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자 찾기 전 경계 낮춘 軍, ‘실패’ 아니라지만…

입력 2020.11.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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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북한 남성, '철통 경계' 강원도 비무장지대 통과해 월남
軍 비무장지대 초소 경계 최고 단계로 상향
다음날 인근 연대는 경계수위 낮춰…월남자가 향한 곳은?

미상 인원 포착…비상 걸린 軍

지난 2일 밤 10시. 강원도 고성 군사분계선 일대. □□연대가 감시하던 구역에서 수상한 사람의 움직임이 우리 군 감시 장비에 포착됐습니다. 군은 곧바로 정보감시형태를 격상하고 수색과 감시에 나섰지만 이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군 GP에도 이 상황이 전해졌습니다. 군사분계선과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약 2km 남쪽에 있는 GOP 철책선 사이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최전방 감시 초소가 GP입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적군이나 월경자를 조기에 찾아내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한 곳의 GP에는 경계병이 근무하는 곳이 통상 3~4군데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이 모든 곳에 경계병이 근무를 서는 것은 아닙니다. 병력이 한정돼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북쪽이 잘 보이는 한 곳 정도에 경계병을 투입합니다.

비무장 지대 안 GP비무장 지대 안 GP

사라진 사람이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귀순자인지, 침투를 시도하는 인원인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바삐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군은 이 사람이 발견된 곳을 맡은 연대와 인근 연대들이 맡은 비무장지대 안 GP의 경계 형태를 최고 수위인 A형으로 올렸습니다.

A형으로 격상되면 GP의 모든 초소, 3~4곳에 병력을 투입합니다. GP에서 북쪽뿐만 아니라 동, 서는 물론 GP를 지나쳐 남쪽으로 갔을 수도 있으니 남쪽을 바라보는 곳에도 경계병을 세웁니다. GP의 남쪽 GOP에서도 북쪽을 감시하고 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한 지점을 중첩해서 감시하기 위해서입니다. GP 주변보다 넓은 곳은 면밀하게 감시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A형 경계A형 경계

■ A형(최고) 경계→B형으로 하향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이 사람이 발견된 곳 바로 서쪽의 △△연대는 경계수위를 B형으로 낮춥니다. A형과 비교하면 초소 투입 인원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겁니다.

B형 경계B형 경계

아직 신원 미상 인원을 찾아내지도 못했는데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군은 이 남성이 처음에 □□연대가 맡고 있던 곳에서 포착됐고, 그곳의 지형과 이전 귀순자들의 움직임을 근거로 이 남성이 동쪽 지역에서 남하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감시 카메라 등 감시 장비는 총력으로 운용했고 계속 A형 근무를 유지할 경우 병사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문제도 고려했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이 같은 조치는 지휘부로도 보고됐습니다.

서쪽으로 간 남성

하지만 군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이 남성은 우리 군이 열영상감시장비(TOD)와 감시 카메라, 맨눈으로 중첩해서 감시하고 있는 비무장 지대 안에서 하루 사이 10여km를 이동합니다. 그런데 방향이 군이 예상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서쪽으로 간 겁니다. 처음에 발견됐던 □□연대 책임 구역을 벗어나 경계를 낮춘 △△연대 구역으로 가 3일 밤 7시 30분쯤 그곳의 GOP 철책을 넘었습니다. 경계를 낮춘 바로 그 구역의 초기 봉쇄선이 뚫린 겁니다.


경계 "실패" 아니라지만…

수상한 남성은 GOP 철책을 넘을 당시 다시 군 감시 장비에 포착됐고 군은 해당 지역에 최고 수준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습니다. 대대적인 수색작전이 진행됐고 14시간 정도 지난 4일 오전 10시쯤, 민통선 안에서 군은 이 남성의 신원을 확보했습니다.

지난 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도 이 사건이 거론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접경 지역의 경계 작전 개념에 대해 "1단계는 비무장 지대에서, 2단계는 (GOP) 철책에서, 3단계는 철책 후방지역에서 작전을 한다"고 설명했고 서욱 국방부 장관은 맞다고 확인했습니다.

민통선 안(군에서는 GOP 종심이라고 합니다.)인 3단계에서 신원을 확보했고, 작전 구역 안에서 종결했으니 잘하지는 못했지만 실패한 작전은 아니라는 게 군의 입장입니다.

다만 군이 자주 이야기하는 '완전' 작전에 비춰보자면 아쉽다는 지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후에 귀순을 목적으로 노려온 민간인으로 밝혀지면서 군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입니다.

■ 칼바람 몰아치는 고지…동부전선 가 보니

군은 지난 25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동부전선 현장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이번에 월남자가 내려온 지역이 보이는 강원도 고성군 고지에서 과학화경계시스템과 전방 경계 작전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비무장지대를 통과한 월남 남성이 GOP 철책을 넘을 당시 과학화경계시스템의 경보가 울리지 않은 이유도 밝혔습니다. 이 남성이 철주를 타고 올라가 감지망에 경보가 울릴 만큼의 무게가 실리지 않았고, 기둥 끝에 달린 감지기는 오랜 기간 바람에 흔들린 나사가 풀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둥 끝 감지기를 전수 조사하고,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성능 개량도 조기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군이 수차례 강조한 것은 현장의 열악한 작전 환경이었습니다. 현장 설명회 날은 저 멀리 북쪽으로 금강산의 능선까지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좋은 날씨였지만 본격적인 겨울 추위 전 한낮인데도 찬바람이, 아니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철책 옆으로 오르락내리락 수많은 계단이 이어졌습니다.


개활지인 서부전선과 달리 칼 같은 능선과 계곡으로 이뤄진 동부전선은 수상한 인원을 발견해서 신속히 뛰어나가도 오르락내리락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아 수많은 훈련에도 불구하고 작전 반응 속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어려움도 토로했습니다. 우리 군은 이런 곳에서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경계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에 따라 병력이 줄고 복무 기간도 줄어 적은 병력으로도 완벽한 경계를 펴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자는 게 과학화경계시스템의 도입 목적입니다. 한정된 병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경계 단계도 필요에 따라 높였다가 낮춥니다. 이들이 제대로 맞물려 완전 경계 작전을 이루기 위해서 기계는 제대로 작동해야 하고 지휘부는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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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자 찾기 전 경계 낮춘 軍, ‘실패’ 아니라지만…
    • 입력 2020-11-28 07:01:09
    취재K
북한 남성, '철통 경계' 강원도 비무장지대 통과해 월남<br />軍 비무장지대 초소 경계 최고 단계로 상향<br />다음날 인근 연대는 경계수위 낮춰…월남자가 향한 곳은?
미상 인원 포착…비상 걸린 軍

지난 2일 밤 10시. 강원도 고성 군사분계선 일대. □□연대가 감시하던 구역에서 수상한 사람의 움직임이 우리 군 감시 장비에 포착됐습니다. 군은 곧바로 정보감시형태를 격상하고 수색과 감시에 나섰지만 이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군 GP에도 이 상황이 전해졌습니다. 군사분계선과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약 2km 남쪽에 있는 GOP 철책선 사이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최전방 감시 초소가 GP입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적군이나 월경자를 조기에 찾아내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한 곳의 GP에는 경계병이 근무하는 곳이 통상 3~4군데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이 모든 곳에 경계병이 근무를 서는 것은 아닙니다. 병력이 한정돼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북쪽이 잘 보이는 한 곳 정도에 경계병을 투입합니다.

비무장 지대 안 GP
사라진 사람이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귀순자인지, 침투를 시도하는 인원인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바삐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군은 이 사람이 발견된 곳을 맡은 연대와 인근 연대들이 맡은 비무장지대 안 GP의 경계 형태를 최고 수위인 A형으로 올렸습니다.

A형으로 격상되면 GP의 모든 초소, 3~4곳에 병력을 투입합니다. GP에서 북쪽뿐만 아니라 동, 서는 물론 GP를 지나쳐 남쪽으로 갔을 수도 있으니 남쪽을 바라보는 곳에도 경계병을 세웁니다. GP의 남쪽 GOP에서도 북쪽을 감시하고 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한 지점을 중첩해서 감시하기 위해서입니다. GP 주변보다 넓은 곳은 면밀하게 감시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A형 경계
■ A형(최고) 경계→B형으로 하향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이 사람이 발견된 곳 바로 서쪽의 △△연대는 경계수위를 B형으로 낮춥니다. A형과 비교하면 초소 투입 인원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겁니다.

B형 경계
아직 신원 미상 인원을 찾아내지도 못했는데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군은 이 남성이 처음에 □□연대가 맡고 있던 곳에서 포착됐고, 그곳의 지형과 이전 귀순자들의 움직임을 근거로 이 남성이 동쪽 지역에서 남하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감시 카메라 등 감시 장비는 총력으로 운용했고 계속 A형 근무를 유지할 경우 병사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문제도 고려했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이 같은 조치는 지휘부로도 보고됐습니다.

서쪽으로 간 남성

하지만 군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이 남성은 우리 군이 열영상감시장비(TOD)와 감시 카메라, 맨눈으로 중첩해서 감시하고 있는 비무장 지대 안에서 하루 사이 10여km를 이동합니다. 그런데 방향이 군이 예상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서쪽으로 간 겁니다. 처음에 발견됐던 □□연대 책임 구역을 벗어나 경계를 낮춘 △△연대 구역으로 가 3일 밤 7시 30분쯤 그곳의 GOP 철책을 넘었습니다. 경계를 낮춘 바로 그 구역의 초기 봉쇄선이 뚫린 겁니다.


경계 "실패" 아니라지만…

수상한 남성은 GOP 철책을 넘을 당시 다시 군 감시 장비에 포착됐고 군은 해당 지역에 최고 수준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습니다. 대대적인 수색작전이 진행됐고 14시간 정도 지난 4일 오전 10시쯤, 민통선 안에서 군은 이 남성의 신원을 확보했습니다.

지난 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도 이 사건이 거론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접경 지역의 경계 작전 개념에 대해 "1단계는 비무장 지대에서, 2단계는 (GOP) 철책에서, 3단계는 철책 후방지역에서 작전을 한다"고 설명했고 서욱 국방부 장관은 맞다고 확인했습니다.

민통선 안(군에서는 GOP 종심이라고 합니다.)인 3단계에서 신원을 확보했고, 작전 구역 안에서 종결했으니 잘하지는 못했지만 실패한 작전은 아니라는 게 군의 입장입니다.

다만 군이 자주 이야기하는 '완전' 작전에 비춰보자면 아쉽다는 지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후에 귀순을 목적으로 노려온 민간인으로 밝혀지면서 군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입니다.

■ 칼바람 몰아치는 고지…동부전선 가 보니

군은 지난 25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동부전선 현장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이번에 월남자가 내려온 지역이 보이는 강원도 고성군 고지에서 과학화경계시스템과 전방 경계 작전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비무장지대를 통과한 월남 남성이 GOP 철책을 넘을 당시 과학화경계시스템의 경보가 울리지 않은 이유도 밝혔습니다. 이 남성이 철주를 타고 올라가 감지망에 경보가 울릴 만큼의 무게가 실리지 않았고, 기둥 끝에 달린 감지기는 오랜 기간 바람에 흔들린 나사가 풀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둥 끝 감지기를 전수 조사하고,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성능 개량도 조기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군이 수차례 강조한 것은 현장의 열악한 작전 환경이었습니다. 현장 설명회 날은 저 멀리 북쪽으로 금강산의 능선까지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좋은 날씨였지만 본격적인 겨울 추위 전 한낮인데도 찬바람이, 아니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철책 옆으로 오르락내리락 수많은 계단이 이어졌습니다.


개활지인 서부전선과 달리 칼 같은 능선과 계곡으로 이뤄진 동부전선은 수상한 인원을 발견해서 신속히 뛰어나가도 오르락내리락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아 수많은 훈련에도 불구하고 작전 반응 속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어려움도 토로했습니다. 우리 군은 이런 곳에서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경계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에 따라 병력이 줄고 복무 기간도 줄어 적은 병력으로도 완벽한 경계를 펴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자는 게 과학화경계시스템의 도입 목적입니다. 한정된 병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경계 단계도 필요에 따라 높였다가 낮춥니다. 이들이 제대로 맞물려 완전 경계 작전을 이루기 위해서 기계는 제대로 작동해야 하고 지휘부는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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