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청년 영끌’ 속 1% 호텔 개조 주택 가봤더니…

입력 2020.12.02 (13:25) 수정 2020.12.02 (13:5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영끌 속 1%' 가보시라는 호텔 개조 주택 가봤더니..?


지난 달 말, 국회에 출석해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과 정부 대책과 관련해 여야로부터 질문세례를 받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한번 가서 보시라고 한 게 호텔 개조 주택입니다. 이런 형태의 임대주택은 정부가 목표로 하는 주택 공급 물량 가운데 1% , 천 가구 정도입니다.

일단, 도심 내 관광호텔을 새로 단장한 거라서 지하철역도 가깝고 외관도 깔끔하죠. 지하 3층과 지상 10층 높이로 122가구가 들어와 살게 됩니다. LH가 8월 입주자 모집 공고를 냈을 때, 백 가구 남짓 모집에 경쟁률이 2.3대 1 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입주자들 거주 공간이겠죠. 장기 거주용이 아닌 호텔 객실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2층부터 10층까지 오피스텔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복도에 호실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전용면적 13~ 17제곱미터로 원룸 5평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이렇게, 기본 원룸형에서부터 복층형 그리고 장애인 입주자용도 2가구 마련돼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고,미니 냉장고를 지나면 침대와 책상, 그리고 옷장이 전부입니다. 주방이나 세탁기가 들어갈 틈은 없습니다.


그럼, 식사나 세탁은 어떻게 하나요? 지하에 공유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널찍한 공유 주방과 공동 세탁실, 무인택배함 등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마침, 공유주방에서 식사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던 입주자,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재원 씨를 만났습니다. 방에서 식사를 못 하고 빨래도 못 하는 게 불편하지 않으냐 물었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답니다.


취재진도 곳곳을 둘러보던 중, 생활용품을 잔뜩 사서 들어오는 또 다른 입주자 박근영 씨를 만났습니다. 입주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깔끔한 내부와 싼 월세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직전까지 경기도에서 학교까지 오가느라 고생해서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LH가 이미 수년 전부터 준비한 사업인만큼, 청년 맞춤형 주택은 소득이 없는 대학생 그리고 창업 공간이 필요한 청년층에겐 합격점입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장단점은 있지만, 부분적인 효과가 있다고 봤습니다. 박 위원은 "일단, 호텔은 도심에 위치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좋아 직주근접형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고 주차여건도 다세대 등보다 낫지 않냐"고 반문했습니다. 무엇보다, "공급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보통 상가는 임대차법에 따라 기존 세입자에게 10년 영업 보장을 해줘야 해서 세입자 내보내고 주택으로 개조하려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1인가구엔 '단비'... 가족단위는 '글쎄'

호텔 개조 주택을 취재하면서 5년 전, 청년들이 주거비 부담 등을 덜기 위해 일종의 셰어 하우스에 입주한다는 보도를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청년들의 주거 빈곤율이 높아지자 지자체 등에서 다양한 공유 주택을 내놓았었거든요. 정부가 공급 물량 늘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괜히 1인가구 지원책이 전세대책에 포함돼 괜한 폭격을 받는 게 아닌지 우려스러웠습니다.

전문가 의견도 비슷했습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상업시설인 호텔을 개조해서 공급하는 것은 청년들의 주거복지 정책으로는 실효성이 있지만, 현재 전세시장 안정시키기엔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서 회장은 "아파트나 주거 수준이 일정 기준 이상 되는 수요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건데,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억제해 개발을 통한 아파트 공급은 막으면서 이런 호텔 등을 개조한 방식은 실효성이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박원갑 위원도 "호텔 등은 상업지역에 주로 있으니까 자녀가 있는 3, 4인 가구가 살기엔 불편하고 주거 편의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주택을 공개한 뒤, 전세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LH가 해명자료를 내놓았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청년주택은 '1인의 가구 주거안정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정부, 우리가 왜 화났는지 몰라?" ... 화성에서 온 정부, 금성에서 온 시장

또, 신경 쓰이는 건 월세라는 점입니다. 물론, 청년주택처럼 맞춤형 주택의 보증금이나 월세가 시세보다 낮고 부담 수준이 높지 않다고 하지만 결국 다달이 월세가 나간다는 거죠. 사실, 정부가 목표한 공급 물량의 80% 가까이 맡아서 진행해야 하는 LH 입장에서 융자 이자 부담 등을 고려하면 입주자로부터 월세를 받지 않긴 어렵고요. 결국, 정부가 공급하겠다던 주택 가운데 순수 전세가 얼마나 될지 우려가 나오는 게 기우일까요?

정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정부가 공급하겠다고 한 건 전세가 아니라 준전세 등을 포함한 '전세형 주택'이기 때문에 월세 등도 포함되는 것이라고 해도 전세형을 전셋집으로 이미 받아들인 시장이 느끼는 혼란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연인 사이에서 여성이 '오빠,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라는 날 선 말이 나오면 경고등이 켜지죠. 정부는 시장 마음을 너무 모르는 게 아닐까요. 마치, 여자친구는 머리가 아픈데 정작 두통약은 빼고 다른 약만 잔뜩 사온 남자친구를 책망하게 되는 '웃픈' 상황같습니다. 지금 아니면 아파트를 영영 못 살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2, 30대 패닉바잉이 서울 중저가 지역을 넘어서 경기도까지 퍼지고 있는 지금, 1인 가구를 위한 개조 주택을 보여주는 정부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업체와 매입약정을 진행한 뒤 신축주택을 공공전세로 내년부터 9천 가구씩 이 년 동안 공급하겠다고 하지만 시장 반응은 차갑기만 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청년 영끌’ 속 1% 호텔 개조 주택 가봤더니…
    • 입력 2020-12-02 13:25:38
    • 수정2020-12-02 13:56:58
    취재후·사건후

■'영끌 속 1%' 가보시라는 호텔 개조 주택 가봤더니..?


지난 달 말, 국회에 출석해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과 정부 대책과 관련해 여야로부터 질문세례를 받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한번 가서 보시라고 한 게 호텔 개조 주택입니다. 이런 형태의 임대주택은 정부가 목표로 하는 주택 공급 물량 가운데 1% , 천 가구 정도입니다.

일단, 도심 내 관광호텔을 새로 단장한 거라서 지하철역도 가깝고 외관도 깔끔하죠. 지하 3층과 지상 10층 높이로 122가구가 들어와 살게 됩니다. LH가 8월 입주자 모집 공고를 냈을 때, 백 가구 남짓 모집에 경쟁률이 2.3대 1 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입주자들 거주 공간이겠죠. 장기 거주용이 아닌 호텔 객실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2층부터 10층까지 오피스텔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복도에 호실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전용면적 13~ 17제곱미터로 원룸 5평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이렇게, 기본 원룸형에서부터 복층형 그리고 장애인 입주자용도 2가구 마련돼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고,미니 냉장고를 지나면 침대와 책상, 그리고 옷장이 전부입니다. 주방이나 세탁기가 들어갈 틈은 없습니다.


그럼, 식사나 세탁은 어떻게 하나요? 지하에 공유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널찍한 공유 주방과 공동 세탁실, 무인택배함 등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마침, 공유주방에서 식사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던 입주자,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재원 씨를 만났습니다. 방에서 식사를 못 하고 빨래도 못 하는 게 불편하지 않으냐 물었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답니다.


취재진도 곳곳을 둘러보던 중, 생활용품을 잔뜩 사서 들어오는 또 다른 입주자 박근영 씨를 만났습니다. 입주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깔끔한 내부와 싼 월세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직전까지 경기도에서 학교까지 오가느라 고생해서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LH가 이미 수년 전부터 준비한 사업인만큼, 청년 맞춤형 주택은 소득이 없는 대학생 그리고 창업 공간이 필요한 청년층에겐 합격점입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장단점은 있지만, 부분적인 효과가 있다고 봤습니다. 박 위원은 "일단, 호텔은 도심에 위치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좋아 직주근접형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고 주차여건도 다세대 등보다 낫지 않냐"고 반문했습니다. 무엇보다, "공급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보통 상가는 임대차법에 따라 기존 세입자에게 10년 영업 보장을 해줘야 해서 세입자 내보내고 주택으로 개조하려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1인가구엔 '단비'... 가족단위는 '글쎄'

호텔 개조 주택을 취재하면서 5년 전, 청년들이 주거비 부담 등을 덜기 위해 일종의 셰어 하우스에 입주한다는 보도를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청년들의 주거 빈곤율이 높아지자 지자체 등에서 다양한 공유 주택을 내놓았었거든요. 정부가 공급 물량 늘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괜히 1인가구 지원책이 전세대책에 포함돼 괜한 폭격을 받는 게 아닌지 우려스러웠습니다.

전문가 의견도 비슷했습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상업시설인 호텔을 개조해서 공급하는 것은 청년들의 주거복지 정책으로는 실효성이 있지만, 현재 전세시장 안정시키기엔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서 회장은 "아파트나 주거 수준이 일정 기준 이상 되는 수요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건데,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억제해 개발을 통한 아파트 공급은 막으면서 이런 호텔 등을 개조한 방식은 실효성이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박원갑 위원도 "호텔 등은 상업지역에 주로 있으니까 자녀가 있는 3, 4인 가구가 살기엔 불편하고 주거 편의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주택을 공개한 뒤, 전세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LH가 해명자료를 내놓았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청년주택은 '1인의 가구 주거안정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정부, 우리가 왜 화났는지 몰라?" ... 화성에서 온 정부, 금성에서 온 시장

또, 신경 쓰이는 건 월세라는 점입니다. 물론, 청년주택처럼 맞춤형 주택의 보증금이나 월세가 시세보다 낮고 부담 수준이 높지 않다고 하지만 결국 다달이 월세가 나간다는 거죠. 사실, 정부가 목표한 공급 물량의 80% 가까이 맡아서 진행해야 하는 LH 입장에서 융자 이자 부담 등을 고려하면 입주자로부터 월세를 받지 않긴 어렵고요. 결국, 정부가 공급하겠다던 주택 가운데 순수 전세가 얼마나 될지 우려가 나오는 게 기우일까요?

정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정부가 공급하겠다고 한 건 전세가 아니라 준전세 등을 포함한 '전세형 주택'이기 때문에 월세 등도 포함되는 것이라고 해도 전세형을 전셋집으로 이미 받아들인 시장이 느끼는 혼란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연인 사이에서 여성이 '오빠,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라는 날 선 말이 나오면 경고등이 켜지죠. 정부는 시장 마음을 너무 모르는 게 아닐까요. 마치, 여자친구는 머리가 아픈데 정작 두통약은 빼고 다른 약만 잔뜩 사온 남자친구를 책망하게 되는 '웃픈' 상황같습니다. 지금 아니면 아파트를 영영 못 살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2, 30대 패닉바잉이 서울 중저가 지역을 넘어서 경기도까지 퍼지고 있는 지금, 1인 가구를 위한 개조 주택을 보여주는 정부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업체와 매입약정을 진행한 뒤 신축주택을 공공전세로 내년부터 9천 가구씩 이 년 동안 공급하겠다고 하지만 시장 반응은 차갑기만 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