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들 편지로 본 12월 19일 밤, 서울 동부구치소

입력 2020.12.3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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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부구치소에선 지금까지 8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오늘 4차 전수검사에 들어갔는데, 앞으로 확진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입니다. KBS는 어제(29일) 서울 동부구치소 출소자들을 접촉해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했던 구치소 내부 상황을 들어 봤는데요.

[연관기사] [단독] 출소자들 “의심증상 호소해도 감기약 지급…방한마스크로만 버텨” (뉴스9, 12월 29일)

취재팀은 이와 함께 현재 구치소에 수용돼 있는 재소자들이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여러 통 입수해 집단감염이 처음으로 확인된 직후 구치소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수용자들이 친지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발췌 수용자들이 친지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발췌

■ '19일 밤' 갑작스러운 방 이동...강당에 대기하며 단체로 모여 있기도

수용자들이 보낸 편지 대부분에는, 지난 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의 급박했던 상황이 들어 있습니다. 구치소에서 잠자고 있던 수용자들을 갑자기 깨우더니, 짐을 싸라고 했다는 겁니다. 짐을 싼 구치소 수용자들은 갑작스레 방을 옮겼고, 다른 방 사람들과 섞이게 됐습니다.

"토요일 새벽 12시-1시 사이 방사람들을 다 깨움. 짐 싸라고 난리"

"다른 방들도 우르르 대규모 이동이 이루어지고, 새벽 1시까지 다른 방 사람들과 복도를 통해 소리 지르며 대화"

확진자를 접촉했던 사람들과 비접촉자들의 그룹을 따로 나눠 다시 방을 배정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때 수백 명의 수용자들이 강당에 한꺼번에 모여 몇 시간을 기다렸다는 대목도 여러 편지에 등장합니다.

"강당으로 가니깐 18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있더라고. 1미터 떨어져서 영화를 보여주더라고요"

이렇게 강당에서 모였다가 방 배정을 다시 받게 된 수용자들. 코로나19도 걱정인데, 모르는 사람들과 갑자기 함께 방을 쓰게 된 사람들은 낯설고 불편해진 환경에 상당한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원래보다 훨씬 더 빽빽하게 밀집한 상태가 됐다는 겁니다.

수용자들은 여자친구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눕기는 커녕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다른 수용자가) 계속해서 헛기침과 몸살을 앓고 있어 마스크를 훨씬 치켜 세우며 더욱 눌러 쓰기 시작했다"

"아무런 물품 없이 맨몸으로 들어와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식판과 식기조차 지급되지 않았어요."

사흘 뒤인 23일에는, 2차 전수검사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편지를 보냈던 수용자 가운데 일부가 1차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던 것과 달리 양성 판정이 나온 겁니다.

2차 검사에서 확진자가 됐다는 한 수용자의 지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오던 편지가 24일 이후부터 오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어제 서울 동부구치소에선 일부 수용자들이 '한 방에 8명이 함께 수용돼 있다' '서신 외부 발송이 금지됐다'는 등의 손팻말을 창문 밖으로 내밀며 살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 접촉자들 함께 생활 중...잠복기 감염자 섞여 있을 가능성

어제(29일) 법무부가 낸 자료를 보면, 지난 12월 초 기준으로 서울 동부구치소에는 수용 정원인 2천 명보다 많은 2천4백여 명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격리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거고, 구치소는 확진자와 접촉자, 비접촉자로만 수용자를 구분해 함께 머물도록 했습니다.

이 경우 특히 우려되는 건 바로 접촉자들이 모여 있는 그룹입니다. 현재는 음성이라고 해도 잠복기에 있던 감염자와 미감염자가 섞여 지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 의견은 어떨까요.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공간의 제약 때문에 못했겠지만, 전파 가능성이 있기에 접촉자들은 개별적으로 지내게 해야 했다"면서, "같은 공간에 내내 있는 경우에 마스크가 100% 예방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전국 교정시설에 대한 전수검사 필요" 의견도

서울 동부구치소 외에 광주교도소와 영월교도소 등 다른 교정시설에서도 잇따라 집단감염이 발생했습니다. 전국 교정시설의 확진자는 837명이나 됩니다. 최근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서울남부교도소와 강원 북부교도소로 이송한 뒤 확진 판정을 받은 수용자도 17명이나 됩니다.

교정시설은 집단감염에 취약하고, 과밀 수용과 열악한 위생환경이 그 원인이란 지적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교도소 내 집단감염 문제를 경시하면 안 된다"면서, 대안적 구금방안 모색과 모든 교도소의 선제 전수검사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동부구치소 4차 전수검사가 진행됩니다. 현재 수용자 분산조치로 동부구치소에 지내는 사람은 천 8백 명 가량입니다. 하지만 접촉자 그룹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다인실에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추가 감염자가 나올 확률이 높은 상황입니다. 민변이 지적했듯이, 모든 교정시설에 대한 전수검사를 포함해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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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용자들 편지로 본 12월 19일 밤, 서울 동부구치소
    • 입력 2020-12-30 15:49:33
    취재K

서울 동부구치소에선 지금까지 8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오늘 4차 전수검사에 들어갔는데, 앞으로 확진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입니다. KBS는 어제(29일) 서울 동부구치소 출소자들을 접촉해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했던 구치소 내부 상황을 들어 봤는데요.

[연관기사] [단독] 출소자들 “의심증상 호소해도 감기약 지급…방한마스크로만 버텨” (뉴스9, 12월 29일)

취재팀은 이와 함께 현재 구치소에 수용돼 있는 재소자들이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여러 통 입수해 집단감염이 처음으로 확인된 직후 구치소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수용자들이 친지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발췌
■ '19일 밤' 갑작스러운 방 이동...강당에 대기하며 단체로 모여 있기도

수용자들이 보낸 편지 대부분에는, 지난 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의 급박했던 상황이 들어 있습니다. 구치소에서 잠자고 있던 수용자들을 갑자기 깨우더니, 짐을 싸라고 했다는 겁니다. 짐을 싼 구치소 수용자들은 갑작스레 방을 옮겼고, 다른 방 사람들과 섞이게 됐습니다.

"토요일 새벽 12시-1시 사이 방사람들을 다 깨움. 짐 싸라고 난리"

"다른 방들도 우르르 대규모 이동이 이루어지고, 새벽 1시까지 다른 방 사람들과 복도를 통해 소리 지르며 대화"

확진자를 접촉했던 사람들과 비접촉자들의 그룹을 따로 나눠 다시 방을 배정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때 수백 명의 수용자들이 강당에 한꺼번에 모여 몇 시간을 기다렸다는 대목도 여러 편지에 등장합니다.

"강당으로 가니깐 18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있더라고. 1미터 떨어져서 영화를 보여주더라고요"

이렇게 강당에서 모였다가 방 배정을 다시 받게 된 수용자들. 코로나19도 걱정인데, 모르는 사람들과 갑자기 함께 방을 쓰게 된 사람들은 낯설고 불편해진 환경에 상당한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원래보다 훨씬 더 빽빽하게 밀집한 상태가 됐다는 겁니다.

수용자들은 여자친구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눕기는 커녕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다른 수용자가) 계속해서 헛기침과 몸살을 앓고 있어 마스크를 훨씬 치켜 세우며 더욱 눌러 쓰기 시작했다"

"아무런 물품 없이 맨몸으로 들어와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식판과 식기조차 지급되지 않았어요."

사흘 뒤인 23일에는, 2차 전수검사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편지를 보냈던 수용자 가운데 일부가 1차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던 것과 달리 양성 판정이 나온 겁니다.

2차 검사에서 확진자가 됐다는 한 수용자의 지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오던 편지가 24일 이후부터 오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어제 서울 동부구치소에선 일부 수용자들이 '한 방에 8명이 함께 수용돼 있다' '서신 외부 발송이 금지됐다'는 등의 손팻말을 창문 밖으로 내밀며 살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 접촉자들 함께 생활 중...잠복기 감염자 섞여 있을 가능성

어제(29일) 법무부가 낸 자료를 보면, 지난 12월 초 기준으로 서울 동부구치소에는 수용 정원인 2천 명보다 많은 2천4백여 명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격리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거고, 구치소는 확진자와 접촉자, 비접촉자로만 수용자를 구분해 함께 머물도록 했습니다.

이 경우 특히 우려되는 건 바로 접촉자들이 모여 있는 그룹입니다. 현재는 음성이라고 해도 잠복기에 있던 감염자와 미감염자가 섞여 지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 의견은 어떨까요.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공간의 제약 때문에 못했겠지만, 전파 가능성이 있기에 접촉자들은 개별적으로 지내게 해야 했다"면서, "같은 공간에 내내 있는 경우에 마스크가 100% 예방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전국 교정시설에 대한 전수검사 필요" 의견도

서울 동부구치소 외에 광주교도소와 영월교도소 등 다른 교정시설에서도 잇따라 집단감염이 발생했습니다. 전국 교정시설의 확진자는 837명이나 됩니다. 최근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서울남부교도소와 강원 북부교도소로 이송한 뒤 확진 판정을 받은 수용자도 17명이나 됩니다.

교정시설은 집단감염에 취약하고, 과밀 수용과 열악한 위생환경이 그 원인이란 지적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교도소 내 집단감염 문제를 경시하면 안 된다"면서, 대안적 구금방안 모색과 모든 교도소의 선제 전수검사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동부구치소 4차 전수검사가 진행됩니다. 현재 수용자 분산조치로 동부구치소에 지내는 사람은 천 8백 명 가량입니다. 하지만 접촉자 그룹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다인실에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추가 감염자가 나올 확률이 높은 상황입니다. 민변이 지적했듯이, 모든 교정시설에 대한 전수검사를 포함해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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