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즈 들락날락 러·중…의도는 ‘손가락 찌르기’?

입력 2020.12.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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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 듯 영상 공개한 러시아

어제 하루 우리 공군은 동해에서 남해에서, 독도 상공과 이어도 상공에서 긴박하게 움직였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들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오전 8시가 조금 지나 진입해 오후 3시 넘어서야 상황이 끝났습니다. 중국 군용기 4대와 러시아 군용기 15대가 진입과 이탈을 반복했습니다. 양국 군용기가 나란히 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국방부는 자신들의 작전 영상을 시작부터 끝까지, 이륙부터 착륙까지를 편집해 공개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가 유튜브에 공개한 1분 36초 분량의 영상에는 러시아 TU-95 폭격기와 SU-27 전투기가 활주로를 달려 이륙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이륙하는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이륙하는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

SU-27 전투기가 상공에서 중국의 H-6K 폭격기와 나란히 비행하며 호위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영상에 러시아 항공 우주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두 번째 합동 항공순찰을 실시했다는 설명을 첨부했습니다.

러시아 공군의 TU-95MS 전략 폭격기 2대와 중국 공군의 H-6K 전략 폭격기 4대로 구성된 비행대가 동해와 동중국해 수역을 순찰했다며,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양국 항공기는 국제법 조항에 따라 엄격히 운영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비행은 두 나라의 2020년 군사협력 계획에 따라 수행됐고,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순전히 군사적 능력을 연마하기 위한 훈련이고, 한국이나 일본과 긴장을 조성할 의도는 없다는 뜻입니다.

중·러 군용기가 카디즈에 오면…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는 이전에도 종종 우리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 왔습니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라서 들어간다 해도 국제법 위반이 아니고 그 나라를 '침략'하거나 '침범'한 것은 아닙니다.

항공기는 속도가 빨라 우리 영공에 진입한 뒤에 공군이 대응에 나서면 이미 늦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공에 진입하기 전부터 적을 '식별'해서 의도를 파악하고 초기부터 '대응'하고자 만들어진 가상의 선이 카디즈입니다.

타국의 항공기가 우리 방공식별구역에 접근하면 주변에 초계(우리 영공에는 우리 전투기가 교대로 뜨고 내리며 24시간 순찰을 합니다)하고 있던 전투기를 임무전환 시켜 그곳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이 전투기가 연료가 제한돼 있거나 상대방 항공기의 숫자가 많으면 더 많은 전투기가 필요합니다. 이럴 경우 군산이나 대구, 청주 등에서 F-15K나 KF-16 전투기 등이 긴급 발진해 카디즈 경계선까지 날아갑니다. 영화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조종사들이 평소에도 비행복을 입고 기지 내에서 대기하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달려나가 비행기에 올라타고 이륙하는 그 장면입니다.

상대방 항공기 옆에 우리 방공식별구역 쪽으로 나란히 붙어서, 나갈 때까지 계속 비행하면서 감시합니다. 더 안으로 들어오면 상대 항공기의 진로를 막아서는 '차단 기동'을 하기도 합니다. 군에서는 '전술조치'한다고 표현합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카디즈에 어느 정도까지 접근했을 때 우리 공군기가 오는지, 또 어떤 기종이 몇 분 만에 어떤 무장을 달고 오는지 파악합니다. 중, 러 군용기가 카디즈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다가 진입 직전에 기수를 트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떠보기'를 통해 우리의 대비태세나 전술 조치, 대응 패턴을 파악하는 겁니다.

일본 역시 중국이나 러시아 군용기가 자신들의 방공식별구역(자디즈)에 접근할 때 똑같이 대응 조치를 합니다. 자디즈 진입이 있을 때마다 상대방 항공기의 기종과 경로를 방위성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도 합니다.

일본이 공개한 중,러 항공기의 비행경로일본이 공개한 중,러 항공기의 비행경로

상대 항공기가 카디즈에 진입할 조짐이 보이면 우리 군은 반드시 출격해 전술조치를 합니다.

공군 관계자는 "바다나 하늘이나 대한민국의 세력이 미치고, 또 과시하는 공간"이라며 "카디즈 또한 여기 들어오면 우리에게 통보하라는 선언을 한 곳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지킨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엔 경계선에 걸쳐 들락날락 비행다가 다음에는 더 많이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훈련 그 이상…"정치·전략적 의도도"

하지만 이번 카디즈 진입은 통상적인 훈련과는 달랐습니다. 일단 러시아 항공기가 15대나 들어왔습니다. 이례적으로 많은 수의 항공기를 지휘 통제하기 위해 A-50 조기 경보기와 폭격기를 비롯해 이를 호위할 SU-27전투기들이 대거 동원됐습니다.

러시아 TU-MS폭격기는 러시아의 주력 장거리 폭격기로 한 번 뜨면 1만Km 이상 날 수 있어 동해와 남해까지 오가는 장거리 비행에 제격입니다. 핵탄두를 장착한 무기도 운용은 가능하므로 무력시위의 효과도 충분합니다. '전략' 무기인 셈입니다.

카디즈에 진입한 TU-95MS 폭격기카디즈에 진입한 TU-95MS 폭격기

중국의 폭격기 4대는 이어도 쪽 방향에서 카디즈에 진입했다가 2대는 남하하고, 2대는 계속 카디즈와 자디즈의 경계선을 따라 북상해 러시아 항공기들과 만나 함께 비행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가 공개한 영상에는 러시아 전투기 조종석에서 바라본 중국 H-6K 폭격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양국 군용기가 이 지역에서 한·일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든 건 17개월 만입니다.

카디즈에 진입한 중국 H-6K 폭격기카디즈에 진입한 중국 H-6K 폭격기

김영준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는 이번 훈련이 기능 훈련이 아닌 고도의 전략적, 정치적 훈련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최소한 양국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는 지휘부 이상의 지도자들이 인지된 상태에서 사전 회의를 여러 번 거치며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는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한 경로는, 진입과 이탈을 반복하면서 카디즈와 자디즈의 경계선상을 교묘하게 오갔습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자극의 수위를 면밀하게 조절한 겁니다.

김 교수는 러시아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일종의 '손가락 찌르기'를 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이 당선된 상황이 반갑지가 않고, 바이든 당선인 취임 전에 미·러 관계에 대한 실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먼저 건드렸다는 겁니다. 유럽은 예민한 지역이지만 동북아는 해상을 끼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는 겁니다.

중국 또한 세력을 과시할 이유가 있습니다. 태평양 진출과 남중국해 장악을 시도하는 중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미국과 첨예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에 동참해 영국은 항공모함 전단을 일본 등 아시아에 보내는 것을 추진 중이고, 독일도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이번 중국 폭격기의 비행은, 미국의 대중 포위망에 동참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중국의 대응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일본이라는 해상세력에 대한 중·러 대륙 세력의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는 겁니다.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박원곤 교수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할 테니 그에 대한 선제적 견제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바다 동해, 남해가 한·중·일과 미국 러시아가 치열하게 정치·전략적 수를 주고받는 곳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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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디즈 들락날락 러·중…의도는 ‘손가락 찌르기’?
    • 입력 2020-12-23 16:47:18
    취재K
■보란 듯 영상 공개한 러시아

어제 하루 우리 공군은 동해에서 남해에서, 독도 상공과 이어도 상공에서 긴박하게 움직였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들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오전 8시가 조금 지나 진입해 오후 3시 넘어서야 상황이 끝났습니다. 중국 군용기 4대와 러시아 군용기 15대가 진입과 이탈을 반복했습니다. 양국 군용기가 나란히 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국방부는 자신들의 작전 영상을 시작부터 끝까지, 이륙부터 착륙까지를 편집해 공개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가 유튜브에 공개한 1분 36초 분량의 영상에는 러시아 TU-95 폭격기와 SU-27 전투기가 활주로를 달려 이륙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이륙하는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
SU-27 전투기가 상공에서 중국의 H-6K 폭격기와 나란히 비행하며 호위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영상에 러시아 항공 우주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두 번째 합동 항공순찰을 실시했다는 설명을 첨부했습니다.

러시아 공군의 TU-95MS 전략 폭격기 2대와 중국 공군의 H-6K 전략 폭격기 4대로 구성된 비행대가 동해와 동중국해 수역을 순찰했다며,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양국 항공기는 국제법 조항에 따라 엄격히 운영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비행은 두 나라의 2020년 군사협력 계획에 따라 수행됐고,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순전히 군사적 능력을 연마하기 위한 훈련이고, 한국이나 일본과 긴장을 조성할 의도는 없다는 뜻입니다.

중·러 군용기가 카디즈에 오면…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는 이전에도 종종 우리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 왔습니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라서 들어간다 해도 국제법 위반이 아니고 그 나라를 '침략'하거나 '침범'한 것은 아닙니다.

항공기는 속도가 빨라 우리 영공에 진입한 뒤에 공군이 대응에 나서면 이미 늦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공에 진입하기 전부터 적을 '식별'해서 의도를 파악하고 초기부터 '대응'하고자 만들어진 가상의 선이 카디즈입니다.

타국의 항공기가 우리 방공식별구역에 접근하면 주변에 초계(우리 영공에는 우리 전투기가 교대로 뜨고 내리며 24시간 순찰을 합니다)하고 있던 전투기를 임무전환 시켜 그곳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이 전투기가 연료가 제한돼 있거나 상대방 항공기의 숫자가 많으면 더 많은 전투기가 필요합니다. 이럴 경우 군산이나 대구, 청주 등에서 F-15K나 KF-16 전투기 등이 긴급 발진해 카디즈 경계선까지 날아갑니다. 영화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조종사들이 평소에도 비행복을 입고 기지 내에서 대기하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달려나가 비행기에 올라타고 이륙하는 그 장면입니다.

상대방 항공기 옆에 우리 방공식별구역 쪽으로 나란히 붙어서, 나갈 때까지 계속 비행하면서 감시합니다. 더 안으로 들어오면 상대 항공기의 진로를 막아서는 '차단 기동'을 하기도 합니다. 군에서는 '전술조치'한다고 표현합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카디즈에 어느 정도까지 접근했을 때 우리 공군기가 오는지, 또 어떤 기종이 몇 분 만에 어떤 무장을 달고 오는지 파악합니다. 중, 러 군용기가 카디즈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다가 진입 직전에 기수를 트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떠보기'를 통해 우리의 대비태세나 전술 조치, 대응 패턴을 파악하는 겁니다.

일본 역시 중국이나 러시아 군용기가 자신들의 방공식별구역(자디즈)에 접근할 때 똑같이 대응 조치를 합니다. 자디즈 진입이 있을 때마다 상대방 항공기의 기종과 경로를 방위성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도 합니다.

일본이 공개한 중,러 항공기의 비행경로
상대 항공기가 카디즈에 진입할 조짐이 보이면 우리 군은 반드시 출격해 전술조치를 합니다.

공군 관계자는 "바다나 하늘이나 대한민국의 세력이 미치고, 또 과시하는 공간"이라며 "카디즈 또한 여기 들어오면 우리에게 통보하라는 선언을 한 곳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지킨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엔 경계선에 걸쳐 들락날락 비행다가 다음에는 더 많이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훈련 그 이상…"정치·전략적 의도도"

하지만 이번 카디즈 진입은 통상적인 훈련과는 달랐습니다. 일단 러시아 항공기가 15대나 들어왔습니다. 이례적으로 많은 수의 항공기를 지휘 통제하기 위해 A-50 조기 경보기와 폭격기를 비롯해 이를 호위할 SU-27전투기들이 대거 동원됐습니다.

러시아 TU-MS폭격기는 러시아의 주력 장거리 폭격기로 한 번 뜨면 1만Km 이상 날 수 있어 동해와 남해까지 오가는 장거리 비행에 제격입니다. 핵탄두를 장착한 무기도 운용은 가능하므로 무력시위의 효과도 충분합니다. '전략' 무기인 셈입니다.

카디즈에 진입한 TU-95MS 폭격기
중국의 폭격기 4대는 이어도 쪽 방향에서 카디즈에 진입했다가 2대는 남하하고, 2대는 계속 카디즈와 자디즈의 경계선을 따라 북상해 러시아 항공기들과 만나 함께 비행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가 공개한 영상에는 러시아 전투기 조종석에서 바라본 중국 H-6K 폭격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양국 군용기가 이 지역에서 한·일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든 건 17개월 만입니다.

카디즈에 진입한 중국 H-6K 폭격기
김영준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는 이번 훈련이 기능 훈련이 아닌 고도의 전략적, 정치적 훈련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최소한 양국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는 지휘부 이상의 지도자들이 인지된 상태에서 사전 회의를 여러 번 거치며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는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한 경로는, 진입과 이탈을 반복하면서 카디즈와 자디즈의 경계선상을 교묘하게 오갔습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자극의 수위를 면밀하게 조절한 겁니다.

김 교수는 러시아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일종의 '손가락 찌르기'를 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이 당선된 상황이 반갑지가 않고, 바이든 당선인 취임 전에 미·러 관계에 대한 실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먼저 건드렸다는 겁니다. 유럽은 예민한 지역이지만 동북아는 해상을 끼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는 겁니다.

중국 또한 세력을 과시할 이유가 있습니다. 태평양 진출과 남중국해 장악을 시도하는 중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미국과 첨예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에 동참해 영국은 항공모함 전단을 일본 등 아시아에 보내는 것을 추진 중이고, 독일도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이번 중국 폭격기의 비행은, 미국의 대중 포위망에 동참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중국의 대응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일본이라는 해상세력에 대한 중·러 대륙 세력의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는 겁니다.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박원곤 교수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할 테니 그에 대한 선제적 견제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바다 동해, 남해가 한·중·일과 미국 러시아가 치열하게 정치·전략적 수를 주고받는 곳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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