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택시 기사 폭행’ 논란…‘특가법’이냐 ‘형법’이냐

입력 2020.12.21 (17:39) 수정 2020.12.2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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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구 '택시 기사 폭행' 논란…"형법상 폭행" VS "특가법 대상"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취임 전 변호사 시절이던 지난달 6일 자정쯤 택시 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당시 이 차관은 자택인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앞에서 택시 기사가 자신을 깨우자 멱살을 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택시 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이후 이 차관이 피해 기사와 합의하자 내사 종결했다. 이 차관이 멱살을 잡은 행위를 형법상 폭행으로 판단한 것이다.

형법 260조는 사람의 신체에 대해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피해자 뜻에 반해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아놓고 있다. 택시기사가 이 차관과 합의를 했으니 따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셈이다.

하지만 경찰 조치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배경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이 있다.

특가법 제5조의10은 대중교통 운전자에 대한 폭행 등을 가중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2015년에는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ㆍ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0(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 등의 가중처벌)
① 운행 중(「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2조 제3호에 따른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을 위하여 사용되는 자동차를 운행하는 중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ㆍ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한다)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2015. 6. 22.>

이 조항의 특징은 앞서 형법상 폭행과 달리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 폭행 사건과는 달리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가해자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경찰이 단순 폭행죄 대신 특가법을 적용했다면 내사 종결은 불가능했을 수 있다.


■ 경찰 "단순 폭행 처리, 대법원과 헌재 판례 따른 것"

논란이 일자 사건을 처리했던 서울 서초경찰서는 두 건의 판례를 공개하며 판단이 적절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결(2008도4375)과 헌법재판소 결정(2015헌바336)이다.

두 판례의 핵심 내용은 동일하다.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상태에 있는 운전자에 대한 폭행의 경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0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건 발생 장소가 아파트여서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였고, 택시 기사가 이 차관을 깨운 것은 하차를 위한 것으로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 한 경우'에 해당해 형법상 폭행죄 적용이 맞다는게 경찰의 논리다.

현직 차관을 둘러싼 논란에 법무부도 거들고 나섰다. 서울중앙지검이 2013년 '교통사범 수사실무'를 발간했는데, 이 차관 사례가 '운행 중'에 해당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로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교통사범 수사실무' 315쪽

"목적지에 도달했으나 승객이 자고 있어 깨우는 경우에는 목적지에 도달하여 운행목적이 달성되어 운전의사가 종료됐다고 할 것이므로 '운행 중'에 해당하지 않고…"


■ "2015년 특정범죄가중법 개정 취지 감안해야"

하지만, 경찰과 법무부의 설명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당장, 피해 택시 기사가 당일 영업을 더 이상 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차고지로 복귀해야 하는데, 어떻게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또, 국회가 2015년 특정범죄가중법 조항을 개정하면서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ㆍ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한다'는 문구를 넣은 입법 취지를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운전자 폭행은 상당수가 승차ㆍ하차와 같은 정차 상황에서 발생하는데, 경찰 주장대로면 상당수는 피해 운전자와 합의할 경우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법무부가 공개한 수사실무가 2013년에 발간돼 2015년 개정된 특정범죄가중법 해당 조항에 그대로 적용하는게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판례 살펴보니 …특가법·형법 '혼재'

그렇다면, 택시 하차 상황에서 벌어지는 운전자 폭행에 대한 법원 판단은 어떨까?

하급심 판례를 살펴보면, 특가법 적용을 인정한 판례가 있는 반면,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도 나오고 있다.

먼저, 의정부지법 형사13부는 지난 8월 택시 기사가 요금 계산을 요구하자 욕설과 함께 폭행한 승객에게 특가법을 적용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2단독도 지난해 5월 택시 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기사를 폭행한 승객에게 특가법을 적용해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서울동부지법은 2017년 12월 택시 요금을 지불하라는 기사를 폭행해 특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승객에 대해, 운행 중이 아니었던 만큼 특가법이 아닌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해야 한다며 공소를 기각했다.


■ 이용구, 사흘째 침묵…경찰 "판례 다시 검토"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사흘째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검경수사권 조정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경찰이 발빠르게 대처에 나섰다. 이번 사건이 자칫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으로 이어질 경우, 내년 1월부터 도입되는 경찰의 1차 수사 종결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질 수 있어서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오늘(21일) "서울경찰청 내 법조계 출신과 현직 변호사, 이 사건을 실무상으로 취급한 간부들을 중심으로 판례를 정밀하게 다시 한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비슷한 상황에서 택시가 운행 중이 아니라고 보고 단순 폭행죄를 적용한 판례도 있고, 다시 운행이 예상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보고 특정범죄가중법을 적용한 판례도 있어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경찰이 논란을 잠재울 해명을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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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지는 ‘택시 기사 폭행’ 논란…‘특가법’이냐 ‘형법’이냐
    • 입력 2020-12-21 17:39:21
    • 수정2020-12-21 17:58:31
    취재K

■ 이용구 '택시 기사 폭행' 논란…"형법상 폭행" VS "특가법 대상"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취임 전 변호사 시절이던 지난달 6일 자정쯤 택시 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당시 이 차관은 자택인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앞에서 택시 기사가 자신을 깨우자 멱살을 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택시 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이후 이 차관이 피해 기사와 합의하자 내사 종결했다. 이 차관이 멱살을 잡은 행위를 형법상 폭행으로 판단한 것이다.

형법 260조는 사람의 신체에 대해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피해자 뜻에 반해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아놓고 있다. 택시기사가 이 차관과 합의를 했으니 따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셈이다.

하지만 경찰 조치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배경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이 있다.

특가법 제5조의10은 대중교통 운전자에 대한 폭행 등을 가중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2015년에는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ㆍ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0(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 등의 가중처벌)
① 운행 중(「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2조 제3호에 따른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을 위하여 사용되는 자동차를 운행하는 중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ㆍ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한다)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2015. 6. 22.>

이 조항의 특징은 앞서 형법상 폭행과 달리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 폭행 사건과는 달리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가해자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경찰이 단순 폭행죄 대신 특가법을 적용했다면 내사 종결은 불가능했을 수 있다.


■ 경찰 "단순 폭행 처리, 대법원과 헌재 판례 따른 것"

논란이 일자 사건을 처리했던 서울 서초경찰서는 두 건의 판례를 공개하며 판단이 적절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결(2008도4375)과 헌법재판소 결정(2015헌바336)이다.

두 판례의 핵심 내용은 동일하다.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상태에 있는 운전자에 대한 폭행의 경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0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건 발생 장소가 아파트여서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였고, 택시 기사가 이 차관을 깨운 것은 하차를 위한 것으로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 한 경우'에 해당해 형법상 폭행죄 적용이 맞다는게 경찰의 논리다.

현직 차관을 둘러싼 논란에 법무부도 거들고 나섰다. 서울중앙지검이 2013년 '교통사범 수사실무'를 발간했는데, 이 차관 사례가 '운행 중'에 해당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로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교통사범 수사실무' 315쪽

"목적지에 도달했으나 승객이 자고 있어 깨우는 경우에는 목적지에 도달하여 운행목적이 달성되어 운전의사가 종료됐다고 할 것이므로 '운행 중'에 해당하지 않고…"


■ "2015년 특정범죄가중법 개정 취지 감안해야"

하지만, 경찰과 법무부의 설명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당장, 피해 택시 기사가 당일 영업을 더 이상 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차고지로 복귀해야 하는데, 어떻게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또, 국회가 2015년 특정범죄가중법 조항을 개정하면서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ㆍ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한다'는 문구를 넣은 입법 취지를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운전자 폭행은 상당수가 승차ㆍ하차와 같은 정차 상황에서 발생하는데, 경찰 주장대로면 상당수는 피해 운전자와 합의할 경우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법무부가 공개한 수사실무가 2013년에 발간돼 2015년 개정된 특정범죄가중법 해당 조항에 그대로 적용하는게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판례 살펴보니 …특가법·형법 '혼재'

그렇다면, 택시 하차 상황에서 벌어지는 운전자 폭행에 대한 법원 판단은 어떨까?

하급심 판례를 살펴보면, 특가법 적용을 인정한 판례가 있는 반면,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도 나오고 있다.

먼저, 의정부지법 형사13부는 지난 8월 택시 기사가 요금 계산을 요구하자 욕설과 함께 폭행한 승객에게 특가법을 적용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2단독도 지난해 5월 택시 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기사를 폭행한 승객에게 특가법을 적용해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서울동부지법은 2017년 12월 택시 요금을 지불하라는 기사를 폭행해 특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승객에 대해, 운행 중이 아니었던 만큼 특가법이 아닌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해야 한다며 공소를 기각했다.


■ 이용구, 사흘째 침묵…경찰 "판례 다시 검토"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사흘째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검경수사권 조정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경찰이 발빠르게 대처에 나섰다. 이번 사건이 자칫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으로 이어질 경우, 내년 1월부터 도입되는 경찰의 1차 수사 종결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질 수 있어서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오늘(21일) "서울경찰청 내 법조계 출신과 현직 변호사, 이 사건을 실무상으로 취급한 간부들을 중심으로 판례를 정밀하게 다시 한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비슷한 상황에서 택시가 운행 중이 아니라고 보고 단순 폭행죄를 적용한 판례도 있고, 다시 운행이 예상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보고 특정범죄가중법을 적용한 판례도 있어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경찰이 논란을 잠재울 해명을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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