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그 사람을 회장으로…아이스하키인들이 왜?

입력 2020.12.18 (10:34) 수정 2020.12.18 (13:4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 베테랑을 기억하실 겁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 영화죠. 배우 유아인씨의 '어이가 없네' 이 대사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재벌의 부조리를 보여준 이 영화는 SK 재벌가인 M&M 대표 최철원 씨가 연루된 사건을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201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흔들었던 이른바 '맷값 폭행'사건입니다. 2010년 최 씨는 화물연대 소속 운전기사를 야구 방망이로 때리고 맷값으로 돈을 건넨 혐의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최씨가 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며 논란은 시작됐습니다.

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 관리규정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 관리규정

아이스하키협회 회장선거관리 규정상,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사람은 후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결격사유 중 하나가 '사회적 물의'입니다.

협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사회적 물의'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여겼습니다.

협회는 4개의 법무법인에 의견을 물었고 3개의 법무법인으로부터 "이를 이유로 선거 출마를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협회 선관위는 이를 근거로 최 씨를 후보로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적 해석은 일반적 정서와 동떨어졌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황다연 KBS 자문 변호사는 "'사회적 물의'는 뚜렷한 기준이 아니므로 해석상 집행유예는 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넓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반 상식선에서 바라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도 " 사회적 물의는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다. 이 사안은 충분히 사회적 물의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체육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체육시민연대는 지난 15일 성명서를 통해 최 씨의 후보 사퇴를 요구하면서 "군대에서 빠따 정도의 훈육이라고 주장해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던 이런 정도의 일은 사회적 물의로 불분명하다는 것이냐. 이보다 더한 사회적 물의는 무엇이란 말이냐"고 꼬집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지난 16일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필요한 '베테랑'이 최 씨는 아니지 않냐"라며 최 씨의 후보 사퇴와 아이스하키 협회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스하키협회는 선거인단에 책임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어제(17일) 열린 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에서 최 씨는 유효 투표 82표 중 62표를 받으며 24대 회장에 당선됐습니다. 약 75%. 그야말로 압도적인 지지입니다.

최철원 대표와 그의 공약 최철원 대표와 그의 공약


■최 씨, "아이스하키인들이 선거 출마를 부탁한 것"

최 씨는 KBS와 통화에서 아이스하키협회 회장에 출마한 배경에 대해 "2년 전부터 아이스하키인들이 선거 출마를 간곡히 부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투표로 증명됐습니다.

아이스하키인들이 최 씨에게 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 씨는 아이스하키 동호인이자, SK 오너 일가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입니다.

SK 그룹은 핸드볼협회와 펜싱협회의 회장사이기도 합니다. SK의 계열사는 아니지만 최 씨에게도 '혹시나….'하며 통큰 투자를 기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13년부터 8년 동안 협회 운영을 위해 사비를 써왔던 현 협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처럼 말입니다.

실제 최 씨는 전용 시설 확충, 실업팀 창단 등의 공약을 걸었습니다.

상무 아이스하키단이 사라지고, 실업팀 하이원마저 한 때 고사위기에 빠졌던 만큼, 최 씨의 당선을 반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최 씨는 만약 당선된다면 "정말 잘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아이스하키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의견은 갈렸습니다.

"누군가를 폭행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는 의견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최 씨같이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오는 것을 누가 거부하겠느냐"라는 의견도 함께 있었습니다.

아이스하키의 어려운 상황을 토로하면서 회장선거에 많은 이들이 나서지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결국, 아이스하키인들은 도덕적 문제보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선택한 겁니다.


■ 이제 대한체육회의 선택만 남았다.

이제 공은 대한체육회로 넘어갔습니다. 아이스하키협회 새 회장의 임기는 내년 1월 말 정기총회부터 시작됩니다. 아이스하키협회는 그 전에 체육회에 회장 인준을 요청해야 합니다.

대한체육회는 종목 단체장에 대한 인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육회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체육회는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관련 규정이나 법률 등, 여러 가지를 다각도에서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회에 엄격한 판단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체육시민연대 공동 대표인 허정훈 중앙대 교수는 "파렴치한 일을 해도 재벌이면 체육단체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대한체육회는 인준을 거부하고 문체부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영화 베테랑의 대사들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쪽팔리게 살지 말자". 선택의 순간에 선 아이스하키인들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해법은 기업인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 대사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 무엇이었을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10년전 그 사람을 회장으로…아이스하키인들이 왜?
    • 입력 2020-12-18 10:34:05
    • 수정2020-12-18 13:42:04
    스포츠K

영화 베테랑을 기억하실 겁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 영화죠. 배우 유아인씨의 '어이가 없네' 이 대사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재벌의 부조리를 보여준 이 영화는 SK 재벌가인 M&M 대표 최철원 씨가 연루된 사건을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201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흔들었던 이른바 '맷값 폭행'사건입니다. 2010년 최 씨는 화물연대 소속 운전기사를 야구 방망이로 때리고 맷값으로 돈을 건넨 혐의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최씨가 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며 논란은 시작됐습니다.

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 관리규정
아이스하키협회 회장선거관리 규정상,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사람은 후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결격사유 중 하나가 '사회적 물의'입니다.

협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사회적 물의'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여겼습니다.

협회는 4개의 법무법인에 의견을 물었고 3개의 법무법인으로부터 "이를 이유로 선거 출마를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협회 선관위는 이를 근거로 최 씨를 후보로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적 해석은 일반적 정서와 동떨어졌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황다연 KBS 자문 변호사는 "'사회적 물의'는 뚜렷한 기준이 아니므로 해석상 집행유예는 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넓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반 상식선에서 바라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도 " 사회적 물의는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다. 이 사안은 충분히 사회적 물의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체육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체육시민연대는 지난 15일 성명서를 통해 최 씨의 후보 사퇴를 요구하면서 "군대에서 빠따 정도의 훈육이라고 주장해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던 이런 정도의 일은 사회적 물의로 불분명하다는 것이냐. 이보다 더한 사회적 물의는 무엇이란 말이냐"고 꼬집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지난 16일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필요한 '베테랑'이 최 씨는 아니지 않냐"라며 최 씨의 후보 사퇴와 아이스하키 협회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스하키협회는 선거인단에 책임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어제(17일) 열린 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에서 최 씨는 유효 투표 82표 중 62표를 받으며 24대 회장에 당선됐습니다. 약 75%. 그야말로 압도적인 지지입니다.

최철원 대표와 그의 공약

■최 씨, "아이스하키인들이 선거 출마를 부탁한 것"

최 씨는 KBS와 통화에서 아이스하키협회 회장에 출마한 배경에 대해 "2년 전부터 아이스하키인들이 선거 출마를 간곡히 부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투표로 증명됐습니다.

아이스하키인들이 최 씨에게 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 씨는 아이스하키 동호인이자, SK 오너 일가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입니다.

SK 그룹은 핸드볼협회와 펜싱협회의 회장사이기도 합니다. SK의 계열사는 아니지만 최 씨에게도 '혹시나….'하며 통큰 투자를 기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13년부터 8년 동안 협회 운영을 위해 사비를 써왔던 현 협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처럼 말입니다.

실제 최 씨는 전용 시설 확충, 실업팀 창단 등의 공약을 걸었습니다.

상무 아이스하키단이 사라지고, 실업팀 하이원마저 한 때 고사위기에 빠졌던 만큼, 최 씨의 당선을 반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최 씨는 만약 당선된다면 "정말 잘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아이스하키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의견은 갈렸습니다.

"누군가를 폭행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는 의견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최 씨같이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오는 것을 누가 거부하겠느냐"라는 의견도 함께 있었습니다.

아이스하키의 어려운 상황을 토로하면서 회장선거에 많은 이들이 나서지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결국, 아이스하키인들은 도덕적 문제보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선택한 겁니다.


■ 이제 대한체육회의 선택만 남았다.

이제 공은 대한체육회로 넘어갔습니다. 아이스하키협회 새 회장의 임기는 내년 1월 말 정기총회부터 시작됩니다. 아이스하키협회는 그 전에 체육회에 회장 인준을 요청해야 합니다.

대한체육회는 종목 단체장에 대한 인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육회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체육회는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관련 규정이나 법률 등, 여러 가지를 다각도에서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회에 엄격한 판단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체육시민연대 공동 대표인 허정훈 중앙대 교수는 "파렴치한 일을 해도 재벌이면 체육단체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대한체육회는 인준을 거부하고 문체부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영화 베테랑의 대사들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쪽팔리게 살지 말자". 선택의 순간에 선 아이스하키인들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해법은 기업인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 대사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 무엇이었을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