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삼성으로 효도할 것”…눈물 삼킨 이재용의 최후진술

입력 2020.12.30 (20:20) 수정 2020.12.30 (21: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이 오늘 결심공판을 끝으로 마무리되면서 이제 선고만 남겨놨습니다.

[관련기사] ‘국정농단’ 이재용 파기환송심서 징역 9년 구형…“과거 회귀없다” 울먹

이 부회장은 전직 대통령과 '비선실세'에게 삼성그룹 돈으로 마련한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2017년 3월부터 4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왔습니다.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으로 열린 이번 '네 번째 재판'에서의 최후 진술은, 이 부회장의 마지막 법정 진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음달 18일에 나올 선고 결과에 따라 또 다시 수감될 기로에 선 이 부회장. 미리 준비해 온 종이를 보며 20분 가까이 심경을 털어놨습니다. 때로는 강한 어조로 본인의 '약속'을 강조하고, 때로는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삼키는 등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이번 최후 진술은 재판부의 판단에 반영될 수 있고, 이 부회장이 오늘 법정에서 말한 여러가지 약속은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이 갖는 위상을 볼 때 철저히 지켜지는지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이에 기자가 받아 적은 이 부회장의 마지막 법정 진술 내용을 기사로 남겨둡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두 분 판사님. 오늘 저는... (목이 멤)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삼성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입니다. 반도체와 통신, 인터넷 산업에 황금기가 시작될 때였습니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을 때로는 고객사로, 때로는 경쟁사로 접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손정의 회장 같은 글로벌 기업 창업자들과 교류하는 행운도 누렸고, 창업자들에게서 회사를 이어 받은 전문경영인들이 혁신 노하우로 회사를 수백 배, 수천 배로 키우는 과정도 생생하게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늘 우리가 저 사람들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그리고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우리도, 삼성도 망할 수 있겠구나라는 위기감이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주위 글로벌 기업들의 부침을 보며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통신업계에서 수십 년간 선두를 다투던 미국, 유럽의 전통 회사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아날로그 기술로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이웃 일본 회사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또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 회사들을 보며 항상 절박한 위기 의식 속에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진술에서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하.... 그러던 중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경황이 없던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결단코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 가다듬음) 그 일 때문에 회사와 임직원들이 오랫동안 고생했습니다. 많은 국민들께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답답하고 참담한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하..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저의 불찰, 저의 잘못입니다. 제 책임입니다. 제가 못났고 부족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깊이 뉘우칩니다.”

목을 잠시 가다듬은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권고에 따라 올해 초 정비한 삼성 준법감시제도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운영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인정되면 이 부회장에 대한 감형 요소 중 하나로 삼을 수 있다고 재판부가 밝혔던 바로 그 제도입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두 분 판사님, 이 사건은 제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년 가까운 수감생활 포함한 4년 간의 조사, 재판 과정은 제게 소중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이 재판 과정에서 삼성과 저를 외부에서 지켜보는 준법감시위원회가 생겼습니다. 재판부께서는 단순한 재판 진행 그 이상을 해주셨습니다. 삼성이라는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준법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나아가 저 이재용은 어떤 기업인이 되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주셨습니다.

그 전에는 선진기업 벤치마킹을 하고 불철주야 연구 개발에만 몰두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 회사를 키우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목 가다듬음) 준법문화라는 토양 위에서 체크, 또 체크를 하고 법률적 검토를 거듭해 의사결정을 해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않고 궁극적으로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재판부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뒤늦게 깨달은 만큼 더 확실하게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실제로 저희 회사에서는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지 않은 변화들입니다. 저 스스로도 준법경영에 관련하여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최근 회의들을 그 전과 비교해보면 제가 이전엔 하지 않았던 질문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준법감시인)는 뭐라 하던가요?" "이거 검토 끝난거죠?" "이 문제는 준법감시위원회까지 가야하는 거 아닌가요?"

조금이라도 민감한 사안은 법률과 원칙에 어긋남이 없는지 묻고 또 묻고 있습니다. 외부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인정받고 자랑할 만한 변화는 아닙니다. 첫 걸음은 뗐지만 변화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일 것입니다.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고 멀리 돌아가야 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재판장님 지켜봐주십시오. 법에 어긋나는 일은 물론이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반드시 정도를 걸어가겠습니다.”

이 부회장은 특별검사가 삼성 미래전략실의 후신이라고 지적한 사업지원TF에 대해서도 엄격히 살피겠다며, 준법감시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사업지원TF에 대한 우려도 들었습니다. 오늘 특검께서도 언급하시는 거 잘 들었습니다. 사업지원TF는 다른 조직보다 더 엄격하게 준법감시를 받게 하겠습니다. 더 투명하게 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어떤 조직도 삼성에서는 결코 예외로 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날 삼성 최고경영진의 잘못도, 저 자신의 관여 여부와 관계없이 되돌아 볼 것입니다. 사건의 경위를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런 종류의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충분한 뒷받침을 하겠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준법감시위원님들을 너무 자주 뵈면 오히려 저희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위원회의 의미가 퇴색될까봐 주저해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준감위 위원님들을 정기적으로 뵙고, 저와 삼성에 대한 소중한 충고와 질책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모두가 철저하게, 준법감시위의 틀 안에 있는 회사로 반드시 바꾸겠습니다. 아니, 준법을 넘어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춘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추진하겠습니다. 분명하게 약속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두 분 판사님. 저는 지난 5월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소신을 밝혔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제 아이들이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언급되는 일 자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이 이런 문제로 또다시 논란에 휩싸이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도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겠습니다. 노조와 경영진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문화 만들겠습니다. 제가 드린 다른 약속들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금까지 삼성이 국민들께 드린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들도 제가 책임지고 이행하겠습니다. 저를 한 번 믿어주십시오.”

아버지인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이야기를 꺼낸 건 이 다음부터였습니다.

“재판장님, 좀 길어지는 거 같지만 옛날 얘기 한 가지만 드리고 싶습니다. 1987년 11월, 이병철 회장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저는 대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님의 임종을 지켜보신 직후 경황이 없는 중에도 아버님은 다른 일은 모두 제쳐두고 그날 저녁 일본지점장에게 전화를 거셨습니다. 도시바, 소니, 산요, 마츠시타…. 당시 일본 주요기업의 최고경영자들과 미팅약속 잡으시려는 거였습니다. 삼성의 최고 고객이었고 당시 저희보다 앞서가는 기업들이었습니다.

다음 해 1월, 아버님은 일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저를 그 모든 회의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삼성그룹 회장인데도 그때는 삼성의 위상이 지금같지 않은 때라 미팅에 나왔던 일본회사의 상대방들이 회장, 사장 아닌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무급, 상무급 임원이 나와도 심지어 부장급의 엔지니어가 나와도 일일이 만나 머리숙이며 기술동향이나 최신정보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애쓰셨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 이후에도 이건희 회장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라면 예를 갖추고 몇 번이고 찾아가서 모시고 오셨습니다. 그런 치열함이, 어쩌면 삼성의 DNA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은 그렇게 앞만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제가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삼성이 이렇게 일부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의 선두 기업이 되었지만 사회적 역할, 책임, 국민의 신뢰가 얼마나 막중한지는 간과했습니다. 우리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순환 출자 해소했고 선단식 경영 형태도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분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에게 쏟아진 많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이제 삼성이 달라질 것입니다. 저부터 달라지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올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재판장님께서 재벌의 폐해로 지적하셨던 사항들도 과감하게 고치겠습니다. 저희가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 국민들에게 평생 갚아도 갚지못할 빚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받았던 혜택과 진 빚, 꼭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더 많은 협력회사들이 저희와 더불어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선두기업으로서 몇 배, 몇십 배 더 가까운 책임감을 갖겠습니다.”

부친의 장례식을 얘기하면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존경하는 정준영 재판장님, 송영승 부장판사님, 강상욱 부장판사님. 두 달 전 이건희 회장님의....... (약간 울먹이고 목 가다듬으며 20초 가까이 말 잇지 못함.)

두 달 전 이건희 회장님 영결식이 있었습니다. 회장님의 고등학교 친구분께서 추도사를 해주셨습니다. 선대로부터 회사 넘겨받아 지금의 삼성만큼 키워놓은 이건희 회장의 예를 전 산업사에서 접하지 못했다며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선대보다 더 크고 강하게 키우는 게 최고의 효도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말씀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강렬하게 맴돌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회사를 성장 시키는 것은 기본입니다. 신사업을 발굴해 사업영역을 확장시키는 것도 당연한 책무입니다. 하지만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정신 자세와 회사의 문화를 바꾸고, 여러 제도를 보완하여 외부에서는 부당한 압력이 들어와도 거부할 수 있는 또 거부할 수밖에 없는 촘촘한 준법시스템을 만들겠습니다.

중소, 벤처기업, 학계와 협력하여 우리의 산업생태계가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삼성 직원들이 우리 회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초일류 기업, 지속가능한 기업이고, 기업인 이재용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꿈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저 나름의 승어부에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최근 아버님을 여읜 아들로서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흑... (목 가다듬으면서 말을 잇지 못함) 너무나도 존경하고.... (또 말을 잇지 못함) 너무나도 존경하고 존경하는 아버님께 효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부탁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마지막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다 제 책임입니다. 죄를 물으실 일이 있으면 저한테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같이 계시는 제 선배님들은... 평생 회사를, 회사를 위해 헌신해 온 분들입니다.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이분들은 너무 꾸짖지 말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판부는 과연 이 부회장이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까요? 그렇게 판단한다면, 이 부회장은 변호인 주장대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 받을 수 있을까요. 재판부의 최종 결론은 다음 달 18일 선고공판에서 공개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새로운 삼성으로 효도할 것”…눈물 삼킨 이재용의 최후진술
    • 입력 2020-12-30 20:20:54
    • 수정2020-12-30 21:00:08
    취재K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이 오늘 결심공판을 끝으로 마무리되면서 이제 선고만 남겨놨습니다.

[관련기사] ‘국정농단’ 이재용 파기환송심서 징역 9년 구형…“과거 회귀없다” 울먹

이 부회장은 전직 대통령과 '비선실세'에게 삼성그룹 돈으로 마련한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2017년 3월부터 4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왔습니다.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으로 열린 이번 '네 번째 재판'에서의 최후 진술은, 이 부회장의 마지막 법정 진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음달 18일에 나올 선고 결과에 따라 또 다시 수감될 기로에 선 이 부회장. 미리 준비해 온 종이를 보며 20분 가까이 심경을 털어놨습니다. 때로는 강한 어조로 본인의 '약속'을 강조하고, 때로는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삼키는 등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이번 최후 진술은 재판부의 판단에 반영될 수 있고, 이 부회장이 오늘 법정에서 말한 여러가지 약속은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이 갖는 위상을 볼 때 철저히 지켜지는지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이에 기자가 받아 적은 이 부회장의 마지막 법정 진술 내용을 기사로 남겨둡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두 분 판사님. 오늘 저는... (목이 멤)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삼성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입니다. 반도체와 통신, 인터넷 산업에 황금기가 시작될 때였습니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을 때로는 고객사로, 때로는 경쟁사로 접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손정의 회장 같은 글로벌 기업 창업자들과 교류하는 행운도 누렸고, 창업자들에게서 회사를 이어 받은 전문경영인들이 혁신 노하우로 회사를 수백 배, 수천 배로 키우는 과정도 생생하게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늘 우리가 저 사람들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그리고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우리도, 삼성도 망할 수 있겠구나라는 위기감이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주위 글로벌 기업들의 부침을 보며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통신업계에서 수십 년간 선두를 다투던 미국, 유럽의 전통 회사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아날로그 기술로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이웃 일본 회사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또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 회사들을 보며 항상 절박한 위기 의식 속에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진술에서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하.... 그러던 중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경황이 없던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결단코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 가다듬음) 그 일 때문에 회사와 임직원들이 오랫동안 고생했습니다. 많은 국민들께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답답하고 참담한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하..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저의 불찰, 저의 잘못입니다. 제 책임입니다. 제가 못났고 부족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깊이 뉘우칩니다.”

목을 잠시 가다듬은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권고에 따라 올해 초 정비한 삼성 준법감시제도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운영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인정되면 이 부회장에 대한 감형 요소 중 하나로 삼을 수 있다고 재판부가 밝혔던 바로 그 제도입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두 분 판사님, 이 사건은 제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년 가까운 수감생활 포함한 4년 간의 조사, 재판 과정은 제게 소중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이 재판 과정에서 삼성과 저를 외부에서 지켜보는 준법감시위원회가 생겼습니다. 재판부께서는 단순한 재판 진행 그 이상을 해주셨습니다. 삼성이라는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준법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나아가 저 이재용은 어떤 기업인이 되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주셨습니다.

그 전에는 선진기업 벤치마킹을 하고 불철주야 연구 개발에만 몰두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 회사를 키우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목 가다듬음) 준법문화라는 토양 위에서 체크, 또 체크를 하고 법률적 검토를 거듭해 의사결정을 해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않고 궁극적으로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재판부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뒤늦게 깨달은 만큼 더 확실하게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실제로 저희 회사에서는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지 않은 변화들입니다. 저 스스로도 준법경영에 관련하여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최근 회의들을 그 전과 비교해보면 제가 이전엔 하지 않았던 질문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준법감시인)는 뭐라 하던가요?" "이거 검토 끝난거죠?" "이 문제는 준법감시위원회까지 가야하는 거 아닌가요?"

조금이라도 민감한 사안은 법률과 원칙에 어긋남이 없는지 묻고 또 묻고 있습니다. 외부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인정받고 자랑할 만한 변화는 아닙니다. 첫 걸음은 뗐지만 변화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일 것입니다.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고 멀리 돌아가야 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재판장님 지켜봐주십시오. 법에 어긋나는 일은 물론이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반드시 정도를 걸어가겠습니다.”

이 부회장은 특별검사가 삼성 미래전략실의 후신이라고 지적한 사업지원TF에 대해서도 엄격히 살피겠다며, 준법감시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사업지원TF에 대한 우려도 들었습니다. 오늘 특검께서도 언급하시는 거 잘 들었습니다. 사업지원TF는 다른 조직보다 더 엄격하게 준법감시를 받게 하겠습니다. 더 투명하게 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어떤 조직도 삼성에서는 결코 예외로 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날 삼성 최고경영진의 잘못도, 저 자신의 관여 여부와 관계없이 되돌아 볼 것입니다. 사건의 경위를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런 종류의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충분한 뒷받침을 하겠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준법감시위원님들을 너무 자주 뵈면 오히려 저희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위원회의 의미가 퇴색될까봐 주저해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준감위 위원님들을 정기적으로 뵙고, 저와 삼성에 대한 소중한 충고와 질책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모두가 철저하게, 준법감시위의 틀 안에 있는 회사로 반드시 바꾸겠습니다. 아니, 준법을 넘어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춘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추진하겠습니다. 분명하게 약속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두 분 판사님. 저는 지난 5월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소신을 밝혔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제 아이들이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언급되는 일 자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이 이런 문제로 또다시 논란에 휩싸이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도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겠습니다. 노조와 경영진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문화 만들겠습니다. 제가 드린 다른 약속들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금까지 삼성이 국민들께 드린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들도 제가 책임지고 이행하겠습니다. 저를 한 번 믿어주십시오.”

아버지인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이야기를 꺼낸 건 이 다음부터였습니다.

“재판장님, 좀 길어지는 거 같지만 옛날 얘기 한 가지만 드리고 싶습니다. 1987년 11월, 이병철 회장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저는 대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님의 임종을 지켜보신 직후 경황이 없는 중에도 아버님은 다른 일은 모두 제쳐두고 그날 저녁 일본지점장에게 전화를 거셨습니다. 도시바, 소니, 산요, 마츠시타…. 당시 일본 주요기업의 최고경영자들과 미팅약속 잡으시려는 거였습니다. 삼성의 최고 고객이었고 당시 저희보다 앞서가는 기업들이었습니다.

다음 해 1월, 아버님은 일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저를 그 모든 회의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삼성그룹 회장인데도 그때는 삼성의 위상이 지금같지 않은 때라 미팅에 나왔던 일본회사의 상대방들이 회장, 사장 아닌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무급, 상무급 임원이 나와도 심지어 부장급의 엔지니어가 나와도 일일이 만나 머리숙이며 기술동향이나 최신정보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애쓰셨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 이후에도 이건희 회장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라면 예를 갖추고 몇 번이고 찾아가서 모시고 오셨습니다. 그런 치열함이, 어쩌면 삼성의 DNA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은 그렇게 앞만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제가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삼성이 이렇게 일부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의 선두 기업이 되었지만 사회적 역할, 책임, 국민의 신뢰가 얼마나 막중한지는 간과했습니다. 우리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순환 출자 해소했고 선단식 경영 형태도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분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에게 쏟아진 많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이제 삼성이 달라질 것입니다. 저부터 달라지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올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재판장님께서 재벌의 폐해로 지적하셨던 사항들도 과감하게 고치겠습니다. 저희가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 국민들에게 평생 갚아도 갚지못할 빚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받았던 혜택과 진 빚, 꼭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더 많은 협력회사들이 저희와 더불어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선두기업으로서 몇 배, 몇십 배 더 가까운 책임감을 갖겠습니다.”

부친의 장례식을 얘기하면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존경하는 정준영 재판장님, 송영승 부장판사님, 강상욱 부장판사님. 두 달 전 이건희 회장님의....... (약간 울먹이고 목 가다듬으며 20초 가까이 말 잇지 못함.)

두 달 전 이건희 회장님 영결식이 있었습니다. 회장님의 고등학교 친구분께서 추도사를 해주셨습니다. 선대로부터 회사 넘겨받아 지금의 삼성만큼 키워놓은 이건희 회장의 예를 전 산업사에서 접하지 못했다며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선대보다 더 크고 강하게 키우는 게 최고의 효도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말씀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강렬하게 맴돌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회사를 성장 시키는 것은 기본입니다. 신사업을 발굴해 사업영역을 확장시키는 것도 당연한 책무입니다. 하지만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정신 자세와 회사의 문화를 바꾸고, 여러 제도를 보완하여 외부에서는 부당한 압력이 들어와도 거부할 수 있는 또 거부할 수밖에 없는 촘촘한 준법시스템을 만들겠습니다.

중소, 벤처기업, 학계와 협력하여 우리의 산업생태계가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삼성 직원들이 우리 회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초일류 기업, 지속가능한 기업이고, 기업인 이재용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꿈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저 나름의 승어부에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최근 아버님을 여읜 아들로서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흑... (목 가다듬으면서 말을 잇지 못함) 너무나도 존경하고.... (또 말을 잇지 못함) 너무나도 존경하고 존경하는 아버님께 효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부탁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마지막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다 제 책임입니다. 죄를 물으실 일이 있으면 저한테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같이 계시는 제 선배님들은... 평생 회사를, 회사를 위해 헌신해 온 분들입니다.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이분들은 너무 꾸짖지 말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판부는 과연 이 부회장이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까요? 그렇게 판단한다면, 이 부회장은 변호인 주장대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 받을 수 있을까요. 재판부의 최종 결론은 다음 달 18일 선고공판에서 공개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