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 모자, 우리랑 붕어빵”…어느 장애인 모자의 사연

입력 2020.12.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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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아들 수입이 전부…방배동 사건 남 일 같지 않아"

뇌경색을 앓고 있는 중증 지체장애인 60살 신자 씨는 2년 전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소화가 안 된다면서 병원에 갔는데, 검사해보니 위암 말기였어요. 수술을 받았지만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보낼 준비도 못 한 상태였죠."

갑작스럽게 남편을 보낸 뒤 하나뿐인 아들을 의지하며 살아왔다는 신 씨. 아들 역시 신 씨와 마찬가지로 중증 지체장애인이라 직업을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모자는 월 89만 원 정도인 생계급여에 의지해 지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아들이 장애인 고용 공단의 기간제 직원으로 일하게 되며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아들의 수입이 생기며 소득인정액이 높아져 2인 가족 생계급여 지급 기준을 맞추지 못하게 된 겁니다. 아들은 최저임금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들이 어렵게 벌어온 급여에 기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신 씨는 혹시 가구를 분리하면 생계급여를 다시 받을 수 있느냐고 주민센터에 문의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안 된다'였습니다. 아들이 신 씨의 '부양의무자'에 해당해 마찬가지로 소득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신 씨가 방배동 모자 사건을 접한 뒤 쓴 일기 신 씨가 방배동 모자 사건을 접한 뒤 쓴 일기

아들의 근로 계약기간은 올해 12월, 재계약을 하지 못할 경우 당장 모자의 수입은 0원이 됩니다. 다시 주민센터에 생계급여를 신청해 심사를 받기까지는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유독 춥게 느껴지는 올해 겨울, 당장 소득이 끊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뒤숭숭한 시기 들려온 '방배동 모자'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100개월간 밀린 건강보험료를 남기고 숨진 엄마와 노숙자가 된 아들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한 날, 신 씨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이뿐이겠는가? 양지 속 음지도 있고, 사회 복지 속 사각지대도 있다는 것이다. 붕어빵처럼 복사된 나의 모습 같아 마음이 디기(되게) 슬프다.'

2020.12.15. KBS1TV 뉴스9 화면 갈무리2020.12.15. KBS1TV 뉴스9 화면 갈무리

■친권 포기한 자녀도 '부양의무자'

신 씨의 아들처럼 장애가 있어 지속적인 근로 여건이 보장되지 않는 자식도 '부양의무자'입니다. '부양의무자'란 수급권자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직계 1촌의 부모나 자녀,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가 이에 해당합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부양의무자 제도는 '국가가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전에, 부양능력이 있는 가족이 일단 도와야 한다'는 원리에서 만들어졌는데, 실상은 부양능력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수급자가 되지 못해 가족 간에 서로 부담을 안고 생활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방배동 모자 역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였던 김 씨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오래전 이혼한 전남편과 딸에게 어려운 상황을 알리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혼한 전 남편과 살고 있는 딸이 김 씨의 '부양의무자'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의료급여나 생계급여를 받기 위해선 '부양의무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심지어는 부모가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포기한 상태라 하더라도, 여전히 자식은 부양의무자입니다. 이에 서울의 한 구청 복지 담당자는 "지침상 1촌 이내 직계 혈족 또는 그 배우자까지 부양의무자라고 명시돼 있고, 친권과 양육권 등에 관한 규정은 따로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혼으로 인해 자녀와 단절이 됐다고 판단될 경우 부양의무자 조사 진행을 하지 않고 내부 심의를 거쳐 생계급여 등을 지원받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1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부양의무자기준 즉각 폐지 요구 기자회견1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부양의무자기준 즉각 폐지 요구 기자회견

■시민단체 "부양의무자 기준 폐기하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18년 기준 부양의무자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중위소득 40% 이하 빈곤층은 73만 명에 이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보건사회 전문가들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합니다.

어제(18일)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정부는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까지 완화하겠다는 계획만을 내놓았고, 의료급여의 경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해 해결한다고 한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의 존재 자체가 장벽이며 구멍임을 왜 애써 무시하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지난 14일, 방배동 모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세상은 연일 이들 모자의 사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제도는 똑같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 전문가들도 이제는 정말로 바뀔 때가 됐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양의무자 가구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해오는 노력과 무관하게, 단순히 파악된 기준과 소득재산 수준만으로 그들의 삶을 방치하고,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재량권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큰 문제"라며 "현 정부의 복지정책에서 가장 차별화되는 공약이었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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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배동 모자, 우리랑 붕어빵”…어느 장애인 모자의 사연
    • 입력 2020-12-19 10:01:26
    취재K

■"장애인 아들 수입이 전부…방배동 사건 남 일 같지 않아"

뇌경색을 앓고 있는 중증 지체장애인 60살 신자 씨는 2년 전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소화가 안 된다면서 병원에 갔는데, 검사해보니 위암 말기였어요. 수술을 받았지만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보낼 준비도 못 한 상태였죠."

갑작스럽게 남편을 보낸 뒤 하나뿐인 아들을 의지하며 살아왔다는 신 씨. 아들 역시 신 씨와 마찬가지로 중증 지체장애인이라 직업을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모자는 월 89만 원 정도인 생계급여에 의지해 지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아들이 장애인 고용 공단의 기간제 직원으로 일하게 되며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아들의 수입이 생기며 소득인정액이 높아져 2인 가족 생계급여 지급 기준을 맞추지 못하게 된 겁니다. 아들은 최저임금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들이 어렵게 벌어온 급여에 기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신 씨는 혹시 가구를 분리하면 생계급여를 다시 받을 수 있느냐고 주민센터에 문의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안 된다'였습니다. 아들이 신 씨의 '부양의무자'에 해당해 마찬가지로 소득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신 씨가 방배동 모자 사건을 접한 뒤 쓴 일기
아들의 근로 계약기간은 올해 12월, 재계약을 하지 못할 경우 당장 모자의 수입은 0원이 됩니다. 다시 주민센터에 생계급여를 신청해 심사를 받기까지는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유독 춥게 느껴지는 올해 겨울, 당장 소득이 끊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뒤숭숭한 시기 들려온 '방배동 모자'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100개월간 밀린 건강보험료를 남기고 숨진 엄마와 노숙자가 된 아들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한 날, 신 씨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이뿐이겠는가? 양지 속 음지도 있고, 사회 복지 속 사각지대도 있다는 것이다. 붕어빵처럼 복사된 나의 모습 같아 마음이 디기(되게) 슬프다.'

2020.12.15. KBS1TV 뉴스9 화면 갈무리
■친권 포기한 자녀도 '부양의무자'

신 씨의 아들처럼 장애가 있어 지속적인 근로 여건이 보장되지 않는 자식도 '부양의무자'입니다. '부양의무자'란 수급권자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직계 1촌의 부모나 자녀,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가 이에 해당합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부양의무자 제도는 '국가가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전에, 부양능력이 있는 가족이 일단 도와야 한다'는 원리에서 만들어졌는데, 실상은 부양능력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수급자가 되지 못해 가족 간에 서로 부담을 안고 생활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방배동 모자 역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였던 김 씨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오래전 이혼한 전남편과 딸에게 어려운 상황을 알리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혼한 전 남편과 살고 있는 딸이 김 씨의 '부양의무자'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의료급여나 생계급여를 받기 위해선 '부양의무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심지어는 부모가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포기한 상태라 하더라도, 여전히 자식은 부양의무자입니다. 이에 서울의 한 구청 복지 담당자는 "지침상 1촌 이내 직계 혈족 또는 그 배우자까지 부양의무자라고 명시돼 있고, 친권과 양육권 등에 관한 규정은 따로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혼으로 인해 자녀와 단절이 됐다고 판단될 경우 부양의무자 조사 진행을 하지 않고 내부 심의를 거쳐 생계급여 등을 지원받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1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부양의무자기준 즉각 폐지 요구 기자회견
■시민단체 "부양의무자 기준 폐기하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18년 기준 부양의무자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중위소득 40% 이하 빈곤층은 73만 명에 이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보건사회 전문가들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합니다.

어제(18일)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정부는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까지 완화하겠다는 계획만을 내놓았고, 의료급여의 경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해 해결한다고 한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의 존재 자체가 장벽이며 구멍임을 왜 애써 무시하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지난 14일, 방배동 모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세상은 연일 이들 모자의 사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제도는 똑같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 전문가들도 이제는 정말로 바뀔 때가 됐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양의무자 가구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해오는 노력과 무관하게, 단순히 파악된 기준과 소득재산 수준만으로 그들의 삶을 방치하고,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재량권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큰 문제"라며 "현 정부의 복지정책에서 가장 차별화되는 공약이었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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