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가득한 집에서 아들 키운 엄마, 경찰이 선처한 이유는?

입력 2020.11.23 (15:12) 수정 2020.11.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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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 가득한 집, 그 안에 방치된 아이.

누구라도 그런 장면을 보면 아동학대를 의심할 겁니다. 그런데 최근 쓰레기가 가득 찬 집에서 아들을 키운 혐의로 수사를 받던 한 여성에 대해 경찰이 선처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이런 결정을 하기로 한 이유는 뭘까요?


■이혼 후 홀로 아이 키워...아들, "엄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지난주, 서울 강북경찰서는 A 씨를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로 기소 의견이 아닌 아동보호사건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아동보호사건은 형사재판 대신 사건을 담당 가정법원에 넘겨 접근금지나 감호, 치료, 상담 등 보호 처분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검찰이 경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A 씨는 일반적인 공소 절차를 밟게 됩니다.

A 씨는 몇 달간 쓰레기를 내버려 둔 집에서 아들이 생활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시작은 시간을 거슬러 올해 9월로 올라갑니다. A 씨의 집을 방문한 수리기사가 방 안의 모습을 보고 경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신고를 한 겁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응급조치로 우선 A 씨와 아들을 분리했습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일반적인 아동 학대와는 다른 점들이 발견됐습니다.

아들에 대한 학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먹이고 입히는 등 A 씨는 양육 활동에 충실했던 겁니다. 아들 역시 "엄마에 대한 불만이 없고,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며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지는 조치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 씨는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뒤 홀로 어린 아들의 양육을 책임지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집안과 아들 모두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집을 스스로 치우는 한편,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교육을 받는 등 반성의 모습도 충분히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경찰은 이 모든 점을 고려해 A 씨에 대해 형사처분 대신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보호자의 반성, 개선 의지 등을 모두 보고 내린 결정"이라며 "결과적으론 법원에서 판단이 나와봐야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올해 7월에도 서울 동대문구에서 비슷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한 단독주택에서 누군가 아이에게 폭언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는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쓰레기 더미에서 3살 여자아이를 발견한 겁니다. 그 집에는 엄마와 외할머니, 외삼촌 2명 등이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고, 그 누구도 쓰레기를 치우지 않은 채 아이를 내버려 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8월 초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엄마와 외할머니를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동대문구 사건과 이번 강북구 사건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결과는 다릅니다.

경찰이 A 씨에게 내린 이번 결정에 대해 이세원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는 유지하되, 부족한 부분들을 조금씩 도와주자고 하는 것이 아동보호처분"이라며 "경찰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물리적 학대를 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분이 꼭 아동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상황에 따른 적절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방임이라고 해서 모두 기소해야 한다는 건 아니"라며 "아동학대 사건은 특이한 점이 가해자이면서 보호자이기 때문에, 보호자를 얼마나 고쳐서 쓸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아동 방임이 학대와 비교하면 사회적 인식이 낮고, 방임에 대한 사회적 방임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낮은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빈곤하면 그럴 수 있겠다'라고 정상참작이 많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보여준 사례일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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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 가득한 집에서 아들 키운 엄마, 경찰이 선처한 이유는?
    • 입력 2020-11-23 15:12:40
    • 수정2020-11-23 15:44:16
    취재K

쓰레기로 가득한 집, 그 안에 방치된 아이.

누구라도 그런 장면을 보면 아동학대를 의심할 겁니다. 그런데 최근 쓰레기가 가득 찬 집에서 아들을 키운 혐의로 수사를 받던 한 여성에 대해 경찰이 선처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이런 결정을 하기로 한 이유는 뭘까요?


■이혼 후 홀로 아이 키워...아들, "엄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지난주, 서울 강북경찰서는 A 씨를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로 기소 의견이 아닌 아동보호사건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아동보호사건은 형사재판 대신 사건을 담당 가정법원에 넘겨 접근금지나 감호, 치료, 상담 등 보호 처분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검찰이 경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A 씨는 일반적인 공소 절차를 밟게 됩니다.

A 씨는 몇 달간 쓰레기를 내버려 둔 집에서 아들이 생활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시작은 시간을 거슬러 올해 9월로 올라갑니다. A 씨의 집을 방문한 수리기사가 방 안의 모습을 보고 경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신고를 한 겁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응급조치로 우선 A 씨와 아들을 분리했습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일반적인 아동 학대와는 다른 점들이 발견됐습니다.

아들에 대한 학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먹이고 입히는 등 A 씨는 양육 활동에 충실했던 겁니다. 아들 역시 "엄마에 대한 불만이 없고,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며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지는 조치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 씨는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뒤 홀로 어린 아들의 양육을 책임지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집안과 아들 모두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집을 스스로 치우는 한편,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교육을 받는 등 반성의 모습도 충분히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경찰은 이 모든 점을 고려해 A 씨에 대해 형사처분 대신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보호자의 반성, 개선 의지 등을 모두 보고 내린 결정"이라며 "결과적으론 법원에서 판단이 나와봐야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올해 7월에도 서울 동대문구에서 비슷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한 단독주택에서 누군가 아이에게 폭언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는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쓰레기 더미에서 3살 여자아이를 발견한 겁니다. 그 집에는 엄마와 외할머니, 외삼촌 2명 등이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고, 그 누구도 쓰레기를 치우지 않은 채 아이를 내버려 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8월 초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엄마와 외할머니를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동대문구 사건과 이번 강북구 사건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결과는 다릅니다.

경찰이 A 씨에게 내린 이번 결정에 대해 이세원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는 유지하되, 부족한 부분들을 조금씩 도와주자고 하는 것이 아동보호처분"이라며 "경찰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물리적 학대를 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분이 꼭 아동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상황에 따른 적절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방임이라고 해서 모두 기소해야 한다는 건 아니"라며 "아동학대 사건은 특이한 점이 가해자이면서 보호자이기 때문에, 보호자를 얼마나 고쳐서 쓸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아동 방임이 학대와 비교하면 사회적 인식이 낮고, 방임에 대한 사회적 방임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낮은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빈곤하면 그럴 수 있겠다'라고 정상참작이 많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보여준 사례일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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