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이 마약을 원한다”… 2030 파고 든 마약

입력 2020.11.2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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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 당시 회수한 마약 검거 당시 회수한 마약

"신이 마약을 원한다"

지난달 18일 밤, "마약을 흡입하고 부산으로 내려간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습니다.

확인된 일행은 6명, 차량 두 대에 나눠 타 충북 음성에서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출동한 경찰은 경남 함안에서 3명을 검거했고, 나머지 3명을 잡기 위해 부산 동부경찰서에 공조수사를 요청했습니다. 인근 지역을 수색하던 경찰은, 새벽 2시쯤 골목길을 서성이는 한 남성을 발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속 행사에 사용하는 제기들을 가지고 내려오던 일행 두 명도 잇따라 경찰에 포착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중 한 명의 소지품에서 수십 차례 흡입이 가능한 대마가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마약류 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2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4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취재 결과 이들은 스스로를 '명상 모임'이라고 설명하는 단체 소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체, 알고 보니 경기도 평택에 근거지를 두고 무속인 두 명을 중심으로 퇴마행위를 벌이는 종교 소모임이었습니다.

법인까지 세우고 '기치유'와 '퇴마행위'를 벌여왔는데요. 인터넷을 통해 우울증이나 빙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상담을 받고, 일정 금액의 사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단순 상담을 넘어서 광범위한 방식으로 퇴마 행사를 벌였습니다. 매달 전국에서 음지가 강한 곳을 찾아다니며 천도제를 지냈는데요. 하지만 천도제의 끝은 결국 마약이었습니다.

경찰은 '신이 마약을 원한다'는 말에 무속인이며 신도할 것 없이 마약을 흡입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 무속 행사에서 마약을 나눠 피운 걸까?

전문가들은 마약이 주는 환각과 환청이 무속인의 빙의 현상과 유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마약을 나눠 피우는 행위가 이들 모임의 결속력을 강화시킨다고 봤는데요.

무속인의 말이 곧 신의 음성인 것처럼, 이들의 마약 투약 행위조차 신성한 것으로 바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다는 겁니다.

인터넷 마약 광고 사진인터넷 마약 광고 사진

2030 파고드는 마약, 처벌도 어렵다.

이해하기 힘든 이 무속 행사에 참석한 이들 모두 2030의 젊은 층이었습니다.

소위 믿을만한 사람의 경로를 통해 마약 공급처와 구매자가 특정됐던 기존 방식과 달리, 요즘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활 속에 마약이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데요. 특히 비대면 거래가 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SNS 등 인터넷으로 판매되는 마약이 상당수 증가하고 있는데요.

인터넷에 마약을 지칭하는 은어를 조금만 검색해도 판매 글이 수두룩했습니다. 취재진이 마약 판매 글을 올린 사람과 접촉을 시도해봤는데, 판매하는 약 종류부터 금액, 받는 지역까지 상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실물을 확인하자는 말에 사진을 올리는 대담함까지 보였습니다.

마약을 판매하는 것도 구매하는 것도 불법이지만 검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를 이용해 거래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다 보니 실제 사기도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하게 마약이 유통되다 보니 인터넷 접근성이 높은 2030세대가 마약의 주요 먹잇감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 부산에서도 마약사범으로 단속된 20대는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80여 건에서 올해는 159건까지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단속은 쉽지 않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마약 판매글 등을 관찰하고 있지만 전담 인력은 전국에서 단 1명뿐입니다.

거기에 적발된 사이트를 차단할 권리도 없어 방송통신위원회에 차단을 요청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과 공조수사를 벌이거나 협조를 구하는 일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부산 중독재활센터 상담 사진부산 중독재활센터 상담 사진

재범률 높아도 치료는 알아서?

부산마약퇴치본부에 따르면 마약 사범의 재범률은 37%에 달합니다.

마약 유통과 투약 등으로 교도소에 다시 수감되는 경우도 48%에 달해 재범 우려가 상당한 데요.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처벌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치료도 검찰이나 법원에서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에 한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 출소 이후 치료가 필요하거나 검찰 조사 이전에 마약 중독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경우 지역에 위치한 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입원 치료 등이 필요하면 병원을 소개받기도 하는데, 실제 부산에는 마약 중독자 전용 병상이 부산의료원에 2개뿐입니다. 이마저도 신청과 심사를 거치는데 몇 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립니다.

예산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부산시는 지난해 시비와 국비 등을 포함해 마약 중독자 치료 예산으로 375만 원을 확보했습니다. 입원 치료만 한 달에 266만 원, 외래 치료가 62만 원 상당이 드는 것을 생각하면 적은 액수인데요.

부산시는 현재까지는 입원 치료자가 많지 않아 예산 부족을 겪지는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약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예산과 병상 확보도 시급한 실정입니다.

중독재활센터에 비치된 마약 예방 교육 안내서중독재활센터에 비치된 마약 예방 교육 안내서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로

기존 마약퇴치본부 등 마약 관련 활동은 대부분 예방과 교육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등 해외에서 대마가 합법화된 이후 한국에 마약 유통이 크게 늘었고, 특히 해외를 다녀온 젊은 세대가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져 큰 거부감 없이 마약을 구매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실제 지난해 교육이수를 조건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마약류 중독자는 800명으로 전년대비 1.7배가량 증가했습니다.

취재진이 부산중독재활센터를 방문한 날도 한 20대가 중독 치료를 받고 싶다며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법원이나 검찰의 처분이 없어 당장 입원 가능한 병원조차 찾기가 힘들었는데요. 겨우 다른 지역에 위치한 병원을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체계가 스스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중독자조차 수용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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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신이 마약을 원한다”… 2030 파고 든 마약
    • 입력 2020-11-23 15:08:53
    취재K
검거 당시 회수한 마약
"신이 마약을 원한다"

지난달 18일 밤, "마약을 흡입하고 부산으로 내려간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습니다.

확인된 일행은 6명, 차량 두 대에 나눠 타 충북 음성에서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출동한 경찰은 경남 함안에서 3명을 검거했고, 나머지 3명을 잡기 위해 부산 동부경찰서에 공조수사를 요청했습니다. 인근 지역을 수색하던 경찰은, 새벽 2시쯤 골목길을 서성이는 한 남성을 발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속 행사에 사용하는 제기들을 가지고 내려오던 일행 두 명도 잇따라 경찰에 포착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중 한 명의 소지품에서 수십 차례 흡입이 가능한 대마가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마약류 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2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4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취재 결과 이들은 스스로를 '명상 모임'이라고 설명하는 단체 소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체, 알고 보니 경기도 평택에 근거지를 두고 무속인 두 명을 중심으로 퇴마행위를 벌이는 종교 소모임이었습니다.

법인까지 세우고 '기치유'와 '퇴마행위'를 벌여왔는데요. 인터넷을 통해 우울증이나 빙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상담을 받고, 일정 금액의 사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단순 상담을 넘어서 광범위한 방식으로 퇴마 행사를 벌였습니다. 매달 전국에서 음지가 강한 곳을 찾아다니며 천도제를 지냈는데요. 하지만 천도제의 끝은 결국 마약이었습니다.

경찰은 '신이 마약을 원한다'는 말에 무속인이며 신도할 것 없이 마약을 흡입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 무속 행사에서 마약을 나눠 피운 걸까?

전문가들은 마약이 주는 환각과 환청이 무속인의 빙의 현상과 유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마약을 나눠 피우는 행위가 이들 모임의 결속력을 강화시킨다고 봤는데요.

무속인의 말이 곧 신의 음성인 것처럼, 이들의 마약 투약 행위조차 신성한 것으로 바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다는 겁니다.

인터넷 마약 광고 사진
2030 파고드는 마약, 처벌도 어렵다.

이해하기 힘든 이 무속 행사에 참석한 이들 모두 2030의 젊은 층이었습니다.

소위 믿을만한 사람의 경로를 통해 마약 공급처와 구매자가 특정됐던 기존 방식과 달리, 요즘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활 속에 마약이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데요. 특히 비대면 거래가 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SNS 등 인터넷으로 판매되는 마약이 상당수 증가하고 있는데요.

인터넷에 마약을 지칭하는 은어를 조금만 검색해도 판매 글이 수두룩했습니다. 취재진이 마약 판매 글을 올린 사람과 접촉을 시도해봤는데, 판매하는 약 종류부터 금액, 받는 지역까지 상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실물을 확인하자는 말에 사진을 올리는 대담함까지 보였습니다.

마약을 판매하는 것도 구매하는 것도 불법이지만 검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를 이용해 거래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다 보니 실제 사기도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하게 마약이 유통되다 보니 인터넷 접근성이 높은 2030세대가 마약의 주요 먹잇감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 부산에서도 마약사범으로 단속된 20대는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80여 건에서 올해는 159건까지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단속은 쉽지 않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마약 판매글 등을 관찰하고 있지만 전담 인력은 전국에서 단 1명뿐입니다.

거기에 적발된 사이트를 차단할 권리도 없어 방송통신위원회에 차단을 요청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과 공조수사를 벌이거나 협조를 구하는 일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부산 중독재활센터 상담 사진
재범률 높아도 치료는 알아서?

부산마약퇴치본부에 따르면 마약 사범의 재범률은 37%에 달합니다.

마약 유통과 투약 등으로 교도소에 다시 수감되는 경우도 48%에 달해 재범 우려가 상당한 데요.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처벌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치료도 검찰이나 법원에서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에 한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 출소 이후 치료가 필요하거나 검찰 조사 이전에 마약 중독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경우 지역에 위치한 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입원 치료 등이 필요하면 병원을 소개받기도 하는데, 실제 부산에는 마약 중독자 전용 병상이 부산의료원에 2개뿐입니다. 이마저도 신청과 심사를 거치는데 몇 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립니다.

예산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부산시는 지난해 시비와 국비 등을 포함해 마약 중독자 치료 예산으로 375만 원을 확보했습니다. 입원 치료만 한 달에 266만 원, 외래 치료가 62만 원 상당이 드는 것을 생각하면 적은 액수인데요.

부산시는 현재까지는 입원 치료자가 많지 않아 예산 부족을 겪지는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약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예산과 병상 확보도 시급한 실정입니다.

중독재활센터에 비치된 마약 예방 교육 안내서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로

기존 마약퇴치본부 등 마약 관련 활동은 대부분 예방과 교육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등 해외에서 대마가 합법화된 이후 한국에 마약 유통이 크게 늘었고, 특히 해외를 다녀온 젊은 세대가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져 큰 거부감 없이 마약을 구매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실제 지난해 교육이수를 조건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마약류 중독자는 800명으로 전년대비 1.7배가량 증가했습니다.

취재진이 부산중독재활센터를 방문한 날도 한 20대가 중독 치료를 받고 싶다며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법원이나 검찰의 처분이 없어 당장 입원 가능한 병원조차 찾기가 힘들었는데요. 겨우 다른 지역에 위치한 병원을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체계가 스스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중독자조차 수용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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