후였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습니다. 일종의 구조신호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이어 "아이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학대가 있었을 거라고 염려해 신고했지만 오히려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고 이 부분을 판단해야 하는 그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들께서 학대 정황을 놓쳤다는 점이 굉장히 뼈아프다"고 지적했습니다.

■죽기 전날 어린이집에선 "모든 걸 다 거부했어요. 밥을 줘도 고개를 흔들고 삼키지도 못했고..."

마지막 학대 신고 이후 응급실에서 멍투성이로 숨지기까지의 20여 일간 A 양이 어린이집에 또 갔는지 확인해봤습니다.

A 양은 학대신고 다음날인 24일과 25일 어린이집에 왔었고, 28일과 29일에는 상태가 좋아져 추석 명절을 앞두고 놀이도 참여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걸어 다닐 수 있을만한 상태가 된 겁니다.

하지만 10월에는 계속 어린이집에 나오지 않다가 숨지기 전날인 12일에야 출석했습니다. 상태는 마지막 신고가 있던 23일보다 안 좋았습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10시 좀 넘어서 와서 6시쯤 돌아갈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우유 하나만 마시고 갔다" 며 "기운이 없어 움직이지도 않고 안겨있거나 앉아만 있다가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밥을 줘도 고개를 흔들고 삼키지도 못하고 입에 물고 있다 뱉어냈고, 과자나 물을 줘도 먹기 싫어했다"며 "선생님들도 몸은 다 말랐는데 배만 볼록 나와서는 아무것도 안 먹으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다음날 어린이집엔 A 양 언니만 왔고, A양은 멍투성이에 쇄골과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숨을 거뒀습니다.

■숨진 뒤 수사서 드러난 학대 정황들…. 학대는 입양 한 달 뒤부터 시작

3차례 학대 신고를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조사했던 경찰은 3차례 모두 별다른 조치 없이 조사를 종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숨진 뒤 시작된 수사는 달랐습니다. 휴대전화 압수수색, 주거지 CCTV 분석 등을 통해 아이가 입양된 지 한 달 뒤부터 학대가 시작됐다는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다니는 등 방임했다는 겁니다.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학대는 6월부터 시작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신체에 직접적인 학대를 가하기 시작했던 건 6월 이후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의미입니다.

A 양이 숨진 날 집에 함께 있던 엄마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아빠는 학대 방임 혐의로 불구속 송치…엄마와 함께 방치한 정황 드러나

A 양 아빠도 아동복지법상 방임 등의 혐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습니다. 아빠 역시 학대에 동조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KBS 취재에서도 숨지기 사흘 전과 이틀 전 A 양 없이 엄마, 아빠, A 양 언니 3명이 외출한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A 양 언니가 다니던 키즈카페 관계자는 "(숨지기 사흘 전인)10일에 아빠, 엄마, 첫째가 함께 와서 미술 놀이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A 양 가족과 한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도 숨지기 "이틀 전인 일요일 낮에 A 양을 뺀 3명이 외출하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습니다.

경찰은 아빠에 대해 아동학대 방임 혐의는 적용했지만, 신체적 학대에 대한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입양 이후 마지막까지 함께 살아온 아빠가 신체적 학대와 관련 없다는 수사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여러 참고인 조사와 영상분석을 통해 살펴봤지만,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집 안에서 발생한 학대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 아빠의 신체학대 가담 여부는 앞으로 진행될 검찰 수사에서 더 다뤄질 부분이라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이들 부부가 어떤 혐의로 기소되는지, 이후 재판에선 이들이 혐의를 인정하는지, 부인하는지 이후 재판에서 어떤 처벌을 받는지 끝까지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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