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제도, 이재용 감형 도울까…전문가 점수는?

입력 2020.12.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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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 범죄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효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10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사건 첫 재판에서 재판장이 한 말입니다. 그는 “몇 가지 점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이 이 사건(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과 같은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며,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가장 중요한 재발 방지책으로 꼽았습니다.

재판장의 권고에 따라 삼성그룹은 올 2월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를 꾸렸습니다. 준법감시위는 삼성그룹 외부의 독립된 조직으로, 삼성전자·물산·생명·SDI·전기·SDS·화재 등 7개 주요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위법 사항을 점검·조사하거나 시정 권고 등 조치를 취하는 준법 감시 활동을 합니다. 삼성그룹은 또 상법에 따라 각 계열사 내에 설치된 준법감시조직(준법지원인)을 강화했다고도 밝혔습니다.

재판장은 이같은 준법감시제도(준법감시위와 준법감시조직)가 실효적으로 운영된다면 이는 '범행 후의 진지한 반성'에 해당해 이 부회장의 양형 조건, 즉 감형 사유 중 하나로 고려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준법감시’가 이 부회장 재판의 핵심으로 떠오른 순간입니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뇌물‧횡령 인정액이 50억 원 늘어난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재판은 큰 고개를 넘었습니다. 재판부가 지정한 전문심리위원 3명이, 삼성의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약 1달 동안 점검한 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이 부회장의 ‘운명’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전문심리위원 발표의 핵심 내용만 뽑아 정리해 봤습니다.

■ 최고경영진 비리, 제대로 감시할 수 있나?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최고 경영진의 위법 행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는 하급 기관의 비리만 방지하는 게 아니라, 고위직 임원과 기업 총수의 비리 행위도 방지할 수 있는 철저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 부회장 사건 재판장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가 정한 삼성 준법감시제도 점검 항목에는 “최고 경영진의 위법 행위에 대한 각 계열사 준법감시조직의 예방 및 감시 가능성”이 포함됐습니다.

이에 대한 세 위원의 평가, 점수로 나누자면 2대 1로 부정적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우선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으로 추천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준법감시조직에 의한 최고 경영진에 대한 감시‧감독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근거로 삼성물산 합병 문제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등 형사사건과 관련한 준법감시조직의 “사실 조사”가 충분히 되지 않은 점, “고발된 임원들에 대한 조치”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점을 꼽았습니다.

다만 그는 “최고 경영진이 위법한 행위를 하려면 회사 내 조직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며 “준법감시조직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위법 행위를 저지르기란 과거에 비해 어려워보인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특별검사의 추천을 받은 홍순탁 회계사의 입장은 더 선명합니다. 그는 “위험(risk) 관리의 기본은 발생 가능한 위험을 정의하고 식별하는 것”인데, 삼성 계열사 준법감시조직은 위법 행위 위험의 유형화 등 최고 경영진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전혀 수립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선 강 전 재판관도 “준법감시조직은 일상적 준법 감시와 대외 후원금 심사 등 이 사건(국정농단 사건)에서 문제 된 위법 행위에 초점을 맞춰서 활동하고 있다”며 “향후 발생 가능한 위험을 정의하고 선제적으로 예방 활동을 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비슷한 의견을 냈습니다.

이와 관련해 준법감시조직에선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지속 가능한 준법 경영체제’ 등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했다고 했지만, 홍 회계사는 “평가는 미래를 예상해서 하는 게 아니라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며 점검 결과에 반영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강 전 재판관 역시 해당 컨설팅 결과는 내년에 나오는 것이라 확인이 어렵다고 언급했습니다.

반면 이 부회장 변호인의 추천을 받은 김경수 변호사의 판단은 두 사람과 결을 달리합니다. 김 변호사는 계열사 준법감시조직이 최고 경영진을 어떻게 감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대신 올해 신설된 삼성 준법감시위의 의미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준법감시위가 “총수 등 최고경영진에 특화”돼 있다며, 이를 계기로 삼성그룹의 준법감시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강 전 재판관도 “준법감시위가 폭넓은 준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고, 계열사 준법감시조직 역할의 확대나 회사 내 준법문화 정착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 걸로 확인됐다”고 준법감시위가 불러온 변화를 짚은 바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또 최고 경영진에 대한 계열사 준법감시인의 보고와 토론이 상당히 잦은 것으로 보였고, “최고 경영진이 (과거와 다르게) ‘영업활동’이 아닌 ‘준법감시 관련 사항’에 높은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특히 강화된 준법감시제도와 총수의 준법의지, 그룹 내부의 준법문화라는 ‘3요소’의 상호작용을 여러 번 강조하면서, 총수의 준법의지를 높이는 데 준법감시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김 변호사는 밝혔습니다.

■ 준법감시위, 실제 힘쓸 수 있을까?

준법감시위가 처음 출범했을 때, 시민사회에서는 “이 부회장의 감형을 위한 면피용 기구”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각 계열사에 대한 준법감시위가 갖는 구속력, 실질적인 힘은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적 운영’을 평가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이 요소와 관련해선 전문심리위원 세 명 모두 ‘여론의 힘’을 공통적으로 거론했습니다. 준법감시위는 이사회 등과 달리 협약에 근거해 꾸려진 기구이기 때문에 어떤 강제적 수단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이를 지렛대로 삼아야 하는데, 세 사람의 전망은 엇갈립니다.

강 전 재판관은 “준법감시위의 독립성, 실효성 확보는 결국 최고경영진의 준법 의지와 여론의 감시 등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계열사들이 준법감시위의 권고 사항을 무시하거나 탈퇴와 예산 끊기 등을 감행한다면, 이런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 이외에 준법감시위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없다면서 아쉬운 대목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강 전 재판관은 ‘여론’의 힘이 약하지는 않다고 봤습니다. 그는 “준법감시위원들은 여론의 압력을 이용하거나 ‘위원 총사퇴’ 등의 방법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한다” “위원들의 의지는 상당히 긍정적인 부분”이라며, 경영진이 준법감시위의 권고 사항을 따르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경수 변호사 역시 준법감시위가 임의적 외부조직으로서의 한계를 갖고 있는 건 맞지만, 그 권고를 무시한다면 “국민 여론의 지탄”이 돌아올 것이고 “이는 최고 경영진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또 최근 준법감시위의 권고로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일류 기업의 대외적 신용”과 직결된다며,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각인이 최고 경영진의 준법 의지를 유지시키는 동력이 되고, 이 상황이 다시 위원회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홍 회계사는 여론의 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열사들의 이탈이나 권고 무시에 대해 준법감시위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대외 공표”뿐이고, 이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 준법감시위, 롱런(long-run) 가능할까?

준법감시위의 ‘지속가능성’은 실효적 운영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들에게 내준 숙제 역시, 요약하자면 “피고인들(이 부회장 등)이 제시하는 새로운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 및 지속가능성을 점검하라”는 것이었는데요. 짧은 점검 기간과 한정된 자료들 때문에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내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고, 결국 각 위원들의 주관적 평가가 더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가장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놓은 위원은 김경수 변호사였습니다. 김 변호사는 “총수 등의 준법의지가 지금 수준 정도로 유지되고 준법지원인의 활동이 계속된다면, 위원회의 지속가능성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반해 홍 회계사는 “준법감시위 조직을 포함한 준법감시제도가 지속가능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습니다. 그는 각 계열사가 서면 통보만으로 준법감시위에서 탈퇴할 수 있고, 준법감시위원 선임이 계열사의 이사회를 통과해야만 가능한 점, 예산배정 중단 등을 막을 실효적 장치가 없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 전 재판관은 다른 두 위원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는 “준법감시위는 협약에 따라 구성됐고, 관계사의 협약 탈퇴는 자유로워서 준법감시위의 존속 여부는 관계사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이어 “현재 보여지고 있는 준법감시위의 조직과 구성, 관계사 최고 경영진의 지원, 여론의 관심 등을 고려하면 지속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강 전 재판관은 다만 “큰 변화가 있다든지 하면 (준법감시위의 지속가능성에)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현 단계에서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라며 여지를 남겼습니다. 준법감시위의 불안정한 지위를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 전문심리위원 보고서, 일반에 공개될까

지금까지 전문심리위원 3명이 법정에서 직접 밝힌 점검 결과를 요약해 살펴봤는데요. 재판부에 제출된 전문심리위원 보고서는 64쪽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삼성 준법감시제도에 대한 최초의 외부 분석자료이기도 한 이 보고서는 향후 일반에 공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재판장은 해당 보고서가 재판의 증거나 당사자의 변론 내용이 아니라 전문심리위원의 전문적인 활동 결과를 담은 것이라며, “최종보고서를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지난 7일 재판 말미에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특검과 변호인, 피고인, 전문심리위원 모두가 보고서 공개에 동의한다면, 개인정보 등을 가린 뒤 서울고등법원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재판에서 대부분의 내용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최종 보고서 자체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재판 이틀 뒤인 지난 9일까지 보고서 공개 여부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했는데, 그 이후 아직 별도의 공지는 없었습니다.

재판부는 오는 21일로 예정된 다음 재판에서 보고서 내용에 대한 특검과 변호인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어서, 이 자리에서 전문심리위원들의 점검 결과가 더 구체적으로 논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재판부는 점검 결과를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할지, 반영한다면 어떻게 반영할지를 결정할 방침입니다. 선고는 이르면 다음달 말, 늦어도 2월 중순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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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준법감시제도, 이재용 감형 도울까…전문가 점수는?
    • 입력 2020-12-13 07:01:44
    취재K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 범죄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효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10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사건 첫 재판에서 재판장이 한 말입니다. 그는 “몇 가지 점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이 이 사건(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과 같은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며,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가장 중요한 재발 방지책으로 꼽았습니다.

재판장의 권고에 따라 삼성그룹은 올 2월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를 꾸렸습니다. 준법감시위는 삼성그룹 외부의 독립된 조직으로, 삼성전자·물산·생명·SDI·전기·SDS·화재 등 7개 주요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위법 사항을 점검·조사하거나 시정 권고 등 조치를 취하는 준법 감시 활동을 합니다. 삼성그룹은 또 상법에 따라 각 계열사 내에 설치된 준법감시조직(준법지원인)을 강화했다고도 밝혔습니다.

재판장은 이같은 준법감시제도(준법감시위와 준법감시조직)가 실효적으로 운영된다면 이는 '범행 후의 진지한 반성'에 해당해 이 부회장의 양형 조건, 즉 감형 사유 중 하나로 고려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준법감시’가 이 부회장 재판의 핵심으로 떠오른 순간입니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뇌물‧횡령 인정액이 50억 원 늘어난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재판은 큰 고개를 넘었습니다. 재판부가 지정한 전문심리위원 3명이, 삼성의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약 1달 동안 점검한 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이 부회장의 ‘운명’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전문심리위원 발표의 핵심 내용만 뽑아 정리해 봤습니다.

■ 최고경영진 비리, 제대로 감시할 수 있나?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최고 경영진의 위법 행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는 하급 기관의 비리만 방지하는 게 아니라, 고위직 임원과 기업 총수의 비리 행위도 방지할 수 있는 철저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 부회장 사건 재판장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가 정한 삼성 준법감시제도 점검 항목에는 “최고 경영진의 위법 행위에 대한 각 계열사 준법감시조직의 예방 및 감시 가능성”이 포함됐습니다.

이에 대한 세 위원의 평가, 점수로 나누자면 2대 1로 부정적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우선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으로 추천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준법감시조직에 의한 최고 경영진에 대한 감시‧감독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근거로 삼성물산 합병 문제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등 형사사건과 관련한 준법감시조직의 “사실 조사”가 충분히 되지 않은 점, “고발된 임원들에 대한 조치”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점을 꼽았습니다.

다만 그는 “최고 경영진이 위법한 행위를 하려면 회사 내 조직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며 “준법감시조직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위법 행위를 저지르기란 과거에 비해 어려워보인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특별검사의 추천을 받은 홍순탁 회계사의 입장은 더 선명합니다. 그는 “위험(risk) 관리의 기본은 발생 가능한 위험을 정의하고 식별하는 것”인데, 삼성 계열사 준법감시조직은 위법 행위 위험의 유형화 등 최고 경영진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전혀 수립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선 강 전 재판관도 “준법감시조직은 일상적 준법 감시와 대외 후원금 심사 등 이 사건(국정농단 사건)에서 문제 된 위법 행위에 초점을 맞춰서 활동하고 있다”며 “향후 발생 가능한 위험을 정의하고 선제적으로 예방 활동을 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비슷한 의견을 냈습니다.

이와 관련해 준법감시조직에선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지속 가능한 준법 경영체제’ 등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했다고 했지만, 홍 회계사는 “평가는 미래를 예상해서 하는 게 아니라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며 점검 결과에 반영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강 전 재판관 역시 해당 컨설팅 결과는 내년에 나오는 것이라 확인이 어렵다고 언급했습니다.

반면 이 부회장 변호인의 추천을 받은 김경수 변호사의 판단은 두 사람과 결을 달리합니다. 김 변호사는 계열사 준법감시조직이 최고 경영진을 어떻게 감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대신 올해 신설된 삼성 준법감시위의 의미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준법감시위가 “총수 등 최고경영진에 특화”돼 있다며, 이를 계기로 삼성그룹의 준법감시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강 전 재판관도 “준법감시위가 폭넓은 준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고, 계열사 준법감시조직 역할의 확대나 회사 내 준법문화 정착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 걸로 확인됐다”고 준법감시위가 불러온 변화를 짚은 바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또 최고 경영진에 대한 계열사 준법감시인의 보고와 토론이 상당히 잦은 것으로 보였고, “최고 경영진이 (과거와 다르게) ‘영업활동’이 아닌 ‘준법감시 관련 사항’에 높은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특히 강화된 준법감시제도와 총수의 준법의지, 그룹 내부의 준법문화라는 ‘3요소’의 상호작용을 여러 번 강조하면서, 총수의 준법의지를 높이는 데 준법감시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김 변호사는 밝혔습니다.

■ 준법감시위, 실제 힘쓸 수 있을까?

준법감시위가 처음 출범했을 때, 시민사회에서는 “이 부회장의 감형을 위한 면피용 기구”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각 계열사에 대한 준법감시위가 갖는 구속력, 실질적인 힘은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적 운영’을 평가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이 요소와 관련해선 전문심리위원 세 명 모두 ‘여론의 힘’을 공통적으로 거론했습니다. 준법감시위는 이사회 등과 달리 협약에 근거해 꾸려진 기구이기 때문에 어떤 강제적 수단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이를 지렛대로 삼아야 하는데, 세 사람의 전망은 엇갈립니다.

강 전 재판관은 “준법감시위의 독립성, 실효성 확보는 결국 최고경영진의 준법 의지와 여론의 감시 등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계열사들이 준법감시위의 권고 사항을 무시하거나 탈퇴와 예산 끊기 등을 감행한다면, 이런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 이외에 준법감시위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없다면서 아쉬운 대목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강 전 재판관은 ‘여론’의 힘이 약하지는 않다고 봤습니다. 그는 “준법감시위원들은 여론의 압력을 이용하거나 ‘위원 총사퇴’ 등의 방법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한다” “위원들의 의지는 상당히 긍정적인 부분”이라며, 경영진이 준법감시위의 권고 사항을 따르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경수 변호사 역시 준법감시위가 임의적 외부조직으로서의 한계를 갖고 있는 건 맞지만, 그 권고를 무시한다면 “국민 여론의 지탄”이 돌아올 것이고 “이는 최고 경영진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또 최근 준법감시위의 권고로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일류 기업의 대외적 신용”과 직결된다며,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각인이 최고 경영진의 준법 의지를 유지시키는 동력이 되고, 이 상황이 다시 위원회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홍 회계사는 여론의 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열사들의 이탈이나 권고 무시에 대해 준법감시위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대외 공표”뿐이고, 이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 준법감시위, 롱런(long-run) 가능할까?

준법감시위의 ‘지속가능성’은 실효적 운영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들에게 내준 숙제 역시, 요약하자면 “피고인들(이 부회장 등)이 제시하는 새로운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 및 지속가능성을 점검하라”는 것이었는데요. 짧은 점검 기간과 한정된 자료들 때문에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내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고, 결국 각 위원들의 주관적 평가가 더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가장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놓은 위원은 김경수 변호사였습니다. 김 변호사는 “총수 등의 준법의지가 지금 수준 정도로 유지되고 준법지원인의 활동이 계속된다면, 위원회의 지속가능성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반해 홍 회계사는 “준법감시위 조직을 포함한 준법감시제도가 지속가능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습니다. 그는 각 계열사가 서면 통보만으로 준법감시위에서 탈퇴할 수 있고, 준법감시위원 선임이 계열사의 이사회를 통과해야만 가능한 점, 예산배정 중단 등을 막을 실효적 장치가 없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 전 재판관은 다른 두 위원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는 “준법감시위는 협약에 따라 구성됐고, 관계사의 협약 탈퇴는 자유로워서 준법감시위의 존속 여부는 관계사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이어 “현재 보여지고 있는 준법감시위의 조직과 구성, 관계사 최고 경영진의 지원, 여론의 관심 등을 고려하면 지속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강 전 재판관은 다만 “큰 변화가 있다든지 하면 (준법감시위의 지속가능성에)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현 단계에서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라며 여지를 남겼습니다. 준법감시위의 불안정한 지위를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 전문심리위원 보고서, 일반에 공개될까

지금까지 전문심리위원 3명이 법정에서 직접 밝힌 점검 결과를 요약해 살펴봤는데요. 재판부에 제출된 전문심리위원 보고서는 64쪽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삼성 준법감시제도에 대한 최초의 외부 분석자료이기도 한 이 보고서는 향후 일반에 공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재판장은 해당 보고서가 재판의 증거나 당사자의 변론 내용이 아니라 전문심리위원의 전문적인 활동 결과를 담은 것이라며, “최종보고서를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지난 7일 재판 말미에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특검과 변호인, 피고인, 전문심리위원 모두가 보고서 공개에 동의한다면, 개인정보 등을 가린 뒤 서울고등법원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재판에서 대부분의 내용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최종 보고서 자체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재판 이틀 뒤인 지난 9일까지 보고서 공개 여부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했는데, 그 이후 아직 별도의 공지는 없었습니다.

재판부는 오는 21일로 예정된 다음 재판에서 보고서 내용에 대한 특검과 변호인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어서, 이 자리에서 전문심리위원들의 점검 결과가 더 구체적으로 논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재판부는 점검 결과를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할지, 반영한다면 어떻게 반영할지를 결정할 방침입니다. 선고는 이르면 다음달 말, 늦어도 2월 중순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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