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간첩” 무죄,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유죄…이유는?

입력 2020.12.31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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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허선아)는 어제(30일),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던 전 목사는 곧바로 석방됐는데요.

재판부는 전 목사가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광화문 집회 등에서 '자유 우파 정당'을 지지해달라며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 판단을 내렸습니다. 개별 후보자가 특정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던 데다, '자유 우파 정당'이란 개념도 어떤 정당을 뜻하는지 모호하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부르고 '공산화를 시도했다'고 말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 역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치적 성향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과장되게 드러낸 것일 뿐, 증거로 입증될 수 있는 '사실'을 적시한 건 아니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발언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판단했던 재판부도 있었습니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8월 항소심에서,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요. 각 재판부가 쓴 판결문을 통해 유·무죄 판단 근거를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전 목사와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상당히 닮았습니다. 두 발언의 중심엔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고 전 이사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의견이 아닌 사실 적시라고 봤습니다. 앞서 문 대통령이 '부림사건' 피의자를 변호했다는 이력 등을 설명했던 맥락을 고려하면,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북한의 체제 또는 주의·주장을 지지·추종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겨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꾀하는 과격한 공산주의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이해된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특히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과격한 공산주의적 활동가'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반사회세력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논리 비약으로 이런 표현을 쓰는 건 분명히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전 목사 1심 재판부는 전제부터 달리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산주의'라는 개념 자체만으로도 과연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이념으로서 일의적이고 확정적인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 심히 의문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애초에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모호하니, '공산화'라는 표현은 더욱 구체적이지 못한 표현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전 목사의 발언이 "문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 혹은 태도에 관한 비판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보일 뿐, 입증이 가능한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일상 파고든 '간첩' 용어…"사람마다 느끼는 감정 달라"

그렇다면 전 목사의 또 다른 발언, "문재인은 간첩"이라는 표현은 어떨까요? 전 목사 1심 재판부는 '적국을 위해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는 사람'이라는 '간첩'의 사전적 의미부터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전 목사의 발언은 맥락상 이런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과거 간첩으로 평가됐던 사람들을 우호적으로 재평가하는 사람' 혹은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 정도로 이해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고 전 이사장의 재판부는 북한 대치 상황이란 점을 명예훼손 혐의를 입증할 하나의 정황으로 봤는데, 전 목사 재판부는 오히려 반대로 판단했습니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간첩'이란 용어는 일상을 파고들어 확장됐고, 수사학적·비유적 표현으로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이 말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감수성은 가변적"이라며 "문맥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간첩' 표현도 명예훼손 발언이라기보단,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을 비판하는 취지의 의견 표명 또는 과장된 표현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 대통령이라서, 법조인이라서

전 목사 재판부의 판결을 보면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자 정치인인 '공인'이라,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검증은 더욱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고 전 이사장이 발언했던 2013년 1월에도 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까지 출마했던 공인이었습니다. 같은 전제 사실을 두고 다른 판단이 나온 셈입니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바로 고 전 이사장의 사회적 지위입니다. 고 전 이사장 재판부는 "피고인은 4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법조인이자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여론에 미칠 파급력을 예상해 공개석상에서의 발언에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 전 이사장은 '공산주의자' 발언을 하면서, 자신이 1982년 부산지검 공안부 검사로 있을 당시 '부림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점까지 설명했는데요. 재판부는 "피고인의 발언은 단순히 피해자의 진보적 성향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나 부정적인 표현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에 기반하고 있어, 마치 증명된 진실인 것처럼 대중들 사이에 회자되거나 확대·재생산되면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릴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전 목사 판결에 대해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항소할 경우 2심 재판에서는 '간첩', '공산화' 발언의 명예훼손 여부를 놓고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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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은 간첩” 무죄,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유죄…이유는?
    • 입력 2020-12-31 06:19:20
    취재K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허선아)는 어제(30일),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던 전 목사는 곧바로 석방됐는데요.

재판부는 전 목사가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광화문 집회 등에서 '자유 우파 정당'을 지지해달라며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 판단을 내렸습니다. 개별 후보자가 특정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던 데다, '자유 우파 정당'이란 개념도 어떤 정당을 뜻하는지 모호하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부르고 '공산화를 시도했다'고 말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 역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치적 성향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과장되게 드러낸 것일 뿐, 증거로 입증될 수 있는 '사실'을 적시한 건 아니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발언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판단했던 재판부도 있었습니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8월 항소심에서,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요. 각 재판부가 쓴 판결문을 통해 유·무죄 판단 근거를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전 목사와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상당히 닮았습니다. 두 발언의 중심엔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고 전 이사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의견이 아닌 사실 적시라고 봤습니다. 앞서 문 대통령이 '부림사건' 피의자를 변호했다는 이력 등을 설명했던 맥락을 고려하면,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북한의 체제 또는 주의·주장을 지지·추종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겨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꾀하는 과격한 공산주의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이해된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특히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과격한 공산주의적 활동가'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반사회세력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논리 비약으로 이런 표현을 쓰는 건 분명히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전 목사 1심 재판부는 전제부터 달리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산주의'라는 개념 자체만으로도 과연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이념으로서 일의적이고 확정적인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 심히 의문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애초에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모호하니, '공산화'라는 표현은 더욱 구체적이지 못한 표현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전 목사의 발언이 "문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 혹은 태도에 관한 비판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보일 뿐, 입증이 가능한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일상 파고든 '간첩' 용어…"사람마다 느끼는 감정 달라"

그렇다면 전 목사의 또 다른 발언, "문재인은 간첩"이라는 표현은 어떨까요? 전 목사 1심 재판부는 '적국을 위해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는 사람'이라는 '간첩'의 사전적 의미부터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전 목사의 발언은 맥락상 이런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과거 간첩으로 평가됐던 사람들을 우호적으로 재평가하는 사람' 혹은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 정도로 이해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고 전 이사장의 재판부는 북한 대치 상황이란 점을 명예훼손 혐의를 입증할 하나의 정황으로 봤는데, 전 목사 재판부는 오히려 반대로 판단했습니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간첩'이란 용어는 일상을 파고들어 확장됐고, 수사학적·비유적 표현으로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이 말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감수성은 가변적"이라며 "문맥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간첩' 표현도 명예훼손 발언이라기보단,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을 비판하는 취지의 의견 표명 또는 과장된 표현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 대통령이라서, 법조인이라서

전 목사 재판부의 판결을 보면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자 정치인인 '공인'이라,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검증은 더욱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고 전 이사장이 발언했던 2013년 1월에도 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까지 출마했던 공인이었습니다. 같은 전제 사실을 두고 다른 판단이 나온 셈입니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바로 고 전 이사장의 사회적 지위입니다. 고 전 이사장 재판부는 "피고인은 4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법조인이자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여론에 미칠 파급력을 예상해 공개석상에서의 발언에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 전 이사장은 '공산주의자' 발언을 하면서, 자신이 1982년 부산지검 공안부 검사로 있을 당시 '부림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점까지 설명했는데요. 재판부는 "피고인의 발언은 단순히 피해자의 진보적 성향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나 부정적인 표현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에 기반하고 있어, 마치 증명된 진실인 것처럼 대중들 사이에 회자되거나 확대·재생산되면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릴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전 목사 판결에 대해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항소할 경우 2심 재판에서는 '간첩', '공산화' 발언의 명예훼손 여부를 놓고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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