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5시간 만에 이유없이 2명 살해…무기징역 면한 이유는

입력 2020.11.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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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살인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범죄입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피해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범죄보다 무거운 벌이 내려지곤 하는데요. 지난해 두 사람의 생명을 이유 없이 빼앗은 사람이 최근 사형도 무기징역도 아닌 일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이유를 전해드립니다.

■ 아무 이유없이 옆방 가장·회사원 연달아 흉기로 살해한 중국동포

A 씨는 중국 국적의 재외동포로, 지난해 4월 한국에 왔습니다.

A 씨는 서울 금천구 소재 고시원에서 살면서 옆 호실에 사는 B 씨와 서로 벽을 치고 욕설을 하곤 했습니다. 방음이 되지 않아 시끄럽다는 이유였습니다. B 씨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가족들을 중국에 남겨두고 한국에 홀로 건너와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평소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A 씨는 B 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지난해 5월 14일 오전 구로구의 한 마트에서 흉기를 사 고시원으로 돌아왔습니다. A 씨는 저녁이 되자 흉기가 들어 있는 가방을 메고 고시원에서 나와 그 인근을 돌아다니며 B 씨를 생각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B 씨를 해칠 마음을 먹었습니다.

고시원으로 다시 돌아온 A 씨는 B 씨의 방으로 가 "라이터를 좀 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B 씨가 라이터를 찾으려고 잠시 뒤돌아선 순간 A 씨는 흉기를 마구 휘둘렀고, B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저녁 6시 40분쯤이었습니다. A 씨는 범행 직후 흉기를 고시원 공용주방 수납함에 숨겨두고, 범행 현장인 고시원을 빠져나왔습니다.

이후 A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나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앞서 흉기를 구입했던 마트에서 또 다른 흉기를 구입했습니다. 밤이 되자 A 씨는 인근 빌딩에 들어간 후 편의점에서 소주 2병 등을 사들고 21층 옥상으로 올라갔고, 이내 만취한 상태가 됐습니다.

A 씨는 밤 11시쯤 해당 빌딩 소재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온 회사원 C 씨를 발견하고 시비를 걸었고,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C 씨는 즉사했습니다.

■ 유기징역 45년 형…'심신미약'으로 무기징역 면해

너무나도 참혹한 범죄,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1심인 서울남부지법은 "사람의 생명은 우리 사회의 법이 수호하는 최고의 법익이자 최상위의 가치이다. 살인행위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으로서 그 결과가 매우 중대하고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두 명의 생명을 빼앗은 이 사건 범행에 대해서는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더구나 "피고인의 각 범행은 특별한 동기를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급소를 찔러 현장에서 즉사하게 한 점에 비추어 대담하고도 용의주도하다"면서 "피고인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또는 너무나 사소한 주관적인 이유로 피해자들을 계획적, 의도적으로 살해하였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극단적인 생명 경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A 씨에게 내려진 선고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아닌 징역 45년 형과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이었습니다.

이유는 A씨의 정신질환 때문입니다.

A 씨는 다면적 인성검사(MMPI-2) 결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어 주변 환경을 위협적으로 인식하고 경계하고 있으며 그 정도는 망상 수준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평가받았고, 중국에서 생활하며 아파트 위, 아래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아랫집으로 가 욕설을 하기도 했으며, 기소된 후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잠을 자고 있는 동료 수용자를 깨워 “널 죽여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고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법원은 "피고인이 이 사건 각 범행 당시 정신병적 증상이 완화된 상태였다거나 이 사건 각 범행이 피고인의 정신병적 증상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책임주의의 원칙상 정신병적 장애로 인하여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하여는 자유의지에 의하여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보다 감경된 형사처벌을 과할 수밖에 없다"며 유기징역형을 택했습니다. 다만 2명을 살해한 만큼 유기징역 상한선(징역 30년)에서 형이 50% 가중돼, 최종적으로 45년의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항소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 역시 "피고인을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사회일반의 안전을 지키고, 피고인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참회하고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에게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1심의 형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치료감호소에 대한 각 사실조회 결과에 의하면, 피고인은 이 사건 각 범행 당시 ‘명시되지 않은 조현병 스펙트럼 및 기타 정신병적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이와 같은 심신미약 상태가 위 각 범행을 저지르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은 올해 중순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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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1 09:01:11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살인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범죄입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피해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범죄보다 무거운 벌이 내려지곤 하는데요. 지난해 두 사람의 생명을 이유 없이 빼앗은 사람이 최근 사형도 무기징역도 아닌 일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이유를 전해드립니다.

■ 아무 이유없이 옆방 가장·회사원 연달아 흉기로 살해한 중국동포

A 씨는 중국 국적의 재외동포로, 지난해 4월 한국에 왔습니다.

A 씨는 서울 금천구 소재 고시원에서 살면서 옆 호실에 사는 B 씨와 서로 벽을 치고 욕설을 하곤 했습니다. 방음이 되지 않아 시끄럽다는 이유였습니다. B 씨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가족들을 중국에 남겨두고 한국에 홀로 건너와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평소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A 씨는 B 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지난해 5월 14일 오전 구로구의 한 마트에서 흉기를 사 고시원으로 돌아왔습니다. A 씨는 저녁이 되자 흉기가 들어 있는 가방을 메고 고시원에서 나와 그 인근을 돌아다니며 B 씨를 생각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B 씨를 해칠 마음을 먹었습니다.

고시원으로 다시 돌아온 A 씨는 B 씨의 방으로 가 "라이터를 좀 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B 씨가 라이터를 찾으려고 잠시 뒤돌아선 순간 A 씨는 흉기를 마구 휘둘렀고, B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저녁 6시 40분쯤이었습니다. A 씨는 범행 직후 흉기를 고시원 공용주방 수납함에 숨겨두고, 범행 현장인 고시원을 빠져나왔습니다.

이후 A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나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앞서 흉기를 구입했던 마트에서 또 다른 흉기를 구입했습니다. 밤이 되자 A 씨는 인근 빌딩에 들어간 후 편의점에서 소주 2병 등을 사들고 21층 옥상으로 올라갔고, 이내 만취한 상태가 됐습니다.

A 씨는 밤 11시쯤 해당 빌딩 소재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온 회사원 C 씨를 발견하고 시비를 걸었고,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C 씨는 즉사했습니다.

■ 유기징역 45년 형…'심신미약'으로 무기징역 면해

너무나도 참혹한 범죄,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1심인 서울남부지법은 "사람의 생명은 우리 사회의 법이 수호하는 최고의 법익이자 최상위의 가치이다. 살인행위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으로서 그 결과가 매우 중대하고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두 명의 생명을 빼앗은 이 사건 범행에 대해서는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더구나 "피고인의 각 범행은 특별한 동기를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급소를 찔러 현장에서 즉사하게 한 점에 비추어 대담하고도 용의주도하다"면서 "피고인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또는 너무나 사소한 주관적인 이유로 피해자들을 계획적, 의도적으로 살해하였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극단적인 생명 경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A 씨에게 내려진 선고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아닌 징역 45년 형과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이었습니다.

이유는 A씨의 정신질환 때문입니다.

A 씨는 다면적 인성검사(MMPI-2) 결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어 주변 환경을 위협적으로 인식하고 경계하고 있으며 그 정도는 망상 수준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평가받았고, 중국에서 생활하며 아파트 위, 아래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아랫집으로 가 욕설을 하기도 했으며, 기소된 후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잠을 자고 있는 동료 수용자를 깨워 “널 죽여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고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법원은 "피고인이 이 사건 각 범행 당시 정신병적 증상이 완화된 상태였다거나 이 사건 각 범행이 피고인의 정신병적 증상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책임주의의 원칙상 정신병적 장애로 인하여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하여는 자유의지에 의하여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보다 감경된 형사처벌을 과할 수밖에 없다"며 유기징역형을 택했습니다. 다만 2명을 살해한 만큼 유기징역 상한선(징역 30년)에서 형이 50% 가중돼, 최종적으로 45년의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항소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 역시 "피고인을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사회일반의 안전을 지키고, 피고인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참회하고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에게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1심의 형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치료감호소에 대한 각 사실조회 결과에 의하면, 피고인은 이 사건 각 범행 당시 ‘명시되지 않은 조현병 스펙트럼 및 기타 정신병적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이와 같은 심신미약 상태가 위 각 범행을 저지르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은 올해 중순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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