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육]① 소·닭·쥐…실험실에서 기른 고기를 먹어봤습니다

입력 2020.12.25 (11: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가 지난 19일 세계 최초로 배양육 판매를 시작했다.

배양육은 소나 닭 등 동물의 세포를 채취해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고기로, 동물을 사육하거나 도축할 필요 없이 고기만 얻을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2013년 미국의 한 스타트업이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의 투자를 받아 소 줄기세포를 이용한 햄버거 패티를 처음 만들었는데, 당시 생산비용은 33만 달러, 우리돈 3억 5천만 원 정도였다. 200그램도 안 되는 고기 한덩이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데 정육점에서 판매하는 고깃값의 80만 배가 든 것이다.

이때만 해도 아주 먼 미래라고 여겼던 배양육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아니, 이미 현실이 됐다.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식품 판매 허가를 받은 곳은 미국의 스타트업 '잇 저스트(Eat Just)'다. 지난 19일 싱가포르에 있는 '1880'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배양 닭고기로 만든 23달러짜리 요리를 선보였는데, 조만간 치킷 너겟 형태로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싱가포르 ‘1880’ 레스토랑이 선보인 배양육 요리싱가포르 ‘1880’ 레스토랑이 선보인 배양육 요리

우리나라에도 다나그린, 시위드, 셀미트 등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배양육을 개발하고 있다. 해외 투자사나 배양육 업체가 국내 스타트업에 주목할 정도로 연구 성과도 내고 있다. 한 배양육 업체를 찾아가 봤다.

■"이르면 내년 식탁 위로"...열평 실험실의 이유 있는 패기

서울 강남의 한 골목길, 작은 상가 건물에 위치한 한 바이오 스타트업을 찾았다. 사무공간을 제외하면 실험공간은 10평 남짓. 배양기 몇 대와 간단한 실험장비들, 예닐곱 명의 연구인력이 실험에 한창이었다. 국내에서 배양육을 연구하고 있는 업체는 소규모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작은 실험실에서 어쩌면 공장식 사육을 대체할지도 모를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배양육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봤다.


갓 도축한 소의 사태살(앞다리와 뒷다리 오금에 붙어있는 고기로 지방은 적고 근육이 많다)에서 근육세포를 추출해 배양 접시에서 세포를 증식시킨다. 근육세포를 이용하는 이유는 조직감이 있는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어떤 세포를 배양하느냐에 따라 고기의 맛이 달라진다. 소의 세포를 배양하면 소고기가 되고, 닭의 세포를 배양하면 닭고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소의 세포 중에서도 지방세포를 배양하면 지방이 자라난다. 근육세포를 키운 뒤 지방세포를 첨가하면 이론상 '마블링(근육 안에 섞인 지방층)'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채취한 세포는 잘 증식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알아서 풍미를 지닌 고기로 자란다. 이때 세포증식의 터전이 되는 지지체와 영양분을 공급할 배양액이 필요하다.

기존에는 별도의 지지체 없이 배양 접시 표면에 세포를 붙여 세포가 자라나게 했지만, 기자가 찾은 배양육 업체는 콩 단백질로 3D 지지체를 만들고 여기에 세포를 붙여 입체적으로 자라나게 하는 방식으로 특허를 받았다. 그리고 마치 세포 사이사이에 피가 돌듯 소의 혈청으로 만든 배양액을 공급해주면 몇 주 뒤 지지체에 근 조직이 생기고 살이 자라난다. 고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업체에서 현재 만들어내는 소 배양육의 단가는 100그램에 10만 원 수준. 단가를 낮추기 위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생산비용의 80%를 차지하는 배양액의 가격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현재 배양육 업체가 사용하는 배양액의 주성분은 소의 혈청인데, 생산양도 제한적이고 가격도 비싸다. 이 때문에 소 혈청배양액의 대체재를 찾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혈청 배양액은 대부분 백신을 만드는 제약업체로 들어가고 있어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며 "혈청이 아닌 다른 동물성 배양액부터 식물에서 추출한 배양액까지 다양한 후보군을 실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또 다른 배양육 스타트업은 해조류 추출 성분으로 배양액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단가 절감을 꾀하고 있다.

업체마다 배양육을 생산해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대부분 앞으로 2~3년 안에 소 배양육 가격을 100그램당 2천 원~3천 원 선에서 시판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삼겹살 가격보다 싸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 ‘다나그린’이 만든 배양육국내 바이오 스타트업 ‘다나그린’이 만든 배양육

■연한 베이지 색깔이 도는 '배양육'…쥐고기까지 맛본 시식 후기

배양육의 생김새는 일반고기와는 다르다. 세포 배양을 시작하면 점차 지지체 주변으로 연한 베이지색 고기가 몽글몽글하게 자라난다. 배양액을 깨끗이 씻은 뒤, 그 살을 뭉쳐 마치 햄버거 패티를 만들듯 치대 모양을 잡아주고, 고기 굽듯 구우면 완성이다.

그렇다면 배양육의 맛은 어떨까?


비교를 위해 세포를 배양하기 전 빈 지지체와 닭 배양육, 소 배양육을 차례로 맛봤다.

<배양육 시식 노트>
▶ 빈 지지체: 생긴 건 멀건 쫀쫀한 유부같이 생겼다. 혹은 두께가 살짝 더 도톰한 건 두부 같기도 하다. 맛은 무미(無味)에 가까운데, 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씹으면 씹을수록 약하게 콩 맛이 느껴졌다.
▶ 닭 배양육: 입에 넣어 씹는 순간 빈 지지체의 콩 맛과는 확연히 다른 육고기 맛이 느껴졌다. 쫀쫀한 조직감이 느껴지고 전체적인 식감과 맛은 꼭 닭가슴살 같았다.
▶소 배양육: 한 배양 지지체에서 4주 정도 소 세포를 증식해 3그램 정도의 고기를 얻어냈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는 닭 배양육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뒷맛에서 소고기 특유의 고소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업체는 시식이 끝나고 소나 닭 세포보다 가격이 저렴한 실험용 쥐에서 얻은 쥐 배양육(?)의 맛도 보여줬다. 소 배양육에서 느꼈던 감칠맛이 전혀 없었는데, 인류가 왜 쥐고기는 잘 먹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영국의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1931년 <50년 뒤의 세계(Fifty Years Hence)>라는 글에서 배양육을 이미 예견했다.

'닭 가슴살이나 날개를 먹기 위해 닭을 통째로 키우는 부조리에서 벗어나 이 부분을 적당한 배지에서 따로 키우면 된다. (We shall escape the absurdity of growing a whole chicken in order to eat the breast or wing, by growing these parts separately under a suitable medium.)'

예상보다 40년 정도 더 걸리긴 했지만 영화 같은 상상은 이미 현실이 됐고, 배양육 기술의 변화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어지는 <배양육> 취재 시리즈에서 앞으로 달라질 모습을 그려보고, 배양육과 관련한 우려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또 오늘(25일) 밤 KBS 9시 뉴스에서는 <배양육>에 대한 우리 기술의 발전 정도와 향후 전망에 대한 리포트가 방송될 예정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배양육]① 소·닭·쥐…실험실에서 기른 고기를 먹어봤습니다
    • 입력 2020-12-25 11:02:11
    취재K

싱가포르가 지난 19일 세계 최초로 배양육 판매를 시작했다.

배양육은 소나 닭 등 동물의 세포를 채취해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고기로, 동물을 사육하거나 도축할 필요 없이 고기만 얻을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2013년 미국의 한 스타트업이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의 투자를 받아 소 줄기세포를 이용한 햄버거 패티를 처음 만들었는데, 당시 생산비용은 33만 달러, 우리돈 3억 5천만 원 정도였다. 200그램도 안 되는 고기 한덩이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데 정육점에서 판매하는 고깃값의 80만 배가 든 것이다.

이때만 해도 아주 먼 미래라고 여겼던 배양육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아니, 이미 현실이 됐다.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식품 판매 허가를 받은 곳은 미국의 스타트업 '잇 저스트(Eat Just)'다. 지난 19일 싱가포르에 있는 '1880'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배양 닭고기로 만든 23달러짜리 요리를 선보였는데, 조만간 치킷 너겟 형태로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싱가포르 ‘1880’ 레스토랑이 선보인 배양육 요리
우리나라에도 다나그린, 시위드, 셀미트 등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배양육을 개발하고 있다. 해외 투자사나 배양육 업체가 국내 스타트업에 주목할 정도로 연구 성과도 내고 있다. 한 배양육 업체를 찾아가 봤다.

■"이르면 내년 식탁 위로"...열평 실험실의 이유 있는 패기

서울 강남의 한 골목길, 작은 상가 건물에 위치한 한 바이오 스타트업을 찾았다. 사무공간을 제외하면 실험공간은 10평 남짓. 배양기 몇 대와 간단한 실험장비들, 예닐곱 명의 연구인력이 실험에 한창이었다. 국내에서 배양육을 연구하고 있는 업체는 소규모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작은 실험실에서 어쩌면 공장식 사육을 대체할지도 모를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배양육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봤다.


갓 도축한 소의 사태살(앞다리와 뒷다리 오금에 붙어있는 고기로 지방은 적고 근육이 많다)에서 근육세포를 추출해 배양 접시에서 세포를 증식시킨다. 근육세포를 이용하는 이유는 조직감이 있는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어떤 세포를 배양하느냐에 따라 고기의 맛이 달라진다. 소의 세포를 배양하면 소고기가 되고, 닭의 세포를 배양하면 닭고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소의 세포 중에서도 지방세포를 배양하면 지방이 자라난다. 근육세포를 키운 뒤 지방세포를 첨가하면 이론상 '마블링(근육 안에 섞인 지방층)'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채취한 세포는 잘 증식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알아서 풍미를 지닌 고기로 자란다. 이때 세포증식의 터전이 되는 지지체와 영양분을 공급할 배양액이 필요하다.

기존에는 별도의 지지체 없이 배양 접시 표면에 세포를 붙여 세포가 자라나게 했지만, 기자가 찾은 배양육 업체는 콩 단백질로 3D 지지체를 만들고 여기에 세포를 붙여 입체적으로 자라나게 하는 방식으로 특허를 받았다. 그리고 마치 세포 사이사이에 피가 돌듯 소의 혈청으로 만든 배양액을 공급해주면 몇 주 뒤 지지체에 근 조직이 생기고 살이 자라난다. 고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업체에서 현재 만들어내는 소 배양육의 단가는 100그램에 10만 원 수준. 단가를 낮추기 위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생산비용의 80%를 차지하는 배양액의 가격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현재 배양육 업체가 사용하는 배양액의 주성분은 소의 혈청인데, 생산양도 제한적이고 가격도 비싸다. 이 때문에 소 혈청배양액의 대체재를 찾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혈청 배양액은 대부분 백신을 만드는 제약업체로 들어가고 있어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며 "혈청이 아닌 다른 동물성 배양액부터 식물에서 추출한 배양액까지 다양한 후보군을 실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또 다른 배양육 스타트업은 해조류 추출 성분으로 배양액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단가 절감을 꾀하고 있다.

업체마다 배양육을 생산해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대부분 앞으로 2~3년 안에 소 배양육 가격을 100그램당 2천 원~3천 원 선에서 시판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삼겹살 가격보다 싸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 ‘다나그린’이 만든 배양육
■연한 베이지 색깔이 도는 '배양육'…쥐고기까지 맛본 시식 후기

배양육의 생김새는 일반고기와는 다르다. 세포 배양을 시작하면 점차 지지체 주변으로 연한 베이지색 고기가 몽글몽글하게 자라난다. 배양액을 깨끗이 씻은 뒤, 그 살을 뭉쳐 마치 햄버거 패티를 만들듯 치대 모양을 잡아주고, 고기 굽듯 구우면 완성이다.

그렇다면 배양육의 맛은 어떨까?


비교를 위해 세포를 배양하기 전 빈 지지체와 닭 배양육, 소 배양육을 차례로 맛봤다.

<배양육 시식 노트>
▶ 빈 지지체: 생긴 건 멀건 쫀쫀한 유부같이 생겼다. 혹은 두께가 살짝 더 도톰한 건 두부 같기도 하다. 맛은 무미(無味)에 가까운데, 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씹으면 씹을수록 약하게 콩 맛이 느껴졌다.
▶ 닭 배양육: 입에 넣어 씹는 순간 빈 지지체의 콩 맛과는 확연히 다른 육고기 맛이 느껴졌다. 쫀쫀한 조직감이 느껴지고 전체적인 식감과 맛은 꼭 닭가슴살 같았다.
▶소 배양육: 한 배양 지지체에서 4주 정도 소 세포를 증식해 3그램 정도의 고기를 얻어냈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는 닭 배양육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뒷맛에서 소고기 특유의 고소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업체는 시식이 끝나고 소나 닭 세포보다 가격이 저렴한 실험용 쥐에서 얻은 쥐 배양육(?)의 맛도 보여줬다. 소 배양육에서 느꼈던 감칠맛이 전혀 없었는데, 인류가 왜 쥐고기는 잘 먹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영국의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1931년 <50년 뒤의 세계(Fifty Years Hence)>라는 글에서 배양육을 이미 예견했다.

'닭 가슴살이나 날개를 먹기 위해 닭을 통째로 키우는 부조리에서 벗어나 이 부분을 적당한 배지에서 따로 키우면 된다. (We shall escape the absurdity of growing a whole chicken in order to eat the breast or wing, by growing these parts separately under a suitable medium.)'

예상보다 40년 정도 더 걸리긴 했지만 영화 같은 상상은 이미 현실이 됐고, 배양육 기술의 변화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어지는 <배양육> 취재 시리즈에서 앞으로 달라질 모습을 그려보고, 배양육과 관련한 우려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또 오늘(25일) 밤 KBS 9시 뉴스에서는 <배양육>에 대한 우리 기술의 발전 정도와 향후 전망에 대한 리포트가 방송될 예정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