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87년 서울, 2020년 방콕

입력 2020.11.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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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존립 기반이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범주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인 우리 ‘헌법 1조’는 이렇게 시작된다.


쉽고 간결하고 담대하며 서늘하다. 이 한 줄의 정의는 국민이 국가 권력을 직접 잉태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 이 헌법 1조의 2항은, 1972년 유신헌법으로 이렇게 수정된다.


이로써 국민의 주권행사는 대리인을 통해야만 가능해졌다.(이 조항은 지금의 북한 헌법 제 4조와도 똑 닮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불쑥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국민의 대리기구가 탄생했다. 그해 겨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대통령을 뽑았다. 단독 입후보한 박정희 후보가 그중 2,357표(2표 무효)를 얻어 당선됐다. 이때부터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늘어났다.

6년 뒤 1978년 7월 6일 아침, 다시 통일주체국민회의 2,578명이 장충체육관에 모였다. 그중 2,577명이 박정희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률은 99.9%였다. 1표는 무효표였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또 국회의원의 1/3을 뽑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중선거구제였던 당시엔 한 선거구에 국회의원 2명을 뽑았다. 보통 여당 1명, 야당 1명이 당선됐다. 그런데 대통령 거수기인 통일주체국민회의가 1/3을 뽑다보니 자동으로 여당이 승리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모든 시스템이 지금 태국의 그것과 참으로 똑같다.

지난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태국 정부도 2016년 개헌을 시도했다. 개헌안에는 정부가 상원의원 전원을 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 개헌안은 태국 국민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됐다(유신헌법도 우리 국민 91.5%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군부가 만든 국가평화질서회의(NCPO)가 5년 임기의 상원의원(총 250명)을 직접 지명한다. 행정부와 입법부와의 독립과 견제는 무의미해졌다.

의원내각제인 태국에서 야당은 이제 여당보다 250석 이상을 확보해야 집권이 가능하다. 반면 여당은 하원 500명중에 126석만 당선돼도 (상원 250석의 도움으로) 집권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이 최다의석을 확보했지만, 정권을 잡지 못했다. 야당은 이 개헌안으로 여당의 종신 집권이 가능하다고 맹비난한다. (유신개헌이 시도되자 김대중은 헌법을 고쳐 종신 총통이 되려한다고 비판했었다).

(태국 국민들은 왜 4년 전 개헌안에 찬성했을까? 오랜 내정불안에 시달린 태국 국민들은 안정을 택했다. 72년 한국인들이 개헌안에 찬성했던 것처럼, 하지만 민주화를 포기한 대가로 내정은 다시 불안해졌다. 국민들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화를 요구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당시 “이번 개헌은 금이 간 벽에 다시 벽지를 바르는 것과 같다"고 보도했다)

헌법은 그 사회가 나아갈 가치와 권리를 규정한다. 나쁜 헌법을 가진 나라는 그래서 미래는 없다. 러시아 푸틴대통령은 지난 7월 개헌으로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장기집권이 가능해졌다. 일본은 헌법을 고쳐 다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나라가 되려고 한다. 여당이 훨씬 더 유리한 헌법을 갖고 있는 태국에서 민주화는 저 만큼 멀리 있다.

시위대가 경찰 물대포에 러버덕으로 저항하면서 ‘러버덕’은 태국 시위의 상징이 되고 있다.시위대가 경찰 물대포에 러버덕으로 저항하면서 ‘러버덕’은 태국 시위의 상징이 되고 있다.

87년 6월 한국의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비로소 우리 헌법 1조 2항은 제자리를 찾았다. 민주화라는 경쟁력까지 탑재된 우리 산업은 초일류기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없는 경제발전은 언제든 한계를 맞는다. 근로시간의 규제 없이, 최저임금의 규제 없이, 지배구조의 규제 없이, 공정경제의 규제 없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그 성장은 오직 1인당 소득 수천 달러까지만 가능하다. 지금 태국이 그렇다. 딱 거기까지 와있다.

흔히 우리나라를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룩한 나라라고 한다(2차 대전 이후 시장경제를 선택한 신흥국들 대부분 어느 한쪽을 실패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그 근간에 우리 헌법이 있다. 지난 48년 제정된 이후 9번 고쳐진 우리 헌법은 그때마다 시민들의 피를 요구했다. 우리가 얻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공짜가 아니다. 태국 시민들은 이제 무엇을 지불 할 것인가?

태국 젊은이들은 지난 7월부터 거리로 나왔다. 총리의 사퇴와 헌법 개정을 요구한다. 며칠 전 시위대는 손에 손에 개혁을 요구하는 편지를 들고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은 물대포로 대응했다. 시민들의 편지는 4개의 빨간 우체통에 담겼다. 하지만 4개의 우체통은 전달되지 않은 채 쓸쓸히 광장에 남겨졌다. 경찰이 이들 편지의 위법성을 확인하기 위해 편지를 읽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좌)시위대가 개혁을 요구하는 편지를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우)시위대가 준비한 우체통 [사진 출처 : 로이터 / FREEYOUTH FACEBOOK, 11월9일](좌)시위대가 개혁을 요구하는 편지를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우)시위대가 준비한 우체통 [사진 출처 : 로이터 / FREEYOUTH FACEBOOK, 11월9일]

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태국에선 19번이나 쿠데타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용서와 불교의 나라에 큰 비극은 거의 없었다(쿠데타로 물러난 전임 탁신총리는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잘 살고 있다). 다시 민주화 산을 넘고 있는 이 나라가 부디 우리 이한열의, 우리 박종철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고 평화롭게 미래로 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 산업화와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태국 의회는 이번 주 7개의 개헌안을 논의했다. 관건은 여당에게 절대 유리한 총선 제도다. 그중 민주화시위대가 제출한 개헌안은 사흘 전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경찰의 물대포에 청년들은 우리가 스스로 "물이 되자(Be water!)"고 외치며 경찰 저지선으로 뛰어든다.

이틀 동안 5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대결은 점점 어느 한쪽이 쓰러져야 끝나는 싸움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20일, 금기를 깨고 있는 태국 시위대가 이제 맞짱 뜰 준비를 하고 있다(‘Now, We Fight Face to Face’: Thailand’s Protests Shatter Taboos)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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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87년 서울, 2020년 방콕
    • 입력 2020-11-21 09:00:50
    특파원 리포트
대한민국의 존립 기반이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범주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인 우리 ‘헌법 1조’는 이렇게 시작된다.


쉽고 간결하고 담대하며 서늘하다. 이 한 줄의 정의는 국민이 국가 권력을 직접 잉태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 이 헌법 1조의 2항은, 1972년 유신헌법으로 이렇게 수정된다.


이로써 국민의 주권행사는 대리인을 통해야만 가능해졌다.(이 조항은 지금의 북한 헌법 제 4조와도 똑 닮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불쑥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국민의 대리기구가 탄생했다. 그해 겨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대통령을 뽑았다. 단독 입후보한 박정희 후보가 그중 2,357표(2표 무효)를 얻어 당선됐다. 이때부터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늘어났다.

6년 뒤 1978년 7월 6일 아침, 다시 통일주체국민회의 2,578명이 장충체육관에 모였다. 그중 2,577명이 박정희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률은 99.9%였다. 1표는 무효표였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또 국회의원의 1/3을 뽑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중선거구제였던 당시엔 한 선거구에 국회의원 2명을 뽑았다. 보통 여당 1명, 야당 1명이 당선됐다. 그런데 대통령 거수기인 통일주체국민회의가 1/3을 뽑다보니 자동으로 여당이 승리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모든 시스템이 지금 태국의 그것과 참으로 똑같다.

지난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태국 정부도 2016년 개헌을 시도했다. 개헌안에는 정부가 상원의원 전원을 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 개헌안은 태국 국민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됐다(유신헌법도 우리 국민 91.5%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군부가 만든 국가평화질서회의(NCPO)가 5년 임기의 상원의원(총 250명)을 직접 지명한다. 행정부와 입법부와의 독립과 견제는 무의미해졌다.

의원내각제인 태국에서 야당은 이제 여당보다 250석 이상을 확보해야 집권이 가능하다. 반면 여당은 하원 500명중에 126석만 당선돼도 (상원 250석의 도움으로) 집권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이 최다의석을 확보했지만, 정권을 잡지 못했다. 야당은 이 개헌안으로 여당의 종신 집권이 가능하다고 맹비난한다. (유신개헌이 시도되자 김대중은 헌법을 고쳐 종신 총통이 되려한다고 비판했었다).

(태국 국민들은 왜 4년 전 개헌안에 찬성했을까? 오랜 내정불안에 시달린 태국 국민들은 안정을 택했다. 72년 한국인들이 개헌안에 찬성했던 것처럼, 하지만 민주화를 포기한 대가로 내정은 다시 불안해졌다. 국민들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화를 요구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당시 “이번 개헌은 금이 간 벽에 다시 벽지를 바르는 것과 같다"고 보도했다)

헌법은 그 사회가 나아갈 가치와 권리를 규정한다. 나쁜 헌법을 가진 나라는 그래서 미래는 없다. 러시아 푸틴대통령은 지난 7월 개헌으로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장기집권이 가능해졌다. 일본은 헌법을 고쳐 다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나라가 되려고 한다. 여당이 훨씬 더 유리한 헌법을 갖고 있는 태국에서 민주화는 저 만큼 멀리 있다.

시위대가 경찰 물대포에 러버덕으로 저항하면서 ‘러버덕’은 태국 시위의 상징이 되고 있다.
87년 6월 한국의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비로소 우리 헌법 1조 2항은 제자리를 찾았다. 민주화라는 경쟁력까지 탑재된 우리 산업은 초일류기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없는 경제발전은 언제든 한계를 맞는다. 근로시간의 규제 없이, 최저임금의 규제 없이, 지배구조의 규제 없이, 공정경제의 규제 없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그 성장은 오직 1인당 소득 수천 달러까지만 가능하다. 지금 태국이 그렇다. 딱 거기까지 와있다.

흔히 우리나라를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룩한 나라라고 한다(2차 대전 이후 시장경제를 선택한 신흥국들 대부분 어느 한쪽을 실패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그 근간에 우리 헌법이 있다. 지난 48년 제정된 이후 9번 고쳐진 우리 헌법은 그때마다 시민들의 피를 요구했다. 우리가 얻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공짜가 아니다. 태국 시민들은 이제 무엇을 지불 할 것인가?

태국 젊은이들은 지난 7월부터 거리로 나왔다. 총리의 사퇴와 헌법 개정을 요구한다. 며칠 전 시위대는 손에 손에 개혁을 요구하는 편지를 들고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은 물대포로 대응했다. 시민들의 편지는 4개의 빨간 우체통에 담겼다. 하지만 4개의 우체통은 전달되지 않은 채 쓸쓸히 광장에 남겨졌다. 경찰이 이들 편지의 위법성을 확인하기 위해 편지를 읽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좌)시위대가 개혁을 요구하는 편지를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우)시위대가 준비한 우체통 [사진 출처 : 로이터 / FREEYOUTH FACEBOOK, 11월9일]
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태국에선 19번이나 쿠데타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용서와 불교의 나라에 큰 비극은 거의 없었다(쿠데타로 물러난 전임 탁신총리는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잘 살고 있다). 다시 민주화 산을 넘고 있는 이 나라가 부디 우리 이한열의, 우리 박종철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고 평화롭게 미래로 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 산업화와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태국 의회는 이번 주 7개의 개헌안을 논의했다. 관건은 여당에게 절대 유리한 총선 제도다. 그중 민주화시위대가 제출한 개헌안은 사흘 전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경찰의 물대포에 청년들은 우리가 스스로 "물이 되자(Be water!)"고 외치며 경찰 저지선으로 뛰어든다.

이틀 동안 5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대결은 점점 어느 한쪽이 쓰러져야 끝나는 싸움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20일, 금기를 깨고 있는 태국 시위대가 이제 맞짱 뜰 준비를 하고 있다(‘Now, We Fight Face to Face’: Thailand’s Protests Shatter Taboos)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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