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에서 잠수함에 치인 듯’한 2020년! 외교가 ‘키워드’는?

입력 2020.12.3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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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을 건너려다 잠수함에 치인 기분"(워싱턴 포스트 독자가 묘사한 2020년 요약) 과도 같았던 2020년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유례 없는 위기로 전 세계가 씨름했던 올 한 해, 우리 외교가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몇 가지 키워드로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정리해 봤습니다.

■ 첫 번째 키워드 #코로나

'중국에서 원인 불명 폐렴이 잇따르고 있다'는 보도가 처음 등장했던 1년 전 오늘. 앞으로 닥칠 일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작 20일 뒤, 국내 코로나 19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하며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우선 2월 4일, 정부는 우한이 위치한 중국 후베이 성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입국 제한 조치를 내립니다. 중국발 입국자에겐 '특별입국절차'가 적용됐고, 중국인의 제주도 무사증 입국제도도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2월 22일, 아프리카 섬나라 모리셔스로 신혼여행을 떠난 한국인 신혼부부 17쌍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격리되는 등 한국발 입국을 금지·제한하는 나라들도 함께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정부가 전세기 투입 등 재외국민 귀국 지원에 나선 것도 이 즈음부터입니다. 1월 31일, 중국 우한과 인근에서 철수하는 한국인 367명을 실은 첫 정부 전세기가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이후 아프리카 가봉과 남미 페루, 유럽 몬테네그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113개국에 흩어져 있던 우리 교민 3만 9천여 명(6월 22일 기준)이 정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귀국했습니다.

이른바 'K-방역' 성과를 내세운 외교도 빠질 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정부는 지난 4월 코로나19 진단장비 60만 개를 미국에 수출했고, 5월엔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국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 50만 장을 보내는 등 각국에 방역 물품을 지원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개방성’과 ‘투명성’, ‘민주성’ 등을 내세운 'K-방역'이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때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국경을 걸어 잠그다시피 하면서, 외교가 역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해외 출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8월에야 처음으로 독일 출장을 떠나며 대면 외교를 재개할 수 있었고, 지구촌 다자외교의 꽃으로 꼽히는 UN 총회도 지난 9월 사상 첫 화상 회의로 치러졌습니다.

대면 외교의 빈자리를 화상 회의와 유선 협의가 채우긴 했지만, 외교 당국자들은 "아무래도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 진전이 있기 마련"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 두 번째 키워드 #미·중갈등


이러한 코로나 19 확산의 책임론을 두고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미·중 갈등도 한층 깊어진 해였습니다. 중국의 남중국해 무장과 무역갈등 같은 오랜 이슈에 이어 중국 IT 기업을 배제한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 구상, 홍콩 보안법 통과 등 새 변수가 더해지며 미·중 갈등은 외교·군사·기술·통상·인권 등 전 분야로 확대됐습니다.

정부는 홍콩 보안법과 미국 주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두고 미중갈등 양상이 뚜렷해지던 지난 여름께부터 범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잇따라 열고 대응 전략을 논의했습니다. 지난 8월 취임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동맹은 기본"이라며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한국의 외교가 미국과 중국을 사이에 둔 '등거리 외교'는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바이든 새 행정부가 취임을 앞두고 있지만, 앞으로도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한국 정부의 입장에선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놓을 수 없는 복잡한 위치에 있는 만큼 2021년에도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 세 번째 키워드 #외교관 성 추문


올 한해 한국 외교가는 재외 공관 발 각종 추문으로 얼룩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뉴질랜드 외교관 성추행'으로 알려진 한국 외교관 A 씨의 성추행 사건입니다. 지난 7월, 뉴질랜드 현지 언론이 A 씨의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며 사건을 소상히 보도하면서 3년 전 사건이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겁니다.

A 씨가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징계만 받았을 뿐, 뉴질랜드를 떠나 경찰의 출두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피해자의 호소에 여론은 '국제 망신'이라며 크게 악화됐습니다. 뒤이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해당 사건을 거론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습니다.

결국, 8월 3일 외교부는 해당 외교관을 국내로 귀임 발령하고 사건 경위를 공개합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성추행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몇 달 간 이어진 논란은 지난 9월 인권위의 시정 권고에 이어, 지난 7일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과 피해자 사이의 사인 중재도 타결되며 일단락되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올 한 해에는 재외 공관 발 추문에 대한 폭로가 잇따랐습니다. “나이지리아 대사관에서 한국인 행정 직원이 현지인 청소 직원을 성추행했다”, “시애틀 총영사관 소속 외교관이 부하 직원에게 '인간 고기' 를 언급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았다” 등 국회의 국정감사 기간 여러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습니다.

최근 외교부는 재외공관의 성 비위 사건 처리를 외교부 본부로 일원화하는 등 대응을 강화한 외교부 훈령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는데요. 2021년에는 달라진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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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널목에서 잠수함에 치인 듯’한 2020년! 외교가 ‘키워드’는?
    • 입력 2020-12-31 16:43:07
    취재K

"건널목을 건너려다 잠수함에 치인 기분"(워싱턴 포스트 독자가 묘사한 2020년 요약) 과도 같았던 2020년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유례 없는 위기로 전 세계가 씨름했던 올 한 해, 우리 외교가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몇 가지 키워드로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정리해 봤습니다.

■ 첫 번째 키워드 #코로나

'중국에서 원인 불명 폐렴이 잇따르고 있다'는 보도가 처음 등장했던 1년 전 오늘. 앞으로 닥칠 일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작 20일 뒤, 국내 코로나 19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하며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우선 2월 4일, 정부는 우한이 위치한 중국 후베이 성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입국 제한 조치를 내립니다. 중국발 입국자에겐 '특별입국절차'가 적용됐고, 중국인의 제주도 무사증 입국제도도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2월 22일, 아프리카 섬나라 모리셔스로 신혼여행을 떠난 한국인 신혼부부 17쌍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격리되는 등 한국발 입국을 금지·제한하는 나라들도 함께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정부가 전세기 투입 등 재외국민 귀국 지원에 나선 것도 이 즈음부터입니다. 1월 31일, 중국 우한과 인근에서 철수하는 한국인 367명을 실은 첫 정부 전세기가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이후 아프리카 가봉과 남미 페루, 유럽 몬테네그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113개국에 흩어져 있던 우리 교민 3만 9천여 명(6월 22일 기준)이 정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귀국했습니다.

이른바 'K-방역' 성과를 내세운 외교도 빠질 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정부는 지난 4월 코로나19 진단장비 60만 개를 미국에 수출했고, 5월엔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국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 50만 장을 보내는 등 각국에 방역 물품을 지원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개방성’과 ‘투명성’, ‘민주성’ 등을 내세운 'K-방역'이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때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국경을 걸어 잠그다시피 하면서, 외교가 역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해외 출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8월에야 처음으로 독일 출장을 떠나며 대면 외교를 재개할 수 있었고, 지구촌 다자외교의 꽃으로 꼽히는 UN 총회도 지난 9월 사상 첫 화상 회의로 치러졌습니다.

대면 외교의 빈자리를 화상 회의와 유선 협의가 채우긴 했지만, 외교 당국자들은 "아무래도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 진전이 있기 마련"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 두 번째 키워드 #미·중갈등


이러한 코로나 19 확산의 책임론을 두고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미·중 갈등도 한층 깊어진 해였습니다. 중국의 남중국해 무장과 무역갈등 같은 오랜 이슈에 이어 중국 IT 기업을 배제한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 구상, 홍콩 보안법 통과 등 새 변수가 더해지며 미·중 갈등은 외교·군사·기술·통상·인권 등 전 분야로 확대됐습니다.

정부는 홍콩 보안법과 미국 주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두고 미중갈등 양상이 뚜렷해지던 지난 여름께부터 범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잇따라 열고 대응 전략을 논의했습니다. 지난 8월 취임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동맹은 기본"이라며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한국의 외교가 미국과 중국을 사이에 둔 '등거리 외교'는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바이든 새 행정부가 취임을 앞두고 있지만, 앞으로도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한국 정부의 입장에선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놓을 수 없는 복잡한 위치에 있는 만큼 2021년에도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 세 번째 키워드 #외교관 성 추문


올 한해 한국 외교가는 재외 공관 발 각종 추문으로 얼룩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뉴질랜드 외교관 성추행'으로 알려진 한국 외교관 A 씨의 성추행 사건입니다. 지난 7월, 뉴질랜드 현지 언론이 A 씨의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며 사건을 소상히 보도하면서 3년 전 사건이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겁니다.

A 씨가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징계만 받았을 뿐, 뉴질랜드를 떠나 경찰의 출두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피해자의 호소에 여론은 '국제 망신'이라며 크게 악화됐습니다. 뒤이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해당 사건을 거론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습니다.

결국, 8월 3일 외교부는 해당 외교관을 국내로 귀임 발령하고 사건 경위를 공개합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성추행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몇 달 간 이어진 논란은 지난 9월 인권위의 시정 권고에 이어, 지난 7일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과 피해자 사이의 사인 중재도 타결되며 일단락되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올 한 해에는 재외 공관 발 추문에 대한 폭로가 잇따랐습니다. “나이지리아 대사관에서 한국인 행정 직원이 현지인 청소 직원을 성추행했다”, “시애틀 총영사관 소속 외교관이 부하 직원에게 '인간 고기' 를 언급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았다” 등 국회의 국정감사 기간 여러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습니다.

최근 외교부는 재외공관의 성 비위 사건 처리를 외교부 본부로 일원화하는 등 대응을 강화한 외교부 훈령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는데요. 2021년에는 달라진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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