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치유자’가 된 성폭력 피해자들…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입력 2020.12.16 (10:01) 수정 2020.12.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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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저지른 범죄는 끔찍하지만, 그 일을 겪은 피해자가 끔찍한 건 아닙니다"

김영서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9년간 목사인 친아버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습니다. 피해를 겪은 지 26년이 지난 올해,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극복한 기록을 담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8년 전 가명으로 썼던 책인데, 이번에 용기 있게 실명으로 개정판을 냈습니다. 김 씨는 "제가 쓰지 않으면 가해자는 기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합니다.

작가 김영서 씨는 성폭력 전담 상담가이기도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치유자가 된 겁니다. 김 씨는 그녀의 피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 많은 사람 덕분에 지금의 '김영서'로 살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7살 때 친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20대 김민지 씨도 당시의 기억을 담은 책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 씨를 포함한 12명의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녀는 "그동안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아요. 미투운동 이후에 많이 바뀌었죠. 그리고 저도 다른 생존자와 연대하며 바뀌기 시작한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사진 출처 :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사진 출처 :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신고하기까지 10년 넘게 걸리는데, 공소시효 때문에 처벌 안 받아"

이들이 얼굴을 내고, 실명으로 세상에 나온 이유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겪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성년자 성폭행의 경우, 친족을 포함한 아는 사람에게서 범죄가 일어나는 비율이 76%에 달합니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친족 관계일 경우, 성폭력이 지속된 비율은 51%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피해자가 성인이 돼 가족에게서 벗어난 뒤에야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소시효 때문에 가해자가 처벌 받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현행법은 만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 성폭력에 대해서만 공소시효 제한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김영서 씨는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55% 정도가, 자신의 문제를 외부에 알리기까지 보통 10년이라고 해요. 그런데 공소시효가 (보통) 10년 정도라서 성인이 돼서 '이제 신고해볼까?' 할 때 공소시효가 끝나있는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친족 성폭력을 당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았다며 공소시효를 폐지해달라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와 있습니다.


피해자 탓하고, 외면하고…신고 어렵게 하는 '2차 가해'

지금은 과거를 극복한 이들이지만,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 피해자 탓을 하는 '2차 가해'를 겪었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김영서 씨는 "대학교 1학년 때 상담 교수에게 처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더니 오랫동안 제가 말을 안 한 건 저한테도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어요. '세상에 도움을 요청해도 안 되는구나'라고 느꼈어요" 라고 말합니다.

김민지 씨도 "19살 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피해 사실을 말했는데 '이제 와서 어떡하느냐'는 말뿐이었다"며, 결국 신고 시기를 놓쳐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사기관에서 2차 가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영서 씨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남성) 경찰이 사건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같이 화내 준 덕분에 피해 사실을 더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며, "피해자를 마주할 경우 '지금이라도 용기 내 얘기해줘서 고맙다'며 격려하고 지지해달라"고 말합니다.

"피해로 힘든 점만 말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난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김영서 씨에게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김 씨가 저에게 했던 말입니다. 이들은 이미 피해를 극복했는데 언론에서 피해 사실에만 집중하고 이들을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건 당시 피해 상황으로 다시 몰아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의 시선을 거두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들이 원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입니다.

"피해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것에 대해서 사회가 함께 기뻐해 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른 피해자들도 좀 더 많이 나와서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우리 사회의 손길을 만났으면 좋겠고, 그분들이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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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치유자’가 된 성폭력 피해자들…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 입력 2020-12-16 10:01:06
    • 수정2020-12-16 10:01:25
    취재후·사건후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는 끔찍하지만, 그 일을 겪은 피해자가 끔찍한 건 아닙니다"

김영서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9년간 목사인 친아버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습니다. 피해를 겪은 지 26년이 지난 올해,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극복한 기록을 담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8년 전 가명으로 썼던 책인데, 이번에 용기 있게 실명으로 개정판을 냈습니다. 김 씨는 "제가 쓰지 않으면 가해자는 기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합니다.

작가 김영서 씨는 성폭력 전담 상담가이기도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치유자가 된 겁니다. 김 씨는 그녀의 피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 많은 사람 덕분에 지금의 '김영서'로 살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7살 때 친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20대 김민지 씨도 당시의 기억을 담은 책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 씨를 포함한 12명의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녀는 "그동안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아요. 미투운동 이후에 많이 바뀌었죠. 그리고 저도 다른 생존자와 연대하며 바뀌기 시작한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사진 출처 :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신고하기까지 10년 넘게 걸리는데, 공소시효 때문에 처벌 안 받아"

이들이 얼굴을 내고, 실명으로 세상에 나온 이유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겪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성년자 성폭행의 경우, 친족을 포함한 아는 사람에게서 범죄가 일어나는 비율이 76%에 달합니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친족 관계일 경우, 성폭력이 지속된 비율은 51%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피해자가 성인이 돼 가족에게서 벗어난 뒤에야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소시효 때문에 가해자가 처벌 받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현행법은 만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 성폭력에 대해서만 공소시효 제한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김영서 씨는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55% 정도가, 자신의 문제를 외부에 알리기까지 보통 10년이라고 해요. 그런데 공소시효가 (보통) 10년 정도라서 성인이 돼서 '이제 신고해볼까?' 할 때 공소시효가 끝나있는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친족 성폭력을 당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았다며 공소시효를 폐지해달라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와 있습니다.


피해자 탓하고, 외면하고…신고 어렵게 하는 '2차 가해'

지금은 과거를 극복한 이들이지만,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 피해자 탓을 하는 '2차 가해'를 겪었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김영서 씨는 "대학교 1학년 때 상담 교수에게 처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더니 오랫동안 제가 말을 안 한 건 저한테도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어요. '세상에 도움을 요청해도 안 되는구나'라고 느꼈어요" 라고 말합니다.

김민지 씨도 "19살 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피해 사실을 말했는데 '이제 와서 어떡하느냐'는 말뿐이었다"며, 결국 신고 시기를 놓쳐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사기관에서 2차 가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영서 씨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남성) 경찰이 사건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같이 화내 준 덕분에 피해 사실을 더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며, "피해자를 마주할 경우 '지금이라도 용기 내 얘기해줘서 고맙다'며 격려하고 지지해달라"고 말합니다.

"피해로 힘든 점만 말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난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김영서 씨에게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김 씨가 저에게 했던 말입니다. 이들은 이미 피해를 극복했는데 언론에서 피해 사실에만 집중하고 이들을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건 당시 피해 상황으로 다시 몰아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의 시선을 거두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들이 원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입니다.

"피해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것에 대해서 사회가 함께 기뻐해 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른 피해자들도 좀 더 많이 나와서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우리 사회의 손길을 만났으면 좋겠고, 그분들이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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