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정황 CCTV, 부모는 있고 경찰은 없다

입력 2020.12.20 (10:02) 수정 2020.12.2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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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군은 생후 18개월 무렵인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녔습니다. 집을 나와 걸어서 약 3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등원하는 길이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5월 12일 아이의 목덜미에서 멍과 상처가 발견됐습니다. 하원하는 아이 몸에 난 상처를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는 다시 어린이집으로 들어가 원장과 선생님에게 상처가 난 경위에 대해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A 군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버텼습니다. 아버지는 2주 동안 출근 시간을 변경해가며 아이를 달래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일이 앞서 발견한 상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 아버지는 지난 6월 16일 직접 어린이집 CCTV를 확인했습니다. 그 영상 속에서 아이의 팔을 세게 당기거나 상체를 숙여 아이를 누르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아버지는 "아이 목 뒤에 멍이 든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어린이집에 CCTV 확인을 요청했다"며 "목 부위 상처가 생긴 이유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학대 의심 정황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A 군의 학부모는 CCTV를 확인한 당일 김포경찰서에 아동학대 혐의로 어린이집 교사 2명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7일 교사 1명은 구속됐습니다. 법원은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고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습니다.

■잇따른 피해 호소, CCTV 속 학대 정황은…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어린이집에서 학대로 의심되는 피해를 본 아이들은 A 군 외에도 8명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면서 다른 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 알려 왔습니다.


다리를 펴고 앉아 있던 한 아이는 양반 다리를 안 했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꼬집히거나 맞았으며, 식사 시간 목에 걸려 음식을 뱉었다는 이유로 식판으로 머리를 맞은 아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양쪽에 있는 교사들에게 팔과 다리를 맞는 등 피해를 입은 아이도 있었고, 앉아 있던 이불을 교사가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바닥에 머리를 박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모두 어린이집 내부에서 발생한 일로, CCTV가 아니었다면 쉽게 파악할 수 없었던 내용들입니다.

■부모는 확보한 CCTV, 경찰은 놓쳤다?

최초 신고자였던 A 군의 부모 역시 5월 12일 자 CCTV 영상 속 학대 의심 정황을 포착하고 6월 16일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바로 경찰 조사가 시작됐고 같은 달 19일에 경찰은 어린이집으로부터 3월부터 6월까지의 CCTV 영상을 제출받았습니다.

같은 달 24일에는 부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와 경찰과 함께 어린이집을 방문해 학대 정황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5월 12일만 아니라 6월 2일 영상에도 A 군의 다리를 세게 때리는 교사들의 모습이 포착됐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로 보인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이후에도 수차례 CCTV를 추가 확보해 분석한 경찰은, 지난달 A 군의 부모를 불러 학대로 보이는 상황들을 직접 보여줬습니다. 4월 16일부터 6월 15일까지 교사들이 A 군을 세게 끌어당기거나 미는 모습 등이 확인됐고, 이물질을 닦은 휴지를 아이에게 던지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A 군의 부모는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신고하게 된 이유였던 5월 12일 영상이 없던 겁니다.

A 군의 아버지는 "휴대전화로 찍어 놨던 5월 12일 영상을 보여주자 경찰 조사관은 본인도 보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했다"이라고 전했습니다. A 군의 아버지는 직접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 4개를 경찰에 전달했습니다. 경찰은 이 중 3개를 학대 정황으로 판단했습니다.

■고의적인 영상 삭제? "포렌식 결과…"

피해 아동의 부모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확인했던 영상을 정작 수사기관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A 군의 부모는 CCTV 영상에 대한 고의적인 삭제에 대한 수사도 경찰에 요청했습니다.
경찰은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여 디지털 포렌식까지 진행했지만, 영상 삭제 흔적이 없고 시스템상 삭제가 불가능한 거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컴퓨터 시스템상 오류로 추정만 할 뿐 일부 영상이 없는 부분에 대해 아직 명확히 확인된 내용이 없어 계속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동학대의 중요한 목격자 'CCTV'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만으로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경찰이 확보하지 못한 부분은 바로 피해 아동의 부모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학대로 의심된다고 특정했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고소장 접수의 이유였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로 판정한 근거이기도 했던 된 그 날의 영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제출 과정에서 실수로 빠졌을 가능성 등을 따져보는 등 재확인 과정이 필요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찰에 CCTV 기록이 제출되고 5일이 지난 6월 24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방문했을 때도 해당 부분은 어린이집에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경찰이 그날의 영상을 확보할 여지는 충분했다고 판단됩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해당 내용은 빼먹은 채 5개월간 수사를 진행한 겁니다.

앞서 경찰이 밝혔듯, 이 사안은 아직 명확히 확인된 내용 없이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확보한 CCTV 영상에 대한 분석과 조사를 통해 많은 범죄 사실을 밝혀냈고 결국 구속까지 이르렀다"라고도 했습니다. 5월 12일 영상의 확보 여부가 수사 결과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부분을 언급하는 건 아동학대 사건에서 거의 유일한 증거가 바로 CCTV 영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증거가 없었다면 어린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아이들의 피해는 여전히 계속됐을 겁니다.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신고 시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법을 강화해달라는 내용의 국민 청원과 생후 16개월 여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어머니를 살인죄로 처벌해달라는 청원 모두 20만 명이 넘는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공분을 사는 이 범죄들의 가장 중요한 목격자라면 바로 CCTV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존재하는, 학대 정황인 담긴 CCTV 영상을 수사기관에서 지나쳐 버린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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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대 정황 CCTV, 부모는 있고 경찰은 없다
    • 입력 2020-12-20 10:02:20
    • 수정2020-12-20 13:37:47
    취재K

A 군은 생후 18개월 무렵인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녔습니다. 집을 나와 걸어서 약 3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등원하는 길이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5월 12일 아이의 목덜미에서 멍과 상처가 발견됐습니다. 하원하는 아이 몸에 난 상처를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는 다시 어린이집으로 들어가 원장과 선생님에게 상처가 난 경위에 대해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A 군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버텼습니다. 아버지는 2주 동안 출근 시간을 변경해가며 아이를 달래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일이 앞서 발견한 상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 아버지는 지난 6월 16일 직접 어린이집 CCTV를 확인했습니다. 그 영상 속에서 아이의 팔을 세게 당기거나 상체를 숙여 아이를 누르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아버지는 "아이 목 뒤에 멍이 든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어린이집에 CCTV 확인을 요청했다"며 "목 부위 상처가 생긴 이유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학대 의심 정황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A 군의 학부모는 CCTV를 확인한 당일 김포경찰서에 아동학대 혐의로 어린이집 교사 2명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7일 교사 1명은 구속됐습니다. 법원은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고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습니다.

■잇따른 피해 호소, CCTV 속 학대 정황은…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어린이집에서 학대로 의심되는 피해를 본 아이들은 A 군 외에도 8명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면서 다른 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 알려 왔습니다.


다리를 펴고 앉아 있던 한 아이는 양반 다리를 안 했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꼬집히거나 맞았으며, 식사 시간 목에 걸려 음식을 뱉었다는 이유로 식판으로 머리를 맞은 아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양쪽에 있는 교사들에게 팔과 다리를 맞는 등 피해를 입은 아이도 있었고, 앉아 있던 이불을 교사가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바닥에 머리를 박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모두 어린이집 내부에서 발생한 일로, CCTV가 아니었다면 쉽게 파악할 수 없었던 내용들입니다.

■부모는 확보한 CCTV, 경찰은 놓쳤다?

최초 신고자였던 A 군의 부모 역시 5월 12일 자 CCTV 영상 속 학대 의심 정황을 포착하고 6월 16일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바로 경찰 조사가 시작됐고 같은 달 19일에 경찰은 어린이집으로부터 3월부터 6월까지의 CCTV 영상을 제출받았습니다.

같은 달 24일에는 부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와 경찰과 함께 어린이집을 방문해 학대 정황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5월 12일만 아니라 6월 2일 영상에도 A 군의 다리를 세게 때리는 교사들의 모습이 포착됐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로 보인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이후에도 수차례 CCTV를 추가 확보해 분석한 경찰은, 지난달 A 군의 부모를 불러 학대로 보이는 상황들을 직접 보여줬습니다. 4월 16일부터 6월 15일까지 교사들이 A 군을 세게 끌어당기거나 미는 모습 등이 확인됐고, 이물질을 닦은 휴지를 아이에게 던지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A 군의 부모는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신고하게 된 이유였던 5월 12일 영상이 없던 겁니다.

A 군의 아버지는 "휴대전화로 찍어 놨던 5월 12일 영상을 보여주자 경찰 조사관은 본인도 보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했다"이라고 전했습니다. A 군의 아버지는 직접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 4개를 경찰에 전달했습니다. 경찰은 이 중 3개를 학대 정황으로 판단했습니다.

■고의적인 영상 삭제? "포렌식 결과…"

피해 아동의 부모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확인했던 영상을 정작 수사기관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A 군의 부모는 CCTV 영상에 대한 고의적인 삭제에 대한 수사도 경찰에 요청했습니다.
경찰은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여 디지털 포렌식까지 진행했지만, 영상 삭제 흔적이 없고 시스템상 삭제가 불가능한 거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컴퓨터 시스템상 오류로 추정만 할 뿐 일부 영상이 없는 부분에 대해 아직 명확히 확인된 내용이 없어 계속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동학대의 중요한 목격자 'CCTV'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만으로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경찰이 확보하지 못한 부분은 바로 피해 아동의 부모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학대로 의심된다고 특정했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고소장 접수의 이유였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로 판정한 근거이기도 했던 된 그 날의 영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제출 과정에서 실수로 빠졌을 가능성 등을 따져보는 등 재확인 과정이 필요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찰에 CCTV 기록이 제출되고 5일이 지난 6월 24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방문했을 때도 해당 부분은 어린이집에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경찰이 그날의 영상을 확보할 여지는 충분했다고 판단됩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해당 내용은 빼먹은 채 5개월간 수사를 진행한 겁니다.

앞서 경찰이 밝혔듯, 이 사안은 아직 명확히 확인된 내용 없이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확보한 CCTV 영상에 대한 분석과 조사를 통해 많은 범죄 사실을 밝혀냈고 결국 구속까지 이르렀다"라고도 했습니다. 5월 12일 영상의 확보 여부가 수사 결과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부분을 언급하는 건 아동학대 사건에서 거의 유일한 증거가 바로 CCTV 영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증거가 없었다면 어린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아이들의 피해는 여전히 계속됐을 겁니다.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신고 시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법을 강화해달라는 내용의 국민 청원과 생후 16개월 여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어머니를 살인죄로 처벌해달라는 청원 모두 20만 명이 넘는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공분을 사는 이 범죄들의 가장 중요한 목격자라면 바로 CCTV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존재하는, 학대 정황인 담긴 CCTV 영상을 수사기관에서 지나쳐 버린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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