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샤넬의 ‘사내 성폭력’ 대응법…앞에선 직원 보호, 뒤에선?

입력 2020.11.23 (08:00) 수정 2020.11.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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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고가 제품으로 유명한 프랑스 회사입니다. 이번에는 샤넬 화장품 한국 지사인 샤넬 코리아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우리가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샤넬 화장품을 살 때 만나는 사람들이 샤넬 코리아의 현장 직원들입니다.

대부분이 여성인 현장 직원들 가운데 백화점 직원들을 총괄하는 샤넬 코리아 화장품 영업부 관리자는 40대 남성 A 씨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남성이 적어도 10년 동안 현장 직원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하고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회사, 고급스럽고 부티나는 이미지를 가진 이 회사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최소 10년 동안 계속된 성추행과 성희롱과 갑질"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김소연 샤넬코리아지부장은 노조에 접수된 여러 건의 제보를 바탕으로 피해 상황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내부 설문조사를 통해 수많은 피해 사례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KBS 취재진은 백화점 현장 직원인 피해자와 노조 지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B 씨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상사 A 씨가 칭찬의 말과 함께 자신의 신체를 만졌다는 겁니다. 당시 '대체 이 사람이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디까지 내 몸을 만지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수치스러웠지만,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얼어붙어 있는 사이 A 씨는 유유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뒤로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 이상'의 스킨십을 하는 A 씨와 그걸 '참아내는' 동료들을 보면서 점차 '혹시 이게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마저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누가 이상한지'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A 씨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어깨 근육과 가슴 근육을 "만져보라"고 하거나 "팔에 매달려보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A 씨가 '인사'를 건네며 직원들을 서로의 가슴이 밀착될 정도로 꽉 끌어안는 건 자주, 뒤에서 끌어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악수할 때면 손바닥을 문지르거나 손가락으로 긁기도 하고 깍지를 끼는 일도 빈번했다고 합니다.

■ "이 브랜드가 좋아서 들어온 건데" … "어디 가서 네가 뭘 해먹고 살 수 있는데?"

왜 싫다고 뿌리치지 않았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왜 지금까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피해자 대부분이 비슷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무서웠다", "이상하거나 싫다고 이야기하면 유난스러운 사람이나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 사람이 사실상 인사 권한이 있는 관리자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B 씨는 "그 사람이 언제 올지 몰라 항상 너무 긴장하고 있어 근육통에 시달릴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직원들은 "A 씨가 걸어오는 것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겁을 냈다"고 합니다. 또 "A 씨가 근처 다른 브랜드 매장에서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의 고성에 폭언을 일삼는 '갑질'로 유명한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직원들의 잘못을 지적하다 흥분하기라도 하면 가판대를 "쿵쿵" 치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A 씨가 누군가를 혼내거나 면담하러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면 남아있는 직원들은 '무서워서' 식사조차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불같이 화를 냈다가도 갑자기 달라지는 A 씨의 기분을 맞추는 것도 A 씨의 질문에 '마음에 들만 한 재치있는 대답'을 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샤넬이 좋아서 일을 시작했던 직원들은 힘들어서, 매일 퇴근하고 울다 지쳐 샤넬을 떠날 때 A 씨는 그 직원들에게 "어디 가서 네가 뭘 해먹고 살 수 있는데?"라는 '마지막 인사'까지 건네는 상사였다고 합니다.

노조 게시판에 올라온 직원들의 목소리_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샤넬코리아지부 제공노조 게시판에 올라온 직원들의 목소리_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샤넬코리아지부 제공
■ "피해자 보호한다더니 가해자 처벌은 뒷전, 피해자에겐 비밀서약 요구"

지난달 14일, 노조는 회사에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떨까요? 피해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가해자로 지목된 A 씨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김소연 지부장은 "회사의 행동이 몹시 이상하고 실망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지부장은 "피해자인 직원들에 대한 보호보다 A 씨를 보호하려는 것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달 초 피해자들이 김 지부장과 함께 사측이 협조 요구에 응했을 때부터 사측의 '수상한 행동'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사측이 고용한 유명 로펌 변호사들을 만나 A 씨의 성희롱과 성추행 관련 진술을 했는데 이때 비밀 서약을 요구받았다고 했습니다. 피해자들과 김 지부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다른 사람이나 외부에 누설하거나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밀 유지 약속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들과 김 지부장은 '피해자가 우리인지 A 씨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 "통상적 수준의 일반적 절차" … "일반적인 상황은 아냐"

샤넬 코리아는 KBS 취재진에게 해당 서약은 "통상적인 수준의 일반적인 절차"였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관계 법령과 사내 규정에 따라 조사하고 있으며, 조사 결과가 나오면 사규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노조와 필요한 조사 과정을 공유하고 있으며 일부 조사 과정에 노조가 참여하기 때문에 경과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샤넬코리아지부 노조는 "피해자 조사 이후 수차례 회사에 조사 진행 상황에 대해 문의했지만 '외부 기관에 위임해 우리도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외부 기관인 유명 로펌도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노조에 '명예훼손'을 언급하는 공문까지 보내와 황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좌세준 KBS 자문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제보자나 피해자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비밀 서약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런 비밀 서약 조항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A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성실하게 조사에 임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조사 과정에서 비밀 서약을 했고 회사 규정상 다른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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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샤넬의 ‘사내 성폭력’ 대응법…앞에선 직원 보호, 뒤에선?
    • 입력 2020-11-23 08:00:14
    • 수정2020-11-23 08:00:24
    취재후·사건후

샤넬, 고가 제품으로 유명한 프랑스 회사입니다. 이번에는 샤넬 화장품 한국 지사인 샤넬 코리아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우리가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샤넬 화장품을 살 때 만나는 사람들이 샤넬 코리아의 현장 직원들입니다.

대부분이 여성인 현장 직원들 가운데 백화점 직원들을 총괄하는 샤넬 코리아 화장품 영업부 관리자는 40대 남성 A 씨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남성이 적어도 10년 동안 현장 직원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하고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회사, 고급스럽고 부티나는 이미지를 가진 이 회사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최소 10년 동안 계속된 성추행과 성희롱과 갑질"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김소연 샤넬코리아지부장은 노조에 접수된 여러 건의 제보를 바탕으로 피해 상황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내부 설문조사를 통해 수많은 피해 사례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KBS 취재진은 백화점 현장 직원인 피해자와 노조 지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B 씨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상사 A 씨가 칭찬의 말과 함께 자신의 신체를 만졌다는 겁니다. 당시 '대체 이 사람이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디까지 내 몸을 만지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수치스러웠지만,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얼어붙어 있는 사이 A 씨는 유유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뒤로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 이상'의 스킨십을 하는 A 씨와 그걸 '참아내는' 동료들을 보면서 점차 '혹시 이게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마저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누가 이상한지'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A 씨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어깨 근육과 가슴 근육을 "만져보라"고 하거나 "팔에 매달려보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A 씨가 '인사'를 건네며 직원들을 서로의 가슴이 밀착될 정도로 꽉 끌어안는 건 자주, 뒤에서 끌어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악수할 때면 손바닥을 문지르거나 손가락으로 긁기도 하고 깍지를 끼는 일도 빈번했다고 합니다.

■ "이 브랜드가 좋아서 들어온 건데" … "어디 가서 네가 뭘 해먹고 살 수 있는데?"

왜 싫다고 뿌리치지 않았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왜 지금까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피해자 대부분이 비슷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무서웠다", "이상하거나 싫다고 이야기하면 유난스러운 사람이나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 사람이 사실상 인사 권한이 있는 관리자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B 씨는 "그 사람이 언제 올지 몰라 항상 너무 긴장하고 있어 근육통에 시달릴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직원들은 "A 씨가 걸어오는 것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겁을 냈다"고 합니다. 또 "A 씨가 근처 다른 브랜드 매장에서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의 고성에 폭언을 일삼는 '갑질'로 유명한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직원들의 잘못을 지적하다 흥분하기라도 하면 가판대를 "쿵쿵" 치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A 씨가 누군가를 혼내거나 면담하러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면 남아있는 직원들은 '무서워서' 식사조차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불같이 화를 냈다가도 갑자기 달라지는 A 씨의 기분을 맞추는 것도 A 씨의 질문에 '마음에 들만 한 재치있는 대답'을 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샤넬이 좋아서 일을 시작했던 직원들은 힘들어서, 매일 퇴근하고 울다 지쳐 샤넬을 떠날 때 A 씨는 그 직원들에게 "어디 가서 네가 뭘 해먹고 살 수 있는데?"라는 '마지막 인사'까지 건네는 상사였다고 합니다.

노조 게시판에 올라온 직원들의 목소리_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샤넬코리아지부 제공 ■ "피해자 보호한다더니 가해자 처벌은 뒷전, 피해자에겐 비밀서약 요구"

지난달 14일, 노조는 회사에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떨까요? 피해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가해자로 지목된 A 씨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김소연 지부장은 "회사의 행동이 몹시 이상하고 실망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지부장은 "피해자인 직원들에 대한 보호보다 A 씨를 보호하려는 것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달 초 피해자들이 김 지부장과 함께 사측이 협조 요구에 응했을 때부터 사측의 '수상한 행동'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사측이 고용한 유명 로펌 변호사들을 만나 A 씨의 성희롱과 성추행 관련 진술을 했는데 이때 비밀 서약을 요구받았다고 했습니다. 피해자들과 김 지부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다른 사람이나 외부에 누설하거나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밀 유지 약속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들과 김 지부장은 '피해자가 우리인지 A 씨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 "통상적 수준의 일반적 절차" … "일반적인 상황은 아냐"

샤넬 코리아는 KBS 취재진에게 해당 서약은 "통상적인 수준의 일반적인 절차"였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관계 법령과 사내 규정에 따라 조사하고 있으며, 조사 결과가 나오면 사규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노조와 필요한 조사 과정을 공유하고 있으며 일부 조사 과정에 노조가 참여하기 때문에 경과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샤넬코리아지부 노조는 "피해자 조사 이후 수차례 회사에 조사 진행 상황에 대해 문의했지만 '외부 기관에 위임해 우리도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외부 기관인 유명 로펌도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노조에 '명예훼손'을 언급하는 공문까지 보내와 황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좌세준 KBS 자문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제보자나 피해자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비밀 서약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런 비밀 서약 조항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A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성실하게 조사에 임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조사 과정에서 비밀 서약을 했고 회사 규정상 다른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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