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40년 노포(老鋪)’와 ‘5살 스타트업’이 함께 사는 길

입력 2020.12.26 (07:05) 수정 2020.12.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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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의 바닷가 쪽으로 가면, 붉은색 간판의 허름해 보이는 가게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이화횟집'

식당이름은 '횟집'인데, 이 집 메뉴에 회는 없다. 주 전공은 바로 앞 서해 바다에서 가져오는 낙지다.

'낙지전골, 낙지볶음, 산낙지회...', 벽면에 붙어 있는 메뉴는 불과 5개뿐이다. 그중 특히 유명한 것은 낙지 전골, 독특한 매운맛에 부추를 곁들여 서울 등 멀리서까지 일부러 찾아오게 만드는 대표 메뉴다.

"부모님들을 모시고 오거든요. 왔던 손님들이...처음에는 집이 허름해서 실망하세요. 이런 집을 멀리서 오느냐고 부모님들이 그래요. 근데 나중에는 잘 왔다고, 좋아하신대요. 또 오자고. 그럴 때 기분이 좋아요."

'이화상회'라는 이름으로 1980년대 이 가게를 처음 연 박영숙(68세) 사장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문 닫을 생각도 여러번...코로나에 단체 손님이 뚝

잘 되는 식당이었다. 일부러 알고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후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주변 자동차 공장 사람들의 단골 가게가 됐고, 입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 앞에 버티는 식당은 그리 많지 않다.

"점심때만 낙지가 200마리는 나갔죠. 점심에는 예약해서 단체로 오고 그랬으니까...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공장에서 단체로 못 나가게 하더라고요. 먼 데서 찾아오는 손님으로 보충은 하는데..."

매상이 많이 줄지는 않았다고 말하지만 20대부터 식당을 이어온 사장의 목소리에는 코로나 속 우리 자영업자들이 겪는 고달픔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장사를 몇 번 접으려고 했는데..."

■ '백 년 가게'가 '스타트업'을 만나다

"전골이 너무 고소해서 까무러치는 줄 알았어요."

전골 메뉴를 '밀키트'로 만들어 보겠다며 찾아온 한 스타트업의 여직원이 한 말을 박영숙 사장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백년가게'인 이화횟집의 대표 메뉴를 집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밀키트'로 만들어 보자는 사업이었다.

프렌차이즈로 분점을 내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산낙지'를 제대로 공급 못 하면 그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없을 것 같아 거절하고 바닷가 한 자리에서만 식당을 이어온 박 사장에게 '밀키트'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 4년밖에 안됐다는 식품 스타트업 회사 직원의 말은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노력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공장에도 가보고...딴 데 한테는 '비법'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거기 직원들한테는 귀찮을 정도로 알려줬어요, 모든 걸 다...산낙지만 했는데, 냉동낙지와는 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연구를 해서 맛을 내려면 냉동낙지는 어떻게 하라고 다 알려줬어요."

식당에서 직접 내오는 것과는 다른 '기계화된 처리 과정', 맛의 비밀인 '레시피'를 고스란히 담아내야 하는 어려움...쉽지는 않았지만, 가게가 계속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 났다.

■ '해외'로도 나갈 우리 '백년 가게'의 맛

지난 15일 KBS 통합뉴스룸 ET(월~목 KBS 2TV 오후 5시 50분)를 찾은 프레시지(2016년 창업) 정중교 대표는 백년가게와 스타트업이 함께 사는 길을 이야기했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영업자분들께서 더 이상 홀에서 장사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부딪치는 상황이 왔어요. 저희가 100년 가게라고 우리나라에서 30년 이상 된 맛집들과 협약을 맺어서 그분들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이런 가정 간편식을 만들고 이걸 국내와 해외로 유통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항상 얘기하시는 게 일본에는 200년 이상 된 가게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이제야 30년 된 가게들이고 이게 100년, 200년이 가야 한다고"

40년 노포(老鋪)와 이제 5살 스타트업. 맛의 비법을 공개하기가 쉽지 않았을 노포와 특유의 그 맛을 재현하는 게 쉽지 않을 걸 뻔히 알았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히 뛰어든 스타트업.

확장성이 부족한 동네 맛집과 독창성을 선보여야 하는 식품 스타트업이 맞잡은 손이 우리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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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T] ‘40년 노포(老鋪)’와 ‘5살 스타트업’이 함께 사는 길
    • 입력 2020-12-26 07:05:09
    • 수정2020-12-26 09:50:16
    취재K

경기도 화성의 바닷가 쪽으로 가면, 붉은색 간판의 허름해 보이는 가게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이화횟집'

식당이름은 '횟집'인데, 이 집 메뉴에 회는 없다. 주 전공은 바로 앞 서해 바다에서 가져오는 낙지다.

'낙지전골, 낙지볶음, 산낙지회...', 벽면에 붙어 있는 메뉴는 불과 5개뿐이다. 그중 특히 유명한 것은 낙지 전골, 독특한 매운맛에 부추를 곁들여 서울 등 멀리서까지 일부러 찾아오게 만드는 대표 메뉴다.

"부모님들을 모시고 오거든요. 왔던 손님들이...처음에는 집이 허름해서 실망하세요. 이런 집을 멀리서 오느냐고 부모님들이 그래요. 근데 나중에는 잘 왔다고, 좋아하신대요. 또 오자고. 그럴 때 기분이 좋아요."

'이화상회'라는 이름으로 1980년대 이 가게를 처음 연 박영숙(68세) 사장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문 닫을 생각도 여러번...코로나에 단체 손님이 뚝

잘 되는 식당이었다. 일부러 알고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후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주변 자동차 공장 사람들의 단골 가게가 됐고, 입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 앞에 버티는 식당은 그리 많지 않다.

"점심때만 낙지가 200마리는 나갔죠. 점심에는 예약해서 단체로 오고 그랬으니까...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공장에서 단체로 못 나가게 하더라고요. 먼 데서 찾아오는 손님으로 보충은 하는데..."

매상이 많이 줄지는 않았다고 말하지만 20대부터 식당을 이어온 사장의 목소리에는 코로나 속 우리 자영업자들이 겪는 고달픔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장사를 몇 번 접으려고 했는데..."

■ '백 년 가게'가 '스타트업'을 만나다

"전골이 너무 고소해서 까무러치는 줄 알았어요."

전골 메뉴를 '밀키트'로 만들어 보겠다며 찾아온 한 스타트업의 여직원이 한 말을 박영숙 사장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백년가게'인 이화횟집의 대표 메뉴를 집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밀키트'로 만들어 보자는 사업이었다.

프렌차이즈로 분점을 내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산낙지'를 제대로 공급 못 하면 그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없을 것 같아 거절하고 바닷가 한 자리에서만 식당을 이어온 박 사장에게 '밀키트'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 4년밖에 안됐다는 식품 스타트업 회사 직원의 말은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노력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공장에도 가보고...딴 데 한테는 '비법'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거기 직원들한테는 귀찮을 정도로 알려줬어요, 모든 걸 다...산낙지만 했는데, 냉동낙지와는 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연구를 해서 맛을 내려면 냉동낙지는 어떻게 하라고 다 알려줬어요."

식당에서 직접 내오는 것과는 다른 '기계화된 처리 과정', 맛의 비밀인 '레시피'를 고스란히 담아내야 하는 어려움...쉽지는 않았지만, 가게가 계속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 났다.

■ '해외'로도 나갈 우리 '백년 가게'의 맛

지난 15일 KBS 통합뉴스룸 ET(월~목 KBS 2TV 오후 5시 50분)를 찾은 프레시지(2016년 창업) 정중교 대표는 백년가게와 스타트업이 함께 사는 길을 이야기했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영업자분들께서 더 이상 홀에서 장사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부딪치는 상황이 왔어요. 저희가 100년 가게라고 우리나라에서 30년 이상 된 맛집들과 협약을 맺어서 그분들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이런 가정 간편식을 만들고 이걸 국내와 해외로 유통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항상 얘기하시는 게 일본에는 200년 이상 된 가게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이제야 30년 된 가게들이고 이게 100년, 200년이 가야 한다고"

40년 노포(老鋪)와 이제 5살 스타트업. 맛의 비법을 공개하기가 쉽지 않았을 노포와 특유의 그 맛을 재현하는 게 쉽지 않을 걸 뻔히 알았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히 뛰어든 스타트업.

확장성이 부족한 동네 맛집과 독창성을 선보여야 하는 식품 스타트업이 맞잡은 손이 우리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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