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日우익 ‘10년의 공격’…산토리는 왜 표적이 됐나

입력 2020.12.18 (09:46) 수정 2020.12.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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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류업체 ‘산토리’를 겨냥한 3차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1차와 2차 공격이 일본의 극우 성향 누리꾼들을 뜻하는 ‘네트 우익’(Net右翼) 주도로 이뤄졌다면, 이번 공격은 경쟁 기업 회장이 직접 나섰습니다.

방식은 거의 똑같습니다. 멀쩡한 기업을 표적 삼아 ‘친한·반일 기업’으로 낙인 찍고, 비뚤어진 애국심에 호소해 불매 운동을 부추기는 식입니다.

이 악의적인 공격이 벌써 10년째입니다.


■‘동해’ 표기…우익 뭇매에 삭제

산토리가 2011년 8월 ‘동해 표기’와 관련해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산토리가 2011년 8월 ‘동해 표기’와 관련해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시작은 2011년 8월입니다. 산토리홀딩스는 당시 한국 소주인 ‘경월(鏡月) 그린’을 수입 판매하면서 이런 상품 설명을 달았습니다.

“‘경월’이란 이름은 대한민국의 동해(일본해)에 인접한 호수 ‘경포호’ 기슭에 있는 오래된 누각 ‘경포대’에서 연인과 술잔을 기울이면 그곳에서 보이는 5개의 달을 노래한 시(詩)에서 유래했습니다.”

일본 우익들은 이 ‘동해’라는 표기에 발끈했습니다. “일본 기업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일본해((Sea of Japan)보다 동해를 먼저 표기한 건 애국심이 부족한 ‘반일 기업’이란 증거”라고 공격했습니다. 산토리에 항의 전화와 메일이 쇄도했고, 급기야 불매 운동으로까지 확산했습니다.

산토리는 결국 우익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8월 19일 웹사이트에 사과문을 걸고, 광고 문구도 수정했습니다.

이른바 ‘산토리 동해 호칭 사건’입니다.

“‘경월’ 이름의 유래를 소개하는 글 중에 있었던 지명 표기는 어디까지나 상품을 소개하기 위한 광고상의 표현이지 지명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님께 불쾌한 경험을 드린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산토리 사과문)


■“가짜 일본인은 나가라!”

산토리 상품 모델로 기용됐다가 민족 차별적 공격을 받은 일본 여배우 미즈하라 키코산토리 상품 모델로 기용됐다가 민족 차별적 공격을 받은 일본 여배우 미즈하라 키코

잠잠해지나 싶었던 ‘산토리 공격’은 6년 뒤 다시 재개됩니다.

산토리는 2017년 9월, 자사 맥주 제품인 ‘프리미엄 몰츠’ 특별 캠페인 모델로 미즈하라 키코(水原希子)를 내세웠습니다. 발랄하고 개성 넘치는 이미지로 젊은 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 겸 배우입니다.

미국인 아버지와 재일 한국인 어머니를 두고 있으며, 텍사스에서 태어난 미국인입니다. 2살 때부터 일본 고베(神戸)에서 살았습니다.

‘동해 호칭 사건’으로 산토리는 이미 눈엣가시가 된 상황. 우익들은 기다렸다는 듯 ‘2차 공격’을 천명했습니다.

광고가 실린 트위터에는 “일본 기업이 왜 일본인 모델을 쓰지 않느냐”, “미국 국적 조선인, 미즈하라는 사이비(가짜) 일본인”이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민족·국가주의에 기댄 불매운동 협박도 어김없었습니다.

미즈하라는 2018년 4월 2일,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2주 정도 내내 울기만 했어요. 하지만 제 트위터 댓글은 하나도 지우지 않았어요. (중략) 저는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지고, 이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어요. 덕분에 전 세계 친구를 사귈 수 있었죠. 저는 자신을 ‘지구 시민’으로 여깁니다.


■DHC 회장, ”‘춍 토리’라고 야유“

일본 화장품 업체 DHC의 요시다 회장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산토리를 ‘춍 토리’라고 비하했다일본 화장품 업체 DHC의 요시다 회장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산토리를 ‘춍 토리’라고 비하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산토리 3차 공격’. 이번엔 화장품 업체인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吉田嘉明) 회장이 11월 본인 명의 글을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 올려 재일 한국·조선인을 비하했습니다.

요시다는 ‘자포자기 추첨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업계 1위 산토리와 자사(업계 2위) 제품을 비교하면서 ”산토리 CF(광고)에 기용된 탤런트는 어찌 된 일인지 거의 전원이 코리아(한국·조선) 계열 일본인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춍 토리’라고 야유당하는 것 같다“고 썼습니다.

‘춍 토리’는 재일 한국·조선인 등을 멸시하는 표현인 ‘춍’(チョン)에 산토리의 ‘토리’를 합성한 말로 보입니다.

요시다는 또 ”DHC는 기용한 탤런트를 비롯해 모든 것이 순수한 일본 기업“이라며 경쟁사와 재일 한국·조선인을 싸잡아 깎아내렸습니다. 대기업 CEO마저 배외주의(排外主義)적 공격의 선봉에 선 겁니다.


■역풍 맞은 DHC의 ‘혐한 마케팅’

일본 DHC에 대한 비난과 불매를 촉구하는 ‘#차별 기업, DHC의 상품은 사지 않습니다’ 해시태그의 트위터 게시물일본 DHC에 대한 비난과 불매를 촉구하는 ‘#차별 기업, DHC의 상품은 사지 않습니다’ 해시태그의 트위터 게시물

요시다는 ‘혐한 발언’은 이번뿐이 아닙니다. 그는 과거 ”일본의 정계, 언론계, 법조계, 관료, 연예계, 스포츠계에 특히 ‘사이비 일본인’(재일 한국인)이 많다. 재판관이 자이니치(在日)일 경우 제소한 쪽(일본인)이 100% 패소한다“는 등 차별 발언을 반복해 왔습니다.

다만 비열한 방법으로 경쟁사를 때려 매출을 올려보겠다는 요시다의 노림수는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증오 문제에 정통한 모로오카 야스코(師岡康子) 변호사는 17일 마이니치(每日)신문 인터뷰에서 ”DHC는 한국계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해 경멸하고 있다“며 ”부당하거나 차별적 언동이 없는 사회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증오 해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트위터에선 ‘#차별 기업, DHC의 상품은 사지 않습니다’는 등의 해시태그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산토리와 DHC의 입장은?

산토리가 홈페이지에 올린 인권 방침과 관련 세미나 모습산토리가 홈페이지에 올린 인권 방침과 관련 세미나 모습

마지막으로 산토리와 DHC 측에 입장을 물었습니다. 양사 모두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습니다. 다만 산토리 측은 반복되는 공격에 대해 ”회사는 인권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산토리 홈페이지에는 회사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권 방침’이 구체적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사회 일원인 기업으로서 모든 활동에서 인권 존중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을 기준 삼아 각 국가와 지역 내 법과 규제를 준수하겠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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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日우익 ‘10년의 공격’…산토리는 왜 표적이 됐나
    • 입력 2020-12-18 09:46:36
    • 수정2020-12-21 10:55:20
    특파원 리포트
일본 주류업체 ‘산토리’를 겨냥한 3차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1차와 2차 공격이 일본의 극우 성향 누리꾼들을 뜻하는 ‘네트 우익’(Net右翼) 주도로 이뤄졌다면, 이번 공격은 경쟁 기업 회장이 직접 나섰습니다.

방식은 거의 똑같습니다. 멀쩡한 기업을 표적 삼아 ‘친한·반일 기업’으로 낙인 찍고, 비뚤어진 애국심에 호소해 불매 운동을 부추기는 식입니다.

이 악의적인 공격이 벌써 10년째입니다.


■‘동해’ 표기…우익 뭇매에 삭제

산토리가 2011년 8월 ‘동해 표기’와 관련해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시작은 2011년 8월입니다. 산토리홀딩스는 당시 한국 소주인 ‘경월(鏡月) 그린’을 수입 판매하면서 이런 상품 설명을 달았습니다.

“‘경월’이란 이름은 대한민국의 동해(일본해)에 인접한 호수 ‘경포호’ 기슭에 있는 오래된 누각 ‘경포대’에서 연인과 술잔을 기울이면 그곳에서 보이는 5개의 달을 노래한 시(詩)에서 유래했습니다.”

일본 우익들은 이 ‘동해’라는 표기에 발끈했습니다. “일본 기업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일본해((Sea of Japan)보다 동해를 먼저 표기한 건 애국심이 부족한 ‘반일 기업’이란 증거”라고 공격했습니다. 산토리에 항의 전화와 메일이 쇄도했고, 급기야 불매 운동으로까지 확산했습니다.

산토리는 결국 우익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8월 19일 웹사이트에 사과문을 걸고, 광고 문구도 수정했습니다.

이른바 ‘산토리 동해 호칭 사건’입니다.

“‘경월’ 이름의 유래를 소개하는 글 중에 있었던 지명 표기는 어디까지나 상품을 소개하기 위한 광고상의 표현이지 지명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님께 불쾌한 경험을 드린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산토리 사과문)


■“가짜 일본인은 나가라!”

산토리 상품 모델로 기용됐다가 민족 차별적 공격을 받은 일본 여배우 미즈하라 키코
잠잠해지나 싶었던 ‘산토리 공격’은 6년 뒤 다시 재개됩니다.

산토리는 2017년 9월, 자사 맥주 제품인 ‘프리미엄 몰츠’ 특별 캠페인 모델로 미즈하라 키코(水原希子)를 내세웠습니다. 발랄하고 개성 넘치는 이미지로 젊은 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 겸 배우입니다.

미국인 아버지와 재일 한국인 어머니를 두고 있으며, 텍사스에서 태어난 미국인입니다. 2살 때부터 일본 고베(神戸)에서 살았습니다.

‘동해 호칭 사건’으로 산토리는 이미 눈엣가시가 된 상황. 우익들은 기다렸다는 듯 ‘2차 공격’을 천명했습니다.

광고가 실린 트위터에는 “일본 기업이 왜 일본인 모델을 쓰지 않느냐”, “미국 국적 조선인, 미즈하라는 사이비(가짜) 일본인”이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민족·국가주의에 기댄 불매운동 협박도 어김없었습니다.

미즈하라는 2018년 4월 2일,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2주 정도 내내 울기만 했어요. 하지만 제 트위터 댓글은 하나도 지우지 않았어요. (중략) 저는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지고, 이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어요. 덕분에 전 세계 친구를 사귈 수 있었죠. 저는 자신을 ‘지구 시민’으로 여깁니다.


■DHC 회장, ”‘춍 토리’라고 야유“

일본 화장품 업체 DHC의 요시다 회장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산토리를 ‘춍 토리’라고 비하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산토리 3차 공격’. 이번엔 화장품 업체인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吉田嘉明) 회장이 11월 본인 명의 글을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 올려 재일 한국·조선인을 비하했습니다.

요시다는 ‘자포자기 추첨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업계 1위 산토리와 자사(업계 2위) 제품을 비교하면서 ”산토리 CF(광고)에 기용된 탤런트는 어찌 된 일인지 거의 전원이 코리아(한국·조선) 계열 일본인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춍 토리’라고 야유당하는 것 같다“고 썼습니다.

‘춍 토리’는 재일 한국·조선인 등을 멸시하는 표현인 ‘춍’(チョン)에 산토리의 ‘토리’를 합성한 말로 보입니다.

요시다는 또 ”DHC는 기용한 탤런트를 비롯해 모든 것이 순수한 일본 기업“이라며 경쟁사와 재일 한국·조선인을 싸잡아 깎아내렸습니다. 대기업 CEO마저 배외주의(排外主義)적 공격의 선봉에 선 겁니다.


■역풍 맞은 DHC의 ‘혐한 마케팅’

일본 DHC에 대한 비난과 불매를 촉구하는 ‘#차별 기업, DHC의 상품은 사지 않습니다’ 해시태그의 트위터 게시물
요시다는 ‘혐한 발언’은 이번뿐이 아닙니다. 그는 과거 ”일본의 정계, 언론계, 법조계, 관료, 연예계, 스포츠계에 특히 ‘사이비 일본인’(재일 한국인)이 많다. 재판관이 자이니치(在日)일 경우 제소한 쪽(일본인)이 100% 패소한다“는 등 차별 발언을 반복해 왔습니다.

다만 비열한 방법으로 경쟁사를 때려 매출을 올려보겠다는 요시다의 노림수는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증오 문제에 정통한 모로오카 야스코(師岡康子) 변호사는 17일 마이니치(每日)신문 인터뷰에서 ”DHC는 한국계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해 경멸하고 있다“며 ”부당하거나 차별적 언동이 없는 사회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증오 해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트위터에선 ‘#차별 기업, DHC의 상품은 사지 않습니다’는 등의 해시태그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산토리와 DHC의 입장은?

산토리가 홈페이지에 올린 인권 방침과 관련 세미나 모습
마지막으로 산토리와 DHC 측에 입장을 물었습니다. 양사 모두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습니다. 다만 산토리 측은 반복되는 공격에 대해 ”회사는 인권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산토리 홈페이지에는 회사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권 방침’이 구체적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사회 일원인 기업으로서 모든 활동에서 인권 존중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을 기준 삼아 각 국가와 지역 내 법과 규제를 준수하겠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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