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복천고분’ 옆 26층 아파트 허가…문화재 보호 의지 상실?

입력 2020.11.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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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 통과 후 그린 조감도. 5,000여 세대 아파트 완공 시 예상 전경(아파트 가운데 초록 언덕이 부산 국가사적 복천 고분)2018년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 통과 후 그린 조감도. 5,000여 세대 아파트 완공 시 예상 전경(아파트 가운데 초록 언덕이 부산 국가사적 복천 고분)

■ 국가사적을 아파트 공원으로 전락시킨 '문화재청 심의'

부산 동래구의 복천 고분은 임나일본부설을 불식시킨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1980년 고분 속에서 4세기에 만들어진 철갑 갑옷이 발견됐고 이로 인해 일본의 가야 지배설은 틀렸음이 증명됐습니다. 복천 고분이 국가사적 273호로 지정된 배경입니다.

하지만 2020년 9월 23일 열린 문화재청 사적분과 문화재위원회는 고분으로부터 100m 이내의 거리에 23층 아파트를 허가했습니다. 고분에서 100m~200m 떨어진 곳에는 26층 아파트를 통과시켰습니다.

국가사적인 복천 고분이 5122세대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여 아파트 주민 공원으로 전락하는 건데, 문화재청은 왜 이런 일을 허가했을까

붉은색이 복산1구역 재개발 사업 부지. 사업 부지 내 대부분 공간이 복천고분과 시 지정 문화재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으로 중첩된다.붉은색이 복산1구역 재개발 사업 부지. 사업 부지 내 대부분 공간이 복천고분과 시 지정 문화재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으로 중첩된다.

■부산시 결정보다 층수 더 높여 허가를 내준 문화재청

복천 고분 문화재위원회 심의는 2개의 기관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복천 고분은 국가 사적이기에 문화재청 심의도 받아야 하고 고분 주변에 있는 14개의 시 지정 문화재 때문에 부산시 심의도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복천 고분 보존지역과 시 지정 문화재 보호구역 대부분이 겹친다는 사실입니다. 문화재보호법 제13조 3항에 따르면 복천 고분 외곽 경계로부터 500m, 동래읍성지 등 시 지정 문화재 외곽 경계로부터 500m가 각각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인데, 두 구역이 크게 중첩됩니다.

2016년 복천 고분 주변 공동주택 정비 심의 당시, 문화재청은 '국가사적과 시 지정 문화재가 중첩되는 지역은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아 조건부 허가했습니다. 부산시 문화재위원회는 이 결정에 따라 2018년 회의를 열어 고분에서 가까운 곳에 대해 지상 4~29층 규모의 아파트를 조건부 허가한 문화재청 심의안보다 대폭 낮춘 지상 2~15층으로 허가했습니다. 즉, 부산시는 문화재청이 심의한 결과보다 2배나 낮은 층수로 허가한 셈입니다.


그런데 2020년 문화재청 심의가 다시 열렸을 때, 부산시가 심의한 2~15층 도면은 상정되지 않았습니다. 2016년 문화재청에 올린 4~29층보다 3개 층을 낮춘 2~26층을 새로 상정했습니다. 부산시 문화재위원회가 심의한 안은 문화재청 심의에서 무시당한 겁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문화재보호법 제35조 2항에 따르면 중첩 지역이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으면 부산시의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고 돼 있습니다. 법적으로 문화재청 결정이 부산시 결정보다 우선한다는 겁니다.

문화재청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부산시에서 15층으로 낮춘 도면을 26층으로 올려 조합 측이 상정했는데 왜 통과시켰냐고 묻자, "(조합 측이 제출한 도면이) 시의 허가 보다는 높지만, 애초(2016년) 보다는 (2020년) 많이 낮게 들어왔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부산시 문화재위원회에서도 심의는 제대로 안 이뤄져
국가사적 복천 고분과 시 지정 문화재 14개가 부산 동래구 복산1구역에 산적해 있는 만큼, 문화재청과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6년부터 문화재청 심의가 시작됐고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도 아직 남았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이 걸려온 탓에 아파트 조합 측은 부산시 문화재위원을 상대로 협박도 벌였습니다. 아파트 개발을 반대한 교수에게 조합 측이 욕설 전화를 했던 사실이 2018년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에서 드러났습니다.

2018년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에는 전 위원이 동의했다고 적혀 있다.2018년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에는 전 위원이 동의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재개발을 반대한 교수 4명이 있었음에도 회의록에는 전원 의견 일치라고 적혀 있습니다. 부산시 문화재 보호 조례 제31조2항에 따르면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습니다.

더욱이, 부산시는 45층이 계획된 7구역을 심의 자료에 뺀 채 상정했습니다. 재개발 반대를 주장하는 지역 학계는 같은 사업이라면 당연히 모든 구역의 아파트가 그려진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하지만, 부산시의 입장은 다릅니다. 7구역은 문화재로부터 먼 구역이기 때문에 도시계획 조례에 따르면 된다는 허용기준만 적용받으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부산시와 문화재청의 허술하고 무책임한 심의가 의혹을 키우면서 절차는 더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재개발 대상 주민들도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고통받고 있습니다. 주민의 재산권과 문화재 주변 지역 보존이라는 상반된 이해가 충돌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심의 절차는 공정하고 한 점 의혹 없이 진행돼야 합니다.

아직 절차가 남았습니다. 12월 중순까지 주민설명회가 이어지고 부산시의 경관, 도시계획, 건축위원회의 심의가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심의에서는 더 공정하고 투명하고 책임 있는 심의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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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청 ‘복천고분’ 옆 26층 아파트 허가…문화재 보호 의지 상실?
    • 입력 2020-11-25 18:46:52
    취재K
2018년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 통과 후 그린 조감도. 5,000여 세대 아파트 완공 시 예상 전경(아파트 가운데 초록 언덕이 부산 국가사적 복천 고분)
■ 국가사적을 아파트 공원으로 전락시킨 '문화재청 심의'

부산 동래구의 복천 고분은 임나일본부설을 불식시킨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1980년 고분 속에서 4세기에 만들어진 철갑 갑옷이 발견됐고 이로 인해 일본의 가야 지배설은 틀렸음이 증명됐습니다. 복천 고분이 국가사적 273호로 지정된 배경입니다.

하지만 2020년 9월 23일 열린 문화재청 사적분과 문화재위원회는 고분으로부터 100m 이내의 거리에 23층 아파트를 허가했습니다. 고분에서 100m~200m 떨어진 곳에는 26층 아파트를 통과시켰습니다.

국가사적인 복천 고분이 5122세대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여 아파트 주민 공원으로 전락하는 건데, 문화재청은 왜 이런 일을 허가했을까

붉은색이 복산1구역 재개발 사업 부지. 사업 부지 내 대부분 공간이 복천고분과 시 지정 문화재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으로 중첩된다.
■부산시 결정보다 층수 더 높여 허가를 내준 문화재청

복천 고분 문화재위원회 심의는 2개의 기관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복천 고분은 국가 사적이기에 문화재청 심의도 받아야 하고 고분 주변에 있는 14개의 시 지정 문화재 때문에 부산시 심의도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복천 고분 보존지역과 시 지정 문화재 보호구역 대부분이 겹친다는 사실입니다. 문화재보호법 제13조 3항에 따르면 복천 고분 외곽 경계로부터 500m, 동래읍성지 등 시 지정 문화재 외곽 경계로부터 500m가 각각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인데, 두 구역이 크게 중첩됩니다.

2016년 복천 고분 주변 공동주택 정비 심의 당시, 문화재청은 '국가사적과 시 지정 문화재가 중첩되는 지역은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아 조건부 허가했습니다. 부산시 문화재위원회는 이 결정에 따라 2018년 회의를 열어 고분에서 가까운 곳에 대해 지상 4~29층 규모의 아파트를 조건부 허가한 문화재청 심의안보다 대폭 낮춘 지상 2~15층으로 허가했습니다. 즉, 부산시는 문화재청이 심의한 결과보다 2배나 낮은 층수로 허가한 셈입니다.


그런데 2020년 문화재청 심의가 다시 열렸을 때, 부산시가 심의한 2~15층 도면은 상정되지 않았습니다. 2016년 문화재청에 올린 4~29층보다 3개 층을 낮춘 2~26층을 새로 상정했습니다. 부산시 문화재위원회가 심의한 안은 문화재청 심의에서 무시당한 겁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문화재보호법 제35조 2항에 따르면 중첩 지역이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으면 부산시의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고 돼 있습니다. 법적으로 문화재청 결정이 부산시 결정보다 우선한다는 겁니다.

문화재청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부산시에서 15층으로 낮춘 도면을 26층으로 올려 조합 측이 상정했는데 왜 통과시켰냐고 묻자, "(조합 측이 제출한 도면이) 시의 허가 보다는 높지만, 애초(2016년) 보다는 (2020년) 많이 낮게 들어왔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부산시 문화재위원회에서도 심의는 제대로 안 이뤄져
국가사적 복천 고분과 시 지정 문화재 14개가 부산 동래구 복산1구역에 산적해 있는 만큼, 문화재청과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6년부터 문화재청 심의가 시작됐고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도 아직 남았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이 걸려온 탓에 아파트 조합 측은 부산시 문화재위원을 상대로 협박도 벌였습니다. 아파트 개발을 반대한 교수에게 조합 측이 욕설 전화를 했던 사실이 2018년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에서 드러났습니다.

2018년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에는 전 위원이 동의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재개발을 반대한 교수 4명이 있었음에도 회의록에는 전원 의견 일치라고 적혀 있습니다. 부산시 문화재 보호 조례 제31조2항에 따르면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습니다.

더욱이, 부산시는 45층이 계획된 7구역을 심의 자료에 뺀 채 상정했습니다. 재개발 반대를 주장하는 지역 학계는 같은 사업이라면 당연히 모든 구역의 아파트가 그려진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하지만, 부산시의 입장은 다릅니다. 7구역은 문화재로부터 먼 구역이기 때문에 도시계획 조례에 따르면 된다는 허용기준만 적용받으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부산시와 문화재청의 허술하고 무책임한 심의가 의혹을 키우면서 절차는 더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재개발 대상 주민들도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고통받고 있습니다. 주민의 재산권과 문화재 주변 지역 보존이라는 상반된 이해가 충돌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심의 절차는 공정하고 한 점 의혹 없이 진행돼야 합니다.

아직 절차가 남았습니다. 12월 중순까지 주민설명회가 이어지고 부산시의 경관, 도시계획, 건축위원회의 심의가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심의에서는 더 공정하고 투명하고 책임 있는 심의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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