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끝나지 않은 ‘신생아 결핵’ 사태

입력 2020.11.23 (17:01) 수정 2020.11.2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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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 끝나지 않은 '신생아 결핵' 사태
천사 같은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출산의 고통마저 잊게 해준 아기. 아기를 만난 즐거움으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보건소에서 문자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문자 한 통으로, 280여 명의 아이가 잠복 결핵 검사대상자가 됐습니다. 현재까지 90명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였으며 이 가운데 35명이 잠복 결핵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직 결핵 검사를 하지 못한 아기까지 합치면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부모들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후회와 자책감의 눈물입니다. "내가 이 산후조리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더 빨리 퇴원했더라면...우리 아이에게 이런 약 부작용도, 결핵 보균자라는 꼬리표도 주지 않았을 텐데…".

■ "부작용 없다고요? 먹이면 토하고 먹이면 게워냅니다."

"약을 먹이면 토하고, 게워내고, 또 울고, 안 먹여 본 사람은 몰라요. 부모 마음은 찢어집니다."
매일 결핵약을 복용하기 위한, 부모들의 힘든 싸움이 시작됩니다. 신생아들은 적어도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동안 성인이 먹는 약과 같은 치료 약을 먹어야 하는데요. 약이 독해 아이들이 먹으면 토하고 게워내기가 일상입니다. 며칠 먹지 않으면 항생제 내성이 생길 수도 있어 억지로 먹여야 하는데요.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다 약 먹이기를 포기할까 하다가, 다시 먹이기를 반복. 약 먹이는 시간이 부모들에게는 고통 그 자체입니다.

"임산부도 먹을 수 있는 약이다, 부작용이 없다." 보건당국은 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는데요. 그런데 약을 먹었던 아이들. 피부에 이상이 생기고, 발진도 일어납니다. 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 "아이가 무슨 죄" … 자책하는 부모들
마음이 아픈 건 결핵 양성판정을 받은 아기의 부모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추적검사에서 양성판정이 나올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입니다. 나중에라도 결핵 판정을 받아 혹시, 아이 취업이나 장래에 불이익이라도 생긴다면? 이런 불안한 상상에 부모들은 슬퍼하고, 분노하고,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언론에 공개적으로 병원 이름이 나오진 않았지만, 이미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병원 이름이 알려지며, 이 병원의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가 남을까도 무섭습니다. 아이들과의 접촉을 우려하는 내용의 인터넷 글을 볼 때마다 부모들은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왜 그 산후조리원을 택했냐고 묻는 댓글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합니다.

■ 신생아 결핵 책임은 누가?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산후조리원을 믿었기에 분노는 더욱 큽니다. 이 산후조리원은 규모가 꽤 큰 편이라 부산뿐만 아니라 인근 경남지역 등에서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첫째나 둘째를 이곳에서 낳아 믿고 이용했다는 부모들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병원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믿었던 만큼, 충격도 컸습니다. 산후조리원의 대처에 부모들은 분노를 숨기지 못했습니다. 간호사 결핵 판정 사흘 후, 산후조리원이 한 조치는 달랑 문자 한 통. 부모들이 대표를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러고선 갑자기 합의금 1백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합의금이었습니다.

부모들은 말합니다. 전화 한 통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냐고. 도의적인 차원에서 진정성을 담아 미안하다는 말 한 번만 했더라도 이만큼 화가 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보건당국에도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감염 가능성이 작을 거라는 보건당국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잠복 결핵 양성판정 30여 명. 부모들이 병원으로부터 양성판정 통보를 받은 지 일주일, 인제야 보건당국은 공식집계를 내놓았습니다.


■ 부모들 싸움 시작 …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결핵, 예방법 개정해야!"
부모들은 힘든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병원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겁니다. 간호조무사가 피가래가 나오는데도 분리 조치를 하지 않는 등, 병원의 안일한 대처를 짚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양성판정을 받은 아기의 부모뿐 아니라, 음성판정을 받은 부모들도 같이 동참합니다.

해당 산후조리원의 과실 뿐만 아니라 신생아실 의료진에 대한 결핵 검진 강화도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현행 결핵예방법에 따르면 연 1회 의료진은 결핵 검진을 받습니다. 부모들은,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를 상대하는 의료진은 3개월마다 검진을 받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과 같은 구조라면 내 아이를 비롯한 그 누구도 결핵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를 위해 부모들은 그렇게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는 그 싸움을, 우리는 함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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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끝나지 않은 ‘신생아 결핵’ 사태
    • 입력 2020-11-23 17:01:36
    • 수정2020-11-23 17:12:16
    취재후·사건후

■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 끝나지 않은 '신생아 결핵' 사태
천사 같은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출산의 고통마저 잊게 해준 아기. 아기를 만난 즐거움으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보건소에서 문자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문자 한 통으로, 280여 명의 아이가 잠복 결핵 검사대상자가 됐습니다. 현재까지 90명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였으며 이 가운데 35명이 잠복 결핵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직 결핵 검사를 하지 못한 아기까지 합치면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부모들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후회와 자책감의 눈물입니다. "내가 이 산후조리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더 빨리 퇴원했더라면...우리 아이에게 이런 약 부작용도, 결핵 보균자라는 꼬리표도 주지 않았을 텐데…".

■ "부작용 없다고요? 먹이면 토하고 먹이면 게워냅니다."

"약을 먹이면 토하고, 게워내고, 또 울고, 안 먹여 본 사람은 몰라요. 부모 마음은 찢어집니다."
매일 결핵약을 복용하기 위한, 부모들의 힘든 싸움이 시작됩니다. 신생아들은 적어도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동안 성인이 먹는 약과 같은 치료 약을 먹어야 하는데요. 약이 독해 아이들이 먹으면 토하고 게워내기가 일상입니다. 며칠 먹지 않으면 항생제 내성이 생길 수도 있어 억지로 먹여야 하는데요.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다 약 먹이기를 포기할까 하다가, 다시 먹이기를 반복. 약 먹이는 시간이 부모들에게는 고통 그 자체입니다.

"임산부도 먹을 수 있는 약이다, 부작용이 없다." 보건당국은 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는데요. 그런데 약을 먹었던 아이들. 피부에 이상이 생기고, 발진도 일어납니다. 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 "아이가 무슨 죄" … 자책하는 부모들
마음이 아픈 건 결핵 양성판정을 받은 아기의 부모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추적검사에서 양성판정이 나올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입니다. 나중에라도 결핵 판정을 받아 혹시, 아이 취업이나 장래에 불이익이라도 생긴다면? 이런 불안한 상상에 부모들은 슬퍼하고, 분노하고,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언론에 공개적으로 병원 이름이 나오진 않았지만, 이미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병원 이름이 알려지며, 이 병원의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가 남을까도 무섭습니다. 아이들과의 접촉을 우려하는 내용의 인터넷 글을 볼 때마다 부모들은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왜 그 산후조리원을 택했냐고 묻는 댓글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합니다.

■ 신생아 결핵 책임은 누가?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산후조리원을 믿었기에 분노는 더욱 큽니다. 이 산후조리원은 규모가 꽤 큰 편이라 부산뿐만 아니라 인근 경남지역 등에서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첫째나 둘째를 이곳에서 낳아 믿고 이용했다는 부모들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병원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믿었던 만큼, 충격도 컸습니다. 산후조리원의 대처에 부모들은 분노를 숨기지 못했습니다. 간호사 결핵 판정 사흘 후, 산후조리원이 한 조치는 달랑 문자 한 통. 부모들이 대표를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러고선 갑자기 합의금 1백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합의금이었습니다.

부모들은 말합니다. 전화 한 통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냐고. 도의적인 차원에서 진정성을 담아 미안하다는 말 한 번만 했더라도 이만큼 화가 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보건당국에도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감염 가능성이 작을 거라는 보건당국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잠복 결핵 양성판정 30여 명. 부모들이 병원으로부터 양성판정 통보를 받은 지 일주일, 인제야 보건당국은 공식집계를 내놓았습니다.


■ 부모들 싸움 시작 …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결핵, 예방법 개정해야!"
부모들은 힘든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병원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겁니다. 간호조무사가 피가래가 나오는데도 분리 조치를 하지 않는 등, 병원의 안일한 대처를 짚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양성판정을 받은 아기의 부모뿐 아니라, 음성판정을 받은 부모들도 같이 동참합니다.

해당 산후조리원의 과실 뿐만 아니라 신생아실 의료진에 대한 결핵 검진 강화도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현행 결핵예방법에 따르면 연 1회 의료진은 결핵 검진을 받습니다. 부모들은,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를 상대하는 의료진은 3개월마다 검진을 받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과 같은 구조라면 내 아이를 비롯한 그 누구도 결핵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를 위해 부모들은 그렇게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는 그 싸움을, 우리는 함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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