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북새통”…코로나19에 문 닫는 만화전문서점

입력 2020.12.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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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로 나와 1분만 걸으면 파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투박한 글씨체로 '만화전문 할인점 북새통문고'라고 적혀있습니다.

입구를 지나 다소 가파른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500여 제곱미터 넓이의 '만화세상'이 펄쳐집니다. 웹툰을 종이책으로 만든 신간부터 연재를 시작한 지 20년은 훌쩍 지난 '열혈강호', '베르사유의 장미' 등 만화 애호가라면 놓칠 수 없는 '고전' 등 없는 게 없습니다.

■ 17년 역사 지닌 북새통문고...국내 최대 규모 만화전문 서점

'북새통문고'는 2004년 5월 문을 연 국내 최대 규모의 만화책 전문서점입니다. 일반 서점에선 쉽게 구하지 못 하는 책도 이곳에 오면 찾을 수 있고 북새통에서만 살 수 있는 책도 있습니다. 북새통이 절판된 책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와 이야기 해 특별판으로 제작한 책만 10여권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위한 작법서도 있습니다. 일러스트 관련 홍보 책자, 명함 등도 한 쪽에 배치돼있습니다. 북새통문고의 박회순 과장은 "국내에서 발행되는 만화 관련 책들은 다 구비하고 싶었다"라며 "여기 와서 없으면 국내에 거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희택 북새통문고 대표도 "많이 줄였는데도 10만권이 넘는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선 '성지'라 불렸습니다. 홍대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공유되고는 했습니다. 박희택 대표는 "1년에 한 번 '금토일' 3일 세일을 했는데 문 밖에 까지 줄을 설 정도였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박회순 과장도 "아침 9시에 문을 열려고 오면 신간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이 10여명은 있었다"라며 "카운터에서 손님들께 조용히 해달라고 양해를 드릴 정도로 정말 북새통이었다"라고 떠올렸습니다.

■ 영업 종료하는 홍대 '북새통문고'...코로나19에 쓰러지다

그런 북새통문고가 폐업을 예고했습니다.


'홍대 북새통문고 매장은 12월 15일 부로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구가 적힌 종이가 카운터, 검색용 PC 등 매장 여기저기에 붙었습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위기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온라인과의 경쟁력을 잃어갔습니다. 홍익대가 실기시험을 없애면서 북새통의 주 고객층이던 학생들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근근히 버티던 북새통이었지만 코로나19는 이겨내지 못 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하루에 평일에만 700명~800명, 주말에는 1200명~1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반면 지난 3일 목요일 하루 방문자는 175명. 1/4로 급감한 겁니다. 방문자 만큼이나 매출 하락도 컸습니다.

박 과장은 "종이책에 대한 향수를 가지신 분들이 워낙 있었기 때문에 매장을 유지하는 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라면서 "코로나로 그런 분들조차도 밖에 나오는 걸 꺼려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매출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자체적으로 설정한 손익분기점 아래로 내려갔을 때부터 고민을 하게 됐다"라며 "더 이상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기 때문에 정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급감했기 때문에 임대료마저도 부담으로 다가왔다"며 "총판과 온라인 영업은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적립금 써 주세요"...손님 "문 닫기 전에 또 올 거예요.."

"옛날 만화를 좋아하는데 절판돼서 인터넷에서는 e북으로밖에 못 샀던 것을 여기서는 1권부터 전권까지 다 있었다. 보물창고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이가윤/서울 은평구/손님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 직장 등 생활로 바쁜 와중에 취미가 있다는 건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취미를 지켜주는 어느 '한 곳'이 있다는 건 정말 마음이 놓이는데 그런 공간이 없어진다고 하니 정말 아쉽죠."
-이준/서울 은평구/손님


누군가에겐 '보물창고', '숨을 돌리는 곳', '만남의장소' 였던 북새통문고의 매장 폐업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습니다. 박 과장은 "메이플스토리 처음 나왔을 때 엄마 손 잡고 와서 사던 친구들이 지금은 대학생이고 군대 갔다 온 친구도 있다"라며 "그런 친구들이 와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울컥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초콜릿이나 과자를 가져오는 친구도 있고 꽃을 사서 오는 친구도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하루라도 문을 여는게 손해인 상황이지만 당장 문을 닫는 건 아닙니다. 공지했던 15일에 영업을 종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손님들이 매장에서 구매하면서 쌓았던 적립금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박 과장은 "저희 상황이 허락할 때까지 적립금을 쓰실 시간을 최대한 드리는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라며 "빨리 적립금을 써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직원들이 손님에게 적립금을 써달라고 말하지만 북새통이 사라지는 게 아쉬운 손님들은 적립금을 핑계 삼아 계속 방문하기도 합니다. 10900원 남은 적립금 중 만 원만 쓰고 900원은 쓰지 않는 단골도 있습니다. 그 손님은 "900원은 또 와서 쓸거에요"라고 말하며 가게를 떠났습니다. 적립금을 다 썼는데도 카드를 버리지 않고 가져가는 손님도 있습니다.

그런 손님들을 바라보는 북새통 직원들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박 과장은 "홍대에 오면 '아 예전에 여기에 서점이 있었는데' 하고 기억해주면 그걸로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마지막 말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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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 북새통”…코로나19에 문 닫는 만화전문서점
    • 입력 2020-12-08 13:45:29
    취재K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로 나와 1분만 걸으면 파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투박한 글씨체로 '만화전문 할인점 북새통문고'라고 적혀있습니다.

입구를 지나 다소 가파른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500여 제곱미터 넓이의 '만화세상'이 펄쳐집니다. 웹툰을 종이책으로 만든 신간부터 연재를 시작한 지 20년은 훌쩍 지난 '열혈강호', '베르사유의 장미' 등 만화 애호가라면 놓칠 수 없는 '고전' 등 없는 게 없습니다.

■ 17년 역사 지닌 북새통문고...국내 최대 규모 만화전문 서점

'북새통문고'는 2004년 5월 문을 연 국내 최대 규모의 만화책 전문서점입니다. 일반 서점에선 쉽게 구하지 못 하는 책도 이곳에 오면 찾을 수 있고 북새통에서만 살 수 있는 책도 있습니다. 북새통이 절판된 책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와 이야기 해 특별판으로 제작한 책만 10여권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위한 작법서도 있습니다. 일러스트 관련 홍보 책자, 명함 등도 한 쪽에 배치돼있습니다. 북새통문고의 박회순 과장은 "국내에서 발행되는 만화 관련 책들은 다 구비하고 싶었다"라며 "여기 와서 없으면 국내에 거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희택 북새통문고 대표도 "많이 줄였는데도 10만권이 넘는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선 '성지'라 불렸습니다. 홍대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공유되고는 했습니다. 박희택 대표는 "1년에 한 번 '금토일' 3일 세일을 했는데 문 밖에 까지 줄을 설 정도였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박회순 과장도 "아침 9시에 문을 열려고 오면 신간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이 10여명은 있었다"라며 "카운터에서 손님들께 조용히 해달라고 양해를 드릴 정도로 정말 북새통이었다"라고 떠올렸습니다.

■ 영업 종료하는 홍대 '북새통문고'...코로나19에 쓰러지다

그런 북새통문고가 폐업을 예고했습니다.


'홍대 북새통문고 매장은 12월 15일 부로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구가 적힌 종이가 카운터, 검색용 PC 등 매장 여기저기에 붙었습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위기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온라인과의 경쟁력을 잃어갔습니다. 홍익대가 실기시험을 없애면서 북새통의 주 고객층이던 학생들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근근히 버티던 북새통이었지만 코로나19는 이겨내지 못 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하루에 평일에만 700명~800명, 주말에는 1200명~1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반면 지난 3일 목요일 하루 방문자는 175명. 1/4로 급감한 겁니다. 방문자 만큼이나 매출 하락도 컸습니다.

박 과장은 "종이책에 대한 향수를 가지신 분들이 워낙 있었기 때문에 매장을 유지하는 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라면서 "코로나로 그런 분들조차도 밖에 나오는 걸 꺼려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매출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자체적으로 설정한 손익분기점 아래로 내려갔을 때부터 고민을 하게 됐다"라며 "더 이상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기 때문에 정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급감했기 때문에 임대료마저도 부담으로 다가왔다"며 "총판과 온라인 영업은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적립금 써 주세요"...손님 "문 닫기 전에 또 올 거예요.."

"옛날 만화를 좋아하는데 절판돼서 인터넷에서는 e북으로밖에 못 샀던 것을 여기서는 1권부터 전권까지 다 있었다. 보물창고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이가윤/서울 은평구/손님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 직장 등 생활로 바쁜 와중에 취미가 있다는 건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취미를 지켜주는 어느 '한 곳'이 있다는 건 정말 마음이 놓이는데 그런 공간이 없어진다고 하니 정말 아쉽죠."
-이준/서울 은평구/손님


누군가에겐 '보물창고', '숨을 돌리는 곳', '만남의장소' 였던 북새통문고의 매장 폐업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습니다. 박 과장은 "메이플스토리 처음 나왔을 때 엄마 손 잡고 와서 사던 친구들이 지금은 대학생이고 군대 갔다 온 친구도 있다"라며 "그런 친구들이 와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울컥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초콜릿이나 과자를 가져오는 친구도 있고 꽃을 사서 오는 친구도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하루라도 문을 여는게 손해인 상황이지만 당장 문을 닫는 건 아닙니다. 공지했던 15일에 영업을 종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손님들이 매장에서 구매하면서 쌓았던 적립금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박 과장은 "저희 상황이 허락할 때까지 적립금을 쓰실 시간을 최대한 드리는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라며 "빨리 적립금을 써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직원들이 손님에게 적립금을 써달라고 말하지만 북새통이 사라지는 게 아쉬운 손님들은 적립금을 핑계 삼아 계속 방문하기도 합니다. 10900원 남은 적립금 중 만 원만 쓰고 900원은 쓰지 않는 단골도 있습니다. 그 손님은 "900원은 또 와서 쓸거에요"라고 말하며 가게를 떠났습니다. 적립금을 다 썼는데도 카드를 버리지 않고 가져가는 손님도 있습니다.

그런 손님들을 바라보는 북새통 직원들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박 과장은 "홍대에 오면 '아 예전에 여기에 서점이 있었는데' 하고 기억해주면 그걸로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마지막 말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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