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외교팀이 소환한 ‘이란’의 추억

입력 2020.11.25 (06: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장관에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을 지명했습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안보보좌관을 기용했습니다.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바이든 대선 캠프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해 온 최측근 인사로, 바이든이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2002년부터 핵심 참모로 일해 왔습니다. 또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2013-2014년 바이든 당시 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1976년생의 '젊은 브레인'으로 꼽힙니다.

■ 북핵 문제에 '이란식 해법' 강조

이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2인방, '투톱'이 결정된 셈인데,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북핵문제 접근법으로 쏠립니다. 두 사람은 과거 기고문과 인터뷰를 통해 '이란식 해법'을 강조해 왔습니다.


블링컨 지명자는 지난 9월 미국 CBS방송 대담 프로그램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2015년 이란 핵합의를 거론하며 "나는 북한과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란식 해법'에 대한 블링컨의 생각은 2018년 6월 11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그의 기고문에 보다 상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 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가 2018년 6월 11일 뉴욕타임즈에 낸 기고문.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가 2018년 6월 11일 뉴욕타임즈에 낸 기고문.

글의 제목부터 명확합니다. 블링컨은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최선의 모델은?'이라고 스스로 묻고 '이란'이라고 답했습니다.

2015년 미국을 포함한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과 독일이 한편에 앉고, 반대편에 이란이 마주 앉아 서명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 (JCPOA, 이란 핵합의)의 뼈대는 이렇습니다.

이란은 핵능력을 감소시키기로 하고(완전히 없애는 게 아닙니다), 이 약속이 지켜지는 게 확인되면, 미국 등은 경제 제재를 풀어주는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원심분리기(핵무기 원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필수장비입니다) 수를 줄이고, 원자력 발전에 쓸 용도로만 우라늄을 '저농축'하도록 하는 의무가 이란에게 부여됐습니다. 우라늄 비축량도 줄이도록 했습니다.

블링컨은 이 합의 덕분에 이란이 핵무기를 위한 핵물질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몇 주에서 1년 이상으로 늘리는 효과를 봤다고 적었습니다.

블링컨 지명자는 당시 북한이 이미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일부'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핵프로그램 공개, 국제감시 하에 농축·재처리 시설 '동결', '일부 ' 탄두와 미사일 제거 등을 담은 중간합의를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미국은 제재를 '일부' 완화하고, 북한은 핵시설의 폐쇄가 아닌 '동결', 그리고 탄두와 미사일의 전부가 아닌 '일부' 제거라는 단계별 접근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경우 연속적인 로드맵을 포함해 더욱 포괄적인 합의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취한 접근법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설리번 역시 힐러리 클린턴 대선 캠프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던 2016년 5월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이란에 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설리번은 실제 2013년 6월 이란에 온건파 정권이 들어선 뒤 비밀리에 투입돼 이란과 비밀 회담을 하는 등 이란 핵합의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란 핵합의는 오바마 정부의 최대 외교성과

이란 핵합의는 비록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한 이후 표류하고 있지만, 159페이지에 이르는 상세한 합의문에 이행경로까지 치밀하게 설정돼 오랜 이란 핵문제를 해결할 오바마 정부 최대의 외교성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당시 부통령,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었습니다.

2015년 7월 이란핵협정(JCPOA) 서명 당시 모습.2015년 7월 이란핵협정(JCPOA) 서명 당시 모습.

이런 배경과 바이든 외교안보 '투톱'의 과거 발언으로 보면,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핵문제를 놓고 '이란식 해법'을 우선 검토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단계적 접근 ▲국제적 공조가 이란 핵합의 특징이고, 여기에 ▲강력한 제재는 협상이 타결에 이르기까지 지렛대 역할을 했습니다.

이란 핵 협상 가운데 북핵 협상에 가장 큰 시사점을 주는 것은 단계적 접근 방법입니다.

이란 핵 협상은 첫 단계에서 '일부 핵프로그램'과 '일부 제재'를 교환한 뒤, 다음 단계에서 포괄협정을 체결하는 구조입니다. 이란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다시 제재하는 내용, 즉 '스냅백(snap-back)' 조항도 담겨 있습니다.

'단계적 접근' 주목… 북·미 접점 찾을 수 있을까

블링컨과 설리번은 북한에 대해 이같은 단계적 접근의 가능성을 언급해 왔습니다. 설리번은 지난 9월 장기적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목표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핵확산을 감소시키는 데 외교적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블링컨 역시 2018년 6월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단계적 접근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했고, CBS방송과의 대담에서는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이 내일 무기 전부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이는 단계별로 진행해야 할 일이고,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외교정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단계적 접근법이 주목되는 이유는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줄곧 북미협상에서 '단계적·동보적(동시적)' 비핵화를 기본 입장으로 견지해 왔습니다. 하노이 회담에서 시도했던 '영변 딜', 즉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제재 일부를 완화해 주고, 신뢰를 쌓은 뒤 다음 단계 협상을 한다는 방식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전직 고위 외교당국자는 "이란 모델 그대로를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단계적 접근을 통해 북한 핵능력이 더이상 고도화되고 확대·확산되는 것을 우선 막자는 방안"이라며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게 이란 핵협상에 담긴 철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단계적 접근'의 가능성 만으로 북미협상이 이란 핵협상처럼 결실을 볼 수 있을 거라 전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북한에 대한 '이란 모델'의 적용 가능성은 2015년 체결 당시부터 언급되어 왔지만,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 북한에 적용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란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국가적으로 비핵 정책을 유지해 왔고 무기용 핵물질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지만, 북한은 핵무장을 천명하며 6차례의 핵실험에 이어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비핵화의 대상인 두 국가의 성격과 체급이 확연히 다르다는 겁니다. 또 수출 의존도가 높아 제재로 인한 타격이 컸던 이란과 달리 북한은 자력갱생을 내세우는 폐쇄적인 경제구조 탓에 제재를 통한 압박의 효과도 다르다는 점도 지적됩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란이 비핵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게 됐던 데에는 제재로 인해 고통받던 이란 국민들이 온건파 대통령(하산 로하니)을 선출했던 국내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며 "여건이 매우 다른 북한을 상대로 이란식 접근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이란 핵합의를 이끈 건 제재

블링컨과 설리번이 단계적 접근과 함께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국제공조와 제재입니다.

블링컨은 지난 9월 CBS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달래기 위해 동맹들과 군사훈련을 유예하고 경제적 압박 페달에서 발을 뗐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국, 일본과 같은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고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진정한 경제적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며 북한의 다양한 수입원과 자원 접근 통로를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설리번 역시 2016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설에서 "북한을 진지한 협상장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압박을 급격히 강화하는 것"이라며 "협상 이전에 이란에 부과된 국제적 제재가 일정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9월 '월드 어페어스 카운슬'(World Affairs Council) 화상 세미나에서는 동맹국들과의 긴밀한 협의 하에 북한의 전반적 핵 능력을 억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국제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외교부는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과 관련해 그가 한반도 문제에 이해가 깊은 인사라고 평가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이란식 해법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거 발언으로 예단하지는 않는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투톱' 인선이라는 큰 윤곽만 나왔을 뿐입니다. 향후 한국의 역할, 북한의 도발 여부 등에 따라 변동 가능성이 상당한 만큼 다양한 상황에 따른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한다는 지적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바이든 외교팀이 소환한 ‘이란’의 추억
    • 입력 2020-11-25 06:02:00
    취재K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장관에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을 지명했습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안보보좌관을 기용했습니다.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바이든 대선 캠프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해 온 최측근 인사로, 바이든이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2002년부터 핵심 참모로 일해 왔습니다. 또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2013-2014년 바이든 당시 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1976년생의 '젊은 브레인'으로 꼽힙니다.

■ 북핵 문제에 '이란식 해법' 강조

이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2인방, '투톱'이 결정된 셈인데,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북핵문제 접근법으로 쏠립니다. 두 사람은 과거 기고문과 인터뷰를 통해 '이란식 해법'을 강조해 왔습니다.


블링컨 지명자는 지난 9월 미국 CBS방송 대담 프로그램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2015년 이란 핵합의를 거론하며 "나는 북한과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란식 해법'에 대한 블링컨의 생각은 2018년 6월 11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그의 기고문에 보다 상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 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가 2018년 6월 11일 뉴욕타임즈에 낸 기고문.
글의 제목부터 명확합니다. 블링컨은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최선의 모델은?'이라고 스스로 묻고 '이란'이라고 답했습니다.

2015년 미국을 포함한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과 독일이 한편에 앉고, 반대편에 이란이 마주 앉아 서명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 (JCPOA, 이란 핵합의)의 뼈대는 이렇습니다.

이란은 핵능력을 감소시키기로 하고(완전히 없애는 게 아닙니다), 이 약속이 지켜지는 게 확인되면, 미국 등은 경제 제재를 풀어주는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원심분리기(핵무기 원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필수장비입니다) 수를 줄이고, 원자력 발전에 쓸 용도로만 우라늄을 '저농축'하도록 하는 의무가 이란에게 부여됐습니다. 우라늄 비축량도 줄이도록 했습니다.

블링컨은 이 합의 덕분에 이란이 핵무기를 위한 핵물질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몇 주에서 1년 이상으로 늘리는 효과를 봤다고 적었습니다.

블링컨 지명자는 당시 북한이 이미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일부'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핵프로그램 공개, 국제감시 하에 농축·재처리 시설 '동결', '일부 ' 탄두와 미사일 제거 등을 담은 중간합의를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미국은 제재를 '일부' 완화하고, 북한은 핵시설의 폐쇄가 아닌 '동결', 그리고 탄두와 미사일의 전부가 아닌 '일부' 제거라는 단계별 접근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경우 연속적인 로드맵을 포함해 더욱 포괄적인 합의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취한 접근법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설리번 역시 힐러리 클린턴 대선 캠프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던 2016년 5월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이란에 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설리번은 실제 2013년 6월 이란에 온건파 정권이 들어선 뒤 비밀리에 투입돼 이란과 비밀 회담을 하는 등 이란 핵합의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란 핵합의는 오바마 정부의 최대 외교성과

이란 핵합의는 비록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한 이후 표류하고 있지만, 159페이지에 이르는 상세한 합의문에 이행경로까지 치밀하게 설정돼 오랜 이란 핵문제를 해결할 오바마 정부 최대의 외교성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당시 부통령,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었습니다.

2015년 7월 이란핵협정(JCPOA) 서명 당시 모습.
이런 배경과 바이든 외교안보 '투톱'의 과거 발언으로 보면,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핵문제를 놓고 '이란식 해법'을 우선 검토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단계적 접근 ▲국제적 공조가 이란 핵합의 특징이고, 여기에 ▲강력한 제재는 협상이 타결에 이르기까지 지렛대 역할을 했습니다.

이란 핵 협상 가운데 북핵 협상에 가장 큰 시사점을 주는 것은 단계적 접근 방법입니다.

이란 핵 협상은 첫 단계에서 '일부 핵프로그램'과 '일부 제재'를 교환한 뒤, 다음 단계에서 포괄협정을 체결하는 구조입니다. 이란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다시 제재하는 내용, 즉 '스냅백(snap-back)' 조항도 담겨 있습니다.

'단계적 접근' 주목… 북·미 접점 찾을 수 있을까

블링컨과 설리번은 북한에 대해 이같은 단계적 접근의 가능성을 언급해 왔습니다. 설리번은 지난 9월 장기적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목표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핵확산을 감소시키는 데 외교적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블링컨 역시 2018년 6월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단계적 접근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했고, CBS방송과의 대담에서는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이 내일 무기 전부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이는 단계별로 진행해야 할 일이고,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외교정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단계적 접근법이 주목되는 이유는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줄곧 북미협상에서 '단계적·동보적(동시적)' 비핵화를 기본 입장으로 견지해 왔습니다. 하노이 회담에서 시도했던 '영변 딜', 즉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제재 일부를 완화해 주고, 신뢰를 쌓은 뒤 다음 단계 협상을 한다는 방식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전직 고위 외교당국자는 "이란 모델 그대로를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단계적 접근을 통해 북한 핵능력이 더이상 고도화되고 확대·확산되는 것을 우선 막자는 방안"이라며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게 이란 핵협상에 담긴 철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단계적 접근'의 가능성 만으로 북미협상이 이란 핵협상처럼 결실을 볼 수 있을 거라 전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북한에 대한 '이란 모델'의 적용 가능성은 2015년 체결 당시부터 언급되어 왔지만,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 북한에 적용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란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국가적으로 비핵 정책을 유지해 왔고 무기용 핵물질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지만, 북한은 핵무장을 천명하며 6차례의 핵실험에 이어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비핵화의 대상인 두 국가의 성격과 체급이 확연히 다르다는 겁니다. 또 수출 의존도가 높아 제재로 인한 타격이 컸던 이란과 달리 북한은 자력갱생을 내세우는 폐쇄적인 경제구조 탓에 제재를 통한 압박의 효과도 다르다는 점도 지적됩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란이 비핵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게 됐던 데에는 제재로 인해 고통받던 이란 국민들이 온건파 대통령(하산 로하니)을 선출했던 국내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며 "여건이 매우 다른 북한을 상대로 이란식 접근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이란 핵합의를 이끈 건 제재

블링컨과 설리번이 단계적 접근과 함께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국제공조와 제재입니다.

블링컨은 지난 9월 CBS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달래기 위해 동맹들과 군사훈련을 유예하고 경제적 압박 페달에서 발을 뗐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국, 일본과 같은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고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진정한 경제적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며 북한의 다양한 수입원과 자원 접근 통로를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설리번 역시 2016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설에서 "북한을 진지한 협상장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압박을 급격히 강화하는 것"이라며 "협상 이전에 이란에 부과된 국제적 제재가 일정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9월 '월드 어페어스 카운슬'(World Affairs Council) 화상 세미나에서는 동맹국들과의 긴밀한 협의 하에 북한의 전반적 핵 능력을 억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국제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외교부는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과 관련해 그가 한반도 문제에 이해가 깊은 인사라고 평가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이란식 해법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거 발언으로 예단하지는 않는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투톱' 인선이라는 큰 윤곽만 나왔을 뿐입니다. 향후 한국의 역할, 북한의 도발 여부 등에 따라 변동 가능성이 상당한 만큼 다양한 상황에 따른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한다는 지적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