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경남 산청군 승진 후보 조작 되풀이…“허울뿐인 위원회”

입력 2020.11.23 (14:48) 수정 2020.11.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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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경남 산청군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경찰이 승진 후보자 명부 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공무원 2명의 집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 한 것입니다.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청군은 술렁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했던 승진 탈락자들은 "인사 과정에서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승진 후보자 명부가 뒤바뀐 것으로 의심되는 기간은 3년, 인원은 자그마치 200명이 넘습니다.

■ "인사 담당자 마음대로 점수 올리고, 순위 바꿔"

수사의 출발점은 지난 5월 경상남도의 산청군 종합감사였습니다.

직원들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면서 기본적인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정황이 나온 건데요. 정상적인 절차라면 부서장이 직원의 근무 성적을 평가한 뒤 점수에 따라 서열을 매깁니다. 이것을 '평정단위 서열'이라고 합니다.

이 명단은 '근무성적평정위원회'로 넘어가 군청에 있는 같은 직급, 직렬끼리 순위를 조정해 최종 서열이 매겨집니다. 임용권자는 이 최종 서열을 가지고 승진 후보자 명부를 만듭니다.

서류를 확인하던 조사관은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되는 부서 내 순위, 즉 '평정 단위 서열'이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A 씨와 B 씨는 같은 직급으로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A 씨는 부서장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부서 서열 1순위였고, B 씨는 2위로 서열이 매겨졌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다른 부서까지 모두 합친 직급 최종 서열에서는 A 씨가 9위로 밀린 반면, B 씨는 최종 서열 3위로 올라섰습니다.

인사 담당자가 수차례 직원 서열 순위를 부당하게 변경해 최종 순위가 뒤바뀐 것입니다. 결국, B 씨는 지난해 하반기 A 씨보다 먼저 승진을 하게 됩니다.


수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017년 하반기 근무 평정을 하면서 인사 담당자가 임의로 특정 직원의 점수를 바꿔치기한 정황도 감사에서 드러났습니다.

공무원 C 씨는 '민원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이미 확정된 평가 점수 60.3에서 7.4점을 내렸고, 공무원 D 씨는 '업무 난도가 높다'며 확정 점수보다 15.2점이나 올려줬습니다.

인사 담당자는 이렇게 점수가 바뀐 서류를 애초 결재받은 서류와 바꿔치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위원 서명 안 받고, 바뀐 서류 몰래 끼워 넣기

산청군에서 사용하는 인사 관련 서류는 다른 자치단체들이 쓰는 서식과 달랐습니다. 직원의 평가점수와 순위, 등급 등이 담기는 근무성적평정표를 만들 때는 반드시 심의, 의결 기구인 근무성적평정위원회 위원들의 서명이 들어가게끔 규정하고 있는데요.

직원들의 승진과 직결되는 성적표인 만큼 서류를 만들거나 내용을 바꿀 때 위원들 모두의 서명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산청군의 평정표에는 위원들의 서명이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서류철 맨 앞장에 위원 5명의 서명이 있었는데요.

인사담당자들이 3년 동안이나 점수나 순위를 바꿀 수 있었던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사 담당자들은 자신들이 점수와 순위를 바꾼 서류를 서류철 중간에 끼워 넣었습니다.

원래 있던 서류는 파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서류가 바뀌어도 위원들에게 따로 보고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3년 동안 승진 후보자 명부가 바뀐 인원만 210명입니다.

■ 과거 두 차례 감사에서도 지적…"유명무실한 위원회"

산청군의 승진 후보자 명부 조작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0년과 2014년 감사에서도 같은 문제로 지적을 받았습니다.

근무성적 평정에서 행정직급 A 씨는 2013년 상반기 77위에서 하반기 25위, 이듬해 상반기에는 3위로 올라섰습니다.

반면, 같은 직급인 B 씨는 1위에서 3위로, 다음엔 18위로 떨어졌습니다. 당시 인사 담당자 3명은 심의를 거치지 않고, 평정 순위를 임의로 바꿔 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이미 확정된 점수가 뒤바뀌기도 했습니다.

직원 C 씨는 근무성적평정위원회에서 66.4점으로 확정됐는데 최종 점수는 0.6점을 더한 67점이 됐습니다. 반면 C 씨와 같은 점수를 받은 D 씨는 0.6점이 깎여 65.8점이 됐습니다. 인사담당자가 임의로 바꾼 것입니다.

2010년 감사에서도 산청군은 승진 후보자 22명의 평정 순위를 바꿔 '주의'를 받았습니다.


3번의 감사에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근무성적평정위원회의 허술한 운영이었습니다.

산청군은 부군수를 위원장으로 두고 군수가 추천한 위원 4명 등 총 5명의 위원이 있습니다. 위원회는 근무성적평정표에 서명조차 남기지 않아 서류를 바꿔치기할 빌미를 줬고, 회의를 열어도 기록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또 인사부서에서 올라온 평정 순위로 전체 서열을 정해야 하지만, 사실상 인사 부서의 결정 내용을 그대로 의결한 것으로 감사에서 확인됐습니다. 경상남도는 감사에서 '유명무실한 운영', '형식적인 운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 "평가를 받았는데 공정성이 훼손된 느낌이죠"

직원 수백 명의 근무 성적을 관리하다 보면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인사 담당자도 관련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실수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감사관실은 승진 후보자 명부 순위를 임의로 조정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근무성적평정점은 공무원들의 상대적인 서열에 따라 정해집니다. 한 사람의 점수가 높아지면, 다른 직원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죠. 감사에서는 이번 사건을 풀 만한 의미 있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당시 담당 과장이 '직전 승진후보자 명부 순위와 차이가 클 경우 조직의 안전성이 저해되므로 이를 충분히 고려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담당자는 이와 같은 지시에 근무성적평정점을 꾸준히 변경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당장에 이제 직원들 입장에서는 아픈 거죠. 내가 평가를 받았는데 뭔가 좀 공정성이 조금 훼손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니까…."

경찰의 압수수색 뒤 산청군 공무원의 반응입니다. 승진에서 탈락한 자신을 채찍질했던 날들이 후회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근무 평가와 승진에는 인적 요소가 어느 정도 작용합니다.

그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다면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번 산청군의 경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청군 인사담당 부서에 재발 방지 대책을 물었더니 "경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경찰은 성적 조작이 실제 승진 후보자 변경으로 이어졌는지, 누가 지시했는지 등 감사에서 드러난 혐의에 대해 전반적으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경남 산청군, 3년 동안 공무원 210명 ‘승진 조작’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44265&ref=A
승진 후보 조작 되풀이…“허울뿐인 위원회”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49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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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경남 산청군 승진 후보 조작 되풀이…“허울뿐인 위원회”
    • 입력 2020-11-23 14:48:28
    • 수정2020-11-23 14:52:56
    취재후·사건후

지난 6일, 경남 산청군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경찰이 승진 후보자 명부 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공무원 2명의 집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 한 것입니다.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청군은 술렁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했던 승진 탈락자들은 "인사 과정에서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승진 후보자 명부가 뒤바뀐 것으로 의심되는 기간은 3년, 인원은 자그마치 200명이 넘습니다.

■ "인사 담당자 마음대로 점수 올리고, 순위 바꿔"

수사의 출발점은 지난 5월 경상남도의 산청군 종합감사였습니다.

직원들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면서 기본적인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정황이 나온 건데요. 정상적인 절차라면 부서장이 직원의 근무 성적을 평가한 뒤 점수에 따라 서열을 매깁니다. 이것을 '평정단위 서열'이라고 합니다.

이 명단은 '근무성적평정위원회'로 넘어가 군청에 있는 같은 직급, 직렬끼리 순위를 조정해 최종 서열이 매겨집니다. 임용권자는 이 최종 서열을 가지고 승진 후보자 명부를 만듭니다.

서류를 확인하던 조사관은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되는 부서 내 순위, 즉 '평정 단위 서열'이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A 씨와 B 씨는 같은 직급으로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A 씨는 부서장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부서 서열 1순위였고, B 씨는 2위로 서열이 매겨졌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다른 부서까지 모두 합친 직급 최종 서열에서는 A 씨가 9위로 밀린 반면, B 씨는 최종 서열 3위로 올라섰습니다.

인사 담당자가 수차례 직원 서열 순위를 부당하게 변경해 최종 순위가 뒤바뀐 것입니다. 결국, B 씨는 지난해 하반기 A 씨보다 먼저 승진을 하게 됩니다.


수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017년 하반기 근무 평정을 하면서 인사 담당자가 임의로 특정 직원의 점수를 바꿔치기한 정황도 감사에서 드러났습니다.

공무원 C 씨는 '민원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이미 확정된 평가 점수 60.3에서 7.4점을 내렸고, 공무원 D 씨는 '업무 난도가 높다'며 확정 점수보다 15.2점이나 올려줬습니다.

인사 담당자는 이렇게 점수가 바뀐 서류를 애초 결재받은 서류와 바꿔치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위원 서명 안 받고, 바뀐 서류 몰래 끼워 넣기

산청군에서 사용하는 인사 관련 서류는 다른 자치단체들이 쓰는 서식과 달랐습니다. 직원의 평가점수와 순위, 등급 등이 담기는 근무성적평정표를 만들 때는 반드시 심의, 의결 기구인 근무성적평정위원회 위원들의 서명이 들어가게끔 규정하고 있는데요.

직원들의 승진과 직결되는 성적표인 만큼 서류를 만들거나 내용을 바꿀 때 위원들 모두의 서명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산청군의 평정표에는 위원들의 서명이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서류철 맨 앞장에 위원 5명의 서명이 있었는데요.

인사담당자들이 3년 동안이나 점수나 순위를 바꿀 수 있었던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사 담당자들은 자신들이 점수와 순위를 바꾼 서류를 서류철 중간에 끼워 넣었습니다.

원래 있던 서류는 파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서류가 바뀌어도 위원들에게 따로 보고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3년 동안 승진 후보자 명부가 바뀐 인원만 210명입니다.

■ 과거 두 차례 감사에서도 지적…"유명무실한 위원회"

산청군의 승진 후보자 명부 조작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0년과 2014년 감사에서도 같은 문제로 지적을 받았습니다.

근무성적 평정에서 행정직급 A 씨는 2013년 상반기 77위에서 하반기 25위, 이듬해 상반기에는 3위로 올라섰습니다.

반면, 같은 직급인 B 씨는 1위에서 3위로, 다음엔 18위로 떨어졌습니다. 당시 인사 담당자 3명은 심의를 거치지 않고, 평정 순위를 임의로 바꿔 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이미 확정된 점수가 뒤바뀌기도 했습니다.

직원 C 씨는 근무성적평정위원회에서 66.4점으로 확정됐는데 최종 점수는 0.6점을 더한 67점이 됐습니다. 반면 C 씨와 같은 점수를 받은 D 씨는 0.6점이 깎여 65.8점이 됐습니다. 인사담당자가 임의로 바꾼 것입니다.

2010년 감사에서도 산청군은 승진 후보자 22명의 평정 순위를 바꿔 '주의'를 받았습니다.


3번의 감사에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근무성적평정위원회의 허술한 운영이었습니다.

산청군은 부군수를 위원장으로 두고 군수가 추천한 위원 4명 등 총 5명의 위원이 있습니다. 위원회는 근무성적평정표에 서명조차 남기지 않아 서류를 바꿔치기할 빌미를 줬고, 회의를 열어도 기록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또 인사부서에서 올라온 평정 순위로 전체 서열을 정해야 하지만, 사실상 인사 부서의 결정 내용을 그대로 의결한 것으로 감사에서 확인됐습니다. 경상남도는 감사에서 '유명무실한 운영', '형식적인 운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 "평가를 받았는데 공정성이 훼손된 느낌이죠"

직원 수백 명의 근무 성적을 관리하다 보면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인사 담당자도 관련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실수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감사관실은 승진 후보자 명부 순위를 임의로 조정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근무성적평정점은 공무원들의 상대적인 서열에 따라 정해집니다. 한 사람의 점수가 높아지면, 다른 직원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죠. 감사에서는 이번 사건을 풀 만한 의미 있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당시 담당 과장이 '직전 승진후보자 명부 순위와 차이가 클 경우 조직의 안전성이 저해되므로 이를 충분히 고려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담당자는 이와 같은 지시에 근무성적평정점을 꾸준히 변경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당장에 이제 직원들 입장에서는 아픈 거죠. 내가 평가를 받았는데 뭔가 좀 공정성이 조금 훼손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니까…."

경찰의 압수수색 뒤 산청군 공무원의 반응입니다. 승진에서 탈락한 자신을 채찍질했던 날들이 후회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근무 평가와 승진에는 인적 요소가 어느 정도 작용합니다.

그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다면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번 산청군의 경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청군 인사담당 부서에 재발 방지 대책을 물었더니 "경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경찰은 성적 조작이 실제 승진 후보자 변경으로 이어졌는지, 누가 지시했는지 등 감사에서 드러난 혐의에 대해 전반적으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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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3년 동안 공무원 210명 ‘승진 조작’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44265&ref=A
승진 후보 조작 되풀이…“허울뿐인 위원회”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49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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