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리아랑 콜라요. 아, 비건용 주십쇼!”

입력 2020.12.23 (06:00) 수정 2020.12.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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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 버거, '군대리아'. 군 미필자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병사들이 스스로 빵 속에 고기패티, 딸기잼, 샐러드 등 넣어 먹는, 군인들의 '특식' 메뉴입니다. 최근엔 시중에 이를 따라 한 햄버거가 출시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메뉴가 나오면 고역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군대 내 채식주의자들입니다.


■ 신념과 배고픔 사이…'군대리아'

가수 전범선 씨는 비건(모든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은 완전 채식주의자)이 되고 5년이 지난 2016년 12월, 육군 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훈련 기간 5주 동안 군대리아가 3번 정도 나왔는데, 이날은 시리얼만 씹어먹었습니다. 유제품도 먹지 않는 비건은 고기 뿐만 아니라 마요네즈 드레싱에 비벼진 샐러드도, 우유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훈련 생활을 일주일 정도 한 뒤 배가 너무 고파서 결국 제육볶음을 조금 먹은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날 밤 구토를 하며 의무실을 찾은 적도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들에게 군대리아는 고역입니다.

모 육군 부대에서 제공되고 있는 채식급식모 육군 부대에서 제공되고 있는 채식급식

■ 규정 바꿔 채식 급식…우유 대신 두유

군은 전 씨 같은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지난해 8월 규정을 바꿨습니다. 올해 급식방침부터 채식 식단을 허용하도록 했습니다.

단체 공공급식 중 채식선택권이 허용된 건 군대가 처음입니다. 채식을 요구하는 장병에 대해서는 밥, 김, 야채, 과일, 연두부 등 가용 품목 중에서 끼니를 제공하도록 하고, 우유 대신 두유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채식 식단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실제 군대 안에서 채식급식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 "채식은 있지만, 채식주의자는 없다"

군에 따르면 올해 용감하게(?) 채식주의자임을 밝힌 병사는 경상도의 한 육군 부대에서 식단을 잘 배려받고 있다고 합니다. 영양사 지도 아래 매 끼니 별도의 채식 조리를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행은 잘 되고 있지만, 자신이 채식주의자라고 밝히는 병사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군에서 채식급식 선택권을 허용한 이후 본인을 채식주의자라고 밝힌 병사는 육군의 경우 10명 뿐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7만8천 명 육군 병력 중 10명입니다.

한국채식엽합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채식 인구는 2~3% 정도입니다. 젊은 사람일수록 채식을 많이 한다는 걸 감안하면 군대 안에 전 씨와 같은 채식주의자들이 상당히 있을 텐데요. 자신이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군대 생활을 하는 '숨은 채식주의자'들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12월 식단…16번 맨밥, 6번은 굶어야

그렇다면 군대 내 '숨은 채식주의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공공데이터포털(www.data.go.kr)에 나와있는 이번 달 육군훈련소의 식단표를 구해 비건 기준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있는지 분석해봤습니다.


분석 결과, 12월 한 달 동안 먹는 총 93끼(31일*3끼) 중 아예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게 6번입니다. 육류를 첨가한 볶음밥이 나오는 경우 등은 밥조차도 못 먹기 때문이죠.

맨밥만 먹어야 하는 경우는 16번, 밥은 못 먹고 반찬 1가지만 먹는 경우는 7번으로 분석됐습니다.

밥에 반찬 한 가지만 먹을 수 있는 끼니가 56번으로 가장 많았고, 밥과 반찬 2가지를 먹는경우는 7번, 운이 좋게 밥과 반찬을 3가지나 먹을 수 있는 끼니는 한 달에 단 한 번 뿐이었습니다.

칼로리를 따져보니 다른 장병들이 하루에 2,864kcal를 섭취할 때 비건 병사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58kcal(47.4%)만 섭취하게 됩니다.

특히 단백질 섭취가 쉽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전범선 씨처럼 밥 시간이 고역일 뿐 아니라, 훈련을 받을 체력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 "채식주의 커밍아웃?…따돌림 두려워"

2012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유태범 교수가 채식주의자들을 인터뷰해서 쓴 논문을 보면 한국사회에서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드러내는 건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나머지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자체 만으로 채식주의자들은 커다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즉, 한국에서 집단에 소속 되지 못한 채 혼자만 튀고 있다는 경험은 그렇게 튀는 사람에게 소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주된 요인인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소수자가 겪어 야만 하는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 낮은 서열의 채식주의자에게는 다르게 먹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이나 불만이 서열이 낮기 때문에 더욱 배가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낮은 서열의 채식주의자가 경험하는 압력 = (채식주의의 근본원리에 대한 압력) + 집단주의 압력 + 서열주의 압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 되기: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채식주의 전략'>

전쟁시 일사불란하게 명령 체계에 의해 움직이여야 하는 군 조직의 특성을 고려하였을때 낮은 계급에 있는 장병들이 채식주의 신념을 드러내기는 더욱 힘들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는 '까다롭다', '유별나다', '편식한다'는 편견에 더해 '군인이 힘을 내려면 고기를 먹어야지' 등의 압박도 있는 겁니다.


■ "군대 내 채식 인원부터 제대로 파악돼야"

군에서 채식한다고 밝히는 인원이 적으니 채식주의 식단을 위한 별도의 예산이나 인력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선순환이 되려면 우선 채식주의자들이 자연스럽게 군대에서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주변에 알리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에 입영 단계에서 이뤄지는 조사에서부터 채식주의자들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채식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입영 단계에서 실시하는 병사에 대한 '과학적 식별 도구' 조사에 채식주의자 문항을 추가해 군생활 처음부터 채식주의임을 밝힐 수 있도록 보장해야 본인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미군은 '4성 장군'도 채식주의자

해외 군은 어떨까요?

미군의 경우 채식이 자유로운 분위기입니다. 군 식당에 기본적으로 샐러드바가 있기 때문에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24가지 전투식량 중 채식주의자용 전투식량도 4종류나 있기 때문에 전시 상황에도 채식이 가능합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대장)도 널리 알려진 채식주의자입니다.


핀란드는 채식 급식을 전체 군인을 대상으로 확대해 일주일에 두 끼니는 무조건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시대에 맞춰 군은 다문화 장병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이 인종, 문화, 신념 등에 따른 다양한 식생활을 더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군의 현역 자원 확보도 더 용이해질 수 있습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 채식주의자도 더 힘내서 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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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리아랑 콜라요. 아, 비건용 주십쇼!”
    • 입력 2020-12-23 06:00:03
    • 수정2020-12-23 21:03:32
    취재K
군대 내 버거, '군대리아'. 군 미필자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병사들이 스스로 빵 속에 고기패티, 딸기잼, 샐러드 등 넣어 먹는, 군인들의 '특식' 메뉴입니다. 최근엔 시중에 이를 따라 한 햄버거가 출시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메뉴가 나오면 고역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군대 내 채식주의자들입니다.


■ 신념과 배고픔 사이…'군대리아'

가수 전범선 씨는 비건(모든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은 완전 채식주의자)이 되고 5년이 지난 2016년 12월, 육군 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훈련 기간 5주 동안 군대리아가 3번 정도 나왔는데, 이날은 시리얼만 씹어먹었습니다. 유제품도 먹지 않는 비건은 고기 뿐만 아니라 마요네즈 드레싱에 비벼진 샐러드도, 우유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훈련 생활을 일주일 정도 한 뒤 배가 너무 고파서 결국 제육볶음을 조금 먹은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날 밤 구토를 하며 의무실을 찾은 적도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들에게 군대리아는 고역입니다.

모 육군 부대에서 제공되고 있는 채식급식
■ 규정 바꿔 채식 급식…우유 대신 두유

군은 전 씨 같은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지난해 8월 규정을 바꿨습니다. 올해 급식방침부터 채식 식단을 허용하도록 했습니다.

단체 공공급식 중 채식선택권이 허용된 건 군대가 처음입니다. 채식을 요구하는 장병에 대해서는 밥, 김, 야채, 과일, 연두부 등 가용 품목 중에서 끼니를 제공하도록 하고, 우유 대신 두유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채식 식단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실제 군대 안에서 채식급식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 "채식은 있지만, 채식주의자는 없다"

군에 따르면 올해 용감하게(?) 채식주의자임을 밝힌 병사는 경상도의 한 육군 부대에서 식단을 잘 배려받고 있다고 합니다. 영양사 지도 아래 매 끼니 별도의 채식 조리를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행은 잘 되고 있지만, 자신이 채식주의자라고 밝히는 병사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군에서 채식급식 선택권을 허용한 이후 본인을 채식주의자라고 밝힌 병사는 육군의 경우 10명 뿐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7만8천 명 육군 병력 중 10명입니다.

한국채식엽합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채식 인구는 2~3% 정도입니다. 젊은 사람일수록 채식을 많이 한다는 걸 감안하면 군대 안에 전 씨와 같은 채식주의자들이 상당히 있을 텐데요. 자신이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군대 생활을 하는 '숨은 채식주의자'들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12월 식단…16번 맨밥, 6번은 굶어야

그렇다면 군대 내 '숨은 채식주의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공공데이터포털(www.data.go.kr)에 나와있는 이번 달 육군훈련소의 식단표를 구해 비건 기준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있는지 분석해봤습니다.


분석 결과, 12월 한 달 동안 먹는 총 93끼(31일*3끼) 중 아예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게 6번입니다. 육류를 첨가한 볶음밥이 나오는 경우 등은 밥조차도 못 먹기 때문이죠.

맨밥만 먹어야 하는 경우는 16번, 밥은 못 먹고 반찬 1가지만 먹는 경우는 7번으로 분석됐습니다.

밥에 반찬 한 가지만 먹을 수 있는 끼니가 56번으로 가장 많았고, 밥과 반찬 2가지를 먹는경우는 7번, 운이 좋게 밥과 반찬을 3가지나 먹을 수 있는 끼니는 한 달에 단 한 번 뿐이었습니다.

칼로리를 따져보니 다른 장병들이 하루에 2,864kcal를 섭취할 때 비건 병사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58kcal(47.4%)만 섭취하게 됩니다.

특히 단백질 섭취가 쉽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전범선 씨처럼 밥 시간이 고역일 뿐 아니라, 훈련을 받을 체력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 "채식주의 커밍아웃?…따돌림 두려워"

2012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유태범 교수가 채식주의자들을 인터뷰해서 쓴 논문을 보면 한국사회에서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드러내는 건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나머지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자체 만으로 채식주의자들은 커다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즉, 한국에서 집단에 소속 되지 못한 채 혼자만 튀고 있다는 경험은 그렇게 튀는 사람에게 소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주된 요인인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소수자가 겪어 야만 하는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 낮은 서열의 채식주의자에게는 다르게 먹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이나 불만이 서열이 낮기 때문에 더욱 배가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낮은 서열의 채식주의자가 경험하는 압력 = (채식주의의 근본원리에 대한 압력) + 집단주의 압력 + 서열주의 압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 되기: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채식주의 전략'>

전쟁시 일사불란하게 명령 체계에 의해 움직이여야 하는 군 조직의 특성을 고려하였을때 낮은 계급에 있는 장병들이 채식주의 신념을 드러내기는 더욱 힘들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는 '까다롭다', '유별나다', '편식한다'는 편견에 더해 '군인이 힘을 내려면 고기를 먹어야지' 등의 압박도 있는 겁니다.


■ "군대 내 채식 인원부터 제대로 파악돼야"

군에서 채식한다고 밝히는 인원이 적으니 채식주의 식단을 위한 별도의 예산이나 인력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선순환이 되려면 우선 채식주의자들이 자연스럽게 군대에서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주변에 알리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에 입영 단계에서 이뤄지는 조사에서부터 채식주의자들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채식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입영 단계에서 실시하는 병사에 대한 '과학적 식별 도구' 조사에 채식주의자 문항을 추가해 군생활 처음부터 채식주의임을 밝힐 수 있도록 보장해야 본인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미군은 '4성 장군'도 채식주의자

해외 군은 어떨까요?

미군의 경우 채식이 자유로운 분위기입니다. 군 식당에 기본적으로 샐러드바가 있기 때문에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24가지 전투식량 중 채식주의자용 전투식량도 4종류나 있기 때문에 전시 상황에도 채식이 가능합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대장)도 널리 알려진 채식주의자입니다.


핀란드는 채식 급식을 전체 군인을 대상으로 확대해 일주일에 두 끼니는 무조건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시대에 맞춰 군은 다문화 장병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이 인종, 문화, 신념 등에 따른 다양한 식생활을 더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군의 현역 자원 확보도 더 용이해질 수 있습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 채식주의자도 더 힘내서 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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