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한달 남은 ‘국회의 시간’…낙태죄 개정안 어디로?

입력 2020.11.26 (13:43) 수정 2020.11.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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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자료사진 국회 자료사진
지난 24일,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모든 낙태를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당시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개선 입법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정부 개정안의 핵심은 임신 14주 이내의 여성에게만 낙태를 조건 없이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임신 15주에서 24주 여성은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만 낙태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낙태를 조건부로 허용한 셈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 폐지에 찬성하는 여성계와 반대하는 종교계의 입장을 의식했다는 평가입니다.

정부안 공개 당시부터 여성계는 정부안은 낙태죄를 폐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처벌 기준을 만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 등도 어떤 경우에도 낙태는 범죄로 간주하여서는 안 된다며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여야, 정부, '낙태죄 개정안' 반대 '한목소리'

정치권, 특히 당장 여당 내에서도 정부안에 대한 비판이 나왔습니다.

정부안 공개 당시, "'14주 낙태'는 역사적 퇴행"이라고 직격했던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여당 간사인 권인숙 의원은 지난달 12일 낙태죄를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개정안을 지난 5일 발의했습니다.

한편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낙태 허용 기준을 '임신 10주'(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임신 20주까지 허용)로 제한하는 안을 제출했습니다. 정부 안보다도 엄격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부와 각 정당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낙태죄 관련 입장을 당론으로 정한 곳은 정의당 한 곳뿐입니다. 거대 양당은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공개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습니다.

낙태죄를 사실상 폐지하는 법안을 추진한 의원실 관계자는 "일정 부분 타협하는 안을 추진해봤지만, 낙태죄 찬성과 반대 양쪽이 치열해 진행이 어렵다"며 "다른 의원들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습니다. 국회에서 논의가 치열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전략적 회피'를 택해서 문제라는 말입니다.

공청회도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가, 다음 달 8일로 처음 잡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인 9일 정기국회는 종료됩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임시국회를 열어야 합니다. 현재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의 차이가 커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의견이 모아질지 의문입니다.


■ '낙태죄 개정안'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제시한 시간을 넘기면?

만약에 합의점을 찾지 못해, 정부안도, 각 의원이 발의한 안도 헌재가 정한 기한인 올해 12월 31일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 (형법 269조 1항)과 임신한 여성의 부탁 또는 승낙을 받아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 (형법 270조 1항)은 헌재 결정에 따라 삭제됩니다. 낙태가 범죄가 아닌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정부안이나 국민의힘 안이 반영된 개정안이 탄생하느니, 아예 올해를 넘기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남습니다. 낙태죄와 관련된 또 다른 법인 모자보건법은 형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손을 대기 힘듭니다.

모자보건법에는 '약물을 사용한 낙태도 가능할지' '낙태 수술을 원치 않는 의사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처럼 여성들이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규율하고 있습니다. 이 논의가 모두 미뤄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의료 현장에서 낙태는 사실상 합법화 됐는데, 낙태 여성에 대한 의료지원이나 상담절차는 법에 없는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국회 자료 사진국회 자료 사진
이한본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은 "낙태죄를 처벌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는 이상 임산부의 임신중절을 지원하는 내용에 대해서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며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낙태하는 행위에 대한 의료적 절차적 보호를 우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낙태죄 폐지' 국회 밖에선 격렬한 찬반 대립....정작 국회는?

헌재의 결정 이후 국회에 주어졌던 시간 가운데 1년 7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국회 밖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놓고 격렬한 찬반 대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관련법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쪽의 눈치만 보다 논의를 뒤로 미뤘다"는 비판이 국회 안에서도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대로 새해를 맞이하면, 21대 국회는 입법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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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한달 남은 ‘국회의 시간’…낙태죄 개정안 어디로?
    • 입력 2020-11-26 13:43:39
    • 수정2020-11-26 13:44:28
    취재후·사건후
국회 자료사진 지난 24일,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모든 낙태를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당시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개선 입법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정부 개정안의 핵심은 임신 14주 이내의 여성에게만 낙태를 조건 없이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임신 15주에서 24주 여성은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만 낙태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낙태를 조건부로 허용한 셈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 폐지에 찬성하는 여성계와 반대하는 종교계의 입장을 의식했다는 평가입니다.

정부안 공개 당시부터 여성계는 정부안은 낙태죄를 폐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처벌 기준을 만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 등도 어떤 경우에도 낙태는 범죄로 간주하여서는 안 된다며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여야, 정부, '낙태죄 개정안' 반대 '한목소리'

정치권, 특히 당장 여당 내에서도 정부안에 대한 비판이 나왔습니다.

정부안 공개 당시, "'14주 낙태'는 역사적 퇴행"이라고 직격했던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여당 간사인 권인숙 의원은 지난달 12일 낙태죄를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개정안을 지난 5일 발의했습니다.

한편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낙태 허용 기준을 '임신 10주'(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임신 20주까지 허용)로 제한하는 안을 제출했습니다. 정부 안보다도 엄격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부와 각 정당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낙태죄 관련 입장을 당론으로 정한 곳은 정의당 한 곳뿐입니다. 거대 양당은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공개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습니다.

낙태죄를 사실상 폐지하는 법안을 추진한 의원실 관계자는 "일정 부분 타협하는 안을 추진해봤지만, 낙태죄 찬성과 반대 양쪽이 치열해 진행이 어렵다"며 "다른 의원들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습니다. 국회에서 논의가 치열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전략적 회피'를 택해서 문제라는 말입니다.

공청회도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가, 다음 달 8일로 처음 잡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인 9일 정기국회는 종료됩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임시국회를 열어야 합니다. 현재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의 차이가 커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의견이 모아질지 의문입니다.


■ '낙태죄 개정안'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제시한 시간을 넘기면?

만약에 합의점을 찾지 못해, 정부안도, 각 의원이 발의한 안도 헌재가 정한 기한인 올해 12월 31일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 (형법 269조 1항)과 임신한 여성의 부탁 또는 승낙을 받아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 (형법 270조 1항)은 헌재 결정에 따라 삭제됩니다. 낙태가 범죄가 아닌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정부안이나 국민의힘 안이 반영된 개정안이 탄생하느니, 아예 올해를 넘기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남습니다. 낙태죄와 관련된 또 다른 법인 모자보건법은 형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손을 대기 힘듭니다.

모자보건법에는 '약물을 사용한 낙태도 가능할지' '낙태 수술을 원치 않는 의사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처럼 여성들이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규율하고 있습니다. 이 논의가 모두 미뤄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의료 현장에서 낙태는 사실상 합법화 됐는데, 낙태 여성에 대한 의료지원이나 상담절차는 법에 없는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국회 자료 사진이한본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은 "낙태죄를 처벌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는 이상 임산부의 임신중절을 지원하는 내용에 대해서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며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낙태하는 행위에 대한 의료적 절차적 보호를 우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낙태죄 폐지' 국회 밖에선 격렬한 찬반 대립....정작 국회는?

헌재의 결정 이후 국회에 주어졌던 시간 가운데 1년 7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국회 밖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놓고 격렬한 찬반 대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관련법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쪽의 눈치만 보다 논의를 뒤로 미뤘다"는 비판이 국회 안에서도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대로 새해를 맞이하면, 21대 국회는 입법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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