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 횡단보도 ‘무조건 일시정지’ 추진

입력 2020.11.2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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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는 아픔 없길…"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한 아파트 단지 인근 횡단보도 앞.

도로변 어린이보호구역 울타리에 지난주 인근 유치원생들이 더 이상의 교통사고를 막자며 직접 그려 내걸었던 그림들 사이로 꽃과 손편지가 내걸렸습니다.

시민들은 지난 17일 이곳에서 유모차를 끌던 어머니와 삼남매가 화물차에 치이면서 숨진 두 살배기를 추모했습니다. 손편지에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늘에서는 아픔 없이 따뜻하길 바랄게" 등의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교통사고 후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시민들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사고 현장의 안전 조치를 강화하기 위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횡단보도 건너려는 사람 있으면 '일단 정지' 추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의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지난 8월 대표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27조(보행자의 보호) 제1항은 '모든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아니하도록 그 횡단보도 앞(정지선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 정지선을 말한다)에서 일시정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을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는'으로 바꾸는 게 골자입니다.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의 보호 의무를 더욱 폭넓게 규정하는 것입니다.


■스쿨존 횡단보도에서는 '사람 없어도 일시 정지' 조항도

개정안에는 더욱 강력한 신설 조항도 담겨있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 설치된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의 횡단 여부와 상관 없이 일시정지 하여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스쿨존에서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일단 차를 멈췄다가 안전을 살피고 다시 출발하라는 취지입니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어린이나 어르신들은 (평범한 성인에 비해) 교통사고에 노출되기 쉽다"며 "학교 주변이나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는 차량이 아닌 사람 우선의 정책을 실시할 때가 됐고, 그런 교통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있습니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는 중요하지만, 모든 스쿨존에서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운전자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교통 흐름에 지나치게 방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두 살배기 참변 일주일…스쿨존부터 '보행자 중심' 교통문화로

내일(24일)이면 유모차에 탄 두 살배기가 화물차에 치여 숨진 지 꼭 일주일이 됩니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서조차 차량 중심의 교통 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았고, 보행자들은 여전히 위태롭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운전자들은 약 40m 앞 교차로의 신호가 차량 통행 신호로 바뀌자 사고 지점인 횡단보도에서 안전을 살피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렸습니다.

횡단보도 앞 보행자는 양보해주는 차가 없어 한참을 기다리다가 어렵게 길을 건넜습니다. 유모차를 끌며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사고를 당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고 현장 주민 왕광순(광주광역시 운암동)씨는 "몸이 불편하거나 상대적으로 행동이 느릴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나 임산부, 어린 아이 같은 경우는 어린이보호구역의 횡단보도에서조차 길을 건너기 쉽지 않다"며 "횡단보도 위 보행자가 내 가족일 수 있다는 생각을 운전자들이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어린이보호구역 52곳을 관계기관 합동으로 점검한 결과를 지난 7월 발표했습니다.

이들 장소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87건의 사고 가운데 63건(72%)은 횡단 중 사고였습니다. 또 가해운전자들의 위반 유형을 분석한 결과 41건(47%)이 보행자 보호의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아무리 안전 시설을 늘려도, 운전문화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꾸지 않으면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위 두 살배기의 참변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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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쿨존 횡단보도 ‘무조건 일시정지’ 추진
    • 입력 2020-11-23 14:48:50
    취재K

■"하늘에서는 아픔 없길…"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한 아파트 단지 인근 횡단보도 앞.

도로변 어린이보호구역 울타리에 지난주 인근 유치원생들이 더 이상의 교통사고를 막자며 직접 그려 내걸었던 그림들 사이로 꽃과 손편지가 내걸렸습니다.

시민들은 지난 17일 이곳에서 유모차를 끌던 어머니와 삼남매가 화물차에 치이면서 숨진 두 살배기를 추모했습니다. 손편지에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늘에서는 아픔 없이 따뜻하길 바랄게" 등의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교통사고 후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시민들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사고 현장의 안전 조치를 강화하기 위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횡단보도 건너려는 사람 있으면 '일단 정지' 추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의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지난 8월 대표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27조(보행자의 보호) 제1항은 '모든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아니하도록 그 횡단보도 앞(정지선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 정지선을 말한다)에서 일시정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을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는'으로 바꾸는 게 골자입니다.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의 보호 의무를 더욱 폭넓게 규정하는 것입니다.


■스쿨존 횡단보도에서는 '사람 없어도 일시 정지' 조항도

개정안에는 더욱 강력한 신설 조항도 담겨있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 설치된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의 횡단 여부와 상관 없이 일시정지 하여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스쿨존에서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일단 차를 멈췄다가 안전을 살피고 다시 출발하라는 취지입니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어린이나 어르신들은 (평범한 성인에 비해) 교통사고에 노출되기 쉽다"며 "학교 주변이나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는 차량이 아닌 사람 우선의 정책을 실시할 때가 됐고, 그런 교통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있습니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는 중요하지만, 모든 스쿨존에서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운전자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교통 흐름에 지나치게 방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두 살배기 참변 일주일…스쿨존부터 '보행자 중심' 교통문화로

내일(24일)이면 유모차에 탄 두 살배기가 화물차에 치여 숨진 지 꼭 일주일이 됩니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서조차 차량 중심의 교통 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았고, 보행자들은 여전히 위태롭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운전자들은 약 40m 앞 교차로의 신호가 차량 통행 신호로 바뀌자 사고 지점인 횡단보도에서 안전을 살피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렸습니다.

횡단보도 앞 보행자는 양보해주는 차가 없어 한참을 기다리다가 어렵게 길을 건넜습니다. 유모차를 끌며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사고를 당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고 현장 주민 왕광순(광주광역시 운암동)씨는 "몸이 불편하거나 상대적으로 행동이 느릴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나 임산부, 어린 아이 같은 경우는 어린이보호구역의 횡단보도에서조차 길을 건너기 쉽지 않다"며 "횡단보도 위 보행자가 내 가족일 수 있다는 생각을 운전자들이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어린이보호구역 52곳을 관계기관 합동으로 점검한 결과를 지난 7월 발표했습니다.

이들 장소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87건의 사고 가운데 63건(72%)은 횡단 중 사고였습니다. 또 가해운전자들의 위반 유형을 분석한 결과 41건(47%)이 보행자 보호의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아무리 안전 시설을 늘려도, 운전문화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꾸지 않으면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위 두 살배기의 참변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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