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하청노동자 사망…왜 설비 안 세웠나?

입력 2021.01.0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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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새해 연휴 마지막 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내 1공장에서는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19일부터 1공장 생산라인 가동을 모두 멈추고 진행된 생산라인 개선공사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새해 첫 생산라인 가동을 앞둔 만큼 맡은 업무를 허투루 할 노동자는 없었을 겁니다.


■ 사고는 '열심히 일하려 한' 노동자 책임일까?

지난해 3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 입사한 50대 노동자는 새해 연휴 마지막 날인 이날도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이 하청업체에 맡긴 업무는 차를 만들고 남은 철판 찌꺼기(스크랩)를 모아 네모 반듯하게 압착하는 설비를 점검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설비 주변에 떨어진 철판 찌꺼기를 청소하는 일도 맡았습니다.

50대 하청노동자가 숨진 현장. 바닥에는 철판 찌꺼기가 널브러져 있고,  이를 깨끗하게 청소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50대 하청노동자가 숨진 현장. 바닥에는 철판 찌꺼기가 널브러져 있고, 이를 깨끗하게 청소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점심 식사를 마친 이후인 낮 12시 40분쯤, 하청업체 관리자로부터 업무지시가 내려옵니다.

하청업체 관리자 : 저기 (현대자동차) 프레스(부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한 2시경에 스크랩(철판 찌꺼기) 베일러(에서) 지난 번에 스크랩 떨어지는 거 옆에 가이더 보강공사를 했는데, 한 2시경에 안전 쪽에 하고, '중역'들이 작업 한 거 확인하러 나온다고 그러네?

현장 노동자 : 네

하청업체 관리자 : 그래서 스크랩 베일러장만 스크랩 떨어진 거 하고 좀 지저분한 거 정리 좀 해달라고 부탁이 왔는데.

현장 노동자 : 어제 엄청 치워 놓았는데.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볼게요.

하청업체 관리자 : 그래 오늘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2시경에 온단다. 사람들이.

현장 노동자 : 네, 알겠습니다.

하청업체 관리자 : 어, 그 안에 좀 정리 부탁하자.

업무 지시를 받은 하청노동자 3명은 작업 준비를 마치고 1시쯤 현장에 도착해 청소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한 지 20여 분 뒤 50대 노동자는 작동 중인 설비에 끼인 채 발견돼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당시 숨진 노동자와 함께 일한 동료는 오후 2시쯤 '중역'이 현장을 점검하러 온다는 소리에 작은 찌꺼기 하나라도 없이 깨끗이 청소해야겠다는 마음이 전부였다고 말합니다.


■ 설비는 왜 멈추지 않았나?


청소할 때 해당 설비는 작동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 눈에 들어 온 건 작동되고 있는 설비보다 바닥에 떨어진 철판 찌꺼기였을 겁니다.

숨진 노동자는 바닥에 있는 찌꺼기를 청소하려 설비에 접근했고, 이후 변을 당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국금속노조는 "설비 점검, 정비, 청소 등의 작업을 할 때 전원을 차단해 설비가 절대 작동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작업 절차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청업체가 맡은 업무에 대한 '위험성 평가표'에도 설비로 인한 협착과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동력을 차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절차를 지켜 설비 작동을 멈춘 뒤 청소를 했다면 사고는 나지 않았을 거란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설비는 왜 멈추지 않고 작동됐을까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측은 이렇게 해명합니다.

"사고 공정은 펜스와 안전플러그가 설치되어 있어 정상적으로 출입할 경우 설비가 자동으로 중단되게 되어 있다." - 1월 5일 현대자동차 측 입장문

설비 바닥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출입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해당 설비 출입문에는 '안전플러그'라는 장비가 설치돼 있다는 겁니다.

이 안전플러그는 출입문에 부착돼 이를 뽑아야 출입문 잠금장치가 해제되고, 그와 동시에 설비 작동도 멈추는 안전장치를 일컫습니다.

그러니까, 숨진 노동자가 정상적으로 출입문의 안전플러그를 뽑고 현장에 접근했다면 설비 작동도 멈추기 때문에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말입니다.

전국금속노조도 숨진 노동자의 동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출입하지 못하는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빼버린 채 이런 식으로 해명하는 건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판합니다.


■ 설비 작동을 멈추게 하는 건 '원청' 권한


하청업체는 설비 점검과 유지보수의 '책임' 만 있을 뿐, 설비 운영 권한은 원청, 즉 현대자동차에 있다는 겁니다.

위험한지 알면서도, 설비 작동을 멈추고 작업해야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 없는 건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 회사가 (생산)라인을 어떻게 세웁니까. 청소를 해야하니까 라인을 세우겠습니다, 이 라인 한 번 세워 버리면 손해하고 이런 거를 다 어떻게 저희가 감당합니까." - 숨진 하청 노동자 동료

평소에도 설비가 작동되는 와중에 청소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고도 말합니다.

현대자동차 해명대로 정상적으로 출입했다면 설비 작동이 멈췄을 테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 또한 하청업체 몫이 되기 때문에 위험한지 알면서도 그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숨진 노동자는 정상적으로 출입해 청소 작업을 할 수 없었고, 출입문이 아닌 다른 공간을 통해 현장에 접근해 청소하다 사고를 당한 겁니다.


■ '2인 1조' 근무 수칙도 "있으나 마나?"


1시간 뒤면 '원청' 간부들이 점검하러 온다는 소리에 청소 작업은 급박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투입된 하청노동자는 숨진 노동자를 포함해 모두 3명. 모두 각자가 맡은 영역에서 청소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2인 1조로 작업을 했다면 제시간 안에 마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빨리 끝내라고 해놓고 전부 다, 모든 사람들이(노동자들이) 뭉쳐서 한 곳 (청소)하고 가고, 한 곳 하고 가고 어떻게 시간 안에 끝내요. (2인 1조로 작업하면) 시간 안에 끝낼 수가 없죠." - 숨진 하청노동자 동료


■ "우리 모두의 잘못"

어렵사리 인터뷰에 나선 숨진 노동자 동료는 현장 노동자의 과실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원청인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자신이 소속된 하청업체가 이번 사고를 노동자 개인의 잘못으로 떠넘기는 행태는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며 납득할 수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사고를 둘러싼 얽히고설킨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똑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현대차 그룹 정의선 회장은 사고 다음 날인 지난 4일, 새해 메시지를 통해 애도를 표하고,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전한 환경 조성과 안전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오늘(6일) 하언태 현대자동차 사장 역시 신년사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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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 하청노동자 사망…왜 설비 안 세웠나?
    • 입력 2021-01-06 13:49:23
    취재K

1월 3일. 새해 연휴 마지막 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내 1공장에서는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19일부터 1공장 생산라인 가동을 모두 멈추고 진행된 생산라인 개선공사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새해 첫 생산라인 가동을 앞둔 만큼 맡은 업무를 허투루 할 노동자는 없었을 겁니다.


■ 사고는 '열심히 일하려 한' 노동자 책임일까?

지난해 3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 입사한 50대 노동자는 새해 연휴 마지막 날인 이날도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이 하청업체에 맡긴 업무는 차를 만들고 남은 철판 찌꺼기(스크랩)를 모아 네모 반듯하게 압착하는 설비를 점검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설비 주변에 떨어진 철판 찌꺼기를 청소하는 일도 맡았습니다.

50대 하청노동자가 숨진 현장. 바닥에는 철판 찌꺼기가 널브러져 있고,  이를 깨끗하게 청소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점심 식사를 마친 이후인 낮 12시 40분쯤, 하청업체 관리자로부터 업무지시가 내려옵니다.

하청업체 관리자 : 저기 (현대자동차) 프레스(부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한 2시경에 스크랩(철판 찌꺼기) 베일러(에서) 지난 번에 스크랩 떨어지는 거 옆에 가이더 보강공사를 했는데, 한 2시경에 안전 쪽에 하고, '중역'들이 작업 한 거 확인하러 나온다고 그러네?

현장 노동자 : 네

하청업체 관리자 : 그래서 스크랩 베일러장만 스크랩 떨어진 거 하고 좀 지저분한 거 정리 좀 해달라고 부탁이 왔는데.

현장 노동자 : 어제 엄청 치워 놓았는데.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볼게요.

하청업체 관리자 : 그래 오늘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2시경에 온단다. 사람들이.

현장 노동자 : 네, 알겠습니다.

하청업체 관리자 : 어, 그 안에 좀 정리 부탁하자.

업무 지시를 받은 하청노동자 3명은 작업 준비를 마치고 1시쯤 현장에 도착해 청소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한 지 20여 분 뒤 50대 노동자는 작동 중인 설비에 끼인 채 발견돼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당시 숨진 노동자와 함께 일한 동료는 오후 2시쯤 '중역'이 현장을 점검하러 온다는 소리에 작은 찌꺼기 하나라도 없이 깨끗이 청소해야겠다는 마음이 전부였다고 말합니다.


■ 설비는 왜 멈추지 않았나?


청소할 때 해당 설비는 작동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 눈에 들어 온 건 작동되고 있는 설비보다 바닥에 떨어진 철판 찌꺼기였을 겁니다.

숨진 노동자는 바닥에 있는 찌꺼기를 청소하려 설비에 접근했고, 이후 변을 당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국금속노조는 "설비 점검, 정비, 청소 등의 작업을 할 때 전원을 차단해 설비가 절대 작동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작업 절차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청업체가 맡은 업무에 대한 '위험성 평가표'에도 설비로 인한 협착과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동력을 차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절차를 지켜 설비 작동을 멈춘 뒤 청소를 했다면 사고는 나지 않았을 거란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설비는 왜 멈추지 않고 작동됐을까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측은 이렇게 해명합니다.

"사고 공정은 펜스와 안전플러그가 설치되어 있어 정상적으로 출입할 경우 설비가 자동으로 중단되게 되어 있다." - 1월 5일 현대자동차 측 입장문

설비 바닥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출입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해당 설비 출입문에는 '안전플러그'라는 장비가 설치돼 있다는 겁니다.

이 안전플러그는 출입문에 부착돼 이를 뽑아야 출입문 잠금장치가 해제되고, 그와 동시에 설비 작동도 멈추는 안전장치를 일컫습니다.

그러니까, 숨진 노동자가 정상적으로 출입문의 안전플러그를 뽑고 현장에 접근했다면 설비 작동도 멈추기 때문에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말입니다.

전국금속노조도 숨진 노동자의 동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출입하지 못하는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빼버린 채 이런 식으로 해명하는 건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판합니다.


■ 설비 작동을 멈추게 하는 건 '원청' 권한


하청업체는 설비 점검과 유지보수의 '책임' 만 있을 뿐, 설비 운영 권한은 원청, 즉 현대자동차에 있다는 겁니다.

위험한지 알면서도, 설비 작동을 멈추고 작업해야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 없는 건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 회사가 (생산)라인을 어떻게 세웁니까. 청소를 해야하니까 라인을 세우겠습니다, 이 라인 한 번 세워 버리면 손해하고 이런 거를 다 어떻게 저희가 감당합니까." - 숨진 하청 노동자 동료

평소에도 설비가 작동되는 와중에 청소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고도 말합니다.

현대자동차 해명대로 정상적으로 출입했다면 설비 작동이 멈췄을 테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 또한 하청업체 몫이 되기 때문에 위험한지 알면서도 그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숨진 노동자는 정상적으로 출입해 청소 작업을 할 수 없었고, 출입문이 아닌 다른 공간을 통해 현장에 접근해 청소하다 사고를 당한 겁니다.


■ '2인 1조' 근무 수칙도 "있으나 마나?"


1시간 뒤면 '원청' 간부들이 점검하러 온다는 소리에 청소 작업은 급박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투입된 하청노동자는 숨진 노동자를 포함해 모두 3명. 모두 각자가 맡은 영역에서 청소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2인 1조로 작업을 했다면 제시간 안에 마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빨리 끝내라고 해놓고 전부 다, 모든 사람들이(노동자들이) 뭉쳐서 한 곳 (청소)하고 가고, 한 곳 하고 가고 어떻게 시간 안에 끝내요. (2인 1조로 작업하면) 시간 안에 끝낼 수가 없죠." - 숨진 하청노동자 동료


■ "우리 모두의 잘못"

어렵사리 인터뷰에 나선 숨진 노동자 동료는 현장 노동자의 과실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원청인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자신이 소속된 하청업체가 이번 사고를 노동자 개인의 잘못으로 떠넘기는 행태는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며 납득할 수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사고를 둘러싼 얽히고설킨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똑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현대차 그룹 정의선 회장은 사고 다음 날인 지난 4일, 새해 메시지를 통해 애도를 표하고,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전한 환경 조성과 안전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오늘(6일) 하언태 현대자동차 사장 역시 신년사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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