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은 동나고 운임은 뛰고…수출업계 ‘선박 대란’

입력 2020.12.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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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선박 대란은 예고된 미래였습니다."

해운업계에 오래 몸담은 전문가들이 '선박 대란' 사태를 보며 하는 말입니다. '코로나19'가 생길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전문가들이 이렇게 한목소리로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실 코로나19는 '선박 대란'의 진짜 이유를 드러내는 하나의 계기였을뿐, 숨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 3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내 대표 국적선사 '한진해운'

오늘의 이야기를 위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지난 2017년 2월 17일, 국내 1위 국적선사에 파산이 선고됩니다. 바로 한진해운인데요. 한진해운은 당시 150척 가까운 선박을 보유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운사였습니다. 세계 해운업계에서도 7-8위를 차지하는 규모였습니다.

눈앞의 수익만 쫓던 한진해운 경영진의 전략 실패와 도덕적 해이는 파산 한 해 전인 2016년, 회사를 법정관리에 처하게 만듭니다. 이를 계기로 해운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선, 당시 박근혜 정부의 결정으로 한진해운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지게 됩니다.

■ 코로나19시대, 선박들이 외면하는 기항지 한국…왜?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올해,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합니다. 이때문에 전세계 해운업계는 물동량이 급감할 것으로 보고, 선박에 화물을 실을 공간 이른바 '선복량'을 예상보다 줄였습니다. 하지만 마스크 등 각종 방역 물품에다 생필품과 가전 등 비대면 상품 수출이 크게 늘어났고, 연말을 앞두고 북미와 유럽 지역 소비 심리가 살아나며 수출이 다시 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선박 운임도 같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코스피 지수처럼 선박 운임을 수치로 나타내는 '상해운임지수'를 보면, 컨테이너 선박 운임은 지난 6월, 900 안팎이던 것이 10월 들어 1,400을 돌파하더니 지난달 말에는 2,000을 넘어 지금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박 운임을 끌어올린 장본인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 화주들이 부르는대로 값을 쳐주니 선사들은 중국으로 앞다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블랙홀처럼 전세계 선박을 빨아들이고 있는데요, 이렇게 중국으로 간 선박들은 한국처럼 화물량이 적은 기항지를 굳이 들르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직항로로 화물을 꽉꽉 채워 갈 수 있는데 번거롭게 둘러갈 필요가 없는 거죠. 중국이라는 거대한 덩치에 밀려 수출에서까지 한국은 또 눈치만 보는 초라한 신세가 됐습니다.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 컨테이너선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 부메랑이 돼 돌아온 '한진해운 파산'…우리가 잃은 것은?

네, 맞습니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우리가 잃은 건 바로 '해운 주권'입니다. 3년 전 잘못된 결정이 코로나19 시대, 부메랑이 돼 돌아왔습니다. 특히, 삼면이 바다인데다, 위로는 북한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섬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전세계를 이어줄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해운 물류입니다. 하늘길도 있지 않냐고요?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가 바로 뱃길을 이용합니다.

이럴때 아쉬운 게 바로 국적선사입니다. 중국에 밀려 배를 구할 길이 없고, 운임까지 2~3배 뛰자 국내 수출업계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데요, 여기다 최근엔 코로나19 감염으로 전세계 항만이 하역에 차질을 빚으며 선박이 항구에 장기간 묶여 빈 컨테이너 상자까지 동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에서는 수출을 하려해도 화물을 담을 컨테이너도, 띄워보낼 배도 구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세계 1위 덴마크 ‘머스크’ 컨테이너선세계 1위 덴마크 ‘머스크’ 컨테이너선

■ 외국적 선사 의존도 높아…국적선사 수송비율 20% 안돼

국적선사를 이용한 미주와 유럽 등 주요 수출입 화물 컨테이너 수송비율은 20%에도 못 미칩니다. 외국적 선사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인 거죠. 한진해운 파산 이후 우리 수송 능력이 크게 줄어든 탓입니다. 실제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 2016년, 우리나라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은 105만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가 1TEU)였는데, 올해는 70만TEU 수준입니다. 4년 사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35만개 분량의 화물을 실을 공간이 사라진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진해운 파산 당시 핵심 자산인 선박과 터미널도 모두 외국 선사에 넘어갔습니다. 만TEU급 컨테이너선은 덴마크 머스크가 6척을, 스위스 MSC가 3척을 가져갔습니다. 미-중 항로의 핵심인 롱비치터미널 역시 MSC가 인수했습니다. 이때문에 주요 수출 항로인 미주 노선의 점유율도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국내 해운산업 위축으로 이어졌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HMM알헤시라스호’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HMM알헤시라스호’

■ 다시 '해운강국'으로…내년까지 2만4천TEU· 만6천TEU 20척 투입

3년 전 한진해운이 파산할 당시, 우리는 해운산업을 구조조정할 게 아니라 오히려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통해 대형화하고 있는 국제 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가야 했습니다. 곧 다시 올 호황기를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죠. 바다를 품에 안기 위해선,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쫓기보단 저 멀리 대양너머를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며 HMM을 통해 지난 8월부터 미주 노선에 임시 선박 5대를 투입했습니다. 다음 달에도 2대를 더 투입한다고 합니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해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해운강국의 의지를 천명하며 '세계 5위 해운강국'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이를 위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그 시작으로 올해 2만4천TEU 컨테이너 12척을 투입한데 이어, 내년에는 만6천TEU 컨테이너 8척을 더 투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고 했습니다. 큰 파고를 만나 배가 부서지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우리가 해운강국으로 다시 우뚝서는 그날까지, 그 긴 항해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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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박은 동나고 운임은 뛰고…수출업계 ‘선박 대란’
    • 입력 2020-12-02 10:47:53
    취재K

"지금의 선박 대란은 예고된 미래였습니다."

해운업계에 오래 몸담은 전문가들이 '선박 대란' 사태를 보며 하는 말입니다. '코로나19'가 생길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전문가들이 이렇게 한목소리로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실 코로나19는 '선박 대란'의 진짜 이유를 드러내는 하나의 계기였을뿐, 숨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 3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내 대표 국적선사 '한진해운'

오늘의 이야기를 위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지난 2017년 2월 17일, 국내 1위 국적선사에 파산이 선고됩니다. 바로 한진해운인데요. 한진해운은 당시 150척 가까운 선박을 보유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운사였습니다. 세계 해운업계에서도 7-8위를 차지하는 규모였습니다.

눈앞의 수익만 쫓던 한진해운 경영진의 전략 실패와 도덕적 해이는 파산 한 해 전인 2016년, 회사를 법정관리에 처하게 만듭니다. 이를 계기로 해운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선, 당시 박근혜 정부의 결정으로 한진해운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지게 됩니다.

■ 코로나19시대, 선박들이 외면하는 기항지 한국…왜?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올해,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합니다. 이때문에 전세계 해운업계는 물동량이 급감할 것으로 보고, 선박에 화물을 실을 공간 이른바 '선복량'을 예상보다 줄였습니다. 하지만 마스크 등 각종 방역 물품에다 생필품과 가전 등 비대면 상품 수출이 크게 늘어났고, 연말을 앞두고 북미와 유럽 지역 소비 심리가 살아나며 수출이 다시 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선박 운임도 같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코스피 지수처럼 선박 운임을 수치로 나타내는 '상해운임지수'를 보면, 컨테이너 선박 운임은 지난 6월, 900 안팎이던 것이 10월 들어 1,400을 돌파하더니 지난달 말에는 2,000을 넘어 지금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박 운임을 끌어올린 장본인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 화주들이 부르는대로 값을 쳐주니 선사들은 중국으로 앞다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블랙홀처럼 전세계 선박을 빨아들이고 있는데요, 이렇게 중국으로 간 선박들은 한국처럼 화물량이 적은 기항지를 굳이 들르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직항로로 화물을 꽉꽉 채워 갈 수 있는데 번거롭게 둘러갈 필요가 없는 거죠. 중국이라는 거대한 덩치에 밀려 수출에서까지 한국은 또 눈치만 보는 초라한 신세가 됐습니다.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 부메랑이 돼 돌아온 '한진해운 파산'…우리가 잃은 것은?

네, 맞습니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우리가 잃은 건 바로 '해운 주권'입니다. 3년 전 잘못된 결정이 코로나19 시대, 부메랑이 돼 돌아왔습니다. 특히, 삼면이 바다인데다, 위로는 북한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섬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전세계를 이어줄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해운 물류입니다. 하늘길도 있지 않냐고요?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가 바로 뱃길을 이용합니다.

이럴때 아쉬운 게 바로 국적선사입니다. 중국에 밀려 배를 구할 길이 없고, 운임까지 2~3배 뛰자 국내 수출업계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데요, 여기다 최근엔 코로나19 감염으로 전세계 항만이 하역에 차질을 빚으며 선박이 항구에 장기간 묶여 빈 컨테이너 상자까지 동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에서는 수출을 하려해도 화물을 담을 컨테이너도, 띄워보낼 배도 구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세계 1위 덴마크 ‘머스크’ 컨테이너선
■ 외국적 선사 의존도 높아…국적선사 수송비율 20% 안돼

국적선사를 이용한 미주와 유럽 등 주요 수출입 화물 컨테이너 수송비율은 20%에도 못 미칩니다. 외국적 선사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인 거죠. 한진해운 파산 이후 우리 수송 능력이 크게 줄어든 탓입니다. 실제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 2016년, 우리나라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은 105만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가 1TEU)였는데, 올해는 70만TEU 수준입니다. 4년 사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35만개 분량의 화물을 실을 공간이 사라진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진해운 파산 당시 핵심 자산인 선박과 터미널도 모두 외국 선사에 넘어갔습니다. 만TEU급 컨테이너선은 덴마크 머스크가 6척을, 스위스 MSC가 3척을 가져갔습니다. 미-중 항로의 핵심인 롱비치터미널 역시 MSC가 인수했습니다. 이때문에 주요 수출 항로인 미주 노선의 점유율도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국내 해운산업 위축으로 이어졌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HMM알헤시라스호’
■ 다시 '해운강국'으로…내년까지 2만4천TEU· 만6천TEU 20척 투입

3년 전 한진해운이 파산할 당시, 우리는 해운산업을 구조조정할 게 아니라 오히려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통해 대형화하고 있는 국제 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가야 했습니다. 곧 다시 올 호황기를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죠. 바다를 품에 안기 위해선,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쫓기보단 저 멀리 대양너머를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며 HMM을 통해 지난 8월부터 미주 노선에 임시 선박 5대를 투입했습니다. 다음 달에도 2대를 더 투입한다고 합니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해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해운강국의 의지를 천명하며 '세계 5위 해운강국'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이를 위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그 시작으로 올해 2만4천TEU 컨테이너 12척을 투입한데 이어, 내년에는 만6천TEU 컨테이너 8척을 더 투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고 했습니다. 큰 파고를 만나 배가 부서지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우리가 해운강국으로 다시 우뚝서는 그날까지, 그 긴 항해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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