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목숨값 1,000배를 되돌려주고 죽은 남편이 돌아온다면…”

입력 2020.12.04 (08:00) 수정 2020.12.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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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숨지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공식 집계로만 해마다 2천 명 안팎입니다.

KBS는 지난 7월부터 <뉴스9>에 고정 코너 '일하다 죽지 않게'를 만들어 매주 산업재해 문제를 다각도로 심층 진단해 오고 있습니다.

1,148명, 2016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지난 5년간 과로로 숨져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들이다.

2018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도입됐다지만, 올해만 놓고 보더라도 10월 기준 벌써 235명과로사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과로나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한 노동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같은 기간 149명이 업무 연관성을 인정받아 산재로 승인됐다.

하지만 자살의 경우, 유족들은 주위의 시선 때문에 산재 신청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한 해 평균 500명 안팎의 사람이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산재 신청 건수가 60건에 불과했고 이 중 승인된 건 30건 수준이었다.

일터에서 과로로 숨지거나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죽음 뒤에는 가족들이 있다.

숨진 노동자를 대신해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온전히 가족들에게 있다. 노무사를 선임하더라도 고인의 출퇴근 기록, 노동 환경 변화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 등 기초 자료는 가족들이 확보해야 한다.

■ "그 사람이 유약해서 죽은 것"...또 다시 상처받는 가족들

2017년 6월 한 대기업 과장이었던 이 모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족들은 이 씨가 만성적인 과로와 희망 퇴직 압박을 견디지 못해 숨진 것이라며 산재 승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출퇴근 기록 등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들을 회사로부터 제공받을 수 없었다. 사측은 회사 내부 보안 지침상 유족들이 회사 안으로 출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회사는 노동자 개인의 근태 기록 역시 따로 보관, 관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 측이 완강하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허술한 법에 기초한다. 산재보상보험법상 사업주는 산재 입증을 조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적으로 존재하지만, 벌칙조항이 없다. 의무가 아닌 셈이다. 심지어 부득이한 경우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까지 있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산재 입증 자료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 말한다.

"회사 컴퓨터 내에 자료 같은 것 줄 수 있느냐, 라고 여러 번 얘기했었는데 (회사 관계자가) '이건 우리 관할이 아니다' 라면서 서로 떠넘기기 바빴죠. (중략) 같은 부서 상사에게 전화해보니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고, 그 사람이 유약해서 본인 문제로 죽은 거다.'" -유족 A

이 씨의 유족들은 불가피하게 숨진 이 씨의 스마트폰 기록을 일일이 다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업무 관련 통화기록과 SNS 메시지, 메모 등을 추려 일일이 출퇴근 시간을 직접 계산했다.

유족들은 또 평소 이 씨가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정신과 상담기록과 퇴사한 동료의 진술 등을 확보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고, 결국 사망 1년 7개월 만에 산재를 승인받을 수 있었다.



■ 과로사 유족들에게 산재 신청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느낌"

산재 심사가 진행되는 단계, 과정마다 유족들에게는 심리적 타격이 가해진다. 고인의 SNS, 메모 등을 통해 숨진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뒤늦게 목격하기도 하고, 사망의 원인을 노동자 개인의 유약함 탓으로 돌리는 회사 측 의견서를 마주 보고 반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니(산재 사망 노동자 아내)가 일상생활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운 좋게 상담치료를 꾸준히 받았거든요. 상담을 전담한 박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바다 한가운데 혼자 구명조끼 입고 어두컴컴한 밤인데 둥둥 떠 있는 느낌일 거라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를 그런 마음일 테니까 옆에 꼭 같이 있어달라'고. 그 얘기가 너무 와 닿았어요." - 유족 A

"내 남편이 과로로 죽었다는 것을 회사도 부인하고, 사회도 부인했잖아요. 산재 입증을 내가 하고 싶다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었잖아요." - 유족 B

어디에서도 도움을 구하지 못한 과로사 사망자의 유족들,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를 펴내기로 했다.

일종의 산재 신청 안내서다. 유족들이 직접 겪은 경험담을 수기로 작성해 사례집처럼 엮어냈다. 사망 신고부터 노무사 선임, 기록 확보, 산재 신청 등 산재 심사 전반 과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하며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손승주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당한 보상이나 배상을 받아야 한다"며 "그런 부분에서 산재 신청 안내서가 그 큰 기여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과로사 유족들이 직접 써낸 산재 안내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과로사 유족들이 펴낸 안내서엔 산재가 최종 승인된 사례뿐 아니라 불승인 처리된 사례도 담겨 있다. 각각의 산재 처리 단계에 따라 그들의 사연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1) 가족의 죽음



(2) 산재 신청


(3) 산재 입증 자료 확보하기



(4) 산재 승인/불승인 이후



유족들은 정부가 과로사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고, 사회적 인식 역시 바꿔나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재해자가 숨진 경우 산재 입증 책임이 온전히 유족들에게 전가되는 상황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산재 입증 책임을 국가와 회사도 분담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8년째 이행되지 않고 있다.

※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혼자 견디고 있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아래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자살예방 핫라인☎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www.129.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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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목숨값 1,000배를 되돌려주고 죽은 남편이 돌아온다면…”
    • 입력 2020-12-04 08:00:05
    • 수정2020-12-04 08:00:13
    취재후·사건후

일터에서 숨지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공식 집계로만 해마다 2천 명 안팎입니다.

KBS는 지난 7월부터 <뉴스9>에 고정 코너 '일하다 죽지 않게'를 만들어 매주 산업재해 문제를 다각도로 심층 진단해 오고 있습니다.

1,148명, 2016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지난 5년간 과로로 숨져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들이다.

2018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도입됐다지만, 올해만 놓고 보더라도 10월 기준 벌써 235명과로사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과로나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한 노동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같은 기간 149명이 업무 연관성을 인정받아 산재로 승인됐다.

하지만 자살의 경우, 유족들은 주위의 시선 때문에 산재 신청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한 해 평균 500명 안팎의 사람이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산재 신청 건수가 60건에 불과했고 이 중 승인된 건 30건 수준이었다.

일터에서 과로로 숨지거나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죽음 뒤에는 가족들이 있다.

숨진 노동자를 대신해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온전히 가족들에게 있다. 노무사를 선임하더라도 고인의 출퇴근 기록, 노동 환경 변화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 등 기초 자료는 가족들이 확보해야 한다.

■ "그 사람이 유약해서 죽은 것"...또 다시 상처받는 가족들

2017년 6월 한 대기업 과장이었던 이 모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족들은 이 씨가 만성적인 과로와 희망 퇴직 압박을 견디지 못해 숨진 것이라며 산재 승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출퇴근 기록 등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들을 회사로부터 제공받을 수 없었다. 사측은 회사 내부 보안 지침상 유족들이 회사 안으로 출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회사는 노동자 개인의 근태 기록 역시 따로 보관, 관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 측이 완강하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허술한 법에 기초한다. 산재보상보험법상 사업주는 산재 입증을 조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적으로 존재하지만, 벌칙조항이 없다. 의무가 아닌 셈이다. 심지어 부득이한 경우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까지 있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산재 입증 자료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 말한다.

"회사 컴퓨터 내에 자료 같은 것 줄 수 있느냐, 라고 여러 번 얘기했었는데 (회사 관계자가) '이건 우리 관할이 아니다' 라면서 서로 떠넘기기 바빴죠. (중략) 같은 부서 상사에게 전화해보니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고, 그 사람이 유약해서 본인 문제로 죽은 거다.'" -유족 A

이 씨의 유족들은 불가피하게 숨진 이 씨의 스마트폰 기록을 일일이 다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업무 관련 통화기록과 SNS 메시지, 메모 등을 추려 일일이 출퇴근 시간을 직접 계산했다.

유족들은 또 평소 이 씨가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정신과 상담기록과 퇴사한 동료의 진술 등을 확보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고, 결국 사망 1년 7개월 만에 산재를 승인받을 수 있었다.



■ 과로사 유족들에게 산재 신청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느낌"

산재 심사가 진행되는 단계, 과정마다 유족들에게는 심리적 타격이 가해진다. 고인의 SNS, 메모 등을 통해 숨진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뒤늦게 목격하기도 하고, 사망의 원인을 노동자 개인의 유약함 탓으로 돌리는 회사 측 의견서를 마주 보고 반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니(산재 사망 노동자 아내)가 일상생활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운 좋게 상담치료를 꾸준히 받았거든요. 상담을 전담한 박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바다 한가운데 혼자 구명조끼 입고 어두컴컴한 밤인데 둥둥 떠 있는 느낌일 거라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를 그런 마음일 테니까 옆에 꼭 같이 있어달라'고. 그 얘기가 너무 와 닿았어요." - 유족 A

"내 남편이 과로로 죽었다는 것을 회사도 부인하고, 사회도 부인했잖아요. 산재 입증을 내가 하고 싶다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었잖아요." - 유족 B

어디에서도 도움을 구하지 못한 과로사 사망자의 유족들,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를 펴내기로 했다.

일종의 산재 신청 안내서다. 유족들이 직접 겪은 경험담을 수기로 작성해 사례집처럼 엮어냈다. 사망 신고부터 노무사 선임, 기록 확보, 산재 신청 등 산재 심사 전반 과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하며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손승주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당한 보상이나 배상을 받아야 한다"며 "그런 부분에서 산재 신청 안내서가 그 큰 기여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과로사 유족들이 직접 써낸 산재 안내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과로사 유족들이 펴낸 안내서엔 산재가 최종 승인된 사례뿐 아니라 불승인 처리된 사례도 담겨 있다. 각각의 산재 처리 단계에 따라 그들의 사연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1) 가족의 죽음



(2) 산재 신청


(3) 산재 입증 자료 확보하기



(4) 산재 승인/불승인 이후



유족들은 정부가 과로사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고, 사회적 인식 역시 바꿔나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재해자가 숨진 경우 산재 입증 책임이 온전히 유족들에게 전가되는 상황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산재 입증 책임을 국가와 회사도 분담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8년째 이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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