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中 공포의 맹독성 황산 저수지…“살려주세요”

입력 2020.12.20 (09:01) 수정 2020.12.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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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중국 장시성(江西省) 상라오시(上饶市)의 한 구리 광산에 찾아갔다. 취재진은 드론을 띄워 촬영한 영상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민둥산 아래 커다란 저수지. 저수지에 물이 고여 있다. 그런데 물 색깔이 좀 다르다. 검붉은 색을 띠고 있는 액체. 무엇일까? 이곳엔 같은 액체가 가득 담긴 저수지가 네 개나 있었다.


pH 1 강산성 황산 폐기물…. 중금속도 대량 검출

현장 취재 결과 검붉은 색 액체는 다름 아닌 황산 폐기물이었다. 손에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는 맹독성이다. 중국 생태환경부 합동조사팀 조사 결과 저수지 안 황산 폐기물의 산성도는 pH 1로 확인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성비가 pH 5.6 이하인 걸 고려하면 얼마나 산성도가 높은 지 짐작된다. pH 4.5 이하 호수엔 모든 생물 종이 전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이 황산 폐기물엔 황산 외에 대량의 중금속도 검출됐다. 기준치보다 최대 32배 많은 아연, 22배 많은 구리, 그리고 카드뮴(4.6배), 니켈(3.4배)도 검출됐다. 한 마디로 최악의 환경 폐기물이 버젓이 저수지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산 아래 저수지에 웬 황산 폐기물?

저수지는 구리 광산 안에 있다. 1984년 들어선 융핑 구리 광산이다. 하루 만 톤의 광석을 캐내는 엄청난 규모다. 취재 결과 문제의 황산 폐기물은 광석에서 구리만 골라내는 제련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이었다. 정화해서 내보내야 하는 황산 폐기물을 엉뚱하게 저수지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 측 설명으로는 1978년 설계 당시에는 중국 환경 기준으로 가능한 공법이었다고 한다. 1984년 본격적인 채굴이 시작됐으니 이 공포의 황산 저수지가 존재한 지도 벌써 36년째다. 중국 당국의 느슨한 환경 규제가 부른 참사다.


마을 주민들 "살려주세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황산 폐기물이 저수지에 가만히 고여 있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 마을 주민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 사정을 들어봤다.

"저수지에서 흘러내려 온 황산이 걸쭉한 국물처럼 도랑으로 흘러갑니다. 물고기가 모두 죽었어요. 그 물이 논밭으로 흘러가면 농사가 잘 안됩니다. 수확이 예년만 못합니다."

올여름 장마 때는 광산 안 민둥산에서 내려온 물까지 더해져 황산 폐기물이 둑을 넘쳐 흘러 내렸다고 한다. 둑에서 넘친 황산 폐기물은 아래쪽 농경지를 덮쳤다. 그 농경지는 산성화돼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회사 측은 지금 농민들에게 1년에 1천 위안(17만 원) 조금 넘는 보상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에 황산이 둑을 넘쳐 흘렀어요. 그 물을 솥에 넣고 끓이면 하얀색 이상한 물질이 나옵니다. 옛날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셨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


농사만 망치는 것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시름시름 병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암에 걸리거나 주로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다. 농민들은 수십 년 동안 식수로 이용해온 우물물을 의심한다. 지하수를 타고 흘러온 황산 폐기물이 우물에 흘러들어 오염됐을 거라는 의심이다. 이 마을엔 지난해에야 상수도관이 연결됐다. 많은 사람이 아파 쓰러지고 난 뒤에야 생긴 변화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모두 건강한데 우리만 그렇지를 못해요. 감기도 잦고 암에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전엔 많지 않던 뇌졸중 환자도 나오고요. 그동안 수없이 정부에 민원을 냈는데도 소용이 없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중국 생태환경부 합동 조사에서 이 광산의 황산 폐기물 정화 처리 용량은 터무니없이 적은 것으로 지적됐다. 처리되는 양보다 오히려 지하수로 빠져나가는 양이 더 많을 거라는 추정도 나왔다.

현장 취재 과정에서 만난 중국 지방정부 관리와 광산 회사 관계자는 KBS 취재진에 2년 안에 환경 복구 대책과 농민 보상 대책이 마련될 거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국의 느슨한 환경 의식과 경제 성장에 목맨 정부 방침을 고려할 때 '살려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걸맞은 대책이 나올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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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中 공포의 맹독성 황산 저수지…“살려주세요”
    • 입력 2020-12-20 09:01:04
    • 수정2020-12-21 10:55:20
    특파원 리포트
12월 10일 중국 장시성(江西省) 상라오시(上饶市)의 한 구리 광산에 찾아갔다. 취재진은 드론을 띄워 촬영한 영상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민둥산 아래 커다란 저수지. 저수지에 물이 고여 있다. 그런데 물 색깔이 좀 다르다. 검붉은 색을 띠고 있는 액체. 무엇일까? 이곳엔 같은 액체가 가득 담긴 저수지가 네 개나 있었다.


pH 1 강산성 황산 폐기물…. 중금속도 대량 검출

현장 취재 결과 검붉은 색 액체는 다름 아닌 황산 폐기물이었다. 손에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는 맹독성이다. 중국 생태환경부 합동조사팀 조사 결과 저수지 안 황산 폐기물의 산성도는 pH 1로 확인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성비가 pH 5.6 이하인 걸 고려하면 얼마나 산성도가 높은 지 짐작된다. pH 4.5 이하 호수엔 모든 생물 종이 전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이 황산 폐기물엔 황산 외에 대량의 중금속도 검출됐다. 기준치보다 최대 32배 많은 아연, 22배 많은 구리, 그리고 카드뮴(4.6배), 니켈(3.4배)도 검출됐다. 한 마디로 최악의 환경 폐기물이 버젓이 저수지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산 아래 저수지에 웬 황산 폐기물?

저수지는 구리 광산 안에 있다. 1984년 들어선 융핑 구리 광산이다. 하루 만 톤의 광석을 캐내는 엄청난 규모다. 취재 결과 문제의 황산 폐기물은 광석에서 구리만 골라내는 제련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이었다. 정화해서 내보내야 하는 황산 폐기물을 엉뚱하게 저수지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 측 설명으로는 1978년 설계 당시에는 중국 환경 기준으로 가능한 공법이었다고 한다. 1984년 본격적인 채굴이 시작됐으니 이 공포의 황산 저수지가 존재한 지도 벌써 36년째다. 중국 당국의 느슨한 환경 규제가 부른 참사다.


마을 주민들 "살려주세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황산 폐기물이 저수지에 가만히 고여 있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 마을 주민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 사정을 들어봤다.

"저수지에서 흘러내려 온 황산이 걸쭉한 국물처럼 도랑으로 흘러갑니다. 물고기가 모두 죽었어요. 그 물이 논밭으로 흘러가면 농사가 잘 안됩니다. 수확이 예년만 못합니다."

올여름 장마 때는 광산 안 민둥산에서 내려온 물까지 더해져 황산 폐기물이 둑을 넘쳐 흘러 내렸다고 한다. 둑에서 넘친 황산 폐기물은 아래쪽 농경지를 덮쳤다. 그 농경지는 산성화돼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회사 측은 지금 농민들에게 1년에 1천 위안(17만 원) 조금 넘는 보상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에 황산이 둑을 넘쳐 흘렀어요. 그 물을 솥에 넣고 끓이면 하얀색 이상한 물질이 나옵니다. 옛날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셨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


농사만 망치는 것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시름시름 병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암에 걸리거나 주로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다. 농민들은 수십 년 동안 식수로 이용해온 우물물을 의심한다. 지하수를 타고 흘러온 황산 폐기물이 우물에 흘러들어 오염됐을 거라는 의심이다. 이 마을엔 지난해에야 상수도관이 연결됐다. 많은 사람이 아파 쓰러지고 난 뒤에야 생긴 변화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모두 건강한데 우리만 그렇지를 못해요. 감기도 잦고 암에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전엔 많지 않던 뇌졸중 환자도 나오고요. 그동안 수없이 정부에 민원을 냈는데도 소용이 없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중국 생태환경부 합동 조사에서 이 광산의 황산 폐기물 정화 처리 용량은 터무니없이 적은 것으로 지적됐다. 처리되는 양보다 오히려 지하수로 빠져나가는 양이 더 많을 거라는 추정도 나왔다.

현장 취재 과정에서 만난 중국 지방정부 관리와 광산 회사 관계자는 KBS 취재진에 2년 안에 환경 복구 대책과 농민 보상 대책이 마련될 거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국의 느슨한 환경 의식과 경제 성장에 목맨 정부 방침을 고려할 때 '살려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걸맞은 대책이 나올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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