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의 표결 참여, 중립 위반일까

입력 2020.12.1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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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오늘(15일) 박병석 국회의장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박 의장을 국회의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박 의장이 진행하는 사회를 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박 의장은 지난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국가정보원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 투표에 각각 참여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 표결 참여가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져버렸다면서 '보이콧'을 선언한 건데, 실제로 그런지 따져봤습니다.

14일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 투표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14일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 투표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

■ 野 "중립 의무 위반"...의장측 "국회의장도 헌법기관"

주호영 원내대표는 오늘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의장 보이콧' 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중립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법안 내용도 아니고 의사진행과 관련해 특정 정당을 편들어서, 의장석을 비우고 투표하러 내려온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주 원내대표는 어제(14일) 비상대책위 회의 발언에서도 박 의장을 향해 "두고두고 역사에 나쁜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며 이틀 연속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일단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국회의장이 '무(無) 당적'이라는 게 뒷받침합니다. 박병석 의장 역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6선 의원이었지만 의장 선출 뒤 당적이 없는 무소속입니다.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국회법에 정해져 있는데,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 위치에서 국가, 국민을 위해 초당적으로 임하라는 취지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의장 역시 국회의원 신분이기도 합니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 기관으로 본회의장에서 안건 처리 시 표결에 참여하게 돼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던 9일 전광판 사진입니다. 좌측의 맨 아랫줄을 보면 의원 이름 대신 '의장' 자리가 있습니다. 박 의장의 경우 투표 시 민주당 의원 '박병석' 자리가 아닌 이 '의장' 자리에 불이 들어오게 됩니다.


국회의장 역시 법안, 결의안, 예산안 등 어떤 안건이든 투표가 가능합니다. 단지 ●●당 △△△ 의원으로서가 아니라 '국회의장'으로서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게 차이일 뿐입니다.

박병석 의장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당론의 포로가 되지 말라는 게 평소 박 의장의 소신"이라며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만큼 표결 안 하는 게 오히려 국회의원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며 야당의 반발을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 "역대 의장들은 무기명 투표 안건이 있을 때 다 참여했고 정세균 의장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했다"며 "박 의장 역시 의장이 된 후로 지금까지 법안을 비롯해 모든 안건에 투표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무제한토론 종결안은 이번 투표가 첫 사례여서 의장 투표 선례가 없습니다.


■ 법적으론 문제 없어…정무적 판단은?

그럼 "의장이 특정 정당을 편들었다"는 주장은 어떨까요.

주 원내대표가 문제삼은 표결 가운데 13일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종결 투표의 경우, 가결 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 180석의 찬성표를 간신히 채웠습니다. 이 투표는 무기명으로 진행됐고, 박 의장이 찬성표를 냈는지 반대표를 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이 야당의 입을 막기 위해 주도한 표결에 참여한 것 자체가 중립 의무 위반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의장의 찬반 여부는 알려지지 않아 민주당을 편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민의힘은 의장의 투표 참여가 없었다면 180표가 과연 나왔겠느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쓰고, 오이밭에서 신발 다시 신은' 격입니다. 괜한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의장의 본회의 표결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무제한 토론이 소수 야당의 의견 개진을 위해 보장된 제도인 만큼 이를 끝내려는 표결에 참여했다는 것도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의당 의원들이 무제한토론 종결 투표에 불참한 이유도 '정당의 소수 의견 표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코로나19 방역, 민생 정책을 위한 여야 협치가 시급한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야당의 협조를 조금이라도 더 이끌어내기 위해, 다른 판단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나옵니다.

정기국회 기간 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의 여파가 국회의장에게도 불똥이 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의 앙금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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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의장의 표결 참여, 중립 위반일까
    • 입력 2020-12-15 18:59:24
    취재K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오늘(15일) 박병석 국회의장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박 의장을 국회의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박 의장이 진행하는 사회를 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박 의장은 지난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국가정보원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 투표에 각각 참여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 표결 참여가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져버렸다면서 '보이콧'을 선언한 건데, 실제로 그런지 따져봤습니다.

14일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 투표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
■ 野 "중립 의무 위반"...의장측 "국회의장도 헌법기관"

주호영 원내대표는 오늘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의장 보이콧' 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중립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법안 내용도 아니고 의사진행과 관련해 특정 정당을 편들어서, 의장석을 비우고 투표하러 내려온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주 원내대표는 어제(14일) 비상대책위 회의 발언에서도 박 의장을 향해 "두고두고 역사에 나쁜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며 이틀 연속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일단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국회의장이 '무(無) 당적'이라는 게 뒷받침합니다. 박병석 의장 역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6선 의원이었지만 의장 선출 뒤 당적이 없는 무소속입니다.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국회법에 정해져 있는데,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 위치에서 국가, 국민을 위해 초당적으로 임하라는 취지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의장 역시 국회의원 신분이기도 합니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 기관으로 본회의장에서 안건 처리 시 표결에 참여하게 돼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던 9일 전광판 사진입니다. 좌측의 맨 아랫줄을 보면 의원 이름 대신 '의장' 자리가 있습니다. 박 의장의 경우 투표 시 민주당 의원 '박병석' 자리가 아닌 이 '의장' 자리에 불이 들어오게 됩니다.


국회의장 역시 법안, 결의안, 예산안 등 어떤 안건이든 투표가 가능합니다. 단지 ●●당 △△△ 의원으로서가 아니라 '국회의장'으로서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게 차이일 뿐입니다.

박병석 의장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당론의 포로가 되지 말라는 게 평소 박 의장의 소신"이라며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만큼 표결 안 하는 게 오히려 국회의원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며 야당의 반발을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 "역대 의장들은 무기명 투표 안건이 있을 때 다 참여했고 정세균 의장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했다"며 "박 의장 역시 의장이 된 후로 지금까지 법안을 비롯해 모든 안건에 투표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무제한토론 종결안은 이번 투표가 첫 사례여서 의장 투표 선례가 없습니다.


■ 법적으론 문제 없어…정무적 판단은?

그럼 "의장이 특정 정당을 편들었다"는 주장은 어떨까요.

주 원내대표가 문제삼은 표결 가운데 13일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종결 투표의 경우, 가결 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 180석의 찬성표를 간신히 채웠습니다. 이 투표는 무기명으로 진행됐고, 박 의장이 찬성표를 냈는지 반대표를 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이 야당의 입을 막기 위해 주도한 표결에 참여한 것 자체가 중립 의무 위반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의장의 찬반 여부는 알려지지 않아 민주당을 편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민의힘은 의장의 투표 참여가 없었다면 180표가 과연 나왔겠느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쓰고, 오이밭에서 신발 다시 신은' 격입니다. 괜한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의장의 본회의 표결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무제한 토론이 소수 야당의 의견 개진을 위해 보장된 제도인 만큼 이를 끝내려는 표결에 참여했다는 것도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의당 의원들이 무제한토론 종결 투표에 불참한 이유도 '정당의 소수 의견 표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코로나19 방역, 민생 정책을 위한 여야 협치가 시급한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야당의 협조를 조금이라도 더 이끌어내기 위해, 다른 판단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나옵니다.

정기국회 기간 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의 여파가 국회의장에게도 불똥이 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의 앙금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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