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탈북민 위장 간첩 사건’ 전수 조사…인권 침해 있었나?

입력 2020.12.29 (09: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탈북민 위장 간첩 사건’에 대한 전수 조사를 통해 중앙합동신문센터 조사 과정에서의 인권 시비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제적 조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탈북민들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이곳에서 적발한 탈북민 위장 간첩 사건 전체를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밝히면서, 국정원은 '인권'을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습니다.

망명한 탈북민들이 위장 간첩은 아닌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욕설이나 회유, 폭행 등 인권을 무시하는 강압 수사가 있었는지 별도의 특별팀을 꾸려 들여다보겠다는 건데요.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직접 팀장을 맡고, 국정원 파견 검사나 변호사 출신 준법지원관 등 10명 안팎이 실무에 나선다고도 설명했습니다.

■ 허위자백 진술서만 1,250여 장…7년 만에 벗은 누명

국정원이 약 12년 만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최근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홍강철 씨 사건이 있습니다. 2013년 6월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들어온 홍 씨는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 북한 보위부 소속 남파 간첩으로 지목됐습니다.

합동신문센터 독방에 갇혀 수사관이 만족할 만할 때까지 거듭 쓴 진술서만 1,250여 장. 결국 홍 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다 주겠다’는 약속에 넘어가 간첩이 맞다는 허위 자백을 했습니다.

약 7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홍 씨는 지난 24일 대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로 가까스로 누명을 벗었습니다.

홍 씨는 이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행이긴 하지만 씁쓸하다'며, 합동신문센터에서 불이익을 당한 탈북민들을 변호사와 연결해주는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자신처럼 간첩 누명을 써야 했던 억울한 탈북민들을 돕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언론에 알려진 탈북자 위장 간첩의 역사는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는 해마다 2,000명~3,000명의 탈북민이 국내로 들어오던, 이른바 '이민형 탈북'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립니다.

크게 늘어난 탈북민 수에 맞춰 2008년 이들의 탈북 배경 등을 조사하는 합동신문센터가 문을 열었고, '진짜' 탈북민 사이에서 '가짜' 탈북민을 가려내는 작업도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합동신문센터가 적발한 위장 간첩 중 몇 건이 홍 씨처럼 억울한 사연에 해당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17년,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센터 설립 이후 최소 12건의 간첩 사건이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 2건은 무죄를 받았으며, 5명이 조작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때 무죄를 받은 2건 중 하나가 바로 홍 씨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으로 알려진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입니다. 당시 유 씨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국정원은 유 씨의 여동생을 가두고 겁박했고, 재판에 낼 증거까지 조작했습니다.

다행히 진실이 밝혀지며 유 씨는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을 받았고, 오히려 증거 조작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들이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사건은 제 자리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지난달에는 국가가 유 씨와 가족들에게 모두 2억 3천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도 나왔습니다.

■ "누명 벗는 것도 운"…전수조사 성과 내려면?

그러나 결과와 상관없이, 유 씨와 홍 씨의 사건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마음만 먹으면 간첩 조작이 가능하다는 걸 생생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 둘이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것도 아주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유 씨의 변호인은 말합니다.

두 사건 모두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한 장경욱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탈북민 전체를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국가보안법이 문제'라며, 냉전 시대에 머물러 있는 법과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장 변호사는 또 국정원의 전수조사 방침 자체를 성과로 보기는 힘들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특별팀에 어느 정도까지 권한을 줄 것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를 하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특히 국정원은 보안을 이유로 정보 공개를 피하기 쉬운 기관인 만큼, 특별팀에 자료 접근 및 수사관 조사권 등을 충분히 보장해야 실속 있는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장 변호사는 거듭 강조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국정원, ‘탈북민 위장 간첩 사건’ 전수 조사…인권 침해 있었나?
    • 입력 2020-12-29 09:01:21
    취재K

"국가정보원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탈북민 위장 간첩 사건’에 대한 전수 조사를 통해 중앙합동신문센터 조사 과정에서의 인권 시비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제적 조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탈북민들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이곳에서 적발한 탈북민 위장 간첩 사건 전체를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밝히면서, 국정원은 '인권'을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습니다.

망명한 탈북민들이 위장 간첩은 아닌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욕설이나 회유, 폭행 등 인권을 무시하는 강압 수사가 있었는지 별도의 특별팀을 꾸려 들여다보겠다는 건데요.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직접 팀장을 맡고, 국정원 파견 검사나 변호사 출신 준법지원관 등 10명 안팎이 실무에 나선다고도 설명했습니다.

■ 허위자백 진술서만 1,250여 장…7년 만에 벗은 누명

국정원이 약 12년 만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최근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홍강철 씨 사건이 있습니다. 2013년 6월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들어온 홍 씨는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 북한 보위부 소속 남파 간첩으로 지목됐습니다.

합동신문센터 독방에 갇혀 수사관이 만족할 만할 때까지 거듭 쓴 진술서만 1,250여 장. 결국 홍 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다 주겠다’는 약속에 넘어가 간첩이 맞다는 허위 자백을 했습니다.

약 7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홍 씨는 지난 24일 대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로 가까스로 누명을 벗었습니다.

홍 씨는 이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행이긴 하지만 씁쓸하다'며, 합동신문센터에서 불이익을 당한 탈북민들을 변호사와 연결해주는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자신처럼 간첩 누명을 써야 했던 억울한 탈북민들을 돕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언론에 알려진 탈북자 위장 간첩의 역사는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는 해마다 2,000명~3,000명의 탈북민이 국내로 들어오던, 이른바 '이민형 탈북'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립니다.

크게 늘어난 탈북민 수에 맞춰 2008년 이들의 탈북 배경 등을 조사하는 합동신문센터가 문을 열었고, '진짜' 탈북민 사이에서 '가짜' 탈북민을 가려내는 작업도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합동신문센터가 적발한 위장 간첩 중 몇 건이 홍 씨처럼 억울한 사연에 해당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17년,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센터 설립 이후 최소 12건의 간첩 사건이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 2건은 무죄를 받았으며, 5명이 조작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때 무죄를 받은 2건 중 하나가 바로 홍 씨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으로 알려진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입니다. 당시 유 씨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국정원은 유 씨의 여동생을 가두고 겁박했고, 재판에 낼 증거까지 조작했습니다.

다행히 진실이 밝혀지며 유 씨는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을 받았고, 오히려 증거 조작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들이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사건은 제 자리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지난달에는 국가가 유 씨와 가족들에게 모두 2억 3천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도 나왔습니다.

■ "누명 벗는 것도 운"…전수조사 성과 내려면?

그러나 결과와 상관없이, 유 씨와 홍 씨의 사건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마음만 먹으면 간첩 조작이 가능하다는 걸 생생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 둘이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것도 아주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유 씨의 변호인은 말합니다.

두 사건 모두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한 장경욱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탈북민 전체를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국가보안법이 문제'라며, 냉전 시대에 머물러 있는 법과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장 변호사는 또 국정원의 전수조사 방침 자체를 성과로 보기는 힘들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특별팀에 어느 정도까지 권한을 줄 것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를 하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특히 국정원은 보안을 이유로 정보 공개를 피하기 쉬운 기관인 만큼, 특별팀에 자료 접근 및 수사관 조사권 등을 충분히 보장해야 실속 있는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장 변호사는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