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선고된 크리스마스 성폭행 사건 2심서 뒤집혀…왜?

입력 2020.12.02 (15:53) 수정 2020.12.0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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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모텔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20대 남성에게 2심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강간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정모(23)씨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정씨에게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함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에 각각 3년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크리스마스 날 모텔서 성폭행…1심서 무죄

정씨는 2018년 12월 25일 제주시 모텔에서 7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범행 전날인 24일 밤 피해여성 등 5명과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정씨는 한시간 뒤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길 가다 시비가 붙었다"며 "갈 데가 없으니 모텔에서 잠을 자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정씨는 몸에 손을 대지 않는 조건으로 정씨의 부탁을 들어준 이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동의하에 자연스럽게 접촉이 있었지만,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정씨의 주장을 배척할 정도로 피해여성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유죄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어"

2심 재판부는 ‘바닥이 차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는 조건으로 침대에서 자라고 말했다’며 이후 정씨가 신체를 접촉한 뒤 성폭행했고, 울면서 몸부림쳤지만 억압해 벗어날 수 없었다'는 피해자의 진술 내용 확인에 집중했다.

피해자의 진술 모습과 태도, 분위기를 직접 관찰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진술 태도와 내용 등을 비추어 볼 때 "피해자의 진술을 통해 당시 상황이 사진 또는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묘사됐다"며 "예상치 못한 범행에 당황하는 피해자의 심리가 생동감 있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솔직히 진술했다"며 "피해 내용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일관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피해자가 언급한 신체 일부에서 타액 반응이 양성으로 확인됐고, 정씨의 유전자가 검출되기도 했다.

정씨는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다 욕을 해 강간죄로 고소한 것 같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태도를 고려하면 이런 이유만으로 무고할 필요나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씨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또 둘의 관계가 범행 이전에 서로 자주 연락하는 사이였을 뿐, 피해여성이 호감을 표시하거나 스킨십을 한 적이 없었던 점 등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재판 결과 가른 "진술의 신빙성"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에서 저항 방법이나 대화 내용, 피해자의 느낌이나 감정 등 세부적이고 특징적인 경험에 관한 묘사가 거의 보이지 않고, 일부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진술이 다소 일관되지 않는다고 해서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습적인 범행에 상당히 당황했을 것으로 보이고, 당시 범행에서 벗어나는 것이 주된 목표기 때문에 성폭행 행위에 대해 관심을 두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피해자로서 피해 사실을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도 고려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유전자 검출 안 될 가능성 있어"

유전자 검출과 관련해서도 1, 2심 재판부의 입장이 엇갈렸다.

원심은 피해자의 중요 신체 부위에서 정씨의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성폭행 행위에 의심이 든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극미량의 유전자형만이 존재하는 경우 생물학적 증거물에서 검출이 불가능할 수 있다"며 "이것이 유전자형의 부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채취 위치와 시간, 성폭행 시간과 강도 등의 조건에 따라 유전자 검출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CCTV 영상도 쟁점이었다. 1심은 모텔에 설치된 CCTV 영상에서 정씨와 피해자의 모습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정씨와 피해자가 잘 아는 사이인 점, 성폭행 범행이 중단되고 다시 범행을 시도할 위험이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객실을 나올 필요가 없는 점 등을 참작해 판단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피해여성이 객실에서 나올 때 입실할 때보다 걸음이 상당히 빠르고, 입실 당시 레깅스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나올 때는 치마만 입고 있던 점 등을 비교해 다급히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범행 직후 정씨가 피해여성에게 '진짜 미안해, 죄책감 때문에 그냥 죽을게', '정말 죄송해요,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했어요' 등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점 등도 유죄 근거 로 봤다.

"증인으로 진술하면서 더 큰 정신적 고통받았을 것"

재판부는 "범행 내용과 죄질이 좋지 않다"며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가 1심과 2심에서 증인으로 나서 더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씨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자 역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무죄를 파기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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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02 15:53:37
    • 수정2020-12-02 15:58:46
    취재K

크리스마스 날 모텔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20대 남성에게 2심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강간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정모(23)씨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정씨에게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함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에 각각 3년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크리스마스 날 모텔서 성폭행…1심서 무죄

정씨는 2018년 12월 25일 제주시 모텔에서 7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범행 전날인 24일 밤 피해여성 등 5명과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정씨는 한시간 뒤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길 가다 시비가 붙었다"며 "갈 데가 없으니 모텔에서 잠을 자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정씨는 몸에 손을 대지 않는 조건으로 정씨의 부탁을 들어준 이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동의하에 자연스럽게 접촉이 있었지만,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정씨의 주장을 배척할 정도로 피해여성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유죄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어"

2심 재판부는 ‘바닥이 차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는 조건으로 침대에서 자라고 말했다’며 이후 정씨가 신체를 접촉한 뒤 성폭행했고, 울면서 몸부림쳤지만 억압해 벗어날 수 없었다'는 피해자의 진술 내용 확인에 집중했다.

피해자의 진술 모습과 태도, 분위기를 직접 관찰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진술 태도와 내용 등을 비추어 볼 때 "피해자의 진술을 통해 당시 상황이 사진 또는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묘사됐다"며 "예상치 못한 범행에 당황하는 피해자의 심리가 생동감 있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솔직히 진술했다"며 "피해 내용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일관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피해자가 언급한 신체 일부에서 타액 반응이 양성으로 확인됐고, 정씨의 유전자가 검출되기도 했다.

정씨는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다 욕을 해 강간죄로 고소한 것 같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태도를 고려하면 이런 이유만으로 무고할 필요나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씨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또 둘의 관계가 범행 이전에 서로 자주 연락하는 사이였을 뿐, 피해여성이 호감을 표시하거나 스킨십을 한 적이 없었던 점 등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재판 결과 가른 "진술의 신빙성"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에서 저항 방법이나 대화 내용, 피해자의 느낌이나 감정 등 세부적이고 특징적인 경험에 관한 묘사가 거의 보이지 않고, 일부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진술이 다소 일관되지 않는다고 해서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습적인 범행에 상당히 당황했을 것으로 보이고, 당시 범행에서 벗어나는 것이 주된 목표기 때문에 성폭행 행위에 대해 관심을 두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피해자로서 피해 사실을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도 고려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유전자 검출 안 될 가능성 있어"

유전자 검출과 관련해서도 1, 2심 재판부의 입장이 엇갈렸다.

원심은 피해자의 중요 신체 부위에서 정씨의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성폭행 행위에 의심이 든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극미량의 유전자형만이 존재하는 경우 생물학적 증거물에서 검출이 불가능할 수 있다"며 "이것이 유전자형의 부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채취 위치와 시간, 성폭행 시간과 강도 등의 조건에 따라 유전자 검출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CCTV 영상도 쟁점이었다. 1심은 모텔에 설치된 CCTV 영상에서 정씨와 피해자의 모습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정씨와 피해자가 잘 아는 사이인 점, 성폭행 범행이 중단되고 다시 범행을 시도할 위험이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객실을 나올 필요가 없는 점 등을 참작해 판단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피해여성이 객실에서 나올 때 입실할 때보다 걸음이 상당히 빠르고, 입실 당시 레깅스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나올 때는 치마만 입고 있던 점 등을 비교해 다급히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범행 직후 정씨가 피해여성에게 '진짜 미안해, 죄책감 때문에 그냥 죽을게', '정말 죄송해요,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했어요' 등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점 등도 유죄 근거 로 봤다.

"증인으로 진술하면서 더 큰 정신적 고통받았을 것"

재판부는 "범행 내용과 죄질이 좋지 않다"며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가 1심과 2심에서 증인으로 나서 더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씨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자 역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무죄를 파기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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