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진찰한 두 의사의 다른 판단…결국 놓친 마지막 기회

입력 2021.01.0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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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 숨진 정인이를 구할 기회는 3번이나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어린이집 교사와 지나가던 행인,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경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리 마사지를 하다 멍이 생겼다거나 아토피 때문이라는 부모의 주장을 믿고, 정인이를 돌려보냈습니다.


■아동학대 신고 의사 "정인이, 너무 체념한듯한 그런 표정"

특히 3번째 신고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병원을 찾은 정인이의 상태를 살펴본 전문의 A 씨는 학대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A 씨는 어제(5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두 달 정도 만에 정인이를 본 상황이었는데 두 달 전과 비교해서 너무 차이 나게 영양 상태나 전신상태가 정말 불량해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15개월 아기한테 맞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체념한듯한 그런 표정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넉 달 전에도 아동학대 정황이 있는지 정인이를 진찰한 적이 있던 A 씨는 '아동학대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A 씨는 "아동학대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라고 하더라도 사실일 가능성 1%에 더 무게를 두고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이어 "신고를 하고 난 뒤 경찰분들이 상당히 빨리 병원에 출동하셨던 거로 기억한다"면서 "그동안 정인이에 대한 진찰 과정을 자세하게 말씀드렸고, 제 나름대로 상당히 강하게 말씀을 드렸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계자가 정인이 양부모를 만나러 가자, A 씨는 '어떤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내염 진단 의사, 면허 박탈해야" 국민청원

하지만 3번째 아동학대 신고도 정인이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보전 관계자와 양부모가 함께 방문한 또 다른 병원에서 '구내염'이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의사의 '면허를 박탈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청원인은 "소아과 전문의로서 찢어진 상처와 구내염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의사로서 능력이 의심된다"면서 "정인이를 구하기 위해 신고한 선량한 신고자들의 노력을 무마시켰고 가해자에게 유리한 허위 진단서를 작성, 정인이가 구조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고 주장했습니다.

KBS에도 이 병원 관련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해당 병원에 근무 중인 의사 1명이 정인이의 양아버지와 이름이 거의 비슷한데, 두 사람은 친인척 관계라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3차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온 이후 정인이와 아보전 관계자가 찾은 병원3차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온 이후 정인이와 아보전 관계자가 찾은 병원

■병원 직접 찾아가 보니…"부풀려진 오해·진단서 발급 안 해"

이에 대해 해당 병원 관계자는 "병원에 양아버지 B 씨와 이름이 비슷한 의사가 있는 건 맞지만, B 씨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아보전 직원과 정인이 양부모가 병원을 찾았을 때, 정인이를 진찰한 건 병원 원장 선생님이었다"면서 "의심을 받고 있는 의사는 정인이를 진료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병원 측은 이어 "(원장이) 정인이 입안에서 상처를 발견하긴 했는데, 아동학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학대를 당했다는 정황을 발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사죄드린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정인이 몸이 야윈 상태였기 때문에 아보전 직원에게 큰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병원 1층 안내 데스크에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병원 측의 입장문이 붙어있었습니다.

<병원 입장문>

이번 일로 아이와 여러분들께 진심 어린 사죄를 드립니다. 저희 병원에 내원하여 아이를 진찰할 때 입 주변에 상처가 있었으나 아동학대를 특정할만한 객관적인 중상인 점상 출혈, 심한 멍 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달 만에 몸무게가 0.8kg이나 줄고, 팔다리가 가늘고 무척 야윈 상태여서 동반한 아동보호소 직원에게 큰 병원에 가서 별도의 검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체중 관련 검사가 시행됐으면 X선 검사를 통해 학대에 관련된 미세 골절이 발견되고, 혈액 검사상 심한 빈혈과 알부민 저하, 소변 검사상 혈뇨 등 확실한 증거로 아이를 마지막으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동학대와 관련하여 그 어떤 소견서나 진단서를 발급하지 않았으며 ○ 부원장과 아이의 양부인 ○ 모 씨가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친척이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오랫동안 저희를 믿고 내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이번 일로 혼란을 드리게 된 점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병원 측은 어떤 소견서나 진단서를 발급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병원 진료 결과는 경찰과 아보전이 아동학대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경찰청이 김용판 국민의 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정인이를 두 차례 진료한 해당 병원은 "아동 입 안에 상처(구내염 등)로 몸무게가 줄었을 수 있지만, 1kg 가량 빠진 것은 의문"이라면서도 "다만 이 상황만으론 아동학대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경과를 지켜보자"는 소견을 전달했습니다.

결국 아보전이 사례 관리를 하기로 하면서, 3차 신고는 내사종결됐습니다.


정인이를 살릴 수도 있었던 마지막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정인이는 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진행된 부검 결과, 정인이의 췌장은 절단돼 있었고 등과 옆구리, 배, 다리 등 전신에는 피하 출혈이 발견됐습니다.

1%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신고를 했던 의사의 판단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정인이는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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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인이 진찰한 두 의사의 다른 판단…결국 놓친 마지막 기회
    • 입력 2021-01-06 10:35:33
    취재K

양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 숨진 정인이를 구할 기회는 3번이나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어린이집 교사와 지나가던 행인,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경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리 마사지를 하다 멍이 생겼다거나 아토피 때문이라는 부모의 주장을 믿고, 정인이를 돌려보냈습니다.


■아동학대 신고 의사 "정인이, 너무 체념한듯한 그런 표정"

특히 3번째 신고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병원을 찾은 정인이의 상태를 살펴본 전문의 A 씨는 학대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A 씨는 어제(5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두 달 정도 만에 정인이를 본 상황이었는데 두 달 전과 비교해서 너무 차이 나게 영양 상태나 전신상태가 정말 불량해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15개월 아기한테 맞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체념한듯한 그런 표정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넉 달 전에도 아동학대 정황이 있는지 정인이를 진찰한 적이 있던 A 씨는 '아동학대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A 씨는 "아동학대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라고 하더라도 사실일 가능성 1%에 더 무게를 두고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이어 "신고를 하고 난 뒤 경찰분들이 상당히 빨리 병원에 출동하셨던 거로 기억한다"면서 "그동안 정인이에 대한 진찰 과정을 자세하게 말씀드렸고, 제 나름대로 상당히 강하게 말씀을 드렸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계자가 정인이 양부모를 만나러 가자, A 씨는 '어떤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내염 진단 의사, 면허 박탈해야" 국민청원

하지만 3번째 아동학대 신고도 정인이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보전 관계자와 양부모가 함께 방문한 또 다른 병원에서 '구내염'이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의사의 '면허를 박탈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청원인은 "소아과 전문의로서 찢어진 상처와 구내염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의사로서 능력이 의심된다"면서 "정인이를 구하기 위해 신고한 선량한 신고자들의 노력을 무마시켰고 가해자에게 유리한 허위 진단서를 작성, 정인이가 구조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고 주장했습니다.

KBS에도 이 병원 관련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해당 병원에 근무 중인 의사 1명이 정인이의 양아버지와 이름이 거의 비슷한데, 두 사람은 친인척 관계라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3차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온 이후 정인이와 아보전 관계자가 찾은 병원
■병원 직접 찾아가 보니…"부풀려진 오해·진단서 발급 안 해"

이에 대해 해당 병원 관계자는 "병원에 양아버지 B 씨와 이름이 비슷한 의사가 있는 건 맞지만, B 씨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아보전 직원과 정인이 양부모가 병원을 찾았을 때, 정인이를 진찰한 건 병원 원장 선생님이었다"면서 "의심을 받고 있는 의사는 정인이를 진료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병원 측은 이어 "(원장이) 정인이 입안에서 상처를 발견하긴 했는데, 아동학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학대를 당했다는 정황을 발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사죄드린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정인이 몸이 야윈 상태였기 때문에 아보전 직원에게 큰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병원 1층 안내 데스크에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병원 측의 입장문이 붙어있었습니다.

<병원 입장문>

이번 일로 아이와 여러분들께 진심 어린 사죄를 드립니다. 저희 병원에 내원하여 아이를 진찰할 때 입 주변에 상처가 있었으나 아동학대를 특정할만한 객관적인 중상인 점상 출혈, 심한 멍 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달 만에 몸무게가 0.8kg이나 줄고, 팔다리가 가늘고 무척 야윈 상태여서 동반한 아동보호소 직원에게 큰 병원에 가서 별도의 검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체중 관련 검사가 시행됐으면 X선 검사를 통해 학대에 관련된 미세 골절이 발견되고, 혈액 검사상 심한 빈혈과 알부민 저하, 소변 검사상 혈뇨 등 확실한 증거로 아이를 마지막으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동학대와 관련하여 그 어떤 소견서나 진단서를 발급하지 않았으며 ○ 부원장과 아이의 양부인 ○ 모 씨가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친척이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오랫동안 저희를 믿고 내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이번 일로 혼란을 드리게 된 점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병원 측은 어떤 소견서나 진단서를 발급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병원 진료 결과는 경찰과 아보전이 아동학대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경찰청이 김용판 국민의 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정인이를 두 차례 진료한 해당 병원은 "아동 입 안에 상처(구내염 등)로 몸무게가 줄었을 수 있지만, 1kg 가량 빠진 것은 의문"이라면서도 "다만 이 상황만으론 아동학대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경과를 지켜보자"는 소견을 전달했습니다.

결국 아보전이 사례 관리를 하기로 하면서, 3차 신고는 내사종결됐습니다.


정인이를 살릴 수도 있었던 마지막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정인이는 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진행된 부검 결과, 정인이의 췌장은 절단돼 있었고 등과 옆구리, 배, 다리 등 전신에는 피하 출혈이 발견됐습니다.

1%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신고를 했던 의사의 판단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정인이는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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