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경력 구조대원이 바다 위에서 SOS 요청한 사연은?

입력 2021.01.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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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0일 이경우 씨의 선박이 구조되는 장면.지난해 9월 20일 이경우 씨의 선박이 구조되는 장면.

민간 해양 구조대원으로 활동해온 이경우 씨. 지난해 9월 본인의 구조선을 타고 서해로 나갔다가 표류됐습니다. 다행히 침착하게 구조 요청을 했고, 무사히 구조됐습니다. 17년 동안 구조를 해오던 이 씨는 어쩌다가 구조 요청을 하게 됐을까요?

■ "전날 수리를 마친 선박 엔진이 바다 위에서 멈춰버렸다"

선박 엔진이 말썽이었습니다. 전날 수리를 마친 엔진이 갑자기 바다 위에서 멈춰버린 겁니다.

"생명을 다루는 문제에요. 자동차는 문제가 생겨도 안전지대로 피할 수 있지만, 바다는 '조류'가 있어요. 만약 엔진이 멈추게 되면 표류를 하게 되고, 다른 선박이나 지형과 부딪치면 침몰·침수될 수도 있어요."

민간 해양 구조대원 이경우 씨가 취재진에게 문제의 엔진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민간 해양 구조대원 이경우 씨가 취재진에게 문제의 엔진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씨는 이런 적이 한 번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갑자기 작동을 멈춘 엔진은 사설 수리업체에서 교체해 수리를 갓 마친 상태였는데, 한 번도 문제 없이 출항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보름 동안 다섯 차례 정도 시동이 꺼지거나, 기름이 새고 엔진이 방전되는 등 문제가 이어졌습니다.

이 씨가 엔진을 맡긴 사설 수리업체는 '떳떳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씨에게 교체해준 엔진과 수리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겁니다.

■ 선박 수리업 하려면 필요한 건?…'사업자 등록'뿐

문제는 이렇게 선박 수리·정비로 인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당 업체에 실제로 책임이 있더라도 업체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기 어렵습니다.

현행법에서는 선박의 건조나 수리·정비를 하는 데 있어 전문 자격 조건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업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선박 건조·수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씨의 엔진을 수리한 업체도 선박 수리와 관련한 별다른 자격증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분쟁 당사자가 사기 등으로 업체를 고소할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뚜렷합니다. 자격이 있거나 허가를 해주는 게 아니다 보니, 자격을 뺏거나 허가를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문제가 있는 업체 영업을 막는 등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겁니다.

그렇다면 다른 운송 수단은 어떨까? 항공이나 철도의 경우, 일정 규모 시설이나 기술을 갖춰야 수리·정비업을 하도록 법으로 정해뒀습니다.

「철도안전법」제26조의3 ①
인력, 설비, 장비, 기술 및 제작검사 등 철도차량의 적합한 제작을 위한 유기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국토교통부장관의 제작자승인을 받아야 한다.

「항공안전법」제22조
기술, 설비, 인력 및 품질 관리체계 등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받으려는 자는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제작증명을 신청하여야 한다.

철도나 항공처럼 선박도 생명과 직결되는 기계입니다. 이 씨는 법적이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해마다 수천 건의 선박 기관 사고가 일어나는데, 이런 사고는 '인재(人災)'입니다. 허가나 자격을 꼼꼼하게 갖추도록 해서 이런 사고를 미리 방지해야 합니다."

■ 해수부, 관련법 개정에 나섰지만…'어선' 이외 선박도 규제 필요

해양수산부도 이런 법적인 미비점을 인지하고 관련법 개정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9월에 25일에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어선법 일부개정법률안'도 그 노력의 일환인데요.

해양수산부가 어선의 안전확보를 위해서 최소한의 전문자격 및 설비요건을 갖추도록 해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그 내용이 반영된 겁니다.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거나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5일, 김영진 의원 등 10인은 ‘어선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지난 9월 25일, 김영진 의원 등 10인은 ‘어선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해양수산부 김도한 어선안전정책과 사무관은 "자격이 부족한 곳에서 선박을 만들거나 수리해서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은 큰 문제"라며 "어선이 만들어질 때부터 수리, 개조되는 단계까지 관리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올해 초부터 개정안 발의 등 여러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해당 법안은 지난해 11월 13일 소관위원회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상정된 뒤, 처리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번 개정안이 '어선'에 한정됐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요트와 같은 수상 레저용 선박 등 다른 선박에 대해서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마지막까지 당부했습니다.

"저희같이 구조하는 사람들은 이 선박이 생명이잖아요. 생명과 같은 기계에 대해서는 허가나 자격이라든지 이런 것을 꼼꼼히 체크 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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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년 경력 구조대원이 바다 위에서 SOS 요청한 사연은?
    • 입력 2021-01-03 07:00:36
    취재K
지난해 9월 20일 이경우 씨의 선박이 구조되는 장면.
민간 해양 구조대원으로 활동해온 이경우 씨. 지난해 9월 본인의 구조선을 타고 서해로 나갔다가 표류됐습니다. 다행히 침착하게 구조 요청을 했고, 무사히 구조됐습니다. 17년 동안 구조를 해오던 이 씨는 어쩌다가 구조 요청을 하게 됐을까요?

■ "전날 수리를 마친 선박 엔진이 바다 위에서 멈춰버렸다"

선박 엔진이 말썽이었습니다. 전날 수리를 마친 엔진이 갑자기 바다 위에서 멈춰버린 겁니다.

"생명을 다루는 문제에요. 자동차는 문제가 생겨도 안전지대로 피할 수 있지만, 바다는 '조류'가 있어요. 만약 엔진이 멈추게 되면 표류를 하게 되고, 다른 선박이나 지형과 부딪치면 침몰·침수될 수도 있어요."

민간 해양 구조대원 이경우 씨가 취재진에게 문제의 엔진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씨는 이런 적이 한 번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갑자기 작동을 멈춘 엔진은 사설 수리업체에서 교체해 수리를 갓 마친 상태였는데, 한 번도 문제 없이 출항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보름 동안 다섯 차례 정도 시동이 꺼지거나, 기름이 새고 엔진이 방전되는 등 문제가 이어졌습니다.

이 씨가 엔진을 맡긴 사설 수리업체는 '떳떳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씨에게 교체해준 엔진과 수리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겁니다.

■ 선박 수리업 하려면 필요한 건?…'사업자 등록'뿐

문제는 이렇게 선박 수리·정비로 인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당 업체에 실제로 책임이 있더라도 업체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기 어렵습니다.

현행법에서는 선박의 건조나 수리·정비를 하는 데 있어 전문 자격 조건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업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선박 건조·수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씨의 엔진을 수리한 업체도 선박 수리와 관련한 별다른 자격증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분쟁 당사자가 사기 등으로 업체를 고소할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뚜렷합니다. 자격이 있거나 허가를 해주는 게 아니다 보니, 자격을 뺏거나 허가를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문제가 있는 업체 영업을 막는 등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겁니다.

그렇다면 다른 운송 수단은 어떨까? 항공이나 철도의 경우, 일정 규모 시설이나 기술을 갖춰야 수리·정비업을 하도록 법으로 정해뒀습니다.

「철도안전법」제26조의3 ①
인력, 설비, 장비, 기술 및 제작검사 등 철도차량의 적합한 제작을 위한 유기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국토교통부장관의 제작자승인을 받아야 한다.

「항공안전법」제22조
기술, 설비, 인력 및 품질 관리체계 등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받으려는 자는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제작증명을 신청하여야 한다.

철도나 항공처럼 선박도 생명과 직결되는 기계입니다. 이 씨는 법적이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해마다 수천 건의 선박 기관 사고가 일어나는데, 이런 사고는 '인재(人災)'입니다. 허가나 자격을 꼼꼼하게 갖추도록 해서 이런 사고를 미리 방지해야 합니다."

■ 해수부, 관련법 개정에 나섰지만…'어선' 이외 선박도 규제 필요

해양수산부도 이런 법적인 미비점을 인지하고 관련법 개정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9월에 25일에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어선법 일부개정법률안'도 그 노력의 일환인데요.

해양수산부가 어선의 안전확보를 위해서 최소한의 전문자격 및 설비요건을 갖추도록 해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그 내용이 반영된 겁니다.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거나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5일, 김영진 의원 등 10인은 ‘어선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해양수산부 김도한 어선안전정책과 사무관은 "자격이 부족한 곳에서 선박을 만들거나 수리해서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은 큰 문제"라며 "어선이 만들어질 때부터 수리, 개조되는 단계까지 관리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올해 초부터 개정안 발의 등 여러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해당 법안은 지난해 11월 13일 소관위원회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상정된 뒤, 처리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번 개정안이 '어선'에 한정됐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요트와 같은 수상 레저용 선박 등 다른 선박에 대해서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마지막까지 당부했습니다.

"저희같이 구조하는 사람들은 이 선박이 생명이잖아요. 생명과 같은 기계에 대해서는 허가나 자격이라든지 이런 것을 꼼꼼히 체크 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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