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병원 교수 논문 12편 무더기 철회…“환자 데이터 무단 사용”

입력 2020.12.20 (08:01) 수정 2020.12.2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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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대목동병원 소속 한 교수가 환자 데이터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등 연구윤리를 위반해, 12편의 논문이 철회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A 교수의 논문 7편을 철회한 학술지는 지난 7월 홈페이지를 통해 "편집자와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저자의 동의를 얻어 데이터의 정확성과 연구 윤리 준수, 생명윤리위원회 승인 부족에 대한 제1저자 소속 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라 게재를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지난 10월과 11월 다른 학술지 3곳에서 5편의 논문이 추가로 철회됐습니다.

■ "환자 동의 등 연구 윤리 위반… 의도적, 반복적, 심각"

A 교수의 논문 7편을 철회한 학술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한 논문 심사위원이 학술지 편집자에게 데이터에 관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후 저자들은 온라인에 먼저 게재된 논문 2편에서 진료 기록과 통계 처리에 사용된 데이터 중 일부를 추적할 수 없다는 등 데이터상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논문들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학술지 측에서 해명을 요구했는데, 수석 저자들은 이를 해명할 수 있는 어떠한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학술지 측의 연락을 받은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조사를 벌여 1년여 만인 지난 6월 "의도적이고 반복적이며 심각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고 전달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연구 대상자의 동의, 연구의 승인 절차, 연구 기간, 연구계획 내용의 변경과 승인 등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했다고 덧붙였습니다.

A 교수의 논문 7편을 철회한 학술지는 A 교수의 소속기관인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의도적이고 반복적이며 심각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고 전했습니다.A 교수의 논문 7편을 철회한 학술지는 A 교수의 소속기관인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의도적이고 반복적이며 심각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고 전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연구 대상자의 동의'입니다. 만약 나의 생체 정보가 연구에 사용된다면 나는 여러 정보를 제공 받게 됩니다. 연구에 참여함으로써 얻게 되는 보상, 연구의 목적과 절차, 잠재적 위험과 이익, 연구 기간, 2차 데이터의 활용 여부 등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사라지면 나는 내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쓰이는지조차 알 수 없겠죠.

■ "공저자·소속기관도 실망스러워"

한 편의 논문을 철회한 또 다른 학술지는 '우리 학계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습니다.

이 학술지는 특히 공저자들과 이들의 소속 기관들로부터 아무런 답변이 없어서 더욱 실망스럽다며, '선물 저자(Gift authorship)'를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공저자들로부터 합리적인 답변을 얻으려 애썼지만, 이들은 자신이 공동 집필에 합의하고 명백히 승인한 논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고, 소속 연구원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기관들로부터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러웠다"는 겁니다.

선물저자란 논문에 상당한 기여가 없는데도 해당 분야의 대표나 원로를 저자로 기재하는 관행입니다. 저자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의 모든 부분에 책임을 지는 데 동의해야 하는 만큼, 공저자들이 해명 요청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부인하는 태도를 꼬집은 말로 보입니다.

이 학술지는 "이번 사건에서 주 저자와 동료 연구자들, 그리고 그가 소속된 다수의 기관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이하의 방식으로 행동했다"며, "우리는 이들의 논문을 철회하고 있으며, 다른 저널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고 이 저자들과 기관들의 향후 논문 또한 매우 비판적으로 볼 것을 권고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철회된 A 교수의 논문은 SCI급 해외 학술지 4곳에서 모두 12편에 이릅니다.

■ 이대, "목동병원 환자 데이터 아니야"… 공저자들 "구체적 경위 몰라"

조사를 진행한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측은 학교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비밀 엄수에 대한 내부 규정을 들어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다만 A 교수에 대한 조사가 끝나 학교 측에서 후속 조치를 논의 중이며, 12편의 논문에 사용된 데이터는 이대목동병원 환자들의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12편 논문 모두에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대목동병원 A 교수는 취재진의 거듭된 해명 요청에도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편의 논문에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강원대학교병원 모 교수 역시 응답이 없었습니다. 공저자 중 한 명인 서울대병원 모 교수는 "이런 일이 발생해 유감"이라면서도, 환자 데이터 논란과 관련한 구체적인 경위는 알 수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분당서울대병원 모 교수는 "해당 논문들은 (환자들로부터 이미 나온 데이터를 추적하는) 후향적 연구에 해당하는 만큼 환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데이터 위·변조나 표절에 해당하는 '연구부정'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말했습니다.

■ "연구부정에 준하는 위반"

이 같은 주장은 환자 데이터를 대하는 연구자들의 안이한 인식을 보여줍니다. 대학연구윤리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엄창섭 고려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라며, 환자 동의 없는 데이터 사용은 '연구 부정'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도 연구 윤리 측면에서 봤을 때 연구 부정에 준하는 심각한 위반으로 간주된다고 말했습니다.

동의 없이 데이터가 사용되면 피실험자는 본인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 하는 데다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까지 감내해야 합니다. 엄창섭 교수는 "가령 성병이나 감염병 등 민감한 병력이 유출되거나, 정보가 보험회사로 넘어가 보험 가입에 제약이 생기거나 보험 지급이 거부되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남의 물건을 허락받지 않고 씀으로 인해서 생기는 2차 피해는 다양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동의를 받는 과정이 없다 보니 구체적인 피해가 가시화될 때까지는 본인의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학연구윤리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엄창섭 고려대 교수는 환자 데이터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연구부정에 준하는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학연구윤리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엄창섭 고려대 교수는 환자 데이터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연구부정에 준하는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환자 동의 없이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기도 합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연구 대상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이들의 자발적인 동의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습니다. 엄 교수는 "이 같은 과정을 규제와 장애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내년부터 국비가 투입되는 연구에서는 환자 동의 없는 데이터 사용이 아예 '부정행위'로 규정돼 일정 기간 연구에 참여할 수 없는 등 제재가 가해집니다. 국가연구개발 사업에 해당하는 내용인 만큼 민간 부분에서는 당장 적용되지 않겠지만, 연구 윤리의 개념이 더 엄격해지는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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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병원 교수 논문 12편 무더기 철회…“환자 데이터 무단 사용”
    • 입력 2020-12-20 08:01:08
    • 수정2020-12-20 21:12:21
    취재K

서울 이대목동병원 소속 한 교수가 환자 데이터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등 연구윤리를 위반해, 12편의 논문이 철회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A 교수의 논문 7편을 철회한 학술지는 지난 7월 홈페이지를 통해 "편집자와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저자의 동의를 얻어 데이터의 정확성과 연구 윤리 준수, 생명윤리위원회 승인 부족에 대한 제1저자 소속 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라 게재를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지난 10월과 11월 다른 학술지 3곳에서 5편의 논문이 추가로 철회됐습니다.

■ "환자 동의 등 연구 윤리 위반… 의도적, 반복적, 심각"

A 교수의 논문 7편을 철회한 학술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한 논문 심사위원이 학술지 편집자에게 데이터에 관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후 저자들은 온라인에 먼저 게재된 논문 2편에서 진료 기록과 통계 처리에 사용된 데이터 중 일부를 추적할 수 없다는 등 데이터상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논문들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학술지 측에서 해명을 요구했는데, 수석 저자들은 이를 해명할 수 있는 어떠한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학술지 측의 연락을 받은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조사를 벌여 1년여 만인 지난 6월 "의도적이고 반복적이며 심각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고 전달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연구 대상자의 동의, 연구의 승인 절차, 연구 기간, 연구계획 내용의 변경과 승인 등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했다고 덧붙였습니다.

A 교수의 논문 7편을 철회한 학술지는 A 교수의 소속기관인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의도적이고 반복적이며 심각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고 전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연구 대상자의 동의'입니다. 만약 나의 생체 정보가 연구에 사용된다면 나는 여러 정보를 제공 받게 됩니다. 연구에 참여함으로써 얻게 되는 보상, 연구의 목적과 절차, 잠재적 위험과 이익, 연구 기간, 2차 데이터의 활용 여부 등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사라지면 나는 내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쓰이는지조차 알 수 없겠죠.

■ "공저자·소속기관도 실망스러워"

한 편의 논문을 철회한 또 다른 학술지는 '우리 학계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습니다.

이 학술지는 특히 공저자들과 이들의 소속 기관들로부터 아무런 답변이 없어서 더욱 실망스럽다며, '선물 저자(Gift authorship)'를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공저자들로부터 합리적인 답변을 얻으려 애썼지만, 이들은 자신이 공동 집필에 합의하고 명백히 승인한 논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고, 소속 연구원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기관들로부터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러웠다"는 겁니다.

선물저자란 논문에 상당한 기여가 없는데도 해당 분야의 대표나 원로를 저자로 기재하는 관행입니다. 저자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의 모든 부분에 책임을 지는 데 동의해야 하는 만큼, 공저자들이 해명 요청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부인하는 태도를 꼬집은 말로 보입니다.

이 학술지는 "이번 사건에서 주 저자와 동료 연구자들, 그리고 그가 소속된 다수의 기관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이하의 방식으로 행동했다"며, "우리는 이들의 논문을 철회하고 있으며, 다른 저널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고 이 저자들과 기관들의 향후 논문 또한 매우 비판적으로 볼 것을 권고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철회된 A 교수의 논문은 SCI급 해외 학술지 4곳에서 모두 12편에 이릅니다.

■ 이대, "목동병원 환자 데이터 아니야"… 공저자들 "구체적 경위 몰라"

조사를 진행한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측은 학교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비밀 엄수에 대한 내부 규정을 들어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다만 A 교수에 대한 조사가 끝나 학교 측에서 후속 조치를 논의 중이며, 12편의 논문에 사용된 데이터는 이대목동병원 환자들의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12편 논문 모두에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대목동병원 A 교수는 취재진의 거듭된 해명 요청에도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편의 논문에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강원대학교병원 모 교수 역시 응답이 없었습니다. 공저자 중 한 명인 서울대병원 모 교수는 "이런 일이 발생해 유감"이라면서도, 환자 데이터 논란과 관련한 구체적인 경위는 알 수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분당서울대병원 모 교수는 "해당 논문들은 (환자들로부터 이미 나온 데이터를 추적하는) 후향적 연구에 해당하는 만큼 환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데이터 위·변조나 표절에 해당하는 '연구부정'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말했습니다.

■ "연구부정에 준하는 위반"

이 같은 주장은 환자 데이터를 대하는 연구자들의 안이한 인식을 보여줍니다. 대학연구윤리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엄창섭 고려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라며, 환자 동의 없는 데이터 사용은 '연구 부정'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도 연구 윤리 측면에서 봤을 때 연구 부정에 준하는 심각한 위반으로 간주된다고 말했습니다.

동의 없이 데이터가 사용되면 피실험자는 본인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 하는 데다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까지 감내해야 합니다. 엄창섭 교수는 "가령 성병이나 감염병 등 민감한 병력이 유출되거나, 정보가 보험회사로 넘어가 보험 가입에 제약이 생기거나 보험 지급이 거부되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남의 물건을 허락받지 않고 씀으로 인해서 생기는 2차 피해는 다양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동의를 받는 과정이 없다 보니 구체적인 피해가 가시화될 때까지는 본인의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학연구윤리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엄창섭 고려대 교수는 환자 데이터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연구부정에 준하는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환자 동의 없이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기도 합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연구 대상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이들의 자발적인 동의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습니다. 엄 교수는 "이 같은 과정을 규제와 장애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내년부터 국비가 투입되는 연구에서는 환자 동의 없는 데이터 사용이 아예 '부정행위'로 규정돼 일정 기간 연구에 참여할 수 없는 등 제재가 가해집니다. 국가연구개발 사업에 해당하는 내용인 만큼 민간 부분에서는 당장 적용되지 않겠지만, 연구 윤리의 개념이 더 엄격해지는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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