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이우환 위작’ 가장 많이 취급한 곳은 ‘1등 갤러리’였다

입력 2020.12.11 (11:35) 수정 2020.12.1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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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작범 "내가 그렸다." vs 이우환 "진품이다."

2016년 6월 27일, 미술계의 시선은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쏠렸다. 위작 의심 작품 13점을 이우환 작가가 직접 확인하는 날이었다.

경찰은 1년 넘게 수사해 위작으로 의심되는 13점을 압수했다. 그 가운데 4점은 구속된 위작범이 자신이 그렸다고 자백한 그림이었다.

이우환 작가는 위작 논란이 일자 "내가 본 작품 중에 가짜는 없다"고 강조해 왔었다. 하지만 미술계는 작가가 경찰에서 입장을 바꾸거나 한발 물러설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여러 전문가의 감정 소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증 소견이 모두 위작을 결론으로 가리켰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위작범이 "내가 그린 가짜다."라고 자백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작가의 태도는 예상을 깼다. 경찰 출석 첫날은 결론을 내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틀 후 두 번째 감정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 장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전부 진품이다. 호흡이나 리듬 채색을 쓰는 방법이 다 내 것이다. 작가는 자기 작품을 보면 1분도 안 돼서 알 수 있다" -이우환 작가, 2016년 6월 29일

미술계는 혼란에 빠졌다. 작가는 다음날 '가짜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이우환 작가는 위작 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 법원 "13점은 가짜"…신뢰 잃은 '작가 확인서'



경찰은 이후 위작 조직을 추가로 검거했고, 법원에서 두 건의 재판이 진행됐다. 위작 조직 두 곳은 모두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드러난 위작 규모는 100여 점. 첫 번째 조직은 55점, 두 번째 조직은 48점 정도를 시장에 팔았다고 털어놨다. 어디까지나 위작범들의 자백에 근거한 추정치다. 주범들은 각각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위작을 거래한 화랑들은 기소되지 않았고 처벌받지 않았다. 위작범들에게 속은 '피해자'라는 소명이 받아들여졌다.

경찰과 검찰이 제시한 증거와 위작범들의 자백은 재판에서 대부분 인정됐다. 위작범들이 캔버스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한 접착제의 흔적, 이우환 작가가 쓰지 않았다는 유리 가루의 검출,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캔버스 뒷면과 나무틀에 커피색 물감을 칠한 흔적, 안료 성분, 서명 분석 결과 등 증거는 차고 넘쳤다.

특히 그림 한 점에 2005년 이후 생산된 캔버스가 쓰인 것은 결정적 증거가 됐다. 국내 한 캔버스 제조사가 2005년 이후 자사 제품에 찍었다는 도장이 캔버스 천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위작범의 그림 중 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위작'으로 판정된 작품은 13점이다. 이우환 작가가 경찰에서 봤던 압수품 13점과 숫자는 같지만,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위작범이 "내가 그린 것이 아닌 것 같다."라고 한 그림 3점이 기소 대상에서 빠졌고, 이후 경찰이 추가로 압수한 그림 중 3점이 추가됐다.

법원이 위작이라고 확정한 13점 중 4점에는 작가확인서가 첨부돼 있었다. 이우환 작가가 "진품이 맞다"며 친필 서명한 확인서였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내 작품은 1분 만에 알 수 있다"던 작가의 주장은 무색해졌다.

작가 확인서가 첨부된 위작 4점 중 2점은 국내 최대 화랑인 갤러리현대가 한 대기업에 판매하려던 것이었다.

■ 갤러리현대로 간 27점…"창사 이래 최대 거래였다."
위작범들의 그림을 가장 많이 다룬 화랑은 인사동에 발을 들여놓은 지 5년 된 신생 화랑 K갤러리였다. 두 번째 위작 조직의 그림 48점이 모두 K갤러리를 통해 유통됐다.

K갤러리의 최대 고객은 국내 1등 화랑인 갤러리현대였다. 갤러리현대는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이자 규모도, 영향력도 가장 큰 화랑이다.

갤러리현대가 2013년 K갤러리에서 구매하거나 위탁받은 그림은 27점. 모두 이우환의 70년대 후반작인 '선으로부터(from line)', '점으로부터(from point)' 작품이었다. 개관 이래 최대 규모였다.

"갤러리현대 창업 이래 수십 점의 이우환 그림을 한 사람, 한 갤러리, 한 화상으로부터 공급받아 거래한 것은 처음이었다." (갤러리현대 L이사/ 2016년 경찰 조사)

이 27점에는 모두 작가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작가확인서가 발부됐다.


갤러리현대는 27점 가운데 6점을 판매했다. 3점은 해외로, 3점은 국내로 유통됐다. 국내에서 판매된 그림 중 2점은 경찰에 압수돼 재판에서 위작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는 회수되지 않았다.

나머지 21점은 돌고 돌아 결국 경찰에 압수됐다. 2015년말 경찰이 K갤러리를 압수수색하고 난 뒤, 갤러리현대는 가지고 있던 21점을 K갤러리에 돌려줬다.

그림을 돌려받은 K갤러리는 본래 주인이었던 위작조직에 다시 넘겨줬다. 위작 조직은 그림을 숨겼지만, 수사망을 피하지 못해 결국 21점은 모두 압수됐다.

이 21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민간 감정기관으로부터 모두 위작 판정을 받았다.

■ 갤러리현대는 몰랐을까?…"완벽하게 속았다"

그렇다면, 국내 최대 화랑인 갤러리현대는 작품의 출처를 확인하는 책임을 다했을까?

갤러리현대는 K갤러리가 이우환 작품을 대량으로 공급하자 작품의 소장자를 궁금해했다고 했다. K 갤러리 김모 대표는 위작 조직의 총책이 과거에도 위작 사건에 연루돼 평판이 좋지 않은 점이 신경 쓰였다.

그러자 위작 조직의 총책은 "아는 회장님이 있다"면서 "통일교 고위직인 최 회장님이 그림의 소장자"라고 내세웠다.

K갤러리 대표는 '최 회장'을 갤러리현대에 작품의 소장자로 소개했고, 갤러리현대는 소장자에 대해 별다른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개관 이래 최대 규모였다는 작품 27점이 갤러리현대로 넘어갔다. 모두 귀하다던 70년 후반작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작품이었다. 한 명의 소장자에게서 특정 시기 작품 수십 점이 나온다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은 경찰 수사에서 "종교재단에서 나온 그림이라고 해서 믿었다. 이우환 작가가 자기 작품이 맞는다고 해서 팔았는데, 결과적으로 위작범에게 속았다"고 말했다.

갤러리현대에 그림을 대준 K갤러리 대표 역시 "철석같이 믿었는데 속았다"고 말했다.

KBS의 질의에 갤러리현대는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 유통 경위나 소장자가 명확히 밝혀지는 것은 드물고, 중개인이 있는 경우는 소장자 정보 자체를 일종의 자산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소장자 정보가 모두 밝혀지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갤러리현대는 "무엇보다 생존 작가의 작품은 작가로부터 직접 확인받는 것이 최종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었다"고 덧붙였다.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은 갤러리현대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은 갤러리현대

하지만 복수의 미술 시장 관계자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국내외 대형 갤러리와 전시기획사를 두루 거친 한 미술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우환 작품을 거래할 수 있는 갤러리는 많지 않다. 아무나 가져다가 팔 수 있는 그런 가격의 작품이 아니다. 미술 시장에서 그 정도 규모의 작품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슈퍼 콜렉터 급이다. 이 정도 슈퍼 콜렉터가 시장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사람에게서 20여 점의 그림이 나왔는데 소장 이력을 파악 안 해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 (미술계 인사)

■ 철석같이 믿었다는 '통일교 최 회장'…알고 보니?

취재진은 '최 회장'이 최근 사기 혐의로 고소된 사실을 확인했다. '일본 선교조직이 100개의 화랑을 운영하며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구매했다'는 최 회장의 작품 소장 경위서를 믿고 작품을 구매한 사람이 고소한 것이었다.

고소인은 "속아서 산 가짜였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미술계 인사에게 "80~90년대에 일본에서 통일교 조직을 이용해 화랑 수백 개를 운영했다. 그때 챙겨둔 그림 수백 점을 지인들에게 공짜로 나눠줬다"고 설명했다.

이우환 작품도 통일교 조직을 통해 소장하게 됐고, 사업이 어려워진 후배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넘겨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일교는 KBS의 확인 요청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통일교는 화랑을 운영한 적도 미술사업을 한 적도 없다"면서 "최 씨는 30년 전 교단에서 활동했지만, 지금은 전혀 관계가 없으며, 최 씨가 통일교를 사칭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취재진이 "저명인사들이 최 회장이 통일교 조직을 통해 그림을 모았다는 말을 믿고 거래를 했다"고 설명하자, 통일교 관계자는 "통일교에 전화 한 통 하면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왜 터무니없는 말을 믿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최 씨를 직접 찾아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이 '통일교 최 회장'으로 통한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우환 작품의 구매와 유통에 대한 질문에는 험한 말만 반복하며 자리를 피했다.

국내 최고의 화랑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로 이우환 그림을 사들이거나 판매 위탁을 받으면서, 소장자로 믿었다는 '최 회장'의 모습이었다.

구체적인 취재 내용은 오늘(11일) 밤 KBS1TV 뉴스9에서 공개한다.

<시사기획 창> '거장과 위작 논란 - 이우환 vs. 이우환'은 12일(토) 오후 8시 5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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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이우환 위작’ 가장 많이 취급한 곳은 ‘1등 갤러리’였다
    • 입력 2020-12-11 11:35:29
    • 수정2020-12-11 16:37:31
    탐사K


■ 위작범 "내가 그렸다." vs 이우환 "진품이다."

2016년 6월 27일, 미술계의 시선은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쏠렸다. 위작 의심 작품 13점을 이우환 작가가 직접 확인하는 날이었다.

경찰은 1년 넘게 수사해 위작으로 의심되는 13점을 압수했다. 그 가운데 4점은 구속된 위작범이 자신이 그렸다고 자백한 그림이었다.

이우환 작가는 위작 논란이 일자 "내가 본 작품 중에 가짜는 없다"고 강조해 왔었다. 하지만 미술계는 작가가 경찰에서 입장을 바꾸거나 한발 물러설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여러 전문가의 감정 소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증 소견이 모두 위작을 결론으로 가리켰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위작범이 "내가 그린 가짜다."라고 자백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작가의 태도는 예상을 깼다. 경찰 출석 첫날은 결론을 내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틀 후 두 번째 감정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 장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전부 진품이다. 호흡이나 리듬 채색을 쓰는 방법이 다 내 것이다. 작가는 자기 작품을 보면 1분도 안 돼서 알 수 있다" -이우환 작가, 2016년 6월 29일

미술계는 혼란에 빠졌다. 작가는 다음날 '가짜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이우환 작가는 위작 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 법원 "13점은 가짜"…신뢰 잃은 '작가 확인서'



경찰은 이후 위작 조직을 추가로 검거했고, 법원에서 두 건의 재판이 진행됐다. 위작 조직 두 곳은 모두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드러난 위작 규모는 100여 점. 첫 번째 조직은 55점, 두 번째 조직은 48점 정도를 시장에 팔았다고 털어놨다. 어디까지나 위작범들의 자백에 근거한 추정치다. 주범들은 각각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위작을 거래한 화랑들은 기소되지 않았고 처벌받지 않았다. 위작범들에게 속은 '피해자'라는 소명이 받아들여졌다.

경찰과 검찰이 제시한 증거와 위작범들의 자백은 재판에서 대부분 인정됐다. 위작범들이 캔버스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한 접착제의 흔적, 이우환 작가가 쓰지 않았다는 유리 가루의 검출,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캔버스 뒷면과 나무틀에 커피색 물감을 칠한 흔적, 안료 성분, 서명 분석 결과 등 증거는 차고 넘쳤다.

특히 그림 한 점에 2005년 이후 생산된 캔버스가 쓰인 것은 결정적 증거가 됐다. 국내 한 캔버스 제조사가 2005년 이후 자사 제품에 찍었다는 도장이 캔버스 천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위작범의 그림 중 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위작'으로 판정된 작품은 13점이다. 이우환 작가가 경찰에서 봤던 압수품 13점과 숫자는 같지만,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위작범이 "내가 그린 것이 아닌 것 같다."라고 한 그림 3점이 기소 대상에서 빠졌고, 이후 경찰이 추가로 압수한 그림 중 3점이 추가됐다.

법원이 위작이라고 확정한 13점 중 4점에는 작가확인서가 첨부돼 있었다. 이우환 작가가 "진품이 맞다"며 친필 서명한 확인서였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내 작품은 1분 만에 알 수 있다"던 작가의 주장은 무색해졌다.

작가 확인서가 첨부된 위작 4점 중 2점은 국내 최대 화랑인 갤러리현대가 한 대기업에 판매하려던 것이었다.

■ 갤러리현대로 간 27점…"창사 이래 최대 거래였다."
위작범들의 그림을 가장 많이 다룬 화랑은 인사동에 발을 들여놓은 지 5년 된 신생 화랑 K갤러리였다. 두 번째 위작 조직의 그림 48점이 모두 K갤러리를 통해 유통됐다.

K갤러리의 최대 고객은 국내 1등 화랑인 갤러리현대였다. 갤러리현대는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이자 규모도, 영향력도 가장 큰 화랑이다.

갤러리현대가 2013년 K갤러리에서 구매하거나 위탁받은 그림은 27점. 모두 이우환의 70년대 후반작인 '선으로부터(from line)', '점으로부터(from point)' 작품이었다. 개관 이래 최대 규모였다.

"갤러리현대 창업 이래 수십 점의 이우환 그림을 한 사람, 한 갤러리, 한 화상으로부터 공급받아 거래한 것은 처음이었다." (갤러리현대 L이사/ 2016년 경찰 조사)

이 27점에는 모두 작가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작가확인서가 발부됐다.


갤러리현대는 27점 가운데 6점을 판매했다. 3점은 해외로, 3점은 국내로 유통됐다. 국내에서 판매된 그림 중 2점은 경찰에 압수돼 재판에서 위작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는 회수되지 않았다.

나머지 21점은 돌고 돌아 결국 경찰에 압수됐다. 2015년말 경찰이 K갤러리를 압수수색하고 난 뒤, 갤러리현대는 가지고 있던 21점을 K갤러리에 돌려줬다.

그림을 돌려받은 K갤러리는 본래 주인이었던 위작조직에 다시 넘겨줬다. 위작 조직은 그림을 숨겼지만, 수사망을 피하지 못해 결국 21점은 모두 압수됐다.

이 21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민간 감정기관으로부터 모두 위작 판정을 받았다.

■ 갤러리현대는 몰랐을까?…"완벽하게 속았다"

그렇다면, 국내 최대 화랑인 갤러리현대는 작품의 출처를 확인하는 책임을 다했을까?

갤러리현대는 K갤러리가 이우환 작품을 대량으로 공급하자 작품의 소장자를 궁금해했다고 했다. K 갤러리 김모 대표는 위작 조직의 총책이 과거에도 위작 사건에 연루돼 평판이 좋지 않은 점이 신경 쓰였다.

그러자 위작 조직의 총책은 "아는 회장님이 있다"면서 "통일교 고위직인 최 회장님이 그림의 소장자"라고 내세웠다.

K갤러리 대표는 '최 회장'을 갤러리현대에 작품의 소장자로 소개했고, 갤러리현대는 소장자에 대해 별다른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개관 이래 최대 규모였다는 작품 27점이 갤러리현대로 넘어갔다. 모두 귀하다던 70년 후반작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작품이었다. 한 명의 소장자에게서 특정 시기 작품 수십 점이 나온다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은 경찰 수사에서 "종교재단에서 나온 그림이라고 해서 믿었다. 이우환 작가가 자기 작품이 맞는다고 해서 팔았는데, 결과적으로 위작범에게 속았다"고 말했다.

갤러리현대에 그림을 대준 K갤러리 대표 역시 "철석같이 믿었는데 속았다"고 말했다.

KBS의 질의에 갤러리현대는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 유통 경위나 소장자가 명확히 밝혀지는 것은 드물고, 중개인이 있는 경우는 소장자 정보 자체를 일종의 자산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소장자 정보가 모두 밝혀지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갤러리현대는 "무엇보다 생존 작가의 작품은 작가로부터 직접 확인받는 것이 최종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었다"고 덧붙였다.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은 갤러리현대
하지만 복수의 미술 시장 관계자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국내외 대형 갤러리와 전시기획사를 두루 거친 한 미술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우환 작품을 거래할 수 있는 갤러리는 많지 않다. 아무나 가져다가 팔 수 있는 그런 가격의 작품이 아니다. 미술 시장에서 그 정도 규모의 작품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슈퍼 콜렉터 급이다. 이 정도 슈퍼 콜렉터가 시장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사람에게서 20여 점의 그림이 나왔는데 소장 이력을 파악 안 해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 (미술계 인사)

■ 철석같이 믿었다는 '통일교 최 회장'…알고 보니?

취재진은 '최 회장'이 최근 사기 혐의로 고소된 사실을 확인했다. '일본 선교조직이 100개의 화랑을 운영하며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구매했다'는 최 회장의 작품 소장 경위서를 믿고 작품을 구매한 사람이 고소한 것이었다.

고소인은 "속아서 산 가짜였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미술계 인사에게 "80~90년대에 일본에서 통일교 조직을 이용해 화랑 수백 개를 운영했다. 그때 챙겨둔 그림 수백 점을 지인들에게 공짜로 나눠줬다"고 설명했다.

이우환 작품도 통일교 조직을 통해 소장하게 됐고, 사업이 어려워진 후배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넘겨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일교는 KBS의 확인 요청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통일교는 화랑을 운영한 적도 미술사업을 한 적도 없다"면서 "최 씨는 30년 전 교단에서 활동했지만, 지금은 전혀 관계가 없으며, 최 씨가 통일교를 사칭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취재진이 "저명인사들이 최 회장이 통일교 조직을 통해 그림을 모았다는 말을 믿고 거래를 했다"고 설명하자, 통일교 관계자는 "통일교에 전화 한 통 하면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왜 터무니없는 말을 믿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최 씨를 직접 찾아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이 '통일교 최 회장'으로 통한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우환 작품의 구매와 유통에 대한 질문에는 험한 말만 반복하며 자리를 피했다.

국내 최고의 화랑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로 이우환 그림을 사들이거나 판매 위탁을 받으면서, 소장자로 믿었다는 '최 회장'의 모습이었다.

구체적인 취재 내용은 오늘(11일) 밤 KBS1TV 뉴스9에서 공개한다.

<시사기획 창> '거장과 위작 논란 - 이우환 vs. 이우환'은 12일(토) 오후 8시 5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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