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무너진 바닥, 쉴 새 없이 나오는 벌레…“집이 더 위험해요”

입력 2020.12.30 (07:01) 수정 2020.12.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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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 한데요. 직장인들은 회사에 가는 대신 집에서 일하고, 학생들은 학교가 아닌 자신의 방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연말인 요즘은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집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죠.

사실 집은 단순히 사람이 사는 물리적 공간만을 가리키진 않습니다. 지친 하루를 보낸 사람들에게 집은 편안함과 안도감 등을 느끼게 하는 곳이기도 한데요. 그런데 이런 집이 누군가에게는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바로 '주거빈곤아동'들입니다.

■전국 주거빈곤아동 94만 명...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 더 늘어나


주거빈곤이란, 주거기본법에 정의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한 주택에 살거나 고시원과 쪽방, 비닐하우스 등 주택 이외의 거처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5년 기준, '주거빈곤' 상태에 있는 아동은 전국에 약 94만 명으로 추산됐습니다.

주거빈곤아동들은 대체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깁니다. 서울시가 지난해 주거빈곤아동 245가구를 대상으로 시행한 <서울시 아동 가구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먼저 살펴볼까요. 아이들은 보통 평일에는 하루 평균 13시간 25분, 방학이나 주말·휴일에는 하루 평균 19시간 12분 정도를 집에서 보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주거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조사원들 역시 "(아이들이)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집에 머물고 있으며, 학원에 다니거나 야외 활동을 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라고 답했습니다.

올해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주거빈곤아동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따라, 부모가 일을 나가면 집에서 혼자 있는 아이들도 늘어났을 텐데요.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주거빈곤 상태인 아동 2명 중 1명은 낮에 보호자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집이 아이들에게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아이들이 사는 집은 어떤지, 저희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무너진 바닥·벌레 때문에 청력 잃기도...아이들에게 위험한 집

혼자서 요리하는 철수(가명)혼자서 요리하는 철수(가명)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철수(가명)입니다. 철수는 혼자서도 곧잘 라면을 잘 끓였는데요.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스스로 밥을 챙겨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철수도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집에서 하는 일은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게임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보는 게 대부분입니다.

사실 철수는 온라인 수업으로는 내용을 따라가기조차 벅찹니다. 친구들과 달리 학원에 다니지 않기 때문인데요. 학교에서는 모르는 게 생기면 선생님께 바로 질문할 수 있었지만, 온라인 수업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수연이네(가명) 집 거실 바닥, 서랍장이 넘어지는 걸 막기 위해 벽돌로 괴어둔 모습무너진 수연이네(가명) 집 거실 바닥, 서랍장이 넘어지는 걸 막기 위해 벽돌로 괴어둔 모습

이곳은 유치원생 수연이(가명)와 6명의 가족이 사는 집입니다. 한눈에 봐도 가라앉은 거실 바닥이 눈에 띄죠. 수연이네 집 바닥이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닙니다. 거실 시멘트 바닥을 받치는 나무 구조대가 있는데, 그 나무가 썩어 내려앉으면서 바닥도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수연이네 할머니는 혹시나 이 무너진 바닥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특히, 바닥이 무너지면서 드러난 열선을 아이들이 밟을까 매일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수연이네 집은 LH전세임대주택이라, 집주인도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왜 아직 수리하지 않았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은 "집주인은 아예 이곳을 신경쓰지 않는다"였습니다. 수연이네 할머니는 "(집주인은) 아이들이 뛰어서 깨진 건데 왜 내가 고쳐주냐라고 이야기한다"며 "재개발이 될 건데 굳이 이걸 뭐하러 내가 돈 들여가며 해줘야 되냐"라고 집주인이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냥 재개발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영철이(가명) 형 귀에 남은 수술 자국. 벌레에 물린 상처가 곪아 수술을 진행했다.영철이(가명) 형 귀에 남은 수술 자국. 벌레에 물린 상처가 곪아 수술을 진행했다.

영철이(가명)을 포함한 삼 남매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이 집은 벌레 때문에 괴롭습니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습기가 잘 차는 반지하의 특성 때문에 집안 곳곳에서 벌레가 나오기 일쑤인데요. 두 달 전, 영철이네 큰 형은 자다가 한쪽 귀를 벌레에 물렸습니다. 상처가 크게 곪아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청력을 잃었습니다.

수연이네 집과 영철이네 집 모두 마땅히 이사 갈 형편도 되지 않습니다. 철수네 어머니는 올해 초 일하던 식당이 폐업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그 수입은 코로나19 전보다 절반가량 줄었습니다. 또, 수연이네 할아버지는 올해 9월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는데, 담당 의사도 경제 활동을 하지 말라고 말릴 정도로 몸이 좋지 않습니다. 영철이네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머니는 무릎과 신장이 아파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고, 할아버지 역시 허리가 안 좋아 사실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집'...아이들은 위한 주거 정책은 과연?

집은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죠. 주거빈곤아동을 오랜 기간 봐온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도 "아동 주거 문제는 아이의 평생의 기회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예로,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에 아이가 질병을 얻게 되면 아이는 병원에 가느라 학교를 결석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학업을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 발생해, 결국 아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일종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최 소장은 또, "실제로 주거빈곤아동 가구를 방문해보면, 아이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픈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렇게 되면 아이의 평생의 기회가 없어진다는 측면에서 사회가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아쉬움은 여전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우리 정부는 '아동주거권'을 보장하겠다면서 아이들을 위한 주거 지원 강화 정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정책이 있는지, 또 그 정책만으로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실 텐데요. 내일(31일) [취재후]에서 이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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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무너진 바닥, 쉴 새 없이 나오는 벌레…“집이 더 위험해요”
    • 입력 2020-12-30 07:01:04
    • 수정2020-12-30 07:01:17
    취재후·사건후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 한데요. 직장인들은 회사에 가는 대신 집에서 일하고, 학생들은 학교가 아닌 자신의 방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연말인 요즘은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집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죠.

사실 집은 단순히 사람이 사는 물리적 공간만을 가리키진 않습니다. 지친 하루를 보낸 사람들에게 집은 편안함과 안도감 등을 느끼게 하는 곳이기도 한데요. 그런데 이런 집이 누군가에게는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바로 '주거빈곤아동'들입니다.

■전국 주거빈곤아동 94만 명...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 더 늘어나


주거빈곤이란, 주거기본법에 정의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한 주택에 살거나 고시원과 쪽방, 비닐하우스 등 주택 이외의 거처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5년 기준, '주거빈곤' 상태에 있는 아동은 전국에 약 94만 명으로 추산됐습니다.

주거빈곤아동들은 대체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깁니다. 서울시가 지난해 주거빈곤아동 245가구를 대상으로 시행한 <서울시 아동 가구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먼저 살펴볼까요. 아이들은 보통 평일에는 하루 평균 13시간 25분, 방학이나 주말·휴일에는 하루 평균 19시간 12분 정도를 집에서 보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주거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조사원들 역시 "(아이들이)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집에 머물고 있으며, 학원에 다니거나 야외 활동을 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라고 답했습니다.

올해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주거빈곤아동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따라, 부모가 일을 나가면 집에서 혼자 있는 아이들도 늘어났을 텐데요.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주거빈곤 상태인 아동 2명 중 1명은 낮에 보호자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집이 아이들에게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아이들이 사는 집은 어떤지, 저희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무너진 바닥·벌레 때문에 청력 잃기도...아이들에게 위험한 집

혼자서 요리하는 철수(가명)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철수(가명)입니다. 철수는 혼자서도 곧잘 라면을 잘 끓였는데요.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스스로 밥을 챙겨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철수도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집에서 하는 일은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게임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보는 게 대부분입니다.

사실 철수는 온라인 수업으로는 내용을 따라가기조차 벅찹니다. 친구들과 달리 학원에 다니지 않기 때문인데요. 학교에서는 모르는 게 생기면 선생님께 바로 질문할 수 있었지만, 온라인 수업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수연이네(가명) 집 거실 바닥, 서랍장이 넘어지는 걸 막기 위해 벽돌로 괴어둔 모습
이곳은 유치원생 수연이(가명)와 6명의 가족이 사는 집입니다. 한눈에 봐도 가라앉은 거실 바닥이 눈에 띄죠. 수연이네 집 바닥이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닙니다. 거실 시멘트 바닥을 받치는 나무 구조대가 있는데, 그 나무가 썩어 내려앉으면서 바닥도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수연이네 할머니는 혹시나 이 무너진 바닥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특히, 바닥이 무너지면서 드러난 열선을 아이들이 밟을까 매일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수연이네 집은 LH전세임대주택이라, 집주인도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왜 아직 수리하지 않았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은 "집주인은 아예 이곳을 신경쓰지 않는다"였습니다. 수연이네 할머니는 "(집주인은) 아이들이 뛰어서 깨진 건데 왜 내가 고쳐주냐라고 이야기한다"며 "재개발이 될 건데 굳이 이걸 뭐하러 내가 돈 들여가며 해줘야 되냐"라고 집주인이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냥 재개발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영철이(가명) 형 귀에 남은 수술 자국. 벌레에 물린 상처가 곪아 수술을 진행했다.
영철이(가명)을 포함한 삼 남매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이 집은 벌레 때문에 괴롭습니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습기가 잘 차는 반지하의 특성 때문에 집안 곳곳에서 벌레가 나오기 일쑤인데요. 두 달 전, 영철이네 큰 형은 자다가 한쪽 귀를 벌레에 물렸습니다. 상처가 크게 곪아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청력을 잃었습니다.

수연이네 집과 영철이네 집 모두 마땅히 이사 갈 형편도 되지 않습니다. 철수네 어머니는 올해 초 일하던 식당이 폐업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그 수입은 코로나19 전보다 절반가량 줄었습니다. 또, 수연이네 할아버지는 올해 9월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는데, 담당 의사도 경제 활동을 하지 말라고 말릴 정도로 몸이 좋지 않습니다. 영철이네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머니는 무릎과 신장이 아파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고, 할아버지 역시 허리가 안 좋아 사실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집'...아이들은 위한 주거 정책은 과연?

집은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죠. 주거빈곤아동을 오랜 기간 봐온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도 "아동 주거 문제는 아이의 평생의 기회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예로,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에 아이가 질병을 얻게 되면 아이는 병원에 가느라 학교를 결석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학업을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 발생해, 결국 아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일종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최 소장은 또, "실제로 주거빈곤아동 가구를 방문해보면, 아이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픈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렇게 되면 아이의 평생의 기회가 없어진다는 측면에서 사회가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아쉬움은 여전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우리 정부는 '아동주거권'을 보장하겠다면서 아이들을 위한 주거 지원 강화 정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정책이 있는지, 또 그 정책만으로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실 텐데요. 내일(31일) [취재후]에서 이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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