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문화재청 “이전 복원”…3백년 동래읍성 생활유적 사라진다

입력 2020.12.18 (18:23) 수정 2020.12.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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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KBS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동래읍성 생활유적지난 10월, KBS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동래읍성 생활유적

■ 결국 사라지게 된 300년 동래읍성 생활유적
지난해 8월, 부산 동래구청이 새 청사를 건립하려는 터에서 300년 전 조선시대 동래읍성 생활유적 97기가 발견됐습니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뒤 문화재청은 "해당 생활유적을 해체해 새로 짓는 동래구청 건물 안으로 옮기라."고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3백 년 전 만들어진 동래읍성의 유적지가 현장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행정조치입니다.

지난 16일 열린 문화재청 매장 문화재 분과위원회는 해당 동래읍성 유적을 이전해 복원하는 조건으로 새 동래구청사 건설을 허가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장에 유적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유적을 옮겨서 건물 안에 전시하라는 조치입니다. 문화재청은 동래읍성 생활유적을 어떻게 보존할지, 1년 넘게 고민했습니다.

지난 10월 발굴조사단 학술 자문회의에서 "생활유적을 기록으로 남긴 뒤 유적을 없애겠다."라는 후속 조치를 권고했습니다. 유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KBS 취재진은 '동래읍성 유적지' 공개를 촉구했고, 같은 달 뉴스를 통해 동래읍성 생활유적이 처음 공개됐습니다. 3백 년 전 돌과 흙, 나무를 쌓아 만든 배수로와 우물, 집터 등 당시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습니다. 지역 역사학계 등의 반발이 거세졌고, 여론에 밀려 문화재청은 결국 '이전 복원'을 결정했습니다. 기록으로 남고 사라질 뻔한 유적이 이전되고 유적지가 그대로 남으니 안심해도 될까요?


"옮겨서 전시하는 건 문화재 파괴"…'왜적에 맞선 살아있는 역사"
고고학 전문가들은 "유적이 옮겨져 복원되는 것은 결국 파괴"라고 말합니다. 300년 전 조상들의 생활사를 현세의 사람이 똑같이 복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토기와 같은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란 겁니다. 또한 동래읍성의 생활유적에 담긴 역사는 관청이나 귀족의 유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폄훼되기엔 무겁습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지어진 동래읍성은 영조 7년에 더 큰 규모로 확대됩니다. 백성을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안으로 들여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읍성과 읍성 주변의 생활유적은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의 조정이 백성을 더 많이 살리기 위해 혁신했다는 증거입니다. 일본의 침입으로부터 우리 선조가 어떻게 공존하고 연대했는지를 볼 수 있는 흔적이지만 공공기관인 동래구청과 문화재청, 부산시마저 이를 외면했습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현장 조사하는 모습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현장 조사하는 모습

■ '대안이 없었을까?'…동래구청·문화재청·부산시의 '거짓과 변명'
그렇다면, 이런 의미 있는 유적을 현장 보존하기 위해 '동래구청이 다른 곳에 새 청사를 지으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 동래구청은 지역 유림이 반대한다며 다른 터로 이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과 통화한 정동일 성균관유도회 부산지부장은 "지켜야 할 옛것을 공부하는 유림이 생활유적 파괴에 앞장설 이유가 없다."며 "동래읍성 생활유적을 잘 보존하기 위해선 동래구청이 다른 터를 찾는 것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꾸며낸 말을 전한 겁니다.

여기다 동래구청은 더 이상 옮겨갈 곳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동래구는 동래문화회관 맞은편 터를 검토했지만 적극적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왕릉과 같은 거대 유적이 아닌 생활유적도 보존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경우, 엄청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난개발 투성이인 부산에서 '무질서한 도시화'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견제해야 할 문제이지, 이를 핑계로 지켜야 할 역사 환경을 훼손시키는 것은 공공기관이 개발을 부추기는 것에 불과합니다.

부산시의 책임도 있습니다. 동래구청의 신청사 건립은 부산시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동래읍성은 부산시 지정 문화재이기 때문에 동래읍성 일부가 묻힌 구청 아래 토지는 부산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발굴조사를 거친 뒤, 개발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유적이 없을 거란 판단 아래 문화재위원들은 이를 허가했습니다. 허가를 받은 이상, 땅이 파헤쳐지고 신청사 건립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은 뻔한 전개입니다. 문화재청의 고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애초 지역 사회에서 허가했으면 안 됐을 심의였다고 말했습니다.


■ 현재와 과거 중 양자택일?…문화재 보존에 대한 '낡은 잣대'
재산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동래구청은 1963년에 지어져 건물이 노후화됐습니다. 또한 주변으로는 이미 상권이 들어서 있습니다. 신청사가 하루 빨리 완공돼 구청 공무원이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와 상인들의 생계권이 보장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만, 역사를 허문다는 것에 대해선 신중해야만 합니다. 현재의 사람들이 유적 보존 의지를 갖고 고민하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역사 전문가는 지하를 파지 않고 지상으로만 건물을 짓는다면 현장 보존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다른 부지가 있었던 만큼 유적을 훼손하지 않을 방법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문제를 단순 '역사 보존'과 '현시대 재산권'이라는 대립구도로 바라보아선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돼버린 부산에, 지금과 같은 인식으로 현 시대인들의 요구만을 우선시한다면 결국 역사적인 장소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 시대 생활상과 주거 형태를 알 수 있었던 흔적은 앞으로 발굴될 가능성이 극히 드뭅니다. 발굴된다고 하더라도, 동래구청과 같은 공공기관 부지 아래가 아닌 경우 민간 사업자의 재산권 희생 없이는 보존이 불가능합니다. 이번 동래구청 신청사 허가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발견되는 유적에 대해 공공기관과 지역사회가 더욱 적극적인 과거와의 공생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연관기사] 동래읍성 유적 옮겨서 보존…“훼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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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문화재청 “이전 복원”…3백년 동래읍성 생활유적 사라진다
    • 입력 2020-12-18 18:23:35
    • 수정2020-12-18 18:26:53
    취재후·사건후
지난 10월, KBS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동래읍성 생활유적
■ 결국 사라지게 된 300년 동래읍성 생활유적
지난해 8월, 부산 동래구청이 새 청사를 건립하려는 터에서 300년 전 조선시대 동래읍성 생활유적 97기가 발견됐습니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뒤 문화재청은 "해당 생활유적을 해체해 새로 짓는 동래구청 건물 안으로 옮기라."고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3백 년 전 만들어진 동래읍성의 유적지가 현장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행정조치입니다.

지난 16일 열린 문화재청 매장 문화재 분과위원회는 해당 동래읍성 유적을 이전해 복원하는 조건으로 새 동래구청사 건설을 허가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장에 유적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유적을 옮겨서 건물 안에 전시하라는 조치입니다. 문화재청은 동래읍성 생활유적을 어떻게 보존할지, 1년 넘게 고민했습니다.

지난 10월 발굴조사단 학술 자문회의에서 "생활유적을 기록으로 남긴 뒤 유적을 없애겠다."라는 후속 조치를 권고했습니다. 유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KBS 취재진은 '동래읍성 유적지' 공개를 촉구했고, 같은 달 뉴스를 통해 동래읍성 생활유적이 처음 공개됐습니다. 3백 년 전 돌과 흙, 나무를 쌓아 만든 배수로와 우물, 집터 등 당시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습니다. 지역 역사학계 등의 반발이 거세졌고, 여론에 밀려 문화재청은 결국 '이전 복원'을 결정했습니다. 기록으로 남고 사라질 뻔한 유적이 이전되고 유적지가 그대로 남으니 안심해도 될까요?


"옮겨서 전시하는 건 문화재 파괴"…'왜적에 맞선 살아있는 역사"
고고학 전문가들은 "유적이 옮겨져 복원되는 것은 결국 파괴"라고 말합니다. 300년 전 조상들의 생활사를 현세의 사람이 똑같이 복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토기와 같은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란 겁니다. 또한 동래읍성의 생활유적에 담긴 역사는 관청이나 귀족의 유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폄훼되기엔 무겁습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지어진 동래읍성은 영조 7년에 더 큰 규모로 확대됩니다. 백성을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안으로 들여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읍성과 읍성 주변의 생활유적은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의 조정이 백성을 더 많이 살리기 위해 혁신했다는 증거입니다. 일본의 침입으로부터 우리 선조가 어떻게 공존하고 연대했는지를 볼 수 있는 흔적이지만 공공기관인 동래구청과 문화재청, 부산시마저 이를 외면했습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현장 조사하는 모습
■ '대안이 없었을까?'…동래구청·문화재청·부산시의 '거짓과 변명'
그렇다면, 이런 의미 있는 유적을 현장 보존하기 위해 '동래구청이 다른 곳에 새 청사를 지으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 동래구청은 지역 유림이 반대한다며 다른 터로 이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과 통화한 정동일 성균관유도회 부산지부장은 "지켜야 할 옛것을 공부하는 유림이 생활유적 파괴에 앞장설 이유가 없다."며 "동래읍성 생활유적을 잘 보존하기 위해선 동래구청이 다른 터를 찾는 것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꾸며낸 말을 전한 겁니다.

여기다 동래구청은 더 이상 옮겨갈 곳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동래구는 동래문화회관 맞은편 터를 검토했지만 적극적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왕릉과 같은 거대 유적이 아닌 생활유적도 보존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경우, 엄청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난개발 투성이인 부산에서 '무질서한 도시화'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견제해야 할 문제이지, 이를 핑계로 지켜야 할 역사 환경을 훼손시키는 것은 공공기관이 개발을 부추기는 것에 불과합니다.

부산시의 책임도 있습니다. 동래구청의 신청사 건립은 부산시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동래읍성은 부산시 지정 문화재이기 때문에 동래읍성 일부가 묻힌 구청 아래 토지는 부산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발굴조사를 거친 뒤, 개발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유적이 없을 거란 판단 아래 문화재위원들은 이를 허가했습니다. 허가를 받은 이상, 땅이 파헤쳐지고 신청사 건립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은 뻔한 전개입니다. 문화재청의 고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애초 지역 사회에서 허가했으면 안 됐을 심의였다고 말했습니다.


■ 현재와 과거 중 양자택일?…문화재 보존에 대한 '낡은 잣대'
재산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동래구청은 1963년에 지어져 건물이 노후화됐습니다. 또한 주변으로는 이미 상권이 들어서 있습니다. 신청사가 하루 빨리 완공돼 구청 공무원이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와 상인들의 생계권이 보장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만, 역사를 허문다는 것에 대해선 신중해야만 합니다. 현재의 사람들이 유적 보존 의지를 갖고 고민하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역사 전문가는 지하를 파지 않고 지상으로만 건물을 짓는다면 현장 보존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다른 부지가 있었던 만큼 유적을 훼손하지 않을 방법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문제를 단순 '역사 보존'과 '현시대 재산권'이라는 대립구도로 바라보아선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돼버린 부산에, 지금과 같은 인식으로 현 시대인들의 요구만을 우선시한다면 결국 역사적인 장소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 시대 생활상과 주거 형태를 알 수 있었던 흔적은 앞으로 발굴될 가능성이 극히 드뭅니다. 발굴된다고 하더라도, 동래구청과 같은 공공기관 부지 아래가 아닌 경우 민간 사업자의 재산권 희생 없이는 보존이 불가능합니다. 이번 동래구청 신청사 허가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발견되는 유적에 대해 공공기관과 지역사회가 더욱 적극적인 과거와의 공생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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