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4년’ 정경심 발목 잡은 결정타는?…조국 재판도 ‘빨간 불’

입력 2020.12.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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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비리 혐의와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기소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어제(23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지난해 9월 처음 재판에 넘겨진 지 1년 3개월여 만에 나온 법원 판단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는 정 교수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추징금 1억 3천여만 원도 함께 명령했습니다.

지난 5월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던 정 교수는, 어제 서울 남부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 입시비리 '전부 유죄', 사모펀드 '일부 무죄'…"투자는 맞다"

판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검찰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우선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입시비리' 혐의가 빠짐없이 유죄로 인정됐습니다. 정 교수 딸 조민 씨의 이른바 '7대 스펙'은, 검찰 주장대로 허위로 판단됐습니다. 1년 내내 공방의 중심에 섰던 동양대 표창장 역시, 재판부는 정 교수 작품이라고 봤습니다. 아들의 상장에서 직인파일을 캡처해 오려 붙였다는 위조 방법도 법원에서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사모펀드 의혹은 5개 혐의 중 2개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이미 조국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 1심 판결에서 무죄로 판단된 횡령과 금융위 허위 보고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번 재판부가 새롭게 판단한 부분은 대부분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조범동 씨에게 미공개 중요정보를 받아 주식 투자로 2억 3천여만 원의 이익을 얻고 이를 은닉한 혐의, 그리고 지인들 명의의 차명계좌로 투자한 혐의 등입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혐의 중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정 교수와 조범동 씨 사이 10억 거래를 단순 '대여'가 아닌 '투자'로 본 부분인데요. 결과적으로 혐의 인정 여부는 바뀌지 않았지만, 지난 6월 조범동 씨 재판부의 판단과는 전제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겁니다.

재판부는 "정 교수가 단지 남편의 5촌 조카라는 이유로 아무런 담보를 제공받지 않고 조 씨에게 거액을 빌려줬다는 건 일반적인 거래 관행에 맞지 않는다"며 "조 씨와 정 교수가 투자금임을 전제로 운용현황에 관한 대화를 했고 그 뒤에도 다른 투자상품에 관해 논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정 교수 측이 대여의 증거로 제시했던 '금전소비대차계약서'는 2017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내기 위해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 증거인멸 3개 혐의 중 2개 무죄…'유죄 같은 무죄' 이유는?

증거인멸 혐의는 3개 중 2개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우선 정 교수가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PE 직원들에게 동생의 이름이 들어간 자료들을 삭제해달라고 지시했다는 증거인멸교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고요. 지난해 청문회 정국에서 직원들에게 2019년 2분기 펀드운용현황보고서를 위조하게 시켰다는 증거위조교사 혐의는 무죄로 판단됐습니다. 김경록 씨에게 자택 하드디스크와 동양대 교수실 PC 등을 숨겨달라고 지시했다는 증거은닉교사 혐의도 무죄입니다.

그런데 면면을 살펴보면, 완전히 무죄라고 보긴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펀드보고서와 관련해선, 정 교수가 위조를 교사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 4가지와 그렇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 4가지가 함께 판시됐습니다. 재판부는 정 교수가 코링크PE 직원들에게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하고, 작성된 자료를 사전에 승인하고 검토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받은 자료 중 불리할 것 같은 자료는 아예 청문회준비단에 제출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정 교수가 해당 보고서를 위조해달라고 명시적, 묵시적으로 지시한 행위는 이메일에서도, 메시지에서도, 관련자 진술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직원들이 조 전 장관의 해명을 보고, 자신들이 썼던 보고서 초안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스스로 추가 기재를 결정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도 공소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증거은닉교사 혐의를 두고는, 사실상 '유죄 같은 무죄'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 교수가 증거은닉을 시도한 건 분명한데, 김경록 씨에게 시킨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은닉한 '공동정범'이기 때문에 '교사범'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 설명입니다. 법리상 자신의 형사 사건 증거를 숨긴 데 대해선 죄를 물을 수 없습니다. 정 교수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직접적으로 가담했기에 역설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셈입니다.

■ "단 한 번도 반성 없었다"…'무죄' 혐의도 불리한 양형 사유

재판부는 양형 사유로 정 교수가 청문회 정국부터 마지막 재판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에 관해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객관적인 물증이나 증인들 진술을 보면 어느 정도 잘못을 인정할 법한데도, 끝까지 설득력 없는 주장을 계속했다는 건데요. 특히 정 교수가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 등 일부 증인들이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재판부는 이뿐 아니라, 무죄를 선고한 혐의마저도 불리한 양형 사유로 반영했습니다. 비록 형사 처벌은 못 했지만, 정 교수에게 더 중한 형을 선고할 이유는 될 수 있다는 건데요.

재판부는 "정 교수가 자신의 자택과 사무실에 있는 PC를 반출한 행위, 코링크PE의 임직원들로 하여금 자신과 조 전 장관에게 유리한 내용의 언론보도 자료·청문회 대비 자료를 작성하도록 한 행위는 비록 형사상 처벌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 교수가 자신의 입시비리, 코링크PE 관련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저지른 행위임은 분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 교수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처벌받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점에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는 정 교수의 범행 후 정황에도 해당하므로 불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정 교수 측 변호인은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정 교수 측 김칠준 변호사는 선고가 끝난 뒤 "헌법의 원칙에 의해서 무죄 선고를 하는 사유까지도 법정구속이나 양형의 사유로서 삼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 법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법정구속 결정적 한 방은 '사라진 노트북'…증인 '거짓말'도 발목

재판부는 어제 판결을 선고하면서 정 교수를 법정에서 구속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했습니다. 핵심은 '증거인멸' 우려였습니다. 전적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재차 증거인멸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사라진 노트북'입니다. 그동안 검찰은 많은 범행 증거가 담겨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노트북 1대를 정 교수가 수사 과정에서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지난해 정 교수를 소환 조사할 때부터 검찰은 여러 차례 이 노트북의 행방을 추궁했지만, 결국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정 교수 측은 그런 노트북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맞서왔습니다.

그런데 재판부가 이 노트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고, 정 교수가 수사 당시 이를 은닉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정 교수가 노트북을 사용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김경록 씨 진술 등을 사실로 받아들인 셈입니다. 재판부는 또 정 교수 자택 PC의 하드디스크 2개도 정 교수가 직접 숨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정 교수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던 증인들의 진술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대표적으론 동양대의 동료 교수들이 있겠죠. 재판부는 "정 교수와 친분이 있는 여러 명의 사람이 이 법정에서 정 교수를 위해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정 교수가 앞으로도 허위 진술을 종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가 그 출처가 의심되는 증거를 제출하는 등 본 재판 과정에서도 실체진실의 발견을 저해하는 시도가 있었다"고 했는데, 재판 막바지에 정 교수 측이 70여 개의 새로운 물적·인적 증거를 무더기로 제출한 부분이 되려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 "조국이 위조했다"·"대여 아닌 투자"…조국 재판에 '빨간 불'

이번 사건에선,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남편 조국 전 장관의 공모 인정 여부도 또 하나의 관심거리였습니다. 부부의 혐의가 상당 부분 겹쳐있기 때문인데요. 결론적으로 조 전 장관에게는 불리한 판단이 내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입시비리와 관련해선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와 ▲부산 호텔의 실습수료증과 인턴십 확인서가 문제입니다. 재판부는 이 두 서류를 조 전 장관이 직접 만들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익인권법센터의 경우 조 전 장관이 당시 센터장이었던 한인섭 교수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작성한 것으로, 부산 호텔의 경우 조 전 장관이 내용을 모두 임의로 작성해 호텔 법인 인감을 날인받은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피고인인 정 교수는 오히려 여기에 가담한 공범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조 전 장관 역시 서울대 의전원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나 위조공문서행사 혐의 등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입니다.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해선, 재판부가 정 교수와 조범동 씨 사이 거래를 '대여'가 아닌 '투자'로 판단한 부분이 조 전 장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정 교수가 받았던 횡령 혐의에는 이 판단이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조 전 장관이 받고 있는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나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의 경우 상황이 다릅니다. 투자라는 본질을 숨기고 대여로 가장해 재산을 신고했다는 게 혐의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증거인멸 부분은 오히려 유리한 대목이 있습니다. 펀드운용현황보고서 위조와 관련한 증거위조교사 혐의에 대해선, 조 전 장관도 마찬가지로 무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증거은닉교사 혐의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 교수는 자신의 증거를 숨긴 '공동정범'으로 인정돼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조 전 장관의 경우 현장에서 직접 은닉행위를 하진 않았으므로 정 교수를 통해 김경록 씨에게 '순차 교사'했다는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 정경심, 선고 당일 항소…"너무 큰 충격"·"괘씸죄 적용된 듯" 반격 예고

정 교수 측은 선고 당일인 어제, 곧바로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판결문은 통상 선고 며칠 뒤에 받아볼 수 있는데 이처럼 판결문을 받아보기도 전에 항소장부터 낸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판결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정 교수 측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국 전 장관은 어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너무도 큰 충격"이라며 "제가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면서 이런 시련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나 보다"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이어 "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모양"이라며 "즉각 항소해서 다투겠다"고 썼습니다.

어제(23일), 정경심 교수에 대한 1심 선고 후 김칠준 변호사가 기자들을 만나 입장을 밝혔다.어제(23일), 정경심 교수에 대한 1심 선고 후 김칠준 변호사가 기자들을 만나 입장을 밝혔다.

정 교수의 변호인 역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며 재판부의 예단과 추측, 선입견이 재판에 반영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의 많은 입증 노력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검찰 논리 그대로 모두 유죄가 인정되는 걸 보면서 적잖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항소심에서 다투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은 특히, 정 교수에게 이른바 '괘씸죄'가 적용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냈습니다. 변호인은 "수사 과정에서 압도적인 여론의 공격에 대해서 스스로 방어하면서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려 했던 그 노력이 오히려 정 교수에게 형량에 아주 불리한 사유로 언급됐다"고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 끝나지 않은 법정 싸움…딸 조민 추가 기소는?

정 교수는 이렇게 1차적인 법적 판단을 받았지만, 모든 법정 다툼이 끝나기까진 아직 먼 길이 남았습니다. 이번 사건은 항소에 이어 2심 법원의 판단, 또 경우에 따라 대법원까지 갈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김미리)가 심리하는 정 교수와 조 전 장관 부부의 자녀 입시비리 등 혐의 재판이 남아있습니다. 두 사람은 내년부터 한 법정에 서서 재판을 이어가게 됩니다.

정 교수의 입시비리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가 선고되면서, 입시비리로 이득을 본 당사자인 딸 조민 씨에 대한 검찰의 처분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검찰은 당장은 조 씨에 대한 기소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 유출된 시험지로 시험을 본 혐의가 유죄가 인정된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쌍둥이는 아버지에 대한 실형이 선고된 뒤 추가로 기소됐습니다.

반면, 검찰은 '국정농단'의 중심에 섰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의 경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딸 조 씨 외에도 또 다른 입시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정 교수 아들이나 코링크PE 관계자들의 기소 여부도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정 교수 부부의 입시비리 혐의에 대한 재판이 두 개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형사합의21부의 판단까지 받아본 뒤 검찰이 이들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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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역 4년’ 정경심 발목 잡은 결정타는?…조국 재판도 ‘빨간 불’
    • 입력 2020-12-24 15:32:42
    취재K

입시비리 혐의와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기소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어제(23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지난해 9월 처음 재판에 넘겨진 지 1년 3개월여 만에 나온 법원 판단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는 정 교수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추징금 1억 3천여만 원도 함께 명령했습니다.

지난 5월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던 정 교수는, 어제 서울 남부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 입시비리 '전부 유죄', 사모펀드 '일부 무죄'…"투자는 맞다"

판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검찰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우선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입시비리' 혐의가 빠짐없이 유죄로 인정됐습니다. 정 교수 딸 조민 씨의 이른바 '7대 스펙'은, 검찰 주장대로 허위로 판단됐습니다. 1년 내내 공방의 중심에 섰던 동양대 표창장 역시, 재판부는 정 교수 작품이라고 봤습니다. 아들의 상장에서 직인파일을 캡처해 오려 붙였다는 위조 방법도 법원에서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사모펀드 의혹은 5개 혐의 중 2개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이미 조국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 1심 판결에서 무죄로 판단된 횡령과 금융위 허위 보고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번 재판부가 새롭게 판단한 부분은 대부분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조범동 씨에게 미공개 중요정보를 받아 주식 투자로 2억 3천여만 원의 이익을 얻고 이를 은닉한 혐의, 그리고 지인들 명의의 차명계좌로 투자한 혐의 등입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혐의 중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정 교수와 조범동 씨 사이 10억 거래를 단순 '대여'가 아닌 '투자'로 본 부분인데요. 결과적으로 혐의 인정 여부는 바뀌지 않았지만, 지난 6월 조범동 씨 재판부의 판단과는 전제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겁니다.

재판부는 "정 교수가 단지 남편의 5촌 조카라는 이유로 아무런 담보를 제공받지 않고 조 씨에게 거액을 빌려줬다는 건 일반적인 거래 관행에 맞지 않는다"며 "조 씨와 정 교수가 투자금임을 전제로 운용현황에 관한 대화를 했고 그 뒤에도 다른 투자상품에 관해 논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정 교수 측이 대여의 증거로 제시했던 '금전소비대차계약서'는 2017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내기 위해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 증거인멸 3개 혐의 중 2개 무죄…'유죄 같은 무죄' 이유는?

증거인멸 혐의는 3개 중 2개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우선 정 교수가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PE 직원들에게 동생의 이름이 들어간 자료들을 삭제해달라고 지시했다는 증거인멸교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고요. 지난해 청문회 정국에서 직원들에게 2019년 2분기 펀드운용현황보고서를 위조하게 시켰다는 증거위조교사 혐의는 무죄로 판단됐습니다. 김경록 씨에게 자택 하드디스크와 동양대 교수실 PC 등을 숨겨달라고 지시했다는 증거은닉교사 혐의도 무죄입니다.

그런데 면면을 살펴보면, 완전히 무죄라고 보긴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펀드보고서와 관련해선, 정 교수가 위조를 교사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 4가지와 그렇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 4가지가 함께 판시됐습니다. 재판부는 정 교수가 코링크PE 직원들에게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하고, 작성된 자료를 사전에 승인하고 검토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받은 자료 중 불리할 것 같은 자료는 아예 청문회준비단에 제출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정 교수가 해당 보고서를 위조해달라고 명시적, 묵시적으로 지시한 행위는 이메일에서도, 메시지에서도, 관련자 진술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직원들이 조 전 장관의 해명을 보고, 자신들이 썼던 보고서 초안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스스로 추가 기재를 결정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도 공소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증거은닉교사 혐의를 두고는, 사실상 '유죄 같은 무죄'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 교수가 증거은닉을 시도한 건 분명한데, 김경록 씨에게 시킨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은닉한 '공동정범'이기 때문에 '교사범'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 설명입니다. 법리상 자신의 형사 사건 증거를 숨긴 데 대해선 죄를 물을 수 없습니다. 정 교수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직접적으로 가담했기에 역설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셈입니다.

■ "단 한 번도 반성 없었다"…'무죄' 혐의도 불리한 양형 사유

재판부는 양형 사유로 정 교수가 청문회 정국부터 마지막 재판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에 관해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객관적인 물증이나 증인들 진술을 보면 어느 정도 잘못을 인정할 법한데도, 끝까지 설득력 없는 주장을 계속했다는 건데요. 특히 정 교수가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 등 일부 증인들이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재판부는 이뿐 아니라, 무죄를 선고한 혐의마저도 불리한 양형 사유로 반영했습니다. 비록 형사 처벌은 못 했지만, 정 교수에게 더 중한 형을 선고할 이유는 될 수 있다는 건데요.

재판부는 "정 교수가 자신의 자택과 사무실에 있는 PC를 반출한 행위, 코링크PE의 임직원들로 하여금 자신과 조 전 장관에게 유리한 내용의 언론보도 자료·청문회 대비 자료를 작성하도록 한 행위는 비록 형사상 처벌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 교수가 자신의 입시비리, 코링크PE 관련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저지른 행위임은 분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 교수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처벌받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점에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는 정 교수의 범행 후 정황에도 해당하므로 불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정 교수 측 변호인은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정 교수 측 김칠준 변호사는 선고가 끝난 뒤 "헌법의 원칙에 의해서 무죄 선고를 하는 사유까지도 법정구속이나 양형의 사유로서 삼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 법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법정구속 결정적 한 방은 '사라진 노트북'…증인 '거짓말'도 발목

재판부는 어제 판결을 선고하면서 정 교수를 법정에서 구속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했습니다. 핵심은 '증거인멸' 우려였습니다. 전적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재차 증거인멸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사라진 노트북'입니다. 그동안 검찰은 많은 범행 증거가 담겨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노트북 1대를 정 교수가 수사 과정에서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지난해 정 교수를 소환 조사할 때부터 검찰은 여러 차례 이 노트북의 행방을 추궁했지만, 결국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정 교수 측은 그런 노트북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맞서왔습니다.

그런데 재판부가 이 노트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고, 정 교수가 수사 당시 이를 은닉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정 교수가 노트북을 사용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김경록 씨 진술 등을 사실로 받아들인 셈입니다. 재판부는 또 정 교수 자택 PC의 하드디스크 2개도 정 교수가 직접 숨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정 교수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던 증인들의 진술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대표적으론 동양대의 동료 교수들이 있겠죠. 재판부는 "정 교수와 친분이 있는 여러 명의 사람이 이 법정에서 정 교수를 위해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정 교수가 앞으로도 허위 진술을 종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가 그 출처가 의심되는 증거를 제출하는 등 본 재판 과정에서도 실체진실의 발견을 저해하는 시도가 있었다"고 했는데, 재판 막바지에 정 교수 측이 70여 개의 새로운 물적·인적 증거를 무더기로 제출한 부분이 되려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 "조국이 위조했다"·"대여 아닌 투자"…조국 재판에 '빨간 불'

이번 사건에선,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남편 조국 전 장관의 공모 인정 여부도 또 하나의 관심거리였습니다. 부부의 혐의가 상당 부분 겹쳐있기 때문인데요. 결론적으로 조 전 장관에게는 불리한 판단이 내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입시비리와 관련해선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와 ▲부산 호텔의 실습수료증과 인턴십 확인서가 문제입니다. 재판부는 이 두 서류를 조 전 장관이 직접 만들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익인권법센터의 경우 조 전 장관이 당시 센터장이었던 한인섭 교수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작성한 것으로, 부산 호텔의 경우 조 전 장관이 내용을 모두 임의로 작성해 호텔 법인 인감을 날인받은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피고인인 정 교수는 오히려 여기에 가담한 공범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조 전 장관 역시 서울대 의전원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나 위조공문서행사 혐의 등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입니다.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해선, 재판부가 정 교수와 조범동 씨 사이 거래를 '대여'가 아닌 '투자'로 판단한 부분이 조 전 장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정 교수가 받았던 횡령 혐의에는 이 판단이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조 전 장관이 받고 있는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나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의 경우 상황이 다릅니다. 투자라는 본질을 숨기고 대여로 가장해 재산을 신고했다는 게 혐의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증거인멸 부분은 오히려 유리한 대목이 있습니다. 펀드운용현황보고서 위조와 관련한 증거위조교사 혐의에 대해선, 조 전 장관도 마찬가지로 무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증거은닉교사 혐의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 교수는 자신의 증거를 숨긴 '공동정범'으로 인정돼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조 전 장관의 경우 현장에서 직접 은닉행위를 하진 않았으므로 정 교수를 통해 김경록 씨에게 '순차 교사'했다는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 정경심, 선고 당일 항소…"너무 큰 충격"·"괘씸죄 적용된 듯" 반격 예고

정 교수 측은 선고 당일인 어제, 곧바로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판결문은 통상 선고 며칠 뒤에 받아볼 수 있는데 이처럼 판결문을 받아보기도 전에 항소장부터 낸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판결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정 교수 측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국 전 장관은 어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너무도 큰 충격"이라며 "제가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면서 이런 시련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나 보다"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이어 "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모양"이라며 "즉각 항소해서 다투겠다"고 썼습니다.

어제(23일), 정경심 교수에 대한 1심 선고 후 김칠준 변호사가 기자들을 만나 입장을 밝혔다.
정 교수의 변호인 역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며 재판부의 예단과 추측, 선입견이 재판에 반영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의 많은 입증 노력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검찰 논리 그대로 모두 유죄가 인정되는 걸 보면서 적잖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항소심에서 다투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은 특히, 정 교수에게 이른바 '괘씸죄'가 적용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냈습니다. 변호인은 "수사 과정에서 압도적인 여론의 공격에 대해서 스스로 방어하면서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려 했던 그 노력이 오히려 정 교수에게 형량에 아주 불리한 사유로 언급됐다"고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 끝나지 않은 법정 싸움…딸 조민 추가 기소는?

정 교수는 이렇게 1차적인 법적 판단을 받았지만, 모든 법정 다툼이 끝나기까진 아직 먼 길이 남았습니다. 이번 사건은 항소에 이어 2심 법원의 판단, 또 경우에 따라 대법원까지 갈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김미리)가 심리하는 정 교수와 조 전 장관 부부의 자녀 입시비리 등 혐의 재판이 남아있습니다. 두 사람은 내년부터 한 법정에 서서 재판을 이어가게 됩니다.

정 교수의 입시비리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가 선고되면서, 입시비리로 이득을 본 당사자인 딸 조민 씨에 대한 검찰의 처분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검찰은 당장은 조 씨에 대한 기소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 유출된 시험지로 시험을 본 혐의가 유죄가 인정된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쌍둥이는 아버지에 대한 실형이 선고된 뒤 추가로 기소됐습니다.

반면, 검찰은 '국정농단'의 중심에 섰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의 경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딸 조 씨 외에도 또 다른 입시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정 교수 아들이나 코링크PE 관계자들의 기소 여부도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정 교수 부부의 입시비리 혐의에 대한 재판이 두 개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형사합의21부의 판단까지 받아본 뒤 검찰이 이들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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