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해변 ‘꼼수 아파트’가 점령…막을 방법 없나?

입력 2020.11.2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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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그랜드호텔 터에 생활형 숙박시설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비슷한 방식의 개발이 최근 해운대 일대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건데요.

누구나 누려야 할 관광특구인 해운대 해변이 일부 사람들만 거주하는 '아파트촌' 으로 전락할 우려가 이제 현실이 됐습니다

■ 해운대 해변 일대 호텔·모텔 사들여 '꼼수 아파트' 로 개발

해운대그랜드호텔 바로 뒤편에선 건물 신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한때 부산의 대표적 집창촌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38층짜리 생활형 숙박시설 즉, 레지던스를 짓고 있습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걸어서 3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해변과 가까워 건물을 95m 높이까지 지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시설을 설치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모두 적용받아 사실상 최대치인 142m 높이로 건축 허가를 받았습니다. 해운대 해변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일찌감치 분양도 끝났습니다.

해운대 해변에 들어설 예정인 생활형 숙박시설 예상도해운대 해변에 들어설 예정인 생활형 숙박시설 예상도

이 곳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해운대 일대 호텔과 모텔을 허물고 생활형 숙박시설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늘었습니다. 숙박업소가 밀집한 해운대 해변 뒷골목을 따라 들어가 봤더니 철거 공사 중인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한때 성업했던 호텔이 있던 자리입니다.

호텔 주인에게 개발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이제 건물을 철거하는 단계여서 정해진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이곳 역시 인센티브를 적용받아 기준을 50% 가까이 초과한 높이 142m로 부산시 건축위원회 심의를 통과했고, 지난달 생활형 숙박시설로 건축 허가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생활형 숙박시설로 개발하기 위해 철거 중인 해운대 해변 인근 호텔 생활형 숙박시설로 개발하기 위해 철거 중인 해운대 해변 인근 호텔

최근 서울의 한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인근의 모텔을 찾았습니다.

일대에서 영업이 잘 되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손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모텔 관계자는 "이곳 뿐 아니라 주변 모텔들을 서울 사람들이 모조리 사갔다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인근 부동산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공인중개사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영업이 부진한 숙박업소 매물이 많이 나왔고, 이런 숙박업소를 사들이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많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또 "대부분 요즘 돈이 되는 레지던스를 시행, 개발하려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부산시 건축 심의에서 못 거르고, 허가하는 구청도 규제할 방법 없어

이렇게 '우후죽순' 해운대 바닷가에 들어서고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 부산시 건축위원회 심의를 어떻게 통과한 건지 살펴봤습니다.

취재진은 해운대 해변 인근에 추진 중인 41층 생활형 숙박시설의 건축 계획을 심의한 부산시 건축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했는데요.

"1층 로비가 협소하니 41층에 레스토랑을 만드는 게 어떠냐" 또 "기계식 주차장은 지하 7층에 설치하는 게 좋겠다" 등 일반적인 건축물을 심의하는 수준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관광 특구인 해운대 해변에 생활형 숙박시설이 들어서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는 위원은 없었는데요.

한 건축위원은 "해운대에 더 높은 건물도 많고, 주변 건축물하고 어울림이 어떤가 외장재가 어떤가 정도를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시 건축심의위원회 회의록 일부 부산시 건축심의위원회 회의록 일부

이런 생활형 숙박시설은 건축 관련법을 어긴 게 아닌 데다 부산시 건축심의까지 통과했기 때문에 최종 허가를 하는 구청으로서도 마땅히 규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해운대구청은 최근 생활형 숙박시설을 짓기 위해 해운대 일대 숙박업소를 돌며 토지를 알아보는 부동산 개발업체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요.

배성일 해운대구청 건축과장은 "주거 용도로 사용되는 생활형 숙박시설이 관광특구에 난립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시설을 행정청에서 일방적으로 제어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 법·조례 개정해 무분별한 '생활형 숙박시설' 개발 막는다

부산시의회는 생활형 숙박시설의 주차 면적을 늘려 건물 높이를 낮추는 방향으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주차 면적 역시 건축물 전체 면적에 포함되기 때문에 건물 층수를 낮춰 지을 수밖에 없는데요.

사업자가 가져가는 수익을 줄여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건다는 겁니다. 또 관광특구에 생활형 숙박시설을 짓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도 곧 발의됩니다. 현행 국토계획법을 일부 개정해 경관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생활형 숙박시설을 건축하거나 개조할 수 없도록 명문화할 계획입니다.

법안 발의를 추진 중인 하태경 국회의원은 "부산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중 하나가 관광인데, 호텔이 자꾸 아파트로 바뀌면 관광지가 점점 관광지의 매력을 잃게 되고 그냥 일반 주민이 사는 곳으로 바뀐다"고 말했습니다.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법과 제도로 개발을 규제하지 않으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해운대는 꼼수 아파트로 둘러싸여 특정인만 소유하는 주거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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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운대 해변 ‘꼼수 아파트’가 점령…막을 방법 없나?
    • 입력 2020-11-26 16:43:12
    취재K

부산 해운대그랜드호텔 터에 생활형 숙박시설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비슷한 방식의 개발이 최근 해운대 일대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건데요.

누구나 누려야 할 관광특구인 해운대 해변이 일부 사람들만 거주하는 '아파트촌' 으로 전락할 우려가 이제 현실이 됐습니다

■ 해운대 해변 일대 호텔·모텔 사들여 '꼼수 아파트' 로 개발

해운대그랜드호텔 바로 뒤편에선 건물 신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한때 부산의 대표적 집창촌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38층짜리 생활형 숙박시설 즉, 레지던스를 짓고 있습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걸어서 3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해변과 가까워 건물을 95m 높이까지 지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시설을 설치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모두 적용받아 사실상 최대치인 142m 높이로 건축 허가를 받았습니다. 해운대 해변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일찌감치 분양도 끝났습니다.

해운대 해변에 들어설 예정인 생활형 숙박시설 예상도
이 곳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해운대 일대 호텔과 모텔을 허물고 생활형 숙박시설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늘었습니다. 숙박업소가 밀집한 해운대 해변 뒷골목을 따라 들어가 봤더니 철거 공사 중인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한때 성업했던 호텔이 있던 자리입니다.

호텔 주인에게 개발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이제 건물을 철거하는 단계여서 정해진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이곳 역시 인센티브를 적용받아 기준을 50% 가까이 초과한 높이 142m로 부산시 건축위원회 심의를 통과했고, 지난달 생활형 숙박시설로 건축 허가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생활형 숙박시설로 개발하기 위해 철거 중인 해운대 해변 인근 호텔
최근 서울의 한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인근의 모텔을 찾았습니다.

일대에서 영업이 잘 되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손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모텔 관계자는 "이곳 뿐 아니라 주변 모텔들을 서울 사람들이 모조리 사갔다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인근 부동산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공인중개사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영업이 부진한 숙박업소 매물이 많이 나왔고, 이런 숙박업소를 사들이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많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또 "대부분 요즘 돈이 되는 레지던스를 시행, 개발하려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부산시 건축 심의에서 못 거르고, 허가하는 구청도 규제할 방법 없어

이렇게 '우후죽순' 해운대 바닷가에 들어서고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 부산시 건축위원회 심의를 어떻게 통과한 건지 살펴봤습니다.

취재진은 해운대 해변 인근에 추진 중인 41층 생활형 숙박시설의 건축 계획을 심의한 부산시 건축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했는데요.

"1층 로비가 협소하니 41층에 레스토랑을 만드는 게 어떠냐" 또 "기계식 주차장은 지하 7층에 설치하는 게 좋겠다" 등 일반적인 건축물을 심의하는 수준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관광 특구인 해운대 해변에 생활형 숙박시설이 들어서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는 위원은 없었는데요.

한 건축위원은 "해운대에 더 높은 건물도 많고, 주변 건축물하고 어울림이 어떤가 외장재가 어떤가 정도를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시 건축심의위원회 회의록 일부
이런 생활형 숙박시설은 건축 관련법을 어긴 게 아닌 데다 부산시 건축심의까지 통과했기 때문에 최종 허가를 하는 구청으로서도 마땅히 규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해운대구청은 최근 생활형 숙박시설을 짓기 위해 해운대 일대 숙박업소를 돌며 토지를 알아보는 부동산 개발업체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요.

배성일 해운대구청 건축과장은 "주거 용도로 사용되는 생활형 숙박시설이 관광특구에 난립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시설을 행정청에서 일방적으로 제어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 법·조례 개정해 무분별한 '생활형 숙박시설' 개발 막는다

부산시의회는 생활형 숙박시설의 주차 면적을 늘려 건물 높이를 낮추는 방향으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주차 면적 역시 건축물 전체 면적에 포함되기 때문에 건물 층수를 낮춰 지을 수밖에 없는데요.

사업자가 가져가는 수익을 줄여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건다는 겁니다. 또 관광특구에 생활형 숙박시설을 짓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도 곧 발의됩니다. 현행 국토계획법을 일부 개정해 경관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생활형 숙박시설을 건축하거나 개조할 수 없도록 명문화할 계획입니다.

법안 발의를 추진 중인 하태경 국회의원은 "부산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중 하나가 관광인데, 호텔이 자꾸 아파트로 바뀌면 관광지가 점점 관광지의 매력을 잃게 되고 그냥 일반 주민이 사는 곳으로 바뀐다"고 말했습니다.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법과 제도로 개발을 규제하지 않으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해운대는 꼼수 아파트로 둘러싸여 특정인만 소유하는 주거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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