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어업 보상…고통은 ‘어민’, 이득은 ‘건물주’

입력 2020.12.18 (08:01) 수정 2020.12.1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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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식 어민 피해 보상, 시세보다 비싼 거래로 '얼룩'

강원도 삼척에서는 현재 대규모 화력발전소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업비가 5조 원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이 사업은 항만시설과 부지조성 등 각종 공사로 진행됩니다. 이 중 항만공사의 경우, 해상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만큼, 조업 공간과 어획량 등에서 피해를 볼 수 있는 어민들에 동의를 받고 피해 보상을 해주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같은 피해보상의 일환으로 발전소 사업체 측은 지난해 삼척의 한 어촌계에게 부동산 구매대금을 지원했습니다. '어민 소득증대' 명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래된 부동산의 면면이 이상합니다.

발전소 사업체 지원금으로 어촌계가 건물 2개를 샀는데, 하나는 우리가 흔히 룸살롱이라고 부르는 유흥주점이었습니다. 가격은 더 이상합니다. 어촌계는 지난해 9월 이 건물을 22억 원에 사들였습니다. 취재진이 시세를 문의해보니, 이 유흥주점의 3.3㎡당 가격은 1,3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넉 달 전인 지난해 5월 바로 옆에 있는 상가건물의 가격인 3.3㎡당 550여만 원보다 최소 2배 이상 비쌌습니다.

삼척지역 부동산 관계자들도 하나같이 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유흥주점을 매도한 건물주가 아직도 임대료를 내고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1월 이 어촌계는 펜션 건물도 구매합니다. 매매가격은 11억5천만 원입니다. 그런데 이 펜션의 주인은 다름 아닌 어촌계의 대표 격인 어촌계장 이 모 씨였습니다. 중개업소를 통해 이 가격도 비싸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도 이상한 점이 또 발견됩니다. 이 씨는 펜션을 판 후에도 이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어촌계에 1년 단위로 2,500만 원, 월세로 따지면 208만 원가량 세를 주고 여전히 거주하고 있는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삼척의 공인중개사는 이 임대료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싼 것이죠"라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위 두 사례는 모두 감정평가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사업이지만, 어떤 시세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건물주가 부르는 값'이 그대로 반영된 겁니다.

감정평가가 이뤄졌지만, 무시된 예도 있습니다. 올해 1월 어업인 단체인 삼척수산업협동조합에 소유권이 넘어간 삼척의 한 상가건물과 주차장의 매매가격은 27억 원입니다. '어업인 복지시설 건립' 명목입니다. 그런데, 돈을 대주는 발전소 사업자가 지난해 10월 이 건물 등에 대한 감정평가를 의뢰한 바 있습니다. 평가액은 19억7,800여만 원. 그러니까 감정가보다 7억 원 이상 비싸게 주고 산 게 됩니다.

소유권이 조합에 넘어간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복지시설은 갖춰지지도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수십 명의 어민과 공인중개사들은 "자신의 돈이라면 저런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건물주 "받을 만한 금액이다", 사업자 "우린 돈만 대준다"

유흥주점 건물주와 펜션을 넘긴 전 어촌계장, 감정평가액보다 수억 원이나 비싸게 건물을 넘긴 건물주는 모두 '적정한 가격이다'라는 입장입니다. 유흥주점 업주는 권리금이 무시 못 할 수준이라고 해명했고, 전 어촌계장 이 씨와 상가건물주는 건축비용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돈을 내준 발전소 사업자는 "보상을 받을 어민들이 지정하면 우리는 돈만 내준다"라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다수의 어촌계 어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담보로 받은 유흥주점이 현재 시장에 내놔도 22억 원은커녕, 12~13억 원에도 팔리기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촌계장의 펜션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입니다. 더구나, 펜션의 경우 어촌계 총회도 거치지 않는 등 심각한 절차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관리 감독 없는 '사각지대'…전기 요금 전가 우려

취재진이 살펴본 사례는 모두 본격적인 보상이 이뤄지기 전에 이뤄진 '임의 보상', 혹은 '위로금' 성격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보상 단계에서 근거로 삼는 '발전소주변지역법'과 '토지보상법'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또한, 이 발전소 사업은 민간사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업 허가권을 쥔 산업통상자원부도, 건설공사 인허가권을 가진 삼척시도, 발전소 사업이 관리 감독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런 상황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발전소 건설사업이 전기 생산이라는 '공공재' 영역인 데다, 나중에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이런 사업자의 투자비용까지 전기요금에 포함될 여지가 있습니다. 허투루 쓴 사업비가 전기요금으로 반영돼 국민의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시민단체에서는 주장합니다. '민간 사업자가 과연 손해 볼 일을 하겠나'라는 겁니다.

수상한 부동산 매매 상황이 포착되고, 어촌계원들의 처벌의사가 전해지면서 현재 동해지방해양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강원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보도 이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해경은 이미 펜션을 넘긴 전 어촌계장 이 씨와 해당 어촌계원 김 모 씨를 배임 혐의로 형사입건했습니다. 경찰도 별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KBS 보도 이후 삼척지역에서는 이 문제가 최대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주민들은 조만간 나올 수사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취재기자:박성은/촬영기자:최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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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18 08:01:23
    • 수정2020-12-18 08:08:02
    취재K


■'주먹구구'식 어민 피해 보상, 시세보다 비싼 거래로 '얼룩'

강원도 삼척에서는 현재 대규모 화력발전소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업비가 5조 원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이 사업은 항만시설과 부지조성 등 각종 공사로 진행됩니다. 이 중 항만공사의 경우, 해상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만큼, 조업 공간과 어획량 등에서 피해를 볼 수 있는 어민들에 동의를 받고 피해 보상을 해주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같은 피해보상의 일환으로 발전소 사업체 측은 지난해 삼척의 한 어촌계에게 부동산 구매대금을 지원했습니다. '어민 소득증대' 명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래된 부동산의 면면이 이상합니다.

발전소 사업체 지원금으로 어촌계가 건물 2개를 샀는데, 하나는 우리가 흔히 룸살롱이라고 부르는 유흥주점이었습니다. 가격은 더 이상합니다. 어촌계는 지난해 9월 이 건물을 22억 원에 사들였습니다. 취재진이 시세를 문의해보니, 이 유흥주점의 3.3㎡당 가격은 1,3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넉 달 전인 지난해 5월 바로 옆에 있는 상가건물의 가격인 3.3㎡당 550여만 원보다 최소 2배 이상 비쌌습니다.

삼척지역 부동산 관계자들도 하나같이 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유흥주점을 매도한 건물주가 아직도 임대료를 내고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1월 이 어촌계는 펜션 건물도 구매합니다. 매매가격은 11억5천만 원입니다. 그런데 이 펜션의 주인은 다름 아닌 어촌계의 대표 격인 어촌계장 이 모 씨였습니다. 중개업소를 통해 이 가격도 비싸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도 이상한 점이 또 발견됩니다. 이 씨는 펜션을 판 후에도 이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어촌계에 1년 단위로 2,500만 원, 월세로 따지면 208만 원가량 세를 주고 여전히 거주하고 있는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삼척의 공인중개사는 이 임대료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싼 것이죠"라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위 두 사례는 모두 감정평가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사업이지만, 어떤 시세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건물주가 부르는 값'이 그대로 반영된 겁니다.

감정평가가 이뤄졌지만, 무시된 예도 있습니다. 올해 1월 어업인 단체인 삼척수산업협동조합에 소유권이 넘어간 삼척의 한 상가건물과 주차장의 매매가격은 27억 원입니다. '어업인 복지시설 건립' 명목입니다. 그런데, 돈을 대주는 발전소 사업자가 지난해 10월 이 건물 등에 대한 감정평가를 의뢰한 바 있습니다. 평가액은 19억7,800여만 원. 그러니까 감정가보다 7억 원 이상 비싸게 주고 산 게 됩니다.

소유권이 조합에 넘어간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복지시설은 갖춰지지도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수십 명의 어민과 공인중개사들은 "자신의 돈이라면 저런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건물주 "받을 만한 금액이다", 사업자 "우린 돈만 대준다"

유흥주점 건물주와 펜션을 넘긴 전 어촌계장, 감정평가액보다 수억 원이나 비싸게 건물을 넘긴 건물주는 모두 '적정한 가격이다'라는 입장입니다. 유흥주점 업주는 권리금이 무시 못 할 수준이라고 해명했고, 전 어촌계장 이 씨와 상가건물주는 건축비용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돈을 내준 발전소 사업자는 "보상을 받을 어민들이 지정하면 우리는 돈만 내준다"라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다수의 어촌계 어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담보로 받은 유흥주점이 현재 시장에 내놔도 22억 원은커녕, 12~13억 원에도 팔리기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촌계장의 펜션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입니다. 더구나, 펜션의 경우 어촌계 총회도 거치지 않는 등 심각한 절차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관리 감독 없는 '사각지대'…전기 요금 전가 우려

취재진이 살펴본 사례는 모두 본격적인 보상이 이뤄지기 전에 이뤄진 '임의 보상', 혹은 '위로금' 성격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보상 단계에서 근거로 삼는 '발전소주변지역법'과 '토지보상법'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또한, 이 발전소 사업은 민간사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업 허가권을 쥔 산업통상자원부도, 건설공사 인허가권을 가진 삼척시도, 발전소 사업이 관리 감독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런 상황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발전소 건설사업이 전기 생산이라는 '공공재' 영역인 데다, 나중에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이런 사업자의 투자비용까지 전기요금에 포함될 여지가 있습니다. 허투루 쓴 사업비가 전기요금으로 반영돼 국민의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시민단체에서는 주장합니다. '민간 사업자가 과연 손해 볼 일을 하겠나'라는 겁니다.

수상한 부동산 매매 상황이 포착되고, 어촌계원들의 처벌의사가 전해지면서 현재 동해지방해양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강원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보도 이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해경은 이미 펜션을 넘긴 전 어촌계장 이 씨와 해당 어촌계원 김 모 씨를 배임 혐의로 형사입건했습니다. 경찰도 별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KBS 보도 이후 삼척지역에서는 이 문제가 최대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주민들은 조만간 나올 수사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취재기자:박성은/촬영기자:최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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