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일해도 여전히 ‘최저임금’…공공기관마저 이주 노동자 ‘차별’

입력 2020.12.18 (07:01) 수정 2020.12.18 (08:0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18일)은 UN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입니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이주 노동자150만 명이나 됩니다. '외국인 이주 노동운동협의회'가 올해 10대 키워드를 뽑았는데 관통하는 주제는 '배제와 차별'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주 노동자들이 국내에서 겪는 어려움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먼저 들어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나 외국인노동지원센터 등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통번역과 이중언어 코칭, 상담 등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주 노동자들을 상대로 상담 중인 A 씨이주 노동자들을 상대로 상담 중인 A 씨

A 씨는 2000년에 결혼 이민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2009년부터 경기도의 한 외국인노동지원센터에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구소련권 국가에서 온 이주 노동자를 상대로 통역상담 업무 등을 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 직원이 된 겁니다.

그는 11년째 같은 업무를 해 전문성이 많이 쌓였다고 취재진한테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3만 3천 원 많을 뿐이고 근무 형태도 무기계약직입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처우도 비슷합니다. A 씨가 일하는 외국인노동지원센터에는 A 씨를 포함해 7명의 이주 여성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 중 6명이 이곳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들은 명절 수당이나 상여금은커녕 식사비, 교통비도 전혀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또 근속 연수는 10년이 넘었지만 이들 중 승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A 씨는 "(이주 여성 노동자도)승진 대상으로 (명단에 )올리긴 하는데 그동안 10년 넘게 일한 6명, 그 누구도 승진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외국인노동지원센터에서)승진할 기회가 와도 우리(이주 여성 노동자)를 승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국인을 승진시키거나 내국인으로 자리를 채우는 게 낫다고 센터에서 생각하는 것 같다"라면서 "이제는 승진할 수 있다는 기대조차 안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통역뿐 아니라 상담에 행정 업무까지 하고 있고, 오랫동안 일해 전문성까지 생겼는데 (열악한)처우는 여전하다"면서 "나보다 나중에 온 이주 노동자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며 일했는데, 낮은 임금과 (사실상 제한된) 승진(기회)을 생각하면 좋지 않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주노동희망센터가 지난 16일 발표한 '공공기관 상담·통번역·이중언어 관련 이주여성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는 이들의 열악한 근로 조건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조사에 참여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다누리콜센터, 외국인상담센터 등에서 일하는 이주 여성 노동자 403명 가운데 3년 이상 근무한 비율은 77.9%였습니다.

이 중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비율은 8.9%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91.1%는 계약직이나 무기계약직, 시간제 근로 등의 형태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근무 경력이 이들의 처우에는 반영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행정직 직원'에 비해서도 임금이 낮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2020년 기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직원별 평균임금 현황'에 따르면 결혼한 이주 여성 노동자만 근무할 수 있는 '공공기관의 통번역과 이중언어코치' 직종의 평균 임금은 행정 직원의 평균 임금의 70%대 수준이었습니다.

같은 상시 근로직임에도 임금이 낮은 것입니다.

     지난 16일 '공공부문 상담 통번역 이중언어 업무 이주여성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발표 및 제도 개선 과제 토론회' 지난 16일 '공공부문 상담 통번역 이중언어 업무 이주여성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발표 및 제도 개선 과제 토론회'

이에 대해 담당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이들의)내년 임금을 6% 상승하기로 했다"면서 "(이들의)근본적 처우 개선을 위해 직무 분석을 해 급여 체계를 변경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담당 부처인 고용노동부 역시 "이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을 알고 있다"면서 "내년도 예산에 (이들의)처우 개선과 관련된 내용은 반영하지 못했지만, 현장의 외국인노동지원센터들과 이들의 처우를 개선할 방안이 있는지 고심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임금 상승과 더불어 이주 여성 노동자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합니다.

황정미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2007년부터 시작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활동이 벌써 15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통번역이나 이중언어코치, 상담 등의 일을 한 이들(이주 여성 노동자들)이 (그 분야에서)전문성을 갖추게 됐다"면서 "이러한 분들이 (이주 노동자 문제의)당사자이자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10년 일해도 여전히 ‘최저임금’…공공기관마저 이주 노동자 ‘차별’
    • 입력 2020-12-18 07:01:19
    • 수정2020-12-18 08:08:02
    취재K

오늘(18일)은 UN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입니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이주 노동자150만 명이나 됩니다. '외국인 이주 노동운동협의회'가 올해 10대 키워드를 뽑았는데 관통하는 주제는 '배제와 차별'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주 노동자들이 국내에서 겪는 어려움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먼저 들어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나 외국인노동지원센터 등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통번역과 이중언어 코칭, 상담 등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주 노동자들을 상대로 상담 중인 A 씨
A 씨는 2000년에 결혼 이민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2009년부터 경기도의 한 외국인노동지원센터에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구소련권 국가에서 온 이주 노동자를 상대로 통역상담 업무 등을 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 직원이 된 겁니다.

그는 11년째 같은 업무를 해 전문성이 많이 쌓였다고 취재진한테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3만 3천 원 많을 뿐이고 근무 형태도 무기계약직입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처우도 비슷합니다. A 씨가 일하는 외국인노동지원센터에는 A 씨를 포함해 7명의 이주 여성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 중 6명이 이곳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들은 명절 수당이나 상여금은커녕 식사비, 교통비도 전혀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또 근속 연수는 10년이 넘었지만 이들 중 승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A 씨는 "(이주 여성 노동자도)승진 대상으로 (명단에 )올리긴 하는데 그동안 10년 넘게 일한 6명, 그 누구도 승진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외국인노동지원센터에서)승진할 기회가 와도 우리(이주 여성 노동자)를 승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국인을 승진시키거나 내국인으로 자리를 채우는 게 낫다고 센터에서 생각하는 것 같다"라면서 "이제는 승진할 수 있다는 기대조차 안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통역뿐 아니라 상담에 행정 업무까지 하고 있고, 오랫동안 일해 전문성까지 생겼는데 (열악한)처우는 여전하다"면서 "나보다 나중에 온 이주 노동자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며 일했는데, 낮은 임금과 (사실상 제한된) 승진(기회)을 생각하면 좋지 않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주노동희망센터가 지난 16일 발표한 '공공기관 상담·통번역·이중언어 관련 이주여성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는 이들의 열악한 근로 조건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조사에 참여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다누리콜센터, 외국인상담센터 등에서 일하는 이주 여성 노동자 403명 가운데 3년 이상 근무한 비율은 77.9%였습니다.

이 중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비율은 8.9%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91.1%는 계약직이나 무기계약직, 시간제 근로 등의 형태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근무 경력이 이들의 처우에는 반영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행정직 직원'에 비해서도 임금이 낮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2020년 기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직원별 평균임금 현황'에 따르면 결혼한 이주 여성 노동자만 근무할 수 있는 '공공기관의 통번역과 이중언어코치' 직종의 평균 임금은 행정 직원의 평균 임금의 70%대 수준이었습니다.

같은 상시 근로직임에도 임금이 낮은 것입니다.

     지난 16일 '공공부문 상담 통번역 이중언어 업무 이주여성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발표 및 제도 개선 과제 토론회'
이에 대해 담당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이들의)내년 임금을 6% 상승하기로 했다"면서 "(이들의)근본적 처우 개선을 위해 직무 분석을 해 급여 체계를 변경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담당 부처인 고용노동부 역시 "이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을 알고 있다"면서 "내년도 예산에 (이들의)처우 개선과 관련된 내용은 반영하지 못했지만, 현장의 외국인노동지원센터들과 이들의 처우를 개선할 방안이 있는지 고심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임금 상승과 더불어 이주 여성 노동자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합니다.

황정미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2007년부터 시작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활동이 벌써 15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통번역이나 이중언어코치, 상담 등의 일을 한 이들(이주 여성 노동자들)이 (그 분야에서)전문성을 갖추게 됐다"면서 "이러한 분들이 (이주 노동자 문제의)당사자이자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