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성 암’ 0.06%…통계 속에 숨은 진실은?

입력 2021.01.03 (09:00) 수정 2021.01.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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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금속노조 포스코지회와 시민단체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가 노동자 8명에 대한 '직업성 암'을 인정해 달라며 집단 산재 신청을 했다. 노동자들은 폐암, 루게릭병, 세포 림프종 등의 암에 걸렸는데, 포스코 포항제철소 코크스 공정과 냉연부, 스테인리스 등에서 3~40년씩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조 측은 제철소에서 결정형 유리규산, 코크스오븐배출물질(COE),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 석면 등의 물질이 검출되는 등 노동자들이 발암 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제철소라는 일터의 환경적 특성에 의해 발병하는 '직업성 암'이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포스코 사측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연 2회 작업환경 측정을 하고 있고, 유해물질 노출도도 법정 기준에 비해 현저하게 낮게 관리되고 있다며 업무와 '직업성 암'의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작업장 환경과 '직업성 암'은 연관성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데이터가 있다. 지난 10년간 포스코 노동자 직업성 암 현황인데, 3명만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았다.

포항제철소의 원·하청 노동자가 다 합쳐서 1만 7천여 명 정도 되는 걸 고려할 때, 굉장히 적은 숫자다.포스코 사측의 설명대로 작업장에서 유해물질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노조와 직업성·환경성암119는 통계에 허점이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직업성 암은 발암물질에 노출된 지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년 후에 발생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퇴직한 뒤 발병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나중에 암이 발병하면 노동자가 자신의 과거 작업 환경과 연관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 '직업성 암' 0.06%…진실은?

국내 전체로 보면 어떨까? 우선 지난달 말 발표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24만 3,837명인 것으로 나타난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의 숫자를 더하면 암 발병자 수는 70만 명을 넘어선다.

연평균 23만여 명의 신규 암 환자가 발생하는 건데, 그렇다면 직업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직업성 암'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보면 2016년 123건, 2017년 164건, 2018년 205건이 각각 '직업성 암'으로 인정됐다. 연평균 164명, 모두 492명이 '직업성 암'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를 전체 암 환자 숫자로 나눠보면 0.06%라는 수치가 나온다. 즉, 암 환자 1만 명 중 6명만 '직업성 암' 환자로 인정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전체 암 가운데 '직업성 암'의 기여분율을 4%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직업성 암' 기여분율 보다 66배 가량 높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7년, 전 세계 산업재해 사망자 가운데 26%가 직업성 암인 것으로 추산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 전문가들은 국내의 경우 숨겨진 '직업성 암', 즉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직업성 암' 숫자가 드러난 것보다 최소 10배 이상 많다고 보고 있다.

■ 숨겨진 '직업성 암' 찾으려면?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보건학 박사)는 "노동자들은 '직업성 암' 자체를 잘 모르고, 사업주와 의사는 관심이 없고, 정부 차원에서도 '직업성 암 환자 찾기'에 나서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직업상 암에 대한 산재 신청 건수가 절대적으로 적다"며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 비율이 낮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직업병에 의한 암 환자라는 것을 밝혀낼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수면 아래에 있는 직업성 암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홍보 활동을 통해 직업성 암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윤근 소장은 지적한다.

이와 함께 의료체계 속에서 의심되는 직업성 암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추적하고 확인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암에 걸려 병원에 갔을 때 진단 과정에서 직업 이력과 직업 환경을 면밀히 확인하고 이를 노동당국 등 관계기관에 공유하는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기업이 의무적으로 발암물질을 사용한 노동자의 의료기록을 50년간 보존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퇴사 후에도 본인의 암이 작업 환경과 관련이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독일이나 일본 등 다른 국가들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직업성 암에 대한 인정 기준을 계속해서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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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성 암’ 0.06%…통계 속에 숨은 진실은?
    • 입력 2021-01-03 09:00:46
    • 수정2021-01-03 10:30:06
    취재K

지난달, 금속노조 포스코지회와 시민단체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가 노동자 8명에 대한 '직업성 암'을 인정해 달라며 집단 산재 신청을 했다. 노동자들은 폐암, 루게릭병, 세포 림프종 등의 암에 걸렸는데, 포스코 포항제철소 코크스 공정과 냉연부, 스테인리스 등에서 3~40년씩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조 측은 제철소에서 결정형 유리규산, 코크스오븐배출물질(COE),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 석면 등의 물질이 검출되는 등 노동자들이 발암 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제철소라는 일터의 환경적 특성에 의해 발병하는 '직업성 암'이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포스코 사측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연 2회 작업환경 측정을 하고 있고, 유해물질 노출도도 법정 기준에 비해 현저하게 낮게 관리되고 있다며 업무와 '직업성 암'의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작업장 환경과 '직업성 암'은 연관성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데이터가 있다. 지난 10년간 포스코 노동자 직업성 암 현황인데, 3명만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았다.

포항제철소의 원·하청 노동자가 다 합쳐서 1만 7천여 명 정도 되는 걸 고려할 때, 굉장히 적은 숫자다.포스코 사측의 설명대로 작업장에서 유해물질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노조와 직업성·환경성암119는 통계에 허점이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직업성 암은 발암물질에 노출된 지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년 후에 발생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퇴직한 뒤 발병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나중에 암이 발병하면 노동자가 자신의 과거 작업 환경과 연관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 '직업성 암' 0.06%…진실은?

국내 전체로 보면 어떨까? 우선 지난달 말 발표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24만 3,837명인 것으로 나타난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의 숫자를 더하면 암 발병자 수는 70만 명을 넘어선다.

연평균 23만여 명의 신규 암 환자가 발생하는 건데, 그렇다면 직업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직업성 암'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보면 2016년 123건, 2017년 164건, 2018년 205건이 각각 '직업성 암'으로 인정됐다. 연평균 164명, 모두 492명이 '직업성 암'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를 전체 암 환자 숫자로 나눠보면 0.06%라는 수치가 나온다. 즉, 암 환자 1만 명 중 6명만 '직업성 암' 환자로 인정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전체 암 가운데 '직업성 암'의 기여분율을 4%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직업성 암' 기여분율 보다 66배 가량 높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7년, 전 세계 산업재해 사망자 가운데 26%가 직업성 암인 것으로 추산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 전문가들은 국내의 경우 숨겨진 '직업성 암', 즉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직업성 암' 숫자가 드러난 것보다 최소 10배 이상 많다고 보고 있다.

■ 숨겨진 '직업성 암' 찾으려면?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보건학 박사)는 "노동자들은 '직업성 암' 자체를 잘 모르고, 사업주와 의사는 관심이 없고, 정부 차원에서도 '직업성 암 환자 찾기'에 나서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직업상 암에 대한 산재 신청 건수가 절대적으로 적다"며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 비율이 낮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직업병에 의한 암 환자라는 것을 밝혀낼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수면 아래에 있는 직업성 암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홍보 활동을 통해 직업성 암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윤근 소장은 지적한다.

이와 함께 의료체계 속에서 의심되는 직업성 암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추적하고 확인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암에 걸려 병원에 갔을 때 진단 과정에서 직업 이력과 직업 환경을 면밀히 확인하고 이를 노동당국 등 관계기관에 공유하는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기업이 의무적으로 발암물질을 사용한 노동자의 의료기록을 50년간 보존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퇴사 후에도 본인의 암이 작업 환경과 관련이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독일이나 일본 등 다른 국가들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직업성 암에 대한 인정 기준을 계속해서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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