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들어와 청력을 잃었어요”…아이들을 위협하는 ‘집’

입력 2020.12.28 (21:35) 수정 2020.12.2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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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열악한 주거환경은 불편함을 넘어 아이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낡고 오래된 집에서 ​사고와 질병의 위험 속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아이들을 이수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곳곳이 깨져 울퉁불퉁한 바닥.

서랍장은 벽돌을 괴어 겨우 세워뒀습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5명의 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7명이 사는 집.

거실 바닥을 받치는 나무가 썩어 내려앉고 있는데, 바닥이 깨지면서 보일러 열선까지 드러났습니다.

[할머니/음성변조 : "이게 다 보일러 선인데 이게 이러면은, 이게 떨어지면 애들 화상 입을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깨진 바닥에서 올라오는 벌레도 아이들을 괴롭히지만 어려운 형편에 이사는 엄두도 못 냅니다.

[할머니/음성변조 : "좀 깨끗한 방, 벌레 안 나오고 하는 방, (아이들이) 그런 걸 원하긴 하는데 참 부모로서 좀 애들한테 그런거 불편 없이 그렇게 해줘야 하는데…. 이사를 가려고 해도 식구도 많다 보니까…."]

우리 법은 사람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정해놨습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네모 안, 한 명이 사는데 최소한 이 정도는 필요하다고 정한 면적 14제곱미터입니다.

가족이 늘어나면 방과 면적도 늘어나야 하고 채광과 난방 같은 환경 기준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저 주거기준', 주거빈곤층에게는 법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세 남매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이 집은 반지하라 늘 습기가 차고 수시로 벌레가 나옵니다.

얼마 전에는 첫째 아이가 자는 사이 벌레가 귀에 들어가 한 쪽 청력을 잃었습니다.

[윤영길/할아버지 : "피고름이 자꾸 흐르길래 병원을 가서 물어봤더니 조그만 벌레 같은 게 (귀에) 들어가서 문 것 같다고... 그때는 장판 들면 (벌레가) 바닥에 새카맣게 있어요."]

이렇게 열악한 주거 환경은 불편함을 넘어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서울시가 만 18세 이하 아동이 있는 주거 취약가구를 조사했더니 75% 이상이 주거환경 때문에 아이에게 질병이 생겼다고 답했습니다.

주로 비염 등 호흡기 질환과 아토피 등 피부질환 등이었습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장 : "아동 주거 문제는 다른 문제보다도 먼저 저는 좀 해결이 되어야 된다고 보는 것이 이게 그 아이의 평생의 기회를 좌우해요. 그 열악한 집에서 습기와 곰팡이랑 싸우면서 이제 아이가 병을 얻게 되고, 그럼 이거 결국 학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좁고 열악한 수준을 넘어 집이 아닌 곳에서까지 살고 있는 '주거빈곤' 상태의 아동은 전국에 약 94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KBS 뉴스 이수민입니다.

촬영기자:박세준/그래픽:한종헌

▼집에 남겨진 아이들…코로나로 더 열악해진 환경▼

[앵커]

올해는 특히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는데요.

취약계층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큽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조사해 봤더니 ​하루에 집 밖으로 30분도 나가지 않는다는 아동 비율은 소득 하위계층일수록 높았습니다.

특히 코로나로 보호자들의 경제적 사정까지 더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은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혜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반지하 단칸방에 달린 좁은 부엌.

난방조차 들어오지 않아 작은 전기 난로의 온기가 전부입니다.

이제 15살인 철수.

처음이 아닌 듯 자신만의 요리법으로 라면을 끓입니다.

[김철수/가명 : "(일주일에) 혼자 두, 세번? 두 번? (두 번 정도는 혼자 밥먹어요? 저녁은?) 한, 두 번 정도는 제가 먹어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주거빈곤 상태인 아동 2명 중 한 명은 낮에 보호자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철수도 엄마가 일을 가면 혼자 집을 지킵니다.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장판 밑의 습기로 집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화장실은 허리를 다 펼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게임이나 휴대폰뿐.

공부를 하려고 해도 학원을 다니지 않는 철수 혼자서는 내용을 따라가기가 벅찹니다.

[김철수/가명 : "(학교에 가면) 제대로 제가 모르는 부분 말할 수 있고, (온라인 강의는) 선생님이 (영상을) 찍기는 하는데 이게(내용이) 다 정해져 있다 보니…."]

이런 철수가 안타깝지만 엄마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철수 어머니 역시 올 초 일하던 식당이 폐업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수 어머니 : "지금 가릴 때가 아니라 일이 들어오면 야간도 괜찮고 오전도 괜찮고, 오후도 괜찮고 뭐든지."]

수입은 코로나 이전보다 절반으로 줄어 월 50만 원 정도가 전부입니다.

월세 28만 원이 밀리고 밀려 보증금 200만 원은 이미 날렸습니다.

아이를 혼자 두는 것보다 두려운 건 아이를 위해 겨우 구한 반지하마저 잃게 되는 일입니다.

[철수 어머니 : "아이가 엄청 좋아했거든요, 여기 이사 와서. 그때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깐 많이 좋아했어요. 자기 공간이 있다고."]

코로나 19 이후 취약계층 아동들일수록 고립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집에 남겨진 아이에게도, 일자리를 잃은 부모에게도 힘든 시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혜진입니다.

촬영기자:박세준/그래픽: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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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레가 들어와 청력을 잃었어요”…아이들을 위협하는 ‘집’
    • 입력 2020-12-28 21:35:12
    • 수정2020-12-28 2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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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열악한 주거환경은 불편함을 넘어 아이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낡고 오래된 집에서 ​사고와 질병의 위험 속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아이들을 이수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곳곳이 깨져 울퉁불퉁한 바닥.

서랍장은 벽돌을 괴어 겨우 세워뒀습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5명의 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7명이 사는 집.

거실 바닥을 받치는 나무가 썩어 내려앉고 있는데, 바닥이 깨지면서 보일러 열선까지 드러났습니다.

[할머니/음성변조 : "이게 다 보일러 선인데 이게 이러면은, 이게 떨어지면 애들 화상 입을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깨진 바닥에서 올라오는 벌레도 아이들을 괴롭히지만 어려운 형편에 이사는 엄두도 못 냅니다.

[할머니/음성변조 : "좀 깨끗한 방, 벌레 안 나오고 하는 방, (아이들이) 그런 걸 원하긴 하는데 참 부모로서 좀 애들한테 그런거 불편 없이 그렇게 해줘야 하는데…. 이사를 가려고 해도 식구도 많다 보니까…."]

우리 법은 사람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정해놨습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네모 안, 한 명이 사는데 최소한 이 정도는 필요하다고 정한 면적 14제곱미터입니다.

가족이 늘어나면 방과 면적도 늘어나야 하고 채광과 난방 같은 환경 기준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저 주거기준', 주거빈곤층에게는 법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세 남매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이 집은 반지하라 늘 습기가 차고 수시로 벌레가 나옵니다.

얼마 전에는 첫째 아이가 자는 사이 벌레가 귀에 들어가 한 쪽 청력을 잃었습니다.

[윤영길/할아버지 : "피고름이 자꾸 흐르길래 병원을 가서 물어봤더니 조그만 벌레 같은 게 (귀에) 들어가서 문 것 같다고... 그때는 장판 들면 (벌레가) 바닥에 새카맣게 있어요."]

이렇게 열악한 주거 환경은 불편함을 넘어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서울시가 만 18세 이하 아동이 있는 주거 취약가구를 조사했더니 75% 이상이 주거환경 때문에 아이에게 질병이 생겼다고 답했습니다.

주로 비염 등 호흡기 질환과 아토피 등 피부질환 등이었습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장 : "아동 주거 문제는 다른 문제보다도 먼저 저는 좀 해결이 되어야 된다고 보는 것이 이게 그 아이의 평생의 기회를 좌우해요. 그 열악한 집에서 습기와 곰팡이랑 싸우면서 이제 아이가 병을 얻게 되고, 그럼 이거 결국 학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좁고 열악한 수준을 넘어 집이 아닌 곳에서까지 살고 있는 '주거빈곤' 상태의 아동은 전국에 약 94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KBS 뉴스 이수민입니다.

촬영기자:박세준/그래픽:한종헌

▼집에 남겨진 아이들…코로나로 더 열악해진 환경▼

[앵커]

올해는 특히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는데요.

취약계층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큽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조사해 봤더니 ​하루에 집 밖으로 30분도 나가지 않는다는 아동 비율은 소득 하위계층일수록 높았습니다.

특히 코로나로 보호자들의 경제적 사정까지 더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은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혜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반지하 단칸방에 달린 좁은 부엌.

난방조차 들어오지 않아 작은 전기 난로의 온기가 전부입니다.

이제 15살인 철수.

처음이 아닌 듯 자신만의 요리법으로 라면을 끓입니다.

[김철수/가명 : "(일주일에) 혼자 두, 세번? 두 번? (두 번 정도는 혼자 밥먹어요? 저녁은?) 한, 두 번 정도는 제가 먹어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주거빈곤 상태인 아동 2명 중 한 명은 낮에 보호자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철수도 엄마가 일을 가면 혼자 집을 지킵니다.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장판 밑의 습기로 집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화장실은 허리를 다 펼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게임이나 휴대폰뿐.

공부를 하려고 해도 학원을 다니지 않는 철수 혼자서는 내용을 따라가기가 벅찹니다.

[김철수/가명 : "(학교에 가면) 제대로 제가 모르는 부분 말할 수 있고, (온라인 강의는) 선생님이 (영상을) 찍기는 하는데 이게(내용이) 다 정해져 있다 보니…."]

이런 철수가 안타깝지만 엄마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철수 어머니 역시 올 초 일하던 식당이 폐업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수 어머니 : "지금 가릴 때가 아니라 일이 들어오면 야간도 괜찮고 오전도 괜찮고, 오후도 괜찮고 뭐든지."]

수입은 코로나 이전보다 절반으로 줄어 월 50만 원 정도가 전부입니다.

월세 28만 원이 밀리고 밀려 보증금 200만 원은 이미 날렸습니다.

아이를 혼자 두는 것보다 두려운 건 아이를 위해 겨우 구한 반지하마저 잃게 되는 일입니다.

[철수 어머니 : "아이가 엄청 좋아했거든요, 여기 이사 와서. 그때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깐 많이 좋아했어요. 자기 공간이 있다고."]

코로나 19 이후 취약계층 아동들일수록 고립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집에 남겨진 아이에게도, 일자리를 잃은 부모에게도 힘든 시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혜진입니다.

촬영기자:박세준/그래픽: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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